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여월나래님의 서재입니다.

한 번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여월나래
작품등록일 :
2022.05.11 11:14
최근연재일 :
2022.06.22 11: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28
추천수 :
99
글자수 :
154,610

작성
22.05.11 13:00
조회
57
추천
10
글자
9쪽

눈을 뜨다.

DUMMY

1화.


피가 흐르고 있다.


누구의 피 인지는 모른다. 그저 끊임없이 흐른다.


붉은 색의 끈적한 액체는 흐르고 흐른다.


그리고 소년이 눈을 뜬 곳은 낯선 침대였다.


“···?”


익숙하지 않은 침대가 무척이나 푹신하다.


“아, 일어나셨군요.”


역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의 소녀가 말을 걸어온다. 소녀는 곁에서 앉아 소년이 언제 일어나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이 소년은 소녀에게 시선을 사로잡힌다. 서로 비슷한 나이로 소녀는 점잖고 우아하다. 하늘빛 도는 은발의 머리칼이 소년에게는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러나 소녀의 행색은 소년에게는 조금 낯설다. 풀잎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으로 장식을 한 것이 이질적이게 느낀 것이다.


“어머. 실례. ···그 전에 먼저 입가의 침부터 닦으시는 게?”


소년은 반사적으로 옷소매로 입가를 닦는다. 그제야 입고 있는 옷이 자신의 것이 아닌지를 눈치 챈다.

그뿐만이 아니라, 눈에 들어오는 것 모든 것이 새로운 것들이다.


“그래서, 누구시죠? 여긴··· 어디구요?”


“글쎄요, 저는 누굴까요?”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저기요···, 지금 장난 치시는건가요?”


“네 맞아요. 농담. 재밌었나요?”


“그런 표정으로 장난이라고 말해도···.”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소녀의 표정이 진지했기에 사뭇 받아드릴 수가 없다.


“아하. 표정이 문제였군요.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녀는 밝게 웃어 보인다. 소년이 여태껏 본 적 없는 부드럽고 밝은 미소다. 순간의 긴장이 단번에 풀려버린다. 그러나 소녀는 이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아무튼, 자기 소개를 제대로 해야겠군요. 제 이름은 프뤼나. 처음 뵙겠습니다.”


소녀는 허리를 살짝 숙여 우아하게 흰색의 원피스가 가볍게 너풀거리며 인사한다.


“저는···”


“괜찮아요. 무명씨. 설명하지 않아도. 여기가 어딘지 궁금하셨죠? 저희 집이랍니다. 정확히는 제 방이고요.”


프뤼나는 소년, 무명의 말을 가볍게 끊으며 말한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고 싶은데요, 저는 왜 여기 있죠?”


문득 자신이 또래 이성의 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붉어진다. 안 그래도 특유의 포근한 향이 아까부터 신경 쓰이고 있었다.

더 의식했다가는 아랫도리가 걷잡을 수 없을 거 같아 다른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한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는 이 말투가 편할 뿐이랍니다.”


“그, 그래. 그래서 나는 왜 여기서 자고 있던 거야? 여기는 아예 다른 세상 같잖아.”


아무래도 또래에게 존대는 불편했던 무명은 프뤼나의 호의를 곧바로 받아들인다.


“맞아요. 당신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다른 세계죠. 그런 의미에서 어서 오세요, 저희 세계에.”


무명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농담인지 무엇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나쁜 장난이라면 사양하고 싶다.

하지만 이 방이 분명히 알고 있던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모양은 늘 보던 것과 다르지 않지만 소재는 확연히 다르다.


“그것보다는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대답부터, 해주면 안 될까?”


“뻔하잖아요.”


무명은 프뤼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금세 파악할 수 있었고 그리 흥미 있는 일은 아니었다.


“용사가···,”


“싫어. 안 해.”

매체에서 흔히 있는 전개다. 하지만 무명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장르라 많이 보지는 않았다.


