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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월나래님의 서재입니다.

한 번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여월나래
작품등록일 :
2022.05.11 11:14
최근연재일 :
2022.06.22 11: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24
추천수 :
99
글자수 :
154,610

작성
22.05.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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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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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또 다른 시작 (2)

DUMMY

갑작스럽게 집 안에 감도는 붉은 빛 아우라가 점차 아이샤에게 좁혀진다. 마나고 마법이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명이 봐도 위험함을 느낀다.


“프뤼나! 못 막아?!!”


급하게 프뤼나를 애절하게 불러보지만 그녀는 반응이 없다.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한 순에 본 감상으로는 막을 방법은 없다.


“살, 살려···.”


살리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이다. 수 초 만에 완전히 좁혀진 붉은 빛은 잠깐 점멸하더니 콰직, 하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아이샤가 쓰러진다.


“젠장······.”


이가 절로 꽉 물린다. 가슴이 어쩐지 뜨거워 답답해지고 몸 곳곳 벌레가 문 듯 따끔한 기분이 든다.


“처음 보지만, 아마도 인챈트의 일종이에요. 특정한 조건을 걸고 효과가 발동되게 하는 일종의 시한효과라고 같아요.”


“꽤··· 침착하네.”


“괜한 정의감 내세우지 마세요.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해요. 게다가 무명씨를 음해하려고 한 사람 중 하나인데요?”


단호하게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서 살해당했잖아.”

“그건 착각이에요. 전 세계의 사람은 부조리하게 죽어요. 겨우 늙었을 뿐인데도 죽는 게 인간이잖아요. 단지 눈앞에서 봤다고 그 의미가 과연 달라지나요? 의미는 삶에만 있어요. 누군가가 살해당했다면 가해자에게 그 의미가 있겠죠. 죽은 자를 기린다고요? 아니면 위한다고요? 그것도 역시 살아남은 사람의 의지 아니겠어요?”


“······.”


프뤼나의 열변에 무명은 침묵한다. 잠시 생각하다 아마 나름의 위로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셨으면 범인 찾기에 노력하시죠. 도서관장님이 살해당한 건 무명씨를 몰아넣기 위해서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얘기겠죠.”


“하지만 추적할 방법이 없다며.”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으나 지금은 수용해야 한다. 프뤼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정말 확실하게 범인으로 몰아갈 수 있었다면 굳이 상황을 이용하는 번거로운 방법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없어요. 하지만 저 쪽이 완벽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오히려 좋아요.”


“오해를 풀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거군.”


프뤼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 경비대에게 사건을 알리죠. 우리에게는 도서관장님이 요기를 썼다는 증거가 있어요. 사건의 초점을 옮길 수 있지 않겠어요?”

“아니. 그 경우라면 오히려 내가 증거를 없애려고 아이샤씨를 죽였다···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아?”


“어머. 생각보다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시네요. 다시 봤어요. 그 점이라면 괜찮잖아요. 피로 그렸던 고대 마법. 무명씨가 강제로 전송되었다는 증거가 있으니. 제출한다면 경비대에서 알아서 조사를 하겠죠.”


“하지만 그걸 어떻게 우리가 봤다고 증언할 수 있겠어?”


“그대로 설명하면 되죠. 게다가 현장은 경비대에서 먼저 확인했을 테니 거짓이라고 판명하긴 힘들지 않겠어요? 걱정이 너무 많은 것도 병이랍니다. 최대한 할 일을 했잖아요.”


“최대한···이라.”


방금까지 있던 일을 정리해 보지만 자신이 뭔가 한 일은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프뤼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해결되지 않았을 거다.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것이다. 조금 더, 더 많이 알아야한다. 배우고 익히고 쓸 줄 알아야한다. 글이든 술식이든 마법이든 무기술이든 모두 배워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든다.


프뤼나는 경비대를 부르기 위해 작은 술식을 짠다. 비유하자면 호출벨이다. 경비대 옷에 미리 부착해둔 표식을 통해 부르는 것이다. 역전 현상 때 프시케가 썼던 것과 같은 것으로 가장 가까운 표식을 우선한다.


불쾌한 현장에서 나온다. 텁텁했던 집 안에서 나오자 새삼 신선한 공기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무명씨.”


“응?”


갑작스럽게 프뤼나가 무명에게 다가와서는 냄새를 맡는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당혹감이 무명을 습격한다.


“씻고 싶지 않으세요?”


“······몸에서 냄새 나?”


“네. 아직까지 어떻게든 봐줄 수는 있지만요.”


“집에 돌아가시면 씻으시죠.”


“그러고 보니 배도 고프다···.”


