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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월나래님의 서재입니다.

한 번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여월나래
작품등록일 :
2022.05.11 11:14
최근연재일 :
2022.06.22 11: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44
추천수 :
99
글자수 :
154,610

작성
22.05.28 11:00
조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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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상충

DUMMY

엘리 덕분에 상당히 편하게 그녀의 동굴 거처까지 갈 수 있었다. 엘리는 건네받은 약초, 그리베이시아를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는 끓이기 시작한다.


“고생했느니라. 잠시 시간이 걸리니 수다나 떨자꾸나.”


“얼마나 걸려?”


“걱정 말거라. 그리 오래는 아니니라.”


약초의 향이 동굴 안을 가득 메운다. 쌉쌀한 향이 무척이나 강하다.


“질문이 있다. 가는 길에 무명에게 옮은 요기가 뭔가 반응을 한 모양인데, 짐작가는 건 있나?”


“요기가 반응을? 인간에게 옮은 경우가 희귀하다보니 짐작 가는 바는 없느니라.”


엘리는 가마를 계속 젓는다.


“다만,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님에 틀림없도다.”


“주변에 다른 요기와 반응할 가능성은?”


리안은 계속해서 추궁하지만 엘리라고 해도 뭐든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은 있느니라.”


“그냥 따끔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니라. 그 정도로 오염되고 살아남은 건 그대 밖에 없을 것이다. 하하하.”


엘리는 가마를 저으면서 가끔가다 다른 약재나 가루를 넣는다. 그럴 때마다 가마의 물색이 형형색색 빛을 발한다.


“······.”


한편 프뤼나는 아무 말도 없이 서있다.


“갑자기 말이 없네?”


그것을 눈치 챈 무명이 먼저 말을 건넨다.



“그 쪽 지방에 뭐가 있나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요.”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꺾으면 유적이 있지. 그 덕에 우리 지방보다 유동인구가 많고.”


네 마을로 쪼개져 있는 프뤼나 등 일행이 사는 아리스 구(區)와는 다르게 로팜 구는 하나의 커다란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역시나 중앙에 비견되는 국가 관리 기구가 있다.


“그건 알죠. 유적에 뭐가 있는지가 중요하잖아요. 어떤 유적인지 기억해요?”


“글쎄. 고고학에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다.”


“가보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무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모험은 좋지만, 고생은 싫다. 누가 봐도 훤히 보이는 고생길이다.


“뭐가 있을지 알고 가요? 사람을 보내야하겠죠.”


정적이 찾아온다. 포션을 만드는 냄새만 가득히 퍼진다. 아직 완성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모양이다.


프뤼나는 루시드에게 연락한다는 방안을 떠올린다. 믿음직한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이용할 수단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네 얘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원래 세계 얘기 말이다.”


“···그리 재밌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무명은 잠시 고민한다.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 어디부터 꺼내야할지 막막하다. 그래도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리고 문득 이상한 점을 새삼 깨닫는다. 분명히 모든 걸 기억해야 했지만 어째서인가 기억에 구멍이 있다.


망각은 무명에게 너무 낯선 감각이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당황한 표정을 좀처럼 감출 수가 없다.


“왜 그래요?”


“기억이, 안 나. 뭔가 이상해···. 안날 리가 없잖아. 뭔가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기분이야···.”


“진정하거라. 일시적인 현상일수도 있고 망각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느니라.”


엘리의 위로는 그다지 소용이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이 빠져 나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걱정 마세요. 요기 탓일 수도 있잖아요. 지금은 잠시 묻어 두세요.”


“그래. 아직 할 일이 많다. 걱정은 늙어서 해도 괜찮다.”


무명은 굳은 표정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막연하게 지나온 삶들을 떠올릴 수는 있지만, 그게 고작이다.


하지만 깊게 생각해도 의미는 없다. 기억을 하고 있는 건 맞는 건지, 떠올릴 수만 없는 건지 생각을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올 턱이 없다.


“자, 이제 증류만 하면 되느니라. 순도가 좀 떨어지겠지만, 급한 대로 마법을 쓰겠느니라.”


엘리는 가마 한가득 있는 달인 물을 마법으로 가열, 증기를 냉각해 포션을 정제한다. 탁한 푸른 색의 액체가 순식간에 병에 담아간다.


둥근 병에 담긴 포션을 건네 받은 무명은 냄새를 살짝 맡아본다.


“냄새로 볼 때는··· 한약보다 쓰겠는데.”


“한약?”


“아, 약재를 달여서 만드는 전통약? 이라는 느낌.”


