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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월나래님의 서재입니다.

한 번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여월나래
작품등록일 :
2022.05.11 11:14
최근연재일 :
2022.06.22 11: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38
추천수 :
99
글자수 :
154,610

작성
22.05.18 11:00
조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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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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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또 다른 시작

DUMMY

“계시나요?”


도서관장의 집 앞에서 프뤼나가 정중하게 묻지만 답은 없다. 그 뿐 아니라 인기척이 아예 없다.


“외출중인가 보네. 기다릴까?”


“그러죠. 밖에서 기다리긴 처지가 나쁘니 안에서 기다리도록 해요.”


무명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프뤼나는 문고리를 돌린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잠겨있다.


“다른 지방 사람답다고 할까, 수상하다고 해야 할까요. 저희 분들은 치안의식이 바닥이라 아무도 잠그고 사는 사람이 없는걸요.”


“너··· 나한테만 쓴 소리 하는 게 아니구나?”


그냥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독설을 퍼붓는 줄 알았지만 그냥 말투여서 어쩐지 조금 안심이 된다.


“당연하죠. 무명씨의 어디가 특별하다고 특별대우를 하나요?”


“그래. 그렇겠지. 그나저나 어쩔 거야?”


“어쩌긴요.”


대담하게도 문짝을 부수는 길을 택한다. 프뤼나가 힘을 주자 낡은 문이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앞으로 함부로 까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프뤼나는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내부는 상당히 텁텁하다. 환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인지 홀아비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울 뿐더러 제대로 청소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다. 가구라고는 정말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을 정도만 있음에도 그랬다. 오히려 선반을 사서 정리를 하기도 귀찮은 것이다.


어느것 하나라도 제자리에 없다는 인상이다. 프시케의 흥신소는 이에 비하면 정돈된 편인 수준이다.


“이건 좀 심하네.”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역시 수상하네요.”


“···그래. 도서관장이라는 사람이 집에 책 한 권이 없어.”


“좋아요. 상당히 집중하고 있나 보네요. 그 자세에요.”


만족스러운 대답에 프뤼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말대로 책은커녕 그 비슷한 단편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리사에게 들었나요? 책의 선별.”


“중앙에서 학생용 책을 골라오는 거?”


“네. 그걸 실시한건 도서관장님이죠. 남는 책은 어디로 가시는지 아시나요?”


“글쎄. 어디로 간다고만 들었어. 서점이려나. 아니면 다른 도서관?”


“둘 다 없어요. 남은 책은 반납되요.”


“리사가 거짓말 한거야?”


“누가 거짓말을 했든 제도를 만든 건 도서관장님이죠. 아무튼 저는 증거가 될 것을 찾아볼게요. 무명씨는 방금 산 종이에 봤던 술식을 그려주세요.”


“방금 했던 것처럼 재연은 안 돼?”


골목길에서 술식을 적어 진흙인형 실루엣으로 5일 전 상황을 재연한 것을 떠올린다.


“날짜도 부정확하고 정말 집에서 수상한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니까요.”


“오케이. 근데 동작을 본 게 전부라 완벽할지는 몰라. 그, 고대 마법이라는 거는 봐서 가능하지만. ···왜 그건 보였지?”


“피로 그렸기 때문이겠죠. 응고되기 전까지는 신체의 일부로 취급되거든요.”


무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능한 죽은 남자의 행동을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그리 순순히 되지는 않아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한편 프뤼나는 지저분한 집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워낙에 난장판이라 어디서부터 찾아야할지 막막했으나 어쩔 수 없다. 손으로 하나하나 파헤치는 수밖에 없다.


특별히 눈에 띄는 곳도 없다. 방 하나, 거실. 그냥 전부 봐야 한다.


그러나 프뤼나는 재치를 낸다. 정말 일차원적으로 숨겼을 가능성도 있으나 그렇게 단순할 리는 없다. 분명 마법이나 술식을 이용했을 확률이 높다. 그렇게 생각한 프뤼나는 마나를 탐지하기로 한 것이다.


누구나 가능한 기술은 아니다. 본디 마법을 사용하려면 주변 마나의 농도나 체내의 양을 느끼는 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분명한 흔적을 찾으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거나 재능의 영역이다. 공기 중 산소와 거의 다를 것이 없어 파악하기 힘든 탓이다.


집 안에는 마나가 어지러이 요동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흐름을 타고 잔잔하게 흐르는 것이지만 마치 소용돌이 같다.


처음 집 안에 들어왔을 때 텁텁한 감각은 이러한 원인도 분명히 존재했다.


딱 한군데에서만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윽고 프뤼나는 그곳에서 증거를 찾는다.


“다··· 된 거 같아. 아마도.”