무언가 먹은 기억이 전혀 없다. 얼렁뚱땅 일에 휘말려 식사를 할 여유도 없었고 체질이 세계에 맞추어 조금 변한 탓도 있다. 그나마 다행히도 기절한 3일 동안에는 액체형으로 영양소를 강제 보급당해서 문제는 없었다.


한 번 배고프다 인식 하고나니 꼬르륵 거릴 정도로 배가 울린다.


방금 사람이 죽었는데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과연 옳으냐고 한다면 옳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프뤼나의 말처럼 삶에 의미가 있다는 것은 분명 이런 뜻이리라 생각한다.


자신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을지 모르는 아이샤와 억울한 처지에 놓이게 될 자신을 위해서라도 지나간 일이 아닌 앞으로의 일을 다짐해야 한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프뤼나가 샤워를 제안한 것이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잠시 문 앞에서 호출을 기다린다. 얼마 가지 않아 사람이 온다.


“프뤼나인가.”


호출로 온 것은 의외로 경비대장인 베르가다. 프시케의 집을 들러 마침 현장을 재확인하러 오는 길이었다.


“도서관장님이 살해당했어요. 범인은 술식에 능통한 자 같네요.”


“오호. 너희가 최초 발견자인가?”


베르가는 노골적으로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네. 우연히 도서관장님이 요기를 다루려고 한 정황이 있어서 조사 중에 확인 차 방문했는데 무언가 발설하려다 살해당했어요.”


“흠. 어째서 먼저 경비대에게 알리지 않았지?”


“알다시피 술식은 저희 집안의 일이잖아요?”


“그렇다면 무명은 왜 같이 있지? 분명 막사 지하에 넣어뒀는데.”


“제가 꺼냈어요. 조사에 필요한 조수로써 말이죠. 모르셨다면 말해드릴게요. 무명씨는 본 것 전부를 기억할 수 있거든요. 일은 끝났으니 지금이라도 다시 감옥에 넣으세요.”


한마디도 지지 않는 프뤼나가 참 경이롭다. 날 선 분위기가 팽배해 무명은 차마 말 한마디 꺼내기가 힘들다.


“잠시 불문에 부치지. 이야기를 돌려서 아이샤가 요기를 다뤘다는 증거는?”


“무명씨. 꺼내주세요.”


프뤼나가 요구한 것은 작은 유리 상자로 요기의 기운이 조금 남아있는 것으로, 베르가는 한 눈에 알아본다. 마나에 대한 감각은 부족해도 젊은 시절에 많이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베르가는 그것을 건네받고 품에 넣는다.


“왜 프시케에게 조사를 맡기지 않았지?”


“어머니는 나름대로 바쁘시잖아요? 저도 가끔은 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언니에게는 말 못할 사정이었다고 들리는군.”


아무리봐도 프시케를 프뤼나가 어머니라고 부를 연령대는 아니었기에 언니라는 말에 무명은 납득한다. 그러나 그 납득을 깨부수려는 듯 프뤼나는 정정한다.


“언니라뇨. 어머니에요.”


“네 언니는···.”


“어. 머. 니.”


“······.”


냉랭한 침묵이다. 잠깐의 침묵을 깬 건 무명이 흠, 하고 목을 가다듬는 소리였다. 분위기를 살피고는 입을 뗀다.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이 일과는 아무상관이 없어.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를 이용해서 뒤에서 무슨 사건을 꾸미고 있는 거야.”


“증거는 있겠지?”


자신이 베껴 그린 것을 꺼내 보여준다.


“프뤼나의 말로는 고대 마법이래. 아마도 전송자를 부르는 마법인 모양인데.”


“···확실히 현장에도 남아 있던 것과 유사, 혹은 같군. 조사를 해보도록 하지.”


“못 믿을만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심증으로만 감옥에 넣어둘 수는 없지.”


인력도 부족하지만 괜스레 부스럼이 되지 않도록 덧붙이지 않는다.


“프뤼나. 프시케에게도 말해뒀지만 무명을 감시해줬으면 한다. 부디 귀찮은 일이 없도록 해줬으면 좋겠군.”


고의로 대놓고 말한다. 엄한 짓 하지 말라는 일종의 충고이자 경고다.


“걱정 마세요. 저희 집에서 아주 철저히 관리할 테니까요.”


내가 강아지냐! 하고 딴죽을 걸 때가 아니었기에 참는다.


베르가는 곧장 조사를 위해 현장으로 들어간다.


“다행히도 예상대로네요. 역시 경비대장님은 나이에 비해 사고가 유연하시단 말이죠.”


“항상 말이 뭔가 하나가 더 많은 거 아냐?”


굳이 나이 얘기를 해야 했나 싶다. 하지만 프뤼나의 원래 말투가 그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다. 아마 언제까지 지겹도록 들어도 딴죽을 못 참을 것 같다.


