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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괴물이 우는 소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11.02 18:29
최근연재일 :
2012.11.02 18:29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41,607
추천수 :
393
글자수 :
202,939

작성
12.10.06 18:22
조회
928
추천
8
글자
11쪽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4)

DUMMY

“그냥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지…”


희민은 맥이 완전히 빠짐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유치하고 어이없어서 몸을 가만히 있질 못하다가 기대고 있던 벽에 뒤통수를 박아댔다. 아쉽게도 아픔은 부끄러움을 제대로 몰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제야 머리에 쓰고 있던 고글을 생각해냈다.


희민은 결연한 마음으로 손안에 놓인 고글의 스위치를 올렸다. 작동이 되지 않았다. 세상이 금방이라도 멸망할 것처럼 마음이 걱정으로 가득 찼다. 머리에서 벗겨지지 않는 것만 신경 써서 충격을 받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정말 죄송해요.”


본부로 돌아온 희민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달게 받겠다는 생각으로 김 요원에게 고글을 내밀었다. 그는 처음에 이게 뭔가 하는 표정으로 고글을 만지다가 곧바로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챘다.


“세게 맞았는지 작동이 안 돼요.”


김 요원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건물을 부숴버리는 싸움을 보고 난 이후에 희민을 평소처럼 대하기가 힘들었다. 최수호가 무전으로 싸우고 있는 사람이 그녀란 걸 알려주지 않았으면 하는 한심한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여자가 이제까지 만나 왔던 사람과 다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했다. 무엇보다 자신은 이곳에 있는 요원들을 이끄는 책임자였다.


“괜찮습니다. 여분은 몇 개 더 있으니까요. 혹시 필요하시면 가져가시겠습니까?”


최대한 평소처럼 한 말이었지만 아무래도 좀 더 굳어 있었다. 다행히 희민의 관심은 고글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그 차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요. 아무래도 저한테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은 한 개 더 가지고 나갔다가 또 고장 낼 것만 같아서 겁이 난 거였다. 희민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말했다.

“아, 혹시 김영미란 분 아세요?”

“네. 저희 쪽 정보과에 소속된 요원이었습니다.”


김 요원은 고글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서 대답했다. 희민은 그가 '요원이었습니다'라고 말한 부분이 신경 쓰였다.


“불행히도 저번 지진 때 파티에 참석했다가 행방불명이 되었죠. 혹시 그곳에서 만나셨습니까?”

“네. 그분이 사망하는 순간 제가 옆에 있었어요.”


김 요원의 눈이 커졌고 주변에 있던 요원들도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희민은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김 요원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쩌다가...?”

“건물이 무너질 때 저하고 떨어지면서 둘 다 건물 잔해에 깔렸어요. 일단은 제가 위에서 잔해를 막아봤지만 그분은 떨어지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팔다리가 돌덩이에 깔려버렸죠. 나중에 정신이 들었지만 얼마 안 있어 그대로 사망했어요.”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 요원은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 컴퓨터를 무릎 위로 가져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그리고 소란 일으킨 거 죄송해요.”


김 요원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노트북으로 뭔가를 열심히 치는 그를 뒤로하고 희민은 천막을 나왔다. 근처에 있던 커다란 스테인레스 물통의 수도꼭지를 위로 올려 미지근한 물을 받아 마시고 있을 때, 한쪽에서 요원들과 복잡한 기계를 만지고 있는 김가진의 모습이 보였다. 희민은 김가진의 연구실에 있던 정교한 로봇 다리가 생각나서 컵을 내려놓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기계를 보고 있던 김가진은 시야에 희민이 들어오자 고개를 들면서 말을 걸었다.


“아가씨. 웬일이지?”

“계속 여기 있어도 되나요?”


김가진은 요원들에게 기계를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희민에게 걸어갔다.


“무슨 말이야?”

“연구실 보안이 불안할 텐데.”

“괜찮아 괜찮아. 문 앞을 냉장고로 막아났어. 어차피 평소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버려진 집 같을 거야.”


‘그렇다면 애초에 보안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라고 희민은 생각했다. 김가진은 그녀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모르는지 자기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가씨가 말한 괴물에 호기심이 생겼고. 내 나쁜 버릇이지.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이 더 가거든. 그 괴물이 입고 있는 게 내가 쓴 금속과 비슷하다며? 확인 안 해볼 수 없잖아.”

“당신은 그 녀석에게 접근하자마자 죽을지도 몰라요.”

“녀석이 살아 있으면 그렇겠지. 난 당신들이 놈을 쓰러뜨린 다음에 접근할 거야. 그게 안전하니까.”


김가진의 자신감 넘치는 말을 듣자 희민은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희민은 인사도 없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김가진은 희민이 사라진 곳을 몇 번이고 되돌아보다가 기계로 돌아와 요원들에게 진행 상황을 듣고 일을 계속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를 걷고 있던 희민은 모퉁이를 돌아 나오던 최수호와 마주쳤다. 자신의 행동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호통이 날아올 것을 각오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최수호는 희민의 옆을 지나가면서 머리 위에 잠시 손을 얹어 주었다.


“젊으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좀 더 신중해져라.”


최수호는 그 말만을 남기고 골목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났어도 희민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본부로 돌아온 최수호는 기계를 만지고 있는 김가진을 슬쩍 보고 천막으로 들어갔다. 아직 노트북을 만지고 있던 김 요원이 그를 맞았다.


