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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월나래님의 서재입니다.

한 번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여월나래
작품등록일 :
2022.05.11 11:14
최근연재일 :
2022.06.22 11: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27
추천수 :
99
글자수 :
154,610

작성
22.05.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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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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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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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배움

DUMMY

샤워를 하고 있자니 갖은 생각이 든다. 지하수를 이용해 냉수나 온수가 나오지 않아 애매한 온도였지만 나름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샤워기는 없고 단순히 물이 뿜어져 나오는 구조다. 그래도 생각 외로 상수도시설이 꽤 잘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식사도 나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확연히 재료는 모르는 것투성이였으나 맛은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축용으로 기르는 동물도 분명히 있는 모양이고 모습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


몸에 활기가 도는 게 느껴진다. 모르긴 몰라도 게임에서 음식으로 HP를 채운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체감이 절로 된다.


무명은 한결 좋아진 기분으로 리사가 있는 도서관을 향한다. 분명 아직도 도서관장, 아이샤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샤가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께름칙하긴 하지만 하루 빨리 범인을 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 것이다.

그리고 리사에게도 전해주긴 해야 한다.


덧붙여 무명이 집을 나서기 전까지 프시케는 결국 옷을 입지 않았다. 수건 한 장을 아슬하게 걸치고 돌아다니는 탓에 목이 뻣뻣해질 정도로 시선을 다른데 돌려야 했다. 덕분에 목이 아직도 아프다.


“안녕···?”


여전히 리사는 피곤한 채로 엎드려 있다. 그럼에도 반갑게 맞이해주는 리사였지만 아이샤의 부고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재주가 없어 전 후 사정까지 말해 줄 수밖에 없다. 조금의 위로를 곁들여 가며 전해준다.


“······그래. 위로해줘서 고마워.”


리사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슬프기는 하지만 아이샤가 어딘가 그런 사람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항상 마음이 다른 곳에 있던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일은 열심히 하지 안했어도 성품은 좋았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미안할 거 없어. 네 잘못은 아니잖아. 볼 일은 그게 전부야?”


“염치없지만··· 글 알려준다는 거 기억해?”


“아. 맞아. 하도 정신이 없어서. 좋아.”


세계의 역전 현상 때 같이 고생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혹시라도 사람이 휘말릴 새랴 사방을 뛰어다녔다.


리사는 도서관 한 쪽에서 유아용 교재를 하나 꺼내준다. 가르치는 데에 자신은 없지만 기분 환기 정도는 될 거 같다.


“처음부터 알려주면 되지?”


“응.”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자의 배열이나 모양만 다른 수준에 조금의 예외사항이 몇몇 개 있었을 뿐 기억력이 완벽해서 그리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철저한 공부 끝에 2시간이 흘렀다.


“다 외웠어.”


“벌써? 말도 안 돼.”


“몰랐어? 난 본 건 다 기억할 수 있는데.”


“그럼 이건 뭐라고 읽어?”


리사는 무명의 믿을 수 없는 발언에 그를 시험해보기로 한다. 근처 책을 무작위로 하나 뽑아 제목을 묻는다.


“음. 그러니까 마법 반응에, 따른··· 마나 농도 측정?”


“세상에. 쓰는 건? 네 이름 써봐.”


무명은 가볍게 이름을 쓴다.


“···이럴수가. 완전 사기잖아. 너무 부럽다. 책 몇 번이나 안 읽어도 되잖아.”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좋은 건 아냐. 아무리 재밌는 거라도 두 번째로 읽으면

흥미가 죽어버리니까. 이게 쌓이다 보니까 뭐든지 흥미가 안 나더라.“


“그래···? 그래도 난 부럽다. 뭔가 엄청 만능인 느낌?”


대부분 리사처럼 부러워하거나 아니면 대놓고 시기한다. 그래서 보통 스스로 밝히려고 하는 편은 아니었다.

지금에서 말하는 건 조금의 심경변화다. 게다가 리사의 반응이 귀엽다. 체구가 작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랬다.


“일상적으로는 좀 불편해. 그리고 그렇게 만능인 것도 아니고. 기억하고 떠올리는 건 좀 다른 느낌이거든.”


“다른 느낌?”


호기심 가득 찬 어린 아이 같은 눈빛으로 묻는다.


“그때 느낌을 생각 하는 건 힘들어. 어디보자 예를 들자면···.”


“예를 들자면?”


잠시 생각해보지만 마땅한 예시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적당한 예시를 즉석에서 만든다.


“네가 춤을 췄다고 생각해봐. 나는 네 움직임 하나하나를 기억할 수 있지만 땀 냄새 같은 감각은 떠올리기 힘들지.”


“야 이 변태야!!”


리사는 책상을 양손으로 팍,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예시를 들어도 그런 변태 같은 걸 해야겠어?!?! 나 냄새 안 나거든?”

