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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괴물이 우는 소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11.02 18:29
최근연재일 :
2012.11.02 18:29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41,594
추천수 :
393
글자수 :
202,939

작성
12.10.28 18:23
조회
896
추천
8
글자
11쪽

괴물이 우는 소리: 최종장(2)

DUMMY

비참하게 도망가다 죽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기다리는 것이 죽음이라면 떳떳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박화양은 괴물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괴물과 거리를 두고 말했다.


“너한테는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아닐지라도 우리 동족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사막에서 만났던 네 동족이 한 말이다. 너라면 이 말의 뜻을 알고 있겠지.”


박화양은 괴물의 눈이 잠깐 동안 커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괴물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상체만 벽에 기대는 것이 고작이었다. 시간이 오래 주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괴물은 그 상태로 박화양을 보며 말했다.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말해준다 해도 너는 이해할 수 없다.”


괴물이 수행한 임무는 실패 시 죽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임무였다. 그들 종족은 살고 있던 별이 수명을 다해 없어진 후 오랫동안 우주를 유랑했다. 다른 별의 공기에선 제대로 살아갈 수는 신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종족의 수가 적어지자 더 이상 새로운 별을 찾는 일을 늦출 수 없었다. 이들의 지배층은 알로 몸을 퇴화시켜 생존에 적합한 별을 찾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심각한 부작용이 동반될 수 있는 그 기술에 몸을 맡길 이가 있느냐였다. 지배층은 이에 기가 막힌 계책을 생각해냈다. 그 결과, 위험한 임무였지만 지원자의 수는 넘쳐났다. 지배층이 내 건 조건은 이름이었고, 종족의 하층민은 이름이 없는 한평생 상층민의 노예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괴물은 몸을 좀 더 뒤로 이동시켰다. 딱딱한 벽의 느낌이 이렇게 든든한 적은 처음이었다.

박화양은 괴물의 행동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척하고 말을 이었다.


“네 동료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동족이 하는 일을 미워하되 그들 자체는 미워하지 말라고.”


박화양은 괴물 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거기에 맞춰 괴물은 등을 벽에 기댄 채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면서 한순간이었지만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박화양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정녕 얘기해줄 생각이 없나?”

“웃기지 마라!”


괴물은 벽에서 튕겨 나와 박화양의 얼굴을 노리고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힘이 빠진 주먹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 발을 내디딘 충격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래도 괴물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괴물은 상층민 한 명을 죽인 전과가 있는 하층민이었다. 지배층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원자 하나가 아쉬웠던 터라 그를 받아줬다. 괴물은 이것이 마지막 기회란 것을 알고 있었다. 성공은 이제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통신에 성공해 우주선으로 돌아갔을 때 상층민들이 보여준 가증스러운 태도도 꾹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마지막 기회를 수포로 만들어버리려는 당사자가 태연한 얼굴로 자신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괴물은 상층민들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었던 다른 종류의 격렬한 분노를 박화양에게서 느꼈다.


“우리의 삶은 너 같은 놈에게 들려줄 정도로 하찮은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주먹도 허공을 갈랐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지던 괴물의 몸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힘없이 움직이던 팔이 밑으로 축 늘어지고 호흡이 완전히 막혀 입에서 마른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괴물의 품 속을 파고든 박화양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괴물의 가슴을 관통해 등으로 빠져나온 오른팔은 청록색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박화양은 왼손으로 괴물을 밀어내면서 팔을 빼냈다. 바닥에 쓰러진 괴물은 마지막 숨을 헐떡이다가 눈을 뜬 채로 죽었다.


“내가 어떻게 너를 이해할 수 있겠냐.”


박화양은 쓰러진 괴물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괴물의 거친 눈꺼풀을 감겨주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와 다른 괴물들의 고함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땅을 울리는 진동이 지나가면서 천장에서 흙먼지가 다수 떨어졌다.


약 3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박화양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괴물에게서 멀어지며 툭 던지듯이 말했다.


“애썼다.”



※※※




“위대한 자가 죽었다.”


화면에 뜬 영상을 보며 선장은 탄식했다. 무기를 든 적도 아니고 맨몸과 맨몸으로 싸워서 진 것이다. 아무리 전투복 이외의 장비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행성의 생명체가 맨몸으로 동족을 죽이는 일은 거의 처음이었다. 선장은 화면에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확대해 좀 더 자세히 바라봤다. 확실히 인간치고는 큰 체격도 크고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자였다.


선장은 전투복을 통해 전송된 자료를 한곳에 모아뒀다. 인간과는 다시는 맞붙지 않겠지만 언젠가 다른 강력한 적과 싸울 때, 이 자료는 유용하게 쓰일 것이 분명했다. 이것만으로도 위대한 자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하층민들이 이름을 얻기 위해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언제나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서 놀라움을 주었다.


선장은 만약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름을 부여받고 벌였을 활약들을 잠깐 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곧 부질없음을 깨닫고 생각을 의식 저 멀리 날려보냈다. 선장은 배의 상태를 확인했다. 죽었던 기능들이 대부분 살아났으며 수분 안에 공간 도약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희민의 손에는 구 각짜리 봉이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여분은 더 이상 없는 것 같았다. 이것마저 부러지면 십 각 봉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편했다. 수십 개의 봉을 부러뜨리면서 좀 더 효율적인 공격 방법이 손에 익게 되어 평소와 같이 안정된 움직임이 가능하게 된 점이 컸다.


