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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괴물이 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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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11.02 18:29
최근연재일 :
2012.11.02 18:29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41,605
추천수 :
393
글자수 :
202,939

작성
12.09.16 12:35
조회
799
추천
7
글자
9쪽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8)

DUMMY

“제가 남자라서 그렇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채우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김가진은 기침으로 상황을 얼버무리려 했지만 희민의 경멸에 찬 눈빛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농담이고요.” 그러면서 김가진은 희민의 눈치를 살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된 금속입니다. 안을 잘 보면 아시겠지만 그냥 철과는 느낌이 다르죠? 이건 이제까지 사용된 적이 없는 신소재입니다. 한 번 만져보세요.”


희민은 그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는 가장 큰 부품을 손으로 만져봤다. 얼핏 보기에는 철과 다를 바 없었는데 금속 특유의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이 없었다. 과감히 다섯 손가락을 사용해 만져보았다. 너무 부드럽고 매끄러워서 살결을 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부품들도 비슷한 느낌일까 싶어 손을 옮기려고 할 때 김가진이 기계 다리를 뒤로 빼면서 말했다.


“안쪽은 만지면 안 돼요. 정교한 부품이라 쉽게 고장이 납니다.” 그는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 외에도 아직 문제가 있어요. 아직 경량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무게가 많이 무거워요.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 입니다. 열쇠 하나만 발견하면 바로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연구가 많이 진척됐어요.”


“그런데 말이죠.” 부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희민이 고개를 돌렸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죠?”

“뭘 하다니요?”

“무슨 쓰임새가 있을 거 아녜요.”


김가진은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질문에 알맞은 대답을 생각했다.


“굳이 대답한다면 사람 대신 일을 시킬 수 있겠죠. 그런데 이미 그런 용도의 로봇은 이미 보편화 된 지 오래죠. 전 그냥 쓰임새를 같은 건 생각 안 하고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겁니다. 일종의 로망이죠. 안타깝게도 완성까지는 아직도 멀었지만.”

“그래도 벌써 하체를 다 만드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반은 끝난 것 아닌가요?”

“몸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제 목표는 안드로이드거든요. 인공지능은 아직 시도도 못 했어요. 제가 죽기 전까지 완성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게 가능...”


갑자기 희민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눈으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예. 예. ...예. 볼 일이 있는 곳이 있어서 좀 나왔어요. 예. 저녁때까지는 들어갈게요.” 전화를 끊고 김가진을 보면서 사과했다. “죄송해요. 아는 분인데 오늘 밤에 있는 일에 늦지 말라고 하시네요.”

“여러 가지로 바쁘신 것 같군요.”

“아니요. 별로. 그런데 말이죠. 이런 비싸 보이는 장비와 정밀한 기계를 저 같은 사람에게 함부로 보여줘도 되나요? 보안도 철저히 하시던 것 같던데.”


김가진은 갑자기 위가 쓰려 왔다. 자기 발명품을 자랑한다는 생각에 그 부분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혹시... 다른 연구소나 군수 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습니까?”


그가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희민은 손사래를 쳤다.


“그런 쪽이랑은 아무 연관 없는 사람이에요. 여기서 본 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희민은 그래도 김가진을 진정시키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아 덧붙였다. “제 주변에는 이쪽으로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어요.”


큰 효과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김가진의 상태는 좀 전보다 나아진 것 같이 보였다.


“그건 다행이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정신줄을 놓는 바람에...”


그는 비틀거리면서 출입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기다렸다. 이 무거운 분위기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희민은 주저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불이 꺼지고 보안장치가 다시 문을 걸어 잠갔다.

희민은 비틀어진 모자를 제대로 쓰면서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네.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폐를 끼친 것 같아서요.”


문이 열리기 전까지 김가진은 최대한 눈을 굴려 희민이 무언가를 훔치지 않았는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가방도 없이 간단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는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었다. 작은 부품이라도 청바지 주머니라면 바로 표가 난다. 혹시 나가면서 챙긴 우산 속에 몰래 카메라라도? 아, 어차피 지하에는 우산을 들고 가지 않았었구나.


희민이 연구실을 나가고 나서도 김가진은 한참 동안 문에 머리를 박고 서 있었다. 결국 처음에 하려던 조수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마 다시 오는 일은 없겠지. 그는 지금 자신이 정말 불쌍하다고 느끼고 자신을 이해 모든 힘을 다해 눈물을 쥐어짜냈다. 안경알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비밀 기지 같은 연구실에서 나온 희민은 곧장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평소 먹던 것보다 좀 더 단맛이 강한 병 두유를 하나 샀다. 이래서 낯선 사람과는 되도록 만나기 싫었다. 특히 남자라면 더욱. 태도를 조금만 잘못하면 여러 가지로 오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봤다. 오후 12시였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끼어 있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도 식사 시간에는 늦는 거 근처 식당에서 오랜만에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지금 이 꿀꿀한 기분도 한결 나아지리라.