“어머. 의외네요. 그런 전개 누구나 상상해보지 않나요?”


“그 상상의 결과로써 싫어.”


무명은 단호하다.


“잘 생각해 봐요. 정의의 사도. 멋지지 않나요.”


‘무슨 얼어 죽을 정의의 사도야. 설마 개그라고 한 거야?’, 무명은 기가 찬다.


“방금 속으로 욕했죠.”


“뭐?”


“비웃었죠?”


“예??”


무명은 어쩐지 소녀가 무섭게 느껴진다. 어디가 무섭냐고 물어보면 분명하게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 단지 기분 탓일 것이라 빈다.


“이상하다. 제가 사람을 잘 못 본걸까요. 순응력도 적응력도 없는 사람이었다니.”


프뤼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아, 실수. 속마음을 말해버렸네요.”


“그러기에는 너무 대놓고 말한 거 아냐?”


“어라. 걸렸나요?”


아무래도 눈앞의 소녀는 상당한 독설가가 틀림없다고 무명은 생각한다. 청순해 보이는 외모와는 이미지가 너무 다르다. 가만히 입 닫고 우아하게만 서 있다면 여신으로 생각했을 법했다.

하지만 입이 좀 험하다. 무섭다.


“또 속으로 욕했죠?”


“무···무슨 소리야.”


무명은 프뤼나가 속마음이라도 엿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이 곳이 다른 세계라면 그런 능력이 한 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걱정 마요. 기색이 너무 눈에 띌 뿐이니까요.”


과연. 안심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안할래요?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중2병은 이미 지나가서, 모르겠어. 게다가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머리가 안 따라와.”


“이정도면 자연스럽지 않나요? 아, 자연스러워라.”


여전히 표정 없이 부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 진심으로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냥 울고 싶다.”


“정 울고 싶으시면 이불이라도 덮고 펑펑 우세요. 마침 침대 위네요.”


“이상한 배려하지 마.”


“어라. 울기 싫어졌나요? 변덕쟁이는 여자에게 인기 없는데.”


“······제발, 무슨 표정이라도 지으면서 말해줘.”


인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라 말을 돌리기로 한다.


“이렇게 말인가요?”


프뤼나의 입 꼬리 그것도 오른쪽 한쪽만 올라간다. 그 표정이 비웃는 것 같아 무명은 말을 아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비웃는 거 맞아요.”


“너, 정말 내 생각을 읽는 건 아니지?”


“그냥 무명씨의 표정이 너어어어무 읽기 쉬운 것뿐이에요. 방금 말하지 않았던가요?”


더 대화하가는 혈압이 올라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프뤼나가 무리하게 올리고 있는 입꼬리도 이제는 불편하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일단 그 입 꼬리 다시 내려줄래?”


“고마워요. 3초 정도만 더 했다가는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뻔 했거든요. 말하는 것도 힘들었고,”


입 꼬리를 올린 채 말하는 건 분명히 어려울 것이다, 라는 생각조차 프뤼나에게 휩쓸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보고 용사가 되라고?”


“네.”


프뤼나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명을 용사로 만들 심산이다.


“특별한 능력을 받은 기억은 없는데. 아주 평범하다고 난.”


“당연하죠. 강함을 쉽게 얻는 게 이 세상에 어딨어요. 결과에는 노력이 필요하다구요.”


너무나도 맞는 말이라 무명은 할 말을 잃는다. 그렇지만 용사가 될 노력을 할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질문 하나 할게요. 용사가 하는 일은 뭘까요?”


“마왕을 잡는다? 사람을 돕는다?”


무명은 떠올리는 대로 얘기한다. 머릿속의 용사라는 것은 대강 그런 이미지였다. 부탁들을 해결하고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이미지.


“일차원적인 생각이네요. 크게 틀린 건 없지만요.”


무명의 생각이 복잡해질뿐더러 낯빛이 어두워진다. 미약하게나마 현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농담이었다고 말해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난 그런 거 절대 못해. 나는 ···그냥 방구석 외톨이야. 힘이라고는 없다고.”