희민은 시야에 마지막으로 남은 붉은 전투복의 괴물을 쓰러뜨릴 때 갑자기 적의 행동이 이상해 진 것을 눈치챘다. 이제까지와 달리 저돌적으로 돌진해오는 비중이 줄고 망설이거나 도망가는 녀석들이 생겨났다. 골목에서 뛰어나오던 괴물은 희민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건지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희민은 녀석이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봉으로 팔과 다리를 쳐서 방어막을 없앤 다음 가슴을 관통시켜 죽였다.


바로 뒤에서 다른 괴물의 기운이 느껴져 곧바로 봉을 빼내며 돌아봤지만 그 괴물은 희민을 신경 쓰지 않고 우주선 방향으로 곧장 달려갔다. 희민은 괴물이 공격할 기회를 그냥 보낸 것에 의아함을 느끼면서 근처에 있던 신호등 기둥을 밟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 부근의 건물들은 대부분이 2, 3층밖에 되지 않아 먼 곳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주변에 있던 괴물들이 일제히 우주선으로 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희민은 지체하지 않고 괴물들과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뭐야 이것들?”


임길수가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소리쳤다. 적들의 퇴각에 놀란 것은 우주선 앞에 있던 세 명도 마찬가지였다. 괴물들로 꽉 찼던 장소가 순식간에 비기 시작했지만 세 명과 가장 가까이 있던 괴물들은 자기 자리를 지켰다. 동족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는 것 같았다.


“야, 난 힘이 빠져서 못하니까 너희가 좀 해봐라.”


임길수가 최수호와 이진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적들이 더 이상 공격해 오지 않았다. 신중히 상황을 살피고 있던 최수호가 옆에 서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아까 다 회복했다며?”

“뻥이지. 우주선 하나를 추락시킬 정도였는데 그게 그렇게 금방 회복되겠냐?”

“그러면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지.”

“에이, 이 융통성 없는 자식.”


임길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최수호는 한순간 욱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칼 좀 빌려줘 봐.”


조그만 과도를 넘겨받은 최수호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가 이내 적들을 보며 얼만큼의 힘을 써야 할지 계산했다. 계속된 싸움으로 그도 상당히 지쳐 있었기 때문에 너무 큰 공격은 할 수 없었다. 적들을 다수 쓰러뜨리면서도 자신도 행동에 이상이 없을 만큼 힘을 써야 했다.


“뒤로 물러서.”


그 말에 이진과 임길수가 등 뒤로 걸음을 옮기자마자 최수호의 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괴물 중 반 정도가 갑자기 가슴에 난 날카로운 상처에 괴로워했다. 운 좋게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괴물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공격에 깜짝 놀라며 서로 뒷걸음질치느라 아우성이었다.

최수호는 과도를 임길수에게 도로 넘겨주면서 투덜거렸다.


“역시 나는 칼이 잘 안 맞아.”

“그럼 그냥 날려버리지 왜 굳이 칼을 쓰냐.”

“그랬으면 죽이진 못하고 방어막만 날려버렸을걸.”


그때 다른 곳에서 괴물의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무언가가 바닥을 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세 명이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그쪽에 서 있던 괴물들이 뭔가에 맞고 좌우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괴물들이 사라져 생긴 틈 사이로 누군가가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세 명 앞에서 급제동을 걸어 멈췄다. 희민은 눈앞의 적들을 바라보면서 뒤로 물러나 세 명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희민아. 늦었다.”


최수호가 불평하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너 그거 항상 가지고 다니던 봉이 아니네?”


임길수가 희민이 들고 있는 봉을 보며 물었다.


“이건 사정이 있어서...”

“문호는 어디 있어?”


이진이 같이 갔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는 아들의 행방을 물었다.


“문호 씨는 제 부탁으로 저쪽 빌딩에...”


그녀가 어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도중이었다. 우주선에 불빛이 돌아오더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을 내뿜기 시작했다. 일행을 막느라 자리를 지키고 있던 괴물들이 몸을 돌리더니 일제히 우주선으로 달려갔다. 이제 괴물들은 늦기 전에 우주선에 올라타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어디 갔지? 이걸 그냥 놔둘 성격이 아닌데.”


임길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외치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동시에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화양이 잔뜩 화난 얼굴로 괴물들을 무차별 도륙하며 우주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아직 많은 괴물이 밖에 남아 있음에도 우주선 출입구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박화양은 곧장 달려 닫히는 문을 손으로 잡더니 힘으로 다시 열어버렸다. 안쪽에 괴물이 몇 마리 있었는지 박화양은 출입문 안으로 주먹을 몇 대 날리고 들어갔다. 그가 우주선으로 들어간 후 다시 출입구가 닫기자 밖에 남아 있던 괴물들을 다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난 쟤가 뭘 하든지 간에 이제 상관 안 하련다. 너희들은?”


임길수는 옆을 돌아보면서 일행의 의향을 살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표정을 보건데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안전한 곳에서 구경이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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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2) +2 12.10.02 871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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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5) 12.09.26 79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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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3) 12.09.22 995 8 11쪽
22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2) +2 12.09.20 996 23 12쪽
21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1) 12.09.18 973 1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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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5) +2 12.09.09 829 9 12쪽
16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4) +1 12.09.07 822 7 10쪽
15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3) +1 12.09.05 914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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