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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귿 공방

버서사이-미소녀 천재 대마법사 전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디귿(D)
작품등록일 :
2022.05.12 14:41
최근연재일 :
2023.04.19 19:10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3,291
추천수 :
176
글자수 :
761,699

작성
22.05.12 14:57
조회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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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2쪽

#0. 프롤로그

DUMMY

나선형 계단의 끝은 보이나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계단 난간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부유마법은 아직 익히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친구들처럼 계단에서 계단을 지그재그로 건너뛰며 내려갈 정도의 체술(體術)도 익히지 못했다. 결국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 다리로 뛰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의리 없는 것들.”


이미 한참 전에 탑을 빠져나갔을 친구들을 원망하며 달음질을 멈추지 않은 덕에 쉬지 않고 탑 입구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였다. 이대로 쉬지 않고 뛴다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헉헉··· 아이고, 죽겠네. 이 자식들, 밑에선 기다릴 줄 알았더니······.”


활짝 열린 중앙도서관 탑 입구에 기대 숨을 헐떡이며 겨우 고개를 들어 성문을 바라 봤다. 평소와 달리 수많은 횃불이 일렁이는 성벽이 낯설었다. 먼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갖은 함성과 비명, 갖은 병기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음은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던 샤이르의 말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공격이야! 지금 카델이 공격 받고 있다고!”


대륙 최대의 무관학교 카델을 공격하는 무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륙에 카델 출신의 무관을 등용하지 않은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카델 출신의 무인이나 마법사 역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카델을 공격한다는 건 대륙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와 다를 게 없었다.


중앙도서관 탑에서 성문까지 쭉 뻗은 길 위 어디에도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벌써 성벽에 올라 전투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서둘러야 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지만 부족한 실력이나마 보탬이 되어야 했다. 아현은 숨을 고르고 성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성문에 가까워질수록 끔찍한 소음은 점점 커졌다. 성벽 위에서 활을 쏘고 돌을 집어 던지는 학생들의 모습도 점점 뚜렷이 보였다.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자 아현은 더욱 힘을 내 계단을 뛰어 올랐다.


다섯 개, 세 개, 한 개.


드디어 성벽 위에 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상황 파악을 위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교수, 물자를 나르느라 정신없이 성벽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이를 악물고 성벽 아래로 돌을 던지거나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낯익은 학생들의 얼굴엔 생전 처음 보는 끔찍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분노와 공포, 그리고 처절함까지. 마치 야차와 같은 눈빛을 하고 성벽 아래 어둠을 향해 끔직한 살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웩.


아현은 마치 지옥 같은 끔찍한 광경에 참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토악질을 했다. 어둠 속에서 뿌옇게 올라오는 연기에 섞인 역겨운 탄 내음과 대기를 가득 메운 비릿한 피 내음이 섞여 속을 뒤집었다.


두려웠다. 당장이라도 이 끔찍한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곳에 계속 있다간 몸도 정신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공격이 집중되고 있는 성문에서 벗어나 성벽의 끝자락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극복되지 않는 원초적인 공포와 동료들의 사투를 모른척하는 못난 자신을 책망하는 눈물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친구들은 지금 어둠 속 적을 막기 위해 괴물이 되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을 하나라도 더 꺼트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 옆에 있는 동료의 안녕을 위해, 카델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살생을 감수하고 있었다.


당장 일어나 그들과 함께 해야 했다. 아무리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라도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결론일 뿐 본능은 한도 끝도 없이 의지를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일어나야 해. 친구들한테 가야 돼!’


몇 번을 다짐하고 몸에 힘을 주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본능을 극복하지 못한 나약하고 비겁한 정신이 만들어낸 절망이 두려움과 뒤섞이며 영원히 올라올 수 없는 어둠으로 빨려들려 할 때 낯선 목소리가 아현의 귓가를 스쳤다.


“끔찍하죠?”