주택가를 벗어나 대로에 들어서자 마침 사람들이 한 냉면집 앞에 줄을 잔뜩 서 있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바로 옆에 있는 식당까지 줄이 이어진 모습이 잘 알려진 맛집의 기운이 느껴졌다.


희민은 재빨리 줄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안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식당 직원이 비어 있는 자리 수대로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줄은 생각보다 상당히 빠르게 줄어들었다. 식당 유리 앞에 서 있을 때, 안을 살펴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비빔 냉면을 먹고 있었다. 희민은 비빔이 이곳의 자랑인가 보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걸로 먹기로 했다.







[사 장 – 괴물]


“희민아, 이거.”


이진이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머그컵에 따라 카페 테이블에 앉아 있는 희민에게 내왔다. 희민은 두 손으로 컵을 받으면서 “고맙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거, 얼마나 매운 걸 먹었길래 탈이 나냐?”


임길수가 혀를 차며 말했다.


“비빔 냉면요.”


대답한 직후 또다시 속이 쓰려 온 희민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나마 우유를 마시니 속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임길수는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최수호에게 손짓으로 가까이 오라고 신호했다. 그는 희민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희민이 상태가 안 좋은 데 그냥 놔두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글쎄, 희민이는 무조건 간다고 할 것 같은데.”

“한번 물어봐라.”


임길수가 손끝으로 찌르면서 재촉하자 최수호는 마지못해 희민을 보며 물었다.


“희민아, 너 몸도 안 좋은 거 같은데 오늘은 그냥 쉴래?”


우유를 마시고 있던 희민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거봐.”


최수호는 친구를 팔꿈치로 찔렀다. 임길수는 머리를 긁으며 머쓱해했다.


“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 조사간다고 미리 말해 났는데 탈이 나냐. 미련하게.”

“매운 거 잘못 먹으면 그러잖냐. 먹을 땐 맛있어도 나중에 고생하기도 하고.”

“그게 문제냐. 거 땅굴에 가서 뭐 잘못되면 어떡할래?”

“그냥 조사만 하는 건데 별일 있겠어. 어제 대충 봤을 때도 아무것도 없었잖아.”


남자 둘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이진은 희민의 옆에 앉았다.


“희민아. 아줌마가 점이라도 쳐줄까?”


희민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그거 그렇게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잖아요. 맨 뒤에서 따라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유 먹어서 그런지 속도 한결 나아졌어요.”


그러면서 희민은 남아 있던 우유를 한 번에 들이켰다.



※※※



밴을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도 희민은 배가 쓰렸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행히 참고 조금 있으니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갔다.

그때 운전대를 잡고 있던 문호가 약 봉투를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어머니, 이거 희민 씨한테 주세요.”

“이게 뭐냐?”


이진은 그 말대로 약 봉투를 맨 뒤에 있던 희민에게 줬다.


“소화제에요.”


문호는 희민이 약을 먹는 모습을 백미러로 확인하고 옅게 미소 지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최수호가 뒤에는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갔나 했더니 저거 사러 나간 거였냐?”

“예.”

“부모가 아플 때 그렇게 좀 해봐라.”


문호는 쑥스러운지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때 무언가가 차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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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6) +1 12.10.12 963 10 14쪽
31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5) +1 12.10.08 810 8 11쪽
30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4) +3 12.10.06 928 8 11쪽
29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3) +1 12.10.04 796 8 11쪽
28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2) +2 12.10.02 872 8 10쪽
27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1) +1 12.09.30 1,030 7 11쪽
26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6) 12.09.28 840 8 9쪽
25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5) 12.09.26 792 8 13쪽
24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4) 12.09.24 758 7 13쪽
23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3) 12.09.22 995 8 11쪽
22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2) +2 12.09.20 996 23 12쪽
21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1) 12.09.18 974 15 9쪽
»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8) 12.09.16 800 7 9쪽
19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7) 12.09.14 884 7 12쪽
18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6) 12.09.11 744 9 10쪽
17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5) +2 12.09.09 829 9 12쪽
16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4) +1 12.09.07 823 7 10쪽
15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3) +1 12.09.05 914 9 8쪽
14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2) 12.09.03 726 10 10쪽
13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1) 12.09.01 922 9 10쪽
12 괴물이 우는 소리: 이 장 - 재해(07) 12.08.30 1,06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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