“냄새난다고는 안했잖아?! 예시야 예시. 그리고 왜 그게 변태인데.”


“맡아보던가!!”


작은 체구를 들이밀어 보지만 그게 더 이상하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싫어! ···으휴. 너도 참, 뭐랄까. 프뤼나 과구나?”


“뭐? 걔가 거기서 왜 나와?! 내가 걔 성격 어디가 닮았어?”


“아니 ···그 미안. 그렇게 안 좋게 보고 있는 줄은 몰랐네.”


생각보다 리사의 반응이 거칠다. 그래도 확실히 프뤼나의 성격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게 안심이 되는 것 같다.


“······그건 아닌데. 프뤼나한테는 제발 말하지 마. ···알았어. 감각까진 기억 못한다는 거잖아.”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한 것을 뒤늦게 깨달은 리사는 민망함에 얼굴이 확, 붉어진다.


‘아. 이래서 프뤼나가 사람을 놀리고 다니는 구나.’


리사의 그 귀여운 반응에 어쩐지 프뤼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무명이었다.


“암튼. 내가 뭘 알려 줄 것도 없었네.”


“잘 가르치던데? 선생님 해도 되겠어.”


“아부해도 줄 건 없어, 그러면 볼 일은 끝?”


말은 그렇게 해도 리사의 표정은 밝다. 프뤼나와 다르게 표정이 다양한 것이 참 사랑스러운 아이다.


“아, 혹시 마법 쓸 줄 알아?”


“마법? 아니. 배워 본 적은 있는데 너무 어렵더라. 그래도 기초정도는 가능한데.”


“기초라면 어느 정도야?”


항상 봤던 기초 마법은 불덩이를 쏘는 거였다. 그래서 그 정도를 기대하고 물어 봤지만 현실은 냉랭했다.


“뾰롱뾰롱한 효과를 내는 정도?”


“···아무런 기능 없는?”


“파티용.”


“불은 못 쏴?”


“불 마법은 어려운거야. 기초라도 괜찮으면 설명해 줄까? 너처럼 완벽히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자꾸 뭘 부탁하는 거 같아 미안하네.”


“괜찮아. 어차피 심심했어.”


“마법은 마나를 수학적으로 쓰는 거야. 사용하고 싶은 마법에 맞는 공식에 마나를 배분해서 사용한달까.”


“어렵다고 할 만하네. 난 그냥 주문 같은 거 외우면 알아서 나가는 줄 알았지.”


늘 보던 건 유치해 보이는 주문을 잔뜩 읊으면서 간드러지게 쓰는 모습뿐이다. 자세한 원리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니 신경 쓰지 않았다. 작품들을 자세히 보지 않은 탓도 있긴 했다.


“주문은 굳이 필요 없어. 사용하는데 편리하긴 하지만.”


리사는 잠시 마법을 배웠을 때 당시를 떠올려본다. 10년쯤 된 일이라 떠올리는데 애 좀 먹는다.


“나도 들은 설명이지만, 이런 거야. 불을 쏘기 위한 공식이 1+1=2 라고 해보자. 근데 항상 쓸 때마다 계산을 해야 해. 그래서 너는 ‘1+1=2’를 ‘궁극의 초 화염 불꽃’이라고 이름을 지어놓기로 했어.”


“아하. 그럼 내가 궁극의 초 화염 불꽃! 이라고 하면 1+1=2 가 자동으로 된다는 거구나? 그게 주문을 외치는 이유다?”


“맞아. 물론 그렇게 생각했다고 바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고 엄청 무진장 반복하면서 연습해야지. 술식에서 글자의 의미를 바르게 새기는 것하고 맥락이 비슷하지.”


프뤼나가 원리상 비슷하다는 말뜻을 어렴풋이 알 거 같다.


“근데, 프뤼나의 말로는 마법이 쉬운 편이라고 하던데?”


“그건··· 걔니까 그렇지. 그래도 술식에 비하면 쉽긴 하지. 공식만 외우면 가능하니까. 마나 운용은 별개로.”


아무래도 쉽다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은 아닌 모양이다.


“복잡한 얘기네.”


“뾰롱 마법은 아직도 기억해서 알려줄 수 있는데.”

“아냐. 그건 괜찮아. 그전에 궁극의 초 화염 불꽃은 도대체 뭐야? 너무 자연스러워서 넘어 갈 뻔했네.”


“아. 그거 설명을 빼먹었네.”


단순히 유치하다고 딴죽을 걸었을 뿐인데 내막이 있어 당황스럽다.


“말했지? 무수한 연습을 하면서 주문이 곧 공식임을 연상시키는 것이라고. 근데 평범한 말을 주문으로 쓰면 말할 때마다 마법이 나갈 수도 있잖아. 그래서 잘 안 쓰는 단어들을 이용하는 거지.”


“그런 내막이 있었을 줄이야.”


마법사들이 단체로 궁극 초 화염 을 외치며 연습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왜 웃어?”