“원리는 비슷해 보이는군. 아무튼 얼른 마셔봐라.”


리안의 재촉에 마나 포션을 입에 가져다 댄다. 슬쩍 기울여서 맛을 보니 숨을 참고 단숨에 마시지 않으면 후회할 맛이다.


“윽.”


병을 비운 무명은 짧은 외마디 신음을 낸다.


“괜찮나?”


“···맛없어.”


사탕이라도 찾고 싶다.


“효과는 있느냐?”


“아직은 모르겠어. 근데 시선이 좀 부담스럽네.”


세 명이서 무명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 여간 부담이 아니다. 이런 기대감을 받아본 건 너무 오래된 머나먼 일 같다.


언제도 분명 이런 시선이 주목된 적이 있다. 무슨 일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바람직한 일 일리는 없다. 대개 시선을 끄는 건 특이한 행동이고 그것은 툭 튀어나온 못 같은 것으로 뽑혀야할 불안 요소기 때문이다.


“?!”


무명은 어지러움을 느껴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중심을 잡아 선다.


리안이 서둘러 부축한다.


“크아아악―!!”


격통이 허리가 휠 정도로 찾아온다. 요기로 잠식된 등이 너무나도 가렵고, 또 가렵고, 또 가렵고, 아프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리안과 다르게 프뤼나와 엘리는 침착하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갑작스럽게 마나가 생긴··· 탓은 아니구나.”


마나 자체를 색으로 구분할 수 있는 엘리가 조용하게 말한다. 무명의 체내에 마나가 새롭게 흐르는 흔적은 없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긴 모양이다.


“리안, 배낭에 있는 술식 중에 정화라고 쓰인 것을 찾아봐요.”


떠나기 전 프시케가 마련해준 배낭을 뒤지기 시작한다. 쓰기 편하도록 종이에 잘 새겨져 있었고, 다행히도 금세 찾는다.


물론 프뤼나도 술식을 사용할 수 있지만 지금부터 일일히 쓰기에는 시간이 급하다.


얼른 정화 술식을 무명의 등에 붙여보지만 무명의 고통은 가시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라!”


“약은 완벽하니라. 하지만 효용이 없는 모양이구나. 무언가 상충하고 있느니라.”


“헉― 헉―.”


깊은 고통은 간신히 지나갔으나 여전히 쑤시는 통증이 남아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무명은 땀이 한 가득이다.


“잠시 만요.”


프뤼나는 배낭을 뒤지던 중 찾았던 술식을 꺼낸다. 요기를 감지하는 술식이다. 마나를 부여해 곧장 발동시킨다.


녹색 빛이 살짝 떠오르더니 빛줄기가 되어 무명을 가리킨다.


“무엇이냐?”


엘리는 의아하게 묻는다. 술식에 대해서는 전문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기를 감지하는 거예요. 제 가설 하나를 검증해보게요.”


녹색 빛줄기는 아주 미세하게 두 줄기로 갈라져 가마솥을 향한다. 그 의미를 엘리는 순식간에 깨닫는다.


“식물조차 오염되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경우였다. 그걸 둘째치더라도 미리 감지하지 못했다. 무명의 요기가 워낙 커다래서 미처 느끼지 못한 것이지만 자신의 안일함을 탓한다.


“그럴 리가, 없다···!”


리안도 심각한 상황임을 이해한다. 지대 전부가 요기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이 어디까지냐에 따라 당장의 식량걱정부터 해야 한다.


“무명씨, 아마도 요기와 요기가 닿으면서 무언가 반응을 일으킨 모양이에요.”


“그럼 어떻게 되는데?”


무명은 간신히 힘을 짜내어 말한다.


“아니다. 새로 들어온 요기를 몸이 거부하는 것으로 보이니라. 다시 말해 등에 그 요기는 이미 몸에 정착했느니라.”


무명은 엘리의 말을 이해하려는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결국 무슨 뜻인지는 물어봐야 했다.


“정착? 그게··· 무슨 뜻이야?”


“포션을 먹어도 체내의 마나가 생기지 않았느니라. 그대의 에너지원이 이미 있기 때문이었도다.”


“그러니까, 무명씨는 마나 대신에 요기를 쓰는 건가요?”


“설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요기를 다룬다고?”


리안은 어이가 없어 절로 목성이 커진다.


“다룰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느니라. 그저 지금 일어난 불가사의한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뿐이니라.”


그러나 엘리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분명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하···. 몸에 그리 좋지 않을 거 같은데.”