낯선 여자 목소리에 놀라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능이 만들어낸 착각일 뿐 아현의 몸은 여전히 꼼짝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전쟁의 참혹함은 익숙해지질 않네요.”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목소리보다 친근하고 은은한 목소리였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다. 현재 교내에 있는 사람 중에 아현이 기억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동료들과 대치하고 있는 적 중 하나일 확률이 높았다.


“동료를 돕고 싶은데, 그럴만한 능력도 되는데 공포에 짓눌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힘들고 슬프죠?”


적이 분명할 텐데 아현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리어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공포나 적대감은 고사하고 마치 평생을 함께 한 가족의 목소리 같았다. 더군다나 그 목소리는 거짓말처럼 마음을 안정시키며 전쟁의 참혹함이 주는 공포에 짓눌렸던 긴장을 조금씩 풀어주고 있었다.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요. 이유야 어찌 됐든 한 생명을 끊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어느새 떨림이 멈춰있었다. 얼어붙은 듯 긴장한 근육도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아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반가워요.”


아현의 시선이 닿은 곳엔 검은색 로브를 걸친 얼음 같이 차가운 기운을 풍기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온몸으로 풍기는 기운과 달리 아현과 눈이 마주치자 꾸밈없이 순수한 십대 소녀처럼 활짝 웃어보였다.


“버서사이죠?”


아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 개월 전에 처음 들었던 그 단어는 결코 다른 누구의 입을 통해 언급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버서사이거든요.”


“저··· 저······.”


아현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잊은 것처럼 머릿속에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놀랐죠? 반응을 보니 본인 외에 버서사이를 처음 본 것 같네요.”


“저··· 절 어떻게······.”


억지로 힘겹게 겨우 짜낸 한 마디였다.


“느낄 수 있어요. 아가씨도 느끼지 않았나요?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편안하고 안정이 되는 기분. 마치 가족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따뜻함 같은 거요.”


아현이 느낀 그대로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다른 버서사이들에게서 똑같은 감정을 느꼈던 걸 보면 아마 우리만 통하는 어떤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신기하죠?”


여자는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아현을 대했다. 전장을 앞에 둔 상태에서 적으로 의심되는 여자가 보이는 반응은 상식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조심해요. 같은 버서사이라고 해도 모두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니까요.”


“그럼······.”


여자는 아현의 눈이 불안하게 떨리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 경계하지 않아도 돼요. 전 적어도 아가씨의 적은 아니에요.”


“근데··· 누구세요?”


“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자세히 설명하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니 간단하게 말하면··· 앞으로 아가씨와 친구가 될 사람이라고 할까요?”


“네? 그게 무슨······.”


“자세한 건 차차 알 수 있으니 너무 조급할 필요 없어요.”


여자는 슬그머니 아현의 앞으로 자리를 옮겨 쭈그려 앉아 아현의 손을 포근하게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 세계를 살아가려면 언젠가는 극복해야할 문제예요. 물론 지금 당장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어쩌면 이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가씨의 정신이 망가질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일어서야 해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에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함이죠. 있죠? 저 전장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 아가씨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요. 그것만 생각해요. 물론 살생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가씨의 힘이 소중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만 해요.”


여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윽한 눈빛으로 아현의 눈을 잠시 응시했다.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저 지옥 속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아요. 그건 제가 보장할 수 있어요. 그러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묘하게 설득력을 가지는 말이었다. 여자가 하는 말의 논리보다 진심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조언이었다.


“아, 난 이만 가봐야겠네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난 사람처럼 여자는 서둘러 아현의 손을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저···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이름? 아가씨 이름은 어떻게 되죠?”


“전 아현이요.”


“예쁜 이름이네요. 그런데 미안하게도 내 이름은 지금 알려줄 수 없네요. 그럼 다음에 봐요.”


아현은 너무 놀라 발작하듯 제자리에서 몸을 튕겼다.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여자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다음에 보자는 마지막 말은 마치 바람에 실려 오는 가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올 뿐이었다.