이 곳에서 눈뜨기 전을 생각해보지만 어째서인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꿈속의 일처럼 단편적인 조각만 떠올릴 수 있다.

그래도 분명히 자신이 누구인지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모호한 것은 주변 환경의 기억들이다.


“근력이라면 기르면 되잖아요. 당장 짠, 하고 세상을 구하라고는 말 안 해요. 게다가 근력만이 힘은 아니잖아요.”


프뤼나는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두 번 두드리며 말한다. 지력, 즉 지혜와 지식을 의미한 것이다.

무명도 그 의미를 잘 눈치 챈다. 지혜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유서 깊은 클리셰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말만 늘여 놔봤자 소용없겠죠.”


프뤼나는 침대에 편히 앉아있는 무명에게 다가간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무명은 반사적으로 뒤로 허리를 젖히다 벽에 머리를 크게 부딪친다.


“아야.”


혹이라도 났을까 머리를 어루만진다. 그렇지만 의외로 튼튼한 것이 두개골이다.


“뭐해요, 바보같이. 어서 일어나요. 이 세계가 어떤지 구경이나 하러 가죠.”


프뤼나는 무명의 손을 잡고 일으킨다. 가까워진 거리에 은은하게 달콤한 향이 난다. 기껏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눈치 채지 못하도록 어정쩡하게 구부리나, 옷 때문에 티가 나지는 않는다.


무명이 입고 있는 옷은 천 몇 겹을 겹쳐 만든 것이다. 방어력의 측면에서 그런 것인데 가볍지만 튼튼한 소재를 사용한 것이다.


“아, 옷이 신경 쓰이나 보네요? 걱정 마요. 제가 벗겨서 갈아 입혀드린 건 아니니. 설마 그게 취향은 아니시겠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원래 내 옷은?”


“저야 모르죠. 여기 있던 순간부터 그 차림이었답니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


무명은 아무 말 더 않고 프뤼나의 리드대로 그녀의 집에서 나선다. 일일이 태클걸기에는 목이 다 쉴 것만 같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잘 부탁 드립니당.


처음이라 조금 부끄럽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한 번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수수께끼 (2) 22.06.22 7 1 10쪽
33 수수께끼 (1) 22.06.20 8 1 9쪽
32 야영 22.06.17 8 1 9쪽
31 막간 22.06.16 8 1 9쪽
30 습격 (4) 22.06.15 10 2 10쪽
29 습격 (3) 22.06.14 10 2 9쪽
28 습격 (2) 22.06.13 10 2 9쪽
27 습격 (1) 22.06.10 10 2 9쪽
26 2장, 루시드 22.06.09 12 2 10쪽
25 출발 (2) 22.06.07 10 2 10쪽
24 출발 22.06.06 11 2 10쪽
23 참여 22.06.03 11 2 9쪽
22 유적지 (2) 22.06.02 10 2 9쪽
21 유적지 22.06.01 10 2 9쪽
20 혈자, 아키 +1 22.05.31 13 3 10쪽
19 지원 22.05.30 10 2 11쪽
18 상충 22.05.28 16 2 11쪽
17 산책 22.05.27 15 3 10쪽
16 엘리 22.05.26 14 3 10쪽
15 헤일 산맥 22.05.25 23 4 10쪽
14 제안 22.05.24 16 3 10쪽
13 소환 +1 22.05.23 15 3 10쪽
12 배움 +1 22.05.20 20 4 12쪽
11 또 다른 시작 (2) +2 22.05.19 23 3 12쪽
10 또 다른 시작 +1 22.05.18 25 3 11쪽
9 조사 22.05.17 17 2 12쪽
8 의심 (2) 22.05.16 15 3 12쪽
7 의심 22.05.16 15 3 12쪽
6 첫 실전 +2 22.05.15 18 3 9쪽
5 세계의 역전 22.05.13 16 3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