“마법을 배운다고 할 때가 아니네요. 요기는 누구한테 배워야 할까요?”


무명의 실없는 농담에 프뤼나도 마찬가지로 실없이 받아준다. 그는 직감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다행히 아픔은 완전히 지나갔다.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이니라. 마냥 악의 상징이나 불길한 것이 아니고 그저 어둠일 뿐이니라.”


“어둠? 악 하고는 다른가?”


“당연하죠. 어둠이 단순히 악이라는 건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잖아요. 단순한 자연현상일 뿐인데. 시커멓다고 멋대로 나쁘다고 단정 짓다니. 억울할 노릇이지 않나요?”

리안과 무명은 프뤼나의 말을 이해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이 맞도다. 다만 현재 밖으로 누출된 요기는 찌꺼기 같은 것으로 해악한 것이니라.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정화된 채로 몸에 정착한 모양이구나.”


“이제 그럼 어떡하지?”


“루시드씨에게 연락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네가 그런 제의를 하다니 놀랍군.”


“어쩌겠어요. 무명씨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이런 방법 밖에 없잖아요.”


“하고 싶은 거라···. 누명을 풀고 진범을 찾으려는 건가.”

“그러기에는 너무 돌아가고 있는 기분이지만.”


“잠깐만, 그대들 그 이야기 나도 들을 수 있겠느냐.”


엘리의 요청에 무명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대강 정리해서 해주자 상당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듣는다.


“오호라. 그래서 그 루시드라는 자에게 연락을 하겠다는 것이로구나.”


“그래. 딱히 방법이 없으니까.”


“어째서 그 자에게 범인을 밝혀달라고 하지 않느냐? 신분을 이용하면 누명도 없어지지 않겠느냐.”


“그건··· 내 책임을 져야지.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린 것이라 해도 내가 칼자루로 쓰인 이상 나도 방관만 할 수는 없잖아.”


“카하하하하, 쿠엌. ···흠흠 소심한 사내인 줄 알았더니 꽤나 오만한 사내구나. 즐겁도다. 그런 그대를 위해 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니라. 하하핫!”


사레가 들릴 정도로 웃다 순간 불꽃이 입에서 보였지만 무명은 애써 모른척한다. 우연히도 프뤼나와 리안은 보지 못했다.


“게다가, 마나 포션 제조 일은 내 실수가 맞으니 딱 1주, 즉 10일만 기다려 보거라.”


무명이 살던 세계와 다르게 한 주를 10일로 셌다. 혹시 몰라 엘리가 그것을 배려해 정확한 일수로 말해준 것이다.


“그 정말,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따라간다는 건 사절인데.”


여기서 사람이 더 있으면 1분 1초가 힘들 것 같다. 프뤼나와 리안이 다투는 것만 해도 어지럽다.


“걱정 말거라. 연금술이나 지혜로 도움을 줄 것이니. 자, 오늘은 이만 하산하느니라.”


일행은 기분 상 쫓겨난 것만 같다.


“······도움이 되겠지?”


“네. 돌팔이가 아니라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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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막간 22.06.16 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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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습격 (3) 22.06.14 10 2 9쪽
28 습격 (2) 22.06.13 11 2 9쪽
27 습격 (1) 22.06.10 11 2 9쪽
26 2장, 루시드 22.06.09 13 2 10쪽
25 출발 (2) 22.06.07 10 2 10쪽
24 출발 22.06.06 12 2 10쪽
23 참여 22.06.03 11 2 9쪽
22 유적지 (2) 22.06.02 11 2 9쪽
21 유적지 22.06.01 11 2 9쪽
20 혈자, 아키 +1 22.05.31 14 3 10쪽
19 지원 22.05.30 11 2 11쪽
» 상충 22.05.28 17 2 11쪽
17 산책 22.05.27 15 3 10쪽
16 엘리 22.05.26 14 3 10쪽
15 헤일 산맥 22.05.25 23 4 10쪽
14 제안 22.05.24 17 3 10쪽
13 소환 +1 22.05.23 15 3 10쪽
12 배움 +1 22.05.20 20 4 12쪽
11 또 다른 시작 (2) +2 22.05.19 23 3 12쪽
10 또 다른 시작 +1 22.05.18 26 3 11쪽
9 조사 22.05.17 18 2 12쪽
8 의심 (2) 22.05.16 15 3 12쪽
7 의심 22.05.16 16 3 12쪽
6 첫 실전 +2 22.05.15 19 3 9쪽
5 세계의 역전 22.05.13 16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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