아현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으나 사방 어디에서도 로브를 입은 여자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듯, 유령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유, 유령인가?’


유령 외에는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니면 너무 큰 충격으로 정신에 이상이 와 환각과 환청을 겪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환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더군다나 이젠 완전히 공포에서 벗어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몸을 짓누르던 긴장도 사라지고 없었다.


아현은 무릎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너무 오랫동안 움츠려있던 탓에 몸이 뻣뻣하게 굳은 감은 있었지만, 당장 몸을 일으키고 걸음을 옮기는데 큰 지장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소중한 사람······.’


조금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끔찍한 아비규환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두려웠다. 하지만 가야 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가야만 했다.


처절한 전장··· 어둠 속에서 적들은 끊임없이 동료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적군을 막아내기에 아군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현은 치열한 전장을 향해 양손을 뻗고 마나의 흐름에 집중했다. 왼손의 반지에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마나가 느껴졌다. 그 마나에 반응한 주변 마나도 격하게 요동쳤다. 어떤 마법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밀듯이 몰아치는 무수히 많은 적으로부터 아군을 지킬 수 있는 마법, 방어와 동시에 공격이 가능한 마법······. 한 가지 마법이 떠올랐다.


마법 스킬 : 파이어 월


희미한 달빛만이 아슬아슬 비치는 전투의 현장을 휩쓰는 바람이 빠르게 한곳으로 빨려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엄청난 빛과 화염을 뿌리며 폭발이 일어났다.


퍼엉!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을 향해 치솟던 화염은 빠르게 옆으로 뻗기 시작했다. 화염의 벽은 무수히 많은 적들을 집어삼키며 뻗어나갔다. 마치 성벽처럼 반원을 만든 화염은 순식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으로부터 아군을 에워쌌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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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2. 에필로그 23.04.19 19 0 22쪽
103 #101. 작별 인사(1부 마지막) 23.04.18 12 0 23쪽
102 #101. 전후(戰後) 사정(5) 23.04.17 31 0 12쪽
101 #100. 전후(戰後) 사정(4) 23.04.16 17 0 14쪽
100 #99. 전후(戰後) 사정(3) 23.04.15 19 0 15쪽
99 #98. 전후(戰後) 사정(2) 23.04.14 19 0 14쪽
98 #97. 전후(戰後) 사정(1) 23.04.13 19 0 16쪽
97 #96. 카델 침공(29) 23.04.12 23 0 16쪽
96 #95. 카델 침공(28) 23.04.11 17 0 14쪽
95 #94. 카델 침공(27) 23.04.10 21 0 12쪽
94 #93. 카델 침공(26) 23.04.09 21 0 14쪽
93 #92. 카델 침공(25) 23.04.08 20 0 14쪽
92 #91. 카델 침공(24) 23.04.07 16 0 13쪽
91 #90. 카델 침공(23) 23.04.06 17 0 14쪽
90 #89. 카델 침공(22) 23.04.05 26 0 12쪽
89 #88. 카델 침공(21) 23.04.04 18 0 11쪽
88 #87. 카델 침공(20) 23.04.03 16 0 14쪽
87 #86. 카델 침공(19) 23.04.02 16 0 11쪽
86 #85. 카델 침공(18) 23.04.01 20 0 13쪽
85 #84. 카델 침공(17) 23.03.31 15 0 13쪽
84 #83. 카델 침공(16) 23.03.30 15 0 12쪽
83 #82. 카델 침공(15) 23.03.29 19 0 16쪽
82 #81. 카델 침공(14) 23.03.28 18 0 14쪽
81 #80. 카델 침공(13) 23.03.27 19 0 11쪽
80 #79. 카델 침공(12) 23.03.26 18 0 12쪽
79 #78. 카델 침공(11) 23.03.25 18 0 14쪽
78 #77. 카델 침공(10) 23.03.24 18 0 14쪽
77 #76. 카델 침공(9) 23.03.23 19 0 13쪽
76 #75. 카델 침공(8) 23.03.22 2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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