때마침 무명이 종이에 술식을 베껴 쓰는 것이 끝난다.


“어디 봐 봐요. ···걱정한 것 치고는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완성도를 심히 걱정 했지만 결과물은 상당하다.


“흉내 내는데 재주가 있으시네요? 아무리 저라도 이렇게까지 베끼는 건 어렵거든요.”


내심 뿌듯하지만 내색은 안하려고 노력한다. 이미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프뤼나는 모른척 해준다.


“증거는 있었어?”


“네. 요기를 여기서 보관하고 있던 모양이에요.”


프뤼나가 찾아서 건네 준 것은 자그마한 유리 상자였다. 손가락 한마디정도 길이의 정사각형 상자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것이 무슨 증거냐고 물으려는 찰나에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일단 그거 주머니에 넣어요. 심문이나 추궁은 해봤어요?”


“아니.”


“강경하게 나가세요. 휘둘리지 마세요.”


무명은 고개를 끄덕인다. 프뤼나의 조언은 그가 해야 하는 일을 분명히 자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효과는 분명하다. 침을 한 번 삼키고 다시금 일을 상기한다. 불법침입에 멋대로 수사한 주제에 웃기는 일이지만 확실히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문이 열리고, 40대 초의 남성이 들어온다. 도서관장이다. 무명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느 정도 덩치가 있다. 지저분한 집에 비해 깔끔한 인상이다. 복장은 흔히 보이는 마을 주민들과 영 다르지 않다. 일종의 전통복이라고 할 수 있다.


“뭐야. 프뤼나? 남자친구냐? 우리 집은 왜 들렸지?”


당황한 표정을 숨기려는 것이 무명에게도 보인다. 오히려 화를 내도 모자랄 상황이었지만 억지로 좋은 사람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 수상하다.


“퇴직하신다면서요? 고향으로 가신다고 들었어요.”


“그래. 고향에 못 돌아 간지 오래 됐으니 쉬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본 기억이 없구나. 혹시 리사가 말했던 그 아인가?”


“맞아. 무명이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여전히 연상을 대상으로 어떤 말투를 써야할지 미묘하다.


“난 아이샤다. 나이 먹고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능하면 대답해주지.”


질문을 잘 골라야한다. 어느 부분이 약할지 파고들어야할 부분을 잘 선택해야한다. 프뤼나가 도움을 주긴 하겠지만 의지만 해서는 안 된다.


“아이샤씨, 태어날때 부터 몸이 안 좋으셨다고 들은 거 같은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진 모양이야.”


일부러 아는 사실과 다르게 말한다. 어수룩한 모습을 고의로 보여줘 방어도를 낮추는 전략이다. 프뤼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무명의 뒤에 서있다.


“뭐, 대강 비슷해. 6, 7살이었나. 멋모르고 요기에 닿았다가 피 좀 봤지.”


아이샤는 장갑을 벗어 손을 보여준다. 손가락부터 손의 절반까지 보라빛이 살짝 감도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요기에 뛰어든 경험이 있는 무명은 남아있는 묘한 잔재감을 느낀다.


“아. 사실 저도 최근 일어난 난장판 때 요기에 당해서요.”


“역전 현상 말인가? 그런 것 치고는 꽤나 멀쩡하잖나. 젊어서 그런가? 하핫.”


본인을 포함해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이다. 분위기는 이미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다.


“프시케씨의 도움이 커서 다행이었어. 리안씨도 도와줬고. 그런데 그 역전이라는 게 좀 수상해서.”


“수상? 이상하긴 했지?”


“네. 요기로 인한 살인. 요기로 인한 역전. 단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니까.”


강수다. 확정된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기서 찌를 타이밍이라 판단한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기에 아이샤의 표정이 명백히 동요한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연다.


“쓸데없는 문답은 그만두자. 나는 범인이 아니야. 5, 4일전이면 아파서 꼼짝도 못했으니까.”


“네. 그렇겠죠. 도서관장님 집에 요기를 보관 중이었으니까요.”


프뤼나가 나서서 말한다.


“뭐?”


“아프지만 프시케씨를 부르려고도 하지 않은 이유기도 하고.”


“그건··· 쉬면 나으니까. 괜한 수고를 끼칠 필요는 없잖아?”


그의 반론은 무시당한다.


“그리고 그 요기는 동쪽 마을에서 중앙으로 가는 길에 설치되었지. 누군가 볼 수밖에 없도록. 높은 확률로 리사가 볼 수밖에 없었아. 당신의 일을 대신 해야 했으니. 그리고 내가 리사와 함께 간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행운이었겠지.”


무명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단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이 세계에서 눈 뜬 순간에 벌어졌으니 말야. 내게 누명을 씌우기 딱 좋은 순간이잖아.”