“방금 전 소란은 죄송했습니다.”


최수호의 말에 김 요원은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딱히 저희 쪽에 피해가 생긴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습니까.”


최수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각종 자료가 올려져 있는 테이블에서 의자를 빼내 앉았다. 그리고 간이 책장에서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얼마 전 땅굴에서도 읽고 있었던 책이었다. 이곳에 천막이 설치된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 이제는 읽은 부분이 읽지 않은 부분보다 많았다.


두 남자가 아무 말 없이 각자 할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진이 바람을 일으키며 요란하게 천막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남편이 고서를 읽는 모습을 보고 뭔가를 생각해내고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책장 접어놓은 부분 봤어?”

“책장을 접어?”


부인의 말에 최수호는 책을 덮고 접힌 부분을 살펴봤다. 그 말 대로 한 군데 접힌 부분이 있었다. 책이 워낙 오래되고 원래 얇은 종이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 한 눈치채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 이렇게 하면 책이 금방 상하는데…”

“뭐 어때, 천년만년 볼 것도 아닌데.”


이진은 그러면서 최수호에게서 책을 뺏어 자신이 표시한 부분을 펼치고는 소리가 날 정도로 힘껏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바람에 노트북을 만지고 있던 김 요원이 깜짝 놀랐다. 최수호는 김 요원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대신 사과한 뒤 아내가 펼쳐놓은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1631년, 사람 크기만한 갈색 뱀.”


최수호는 놀란 얼굴로 아내를 쳐다봤다. 이진은 코를 세우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좀 찾아볼까 해서 보다가 찾았어. 시간 단축되고 좋지?”

“그러네. 음. 우리는 적으로부터 탈취한 장치를 오랫동안 산에 살아 사람 크기만한 뱀의 오른쪽 눈에 봉인했다. 그리고 뱀에게 적에 대한 공포를 심어놓았다. 많은 이들이 그것에 반대했고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반대하는 수만큼이나 우리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여기는 수도 많았다.”


최수호는 잠시 쉬면서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흥미로운 이야기 소리에 끌린 김 요원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최수호는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결국 뱀은 적들에 대한 공포를 안은 채 산으로 풀려났다. 이제 뱀은 살아 있는 동안 적들을 만나게 되면 도망치게 될 것이고, 불가피하다 여길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그리고 적들은 이 땅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절대로 성공하지 못 할 것이다.”


최수호는 책장을 넘겨 뒷 내용을 읽어보았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기록은 여기 까진가?”


최수호는 빠뜨린 부분은 없는지 같은 부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오른쪽 눈에 봉인했다는 장치는 뭘까?”


이진이 손가락으로 문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모르지. 시간 날 때 봉인된 곳에 가서 한 번 살펴봐야겠어. 난 그보다 여기서 말하는 적이 누구인지 신경 쓰이는데.”


부부는 입을 꾹 다물고 적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사이 김 요원은 두 사람에게서 떨어져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시 노트북을 만지기 시작했다.


“혹시 그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진이 묻자 최수호는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라고 믿고 싶어도… 맨 처음 괴물이 나타나고 그 뒤에 지진과 함께 뱀이 나타났지. 그리고 뱀이 봉인된 장소로 성장한 괴물이 나타났어. 우연이라 생각되지 않아.”


“어? 잠깐.” 이진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했다. “희민이가 쳐들어가서 찾아온 과학자가 누구였지?”

“김가진?”

“아 맞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금속이 괴물의 갑옷과 재질이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그게… 아!” 최수호는 뭔가 감을 잡고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분명 그 사람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거라고 했지. 그러면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도 높겠군. 그 금속이 옛날에 나타났던 괴물의 갑옷 조각이라고 가정하면 이 책에 적혀 있는 적은 지금 나타난 괴물과 같은 종류일 수도 있겠는걸.”

“가능성은 낮지만. 그 과학자 아버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사실 확인을 못 하는 게 아쉽네.”

“그래.” 최수호는 다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난 괴물에 대한 다른 기록이 있나 살펴볼게.”

“너무 오래 하지는 마.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잖아.”


이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천막 한 곳에 잔뜩 쌓여 있는 컵라면 중 하나를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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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5) +1 12.10.08 810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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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괴물이 우는 소리: 오 장 - 격돌(02) +2 12.10.02 872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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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6) 12.09.28 840 8 9쪽
25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5) 12.09.26 792 8 13쪽
24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4) 12.09.24 758 7 13쪽
23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3) 12.09.22 995 8 11쪽
22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2) +2 12.09.20 996 23 12쪽
21 괴물이 우는 소리: 사 장 - 괴물(01) 12.09.18 974 15 9쪽
20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8) 12.09.16 800 7 9쪽
19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7) 12.09.14 884 7 12쪽
18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6) 12.09.11 744 9 10쪽
17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5) +2 12.09.09 829 9 12쪽
16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4) +1 12.09.07 823 7 10쪽
15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3) +1 12.09.05 914 9 8쪽
14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2) 12.09.03 726 10 10쪽
13 괴물이 우는 소리: 삼 장 - 땅굴(01) 12.09.01 922 9 10쪽
12 괴물이 우는 소리: 이 장 - 재해(07) 12.08.30 1,06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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