“그냥 좀 재밌는 생각이 나서 그래. 별 건 아냐.”


“너 또 변태 같은 상상했지. 죽어.”


“아니 진짜. 변태는 너 아냐?”


“ㅁ, 머 뭐?”


리사의 당황한 반응에 무명은 입을 다문다. 명백히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가면 분명 선이 넘는다. 어떤 선일지는 밟기 전까지는 모르지만 밟지 않는 편이 좋은 법이다.


무명은 서둘러 말을 돌린다.


“아무튼. 그럼 누구한테 배울 수 있어?”


“이 근처에는 없을 텐데. 한 번 중앙에 가서 물어봐. ···근데 좀 꺼려지긴 한다. 그 때 사이렌소리는 뭐였을까?”


역전 현상 때 분명 중앙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다. 요기의 발견과 함께 정체모를 사이렌소리. 아예 연관이 없을 수도 있으나 모르는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흑막일 가능성이라는 냄새가 상당히 풍김은 틀림없다. 그런 생각에 자연스레 리사는 중앙에 대해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꼭 알아내야지. 공부하는 이유에는 그것까지 포함되어있으니까.”


“오올―. 멋진척하기는. 아니면 프뤼나나 프시케님한테 배우던가.”


두 명에게서 배우려고 하면 언제든지 배울 수 있긴 하겠지만 프뤼나만큼은 사절이다. 매도당하는 건 영 익숙하지도 않고 익숙해질 마음도 없다.


“그거도 좀 궁금한데. 어머니가 아니라 언니라고 하던 얘기를 들었거든.”


“헉. 모른 척 해. 나도 알려다가 ···다칠 뻔했어.”


리사는 프뤼나의 대담하고 요염한 그 모습을 떠올리자 소름이 돋는다. 확실히 소중한 무언가를 잃을 뻔한 무시무시한 기억이다.


“···충고 고마워. 뭐라도 보답해주고 싶은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당분간 여기서 살 생각?”


“아마도? 프뤼나 집에서 살 거 같아.”


이야기의 흐름상 반 쯤 결정된 사실이다. 아무래도 혼자 살만 한 집은 못 구할 것 같고 게다가 프뤼나가 감시를 해야 하는 명분도 있으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도 옳았다.


“그럼 나중에 필요할 때 부를게. 그 때가서 빼기 없기다?”


여전히 다크서클 낀 눈으로 수상하게 웃자 정말 수상해 보인다.


그렇다고 차마 거절할 수는 없다.


“아, 책 빌려 갈래? 보아하니 마나에 대해 아는 게 먼저 같은데.”


“언제 돌려주면 될까?”


“편할 때. 어차피 사람 별로 없고. 하지만 왜인지 일은 많고. 아무튼 읽는데 오래 걸리진 않을거 아냐.”


무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책 몇 권을 골라서 전해준다.


공부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싫지는 않다. 눈치 보며 일부러 시험 문제를 틀릴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모르는 척, 눈치 없는 척 하는 건 질릴 때도 됐다. 정말 이제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다.


원래 세계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이 세계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 했을 뿐이다.


정말 즐길 수 있으려면 사건부터 해결해야 한다.


벌써 해가 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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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수수께끼 (1) 22.06.20 8 1 9쪽
32 야영 22.06.17 8 1 9쪽
31 막간 22.06.16 8 1 9쪽
30 습격 (4) 22.06.15 10 2 10쪽
29 습격 (3) 22.06.14 10 2 9쪽
28 습격 (2) 22.06.13 10 2 9쪽
27 습격 (1) 22.06.10 10 2 9쪽
26 2장, 루시드 22.06.09 12 2 10쪽
25 출발 (2) 22.06.07 10 2 10쪽
24 출발 22.06.06 11 2 10쪽
23 참여 22.06.03 11 2 9쪽
22 유적지 (2) 22.06.02 10 2 9쪽
21 유적지 22.06.01 10 2 9쪽
20 혈자, 아키 +1 22.05.31 13 3 10쪽
19 지원 22.05.30 10 2 11쪽
18 상충 22.05.28 16 2 11쪽
17 산책 22.05.27 15 3 10쪽
16 엘리 22.05.26 14 3 10쪽
15 헤일 산맥 22.05.25 23 4 10쪽
14 제안 22.05.24 16 3 10쪽
13 소환 +1 22.05.23 15 3 10쪽
» 배움 +1 22.05.20 20 4 12쪽
11 또 다른 시작 (2) +2 22.05.19 23 3 12쪽
10 또 다른 시작 +1 22.05.18 25 3 11쪽
9 조사 22.05.17 17 2 12쪽
8 의심 (2) 22.05.16 15 3 12쪽
7 의심 22.05.16 15 3 12쪽
6 첫 실전 +2 22.05.15 18 3 9쪽
5 세계의 역전 22.05.13 16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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