“하나부터 끝까지 억측이군. 만약 그 사실이 옳다 해도 살인과는 상관없잖나?”


“아뇨. 피해자와 가해자는 각각 현장에서 특수한 술식을 쓰려 했어요. 무명씨, 꺼내주시죠.”


방금 그린 것을 잘 보이도록 펼쳐 보여준다.


“어머니에게 들었어요. 역전 현상에 쓰이던 술식. 피해자의 술식은 분명 요기에 관한 것이 확실해요. 즉 어떻게든 사건의 냄새를 맡았기에 살해 한거죠.”


“말했잖아. 난 누워있었어. 리사가 증인이다.”


“범인이라고 한 적 없어요. 아무튼 말을 이어가죠. 무명씨가 세계에 빨리 온 것은 오산이었겠죠. 그 고대 마법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아닐지도 모르고 결과도 모를 테니.”


“차원 전송.”


무명이 나지막하게 중얼 거린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당신은 이 날을 위해 설계하기 위한 체스말. 그래서 이 집에는 별 볼일 없는 쓰레기만 가득하죠.”


“아이샤씨라면 알고 있을 거라 믿는데, 살해한 진범과 요기를 설치하고 퍼트린 사람.”


무명과 프뤼나의 말은 즉석에서 합을 맞췄음에도 꽤나 호흡이 잘 맞는다. 아이샤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진다.


“안 돼. 알아서는 안 되는 거야.”


대답할 기색은 없다. 무명은 이 흐름이 말하면 살해당하는 전개라고 눈치 챈다. 물론 듣는 쪽도 무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정하는 것으로도 수확이다.


“의외로 빨리 수긍 하네···?”


“인정해봤자 무명씨의 누명은 그대로니까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정신 차리세요.”


프뤼나의 말이 옳다. 증거 상으로 확실한 것은 아이샤가 요기를 보관하고 역전 현상에 얽혀있다는 것뿐이다. 무명이 공범이 아니라는 증거는 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흑막을 찾아야 하는 건가? 흑막이라면 아무리 봐도 리사랑 봤던 그 남자가 흑막인데.”


“못 찾아요. 요기도 다룰 줄 아는 수준이니 추적 술식도 차단할 줄 알겠죠. 안 그랬으면 이미 잡았을 거예요.”


리안이 추적 술식을 프시케에게 받아간 사실을 떠올린다. 분명 잡히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무명은 한 쪽 발을 동동 굴려본다. 생각해도 딱히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오해를 푸는 것이 빠를 것이다.


“잠깐만, 누가 날 일부러 소환한 거야? 무슨 목적이지?”


하마터면 중요한 문제를 그냥 넘길 뻔 했다.


“저도 절반은 추측일 뿐이에요. 피로 그린 고대 마법. 그게 어렸을 때 책에서 전송 마법이라고 봤었거든요.”


“그건···.”


아이샤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 입을 열지만 무명이 급하게 막는다. 사망플래그를 눈앞에서 볼 수는 없다.


“말하지 마!”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결코 좋은 의미일리 없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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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수수께끼 (1) 22.06.20 8 1 9쪽
32 야영 22.06.17 8 1 9쪽
31 막간 22.06.16 9 1 9쪽
30 습격 (4) 22.06.15 10 2 10쪽
29 습격 (3) 22.06.14 10 2 9쪽
28 습격 (2) 22.06.13 11 2 9쪽
27 습격 (1) 22.06.10 10 2 9쪽
26 2장, 루시드 22.06.09 13 2 10쪽
25 출발 (2) 22.06.07 10 2 10쪽
24 출발 22.06.06 12 2 10쪽
23 참여 22.06.03 11 2 9쪽
22 유적지 (2) 22.06.02 11 2 9쪽
21 유적지 22.06.01 11 2 9쪽
20 혈자, 아키 +1 22.05.31 14 3 10쪽
19 지원 22.05.30 10 2 11쪽
18 상충 22.05.28 16 2 11쪽
17 산책 22.05.27 15 3 10쪽
16 엘리 22.05.26 14 3 10쪽
15 헤일 산맥 22.05.25 23 4 10쪽
14 제안 22.05.24 17 3 10쪽
13 소환 +1 22.05.23 15 3 10쪽
12 배움 +1 22.05.20 20 4 12쪽
11 또 다른 시작 (2) +2 22.05.19 23 3 12쪽
» 또 다른 시작 +1 22.05.18 26 3 11쪽
9 조사 22.05.17 17 2 12쪽
8 의심 (2) 22.05.16 15 3 12쪽
7 의심 22.05.16 15 3 12쪽
6 첫 실전 +2 22.05.15 19 3 9쪽
5 세계의 역전 22.05.13 16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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