“일단 집으로 가죠. 지금 해야 할 일은 씻고, 밥을 먹고, 잠을 자서 체력 보충부터 하는 거예요.”


“응. 돌아갈 때도 술식으로?”


“아뇨. 꽤나 피곤한 일이거든요. 지금도 엄청 힘들어요.”


언덕 넘어 보이는 중앙을 통해 거리를 가늠해보면 그리 먼 길은 아니다.


“업어주세요.”


“업어달라고? 나 길 모르는데?”


잘못 들었을 리는 없지만 혹시나 해서 되묻는다.


“네. 빨리요. 길이라면 알려드리면 되죠.”


이런 두근거리는 이벤트 겪어본 적이 없어 내성이 없다. 얼굴이 금세 빨개진다. 하는 수없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부바를 한다. 어느 부분을 잡아야 할지 몰라 적당히 허벅지를 잡는다.


생각보다 무겁다.

등에 닿는 따스한 감촉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푸근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딱 밀착하고 있어 가슴의 감촉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크지는 않지만 확실히 그 위력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누군가가 왜 파괴력이라고 썼는지 이해가 간다.

심장 고동소리가 꽤나 선명하게 들려 자신의 것인지 프뤼나의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살결이 너무 부드럽다.


“저, 저기.”


“왜요?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서 터질 것 같나요?”


“에잇!”


그렇다. 프뤼나는 어떻게든 무명을 놀려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무명은 잔뜩 빨개진 얼굴로 등에 진 소녀를 벗어 던진다.


“앗.”


가볍게 엉덩방아를 찧은 프뤼나는 엉덩이를 어루만지면서 일어난다.


“역시 무명씨는 반응이 너무 재밌네요.”


“······.”


큰소리를 하려다 참는다. 말싸움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그저 한숨을 쉬고는 걸음을 서두른다.


“같이 가요.”


그렇게 걷다보니 집에 도착했다.


“삐지시기는.”


“삐진게 아니라 현명하게 놀림을 피하는 거야.”


“그러시겠죠.”


프뤼나는 문을 연다. 집 안에는 프시케가 있었다.


“어머, 왔구나?”


늘 그랬듯이 상냥하고 밝은 목소리로 맞이한다. 언제 들어도 마음이 편해진다.


“오랜만에 집에 계시네요.”


대부분 흥신소에서 보냈기에 집에 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음식을 해가거나 편히 쉬고 싶을 때나 가끔 집에서 쉬고 갔다.


“응. 어서 와.”


무명도 자연스럽게 프뤼나를 따라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무심코 인사를 건네려다 충격적인 광경에 몸이 굳는다.


“저···저기. 옷 좀···.”


프시케는 타이밍 좋게 방금 씻고 나왔기에 도저히 눈 둘 곳 없는 수건 한 장 두른 차림이었다.

눈동자를 끊임없이 굴리며 움찔하는 무명과 다르게 프시케는 태연하다. 프뤼나 역시 조용히 반응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것보다 빨리 글부터 배우죠. 기억력이 좋으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요.”


“아, 리사가 알려 준 댔는데.”


도서관 일이 끝난다면 글을 알려준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럼 식사까지 마치면 바로 찾아가죠.”


드디어 한시름 놓은 기분이 든다. 물론 진짜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럼에도 한 숨 잤던 탓인지, 집이라는 공간 탓인지 무척이나 안심이 된다.


프뤼나의 말대로 몸을 재충전부터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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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수수께끼 (1) 22.06.20 8 1 9쪽
32 야영 22.06.17 7 1 9쪽
31 막간 22.06.16 8 1 9쪽
30 습격 (4) 22.06.15 10 2 10쪽
29 습격 (3) 22.06.14 10 2 9쪽
28 습격 (2) 22.06.13 10 2 9쪽
27 습격 (1) 22.06.10 10 2 9쪽
26 2장, 루시드 22.06.09 12 2 10쪽
25 출발 (2) 22.06.07 10 2 10쪽
24 출발 22.06.06 11 2 10쪽
23 참여 22.06.03 11 2 9쪽
22 유적지 (2) 22.06.02 10 2 9쪽
21 유적지 22.06.01 10 2 9쪽
20 혈자, 아키 +1 22.05.31 13 3 10쪽
19 지원 22.05.30 10 2 11쪽
18 상충 22.05.28 16 2 11쪽
17 산책 22.05.27 14 3 10쪽
16 엘리 22.05.26 14 3 10쪽
15 헤일 산맥 22.05.25 23 4 10쪽
14 제안 22.05.24 16 3 10쪽
13 소환 +1 22.05.23 15 3 10쪽
12 배움 +1 22.05.20 19 4 12쪽
» 또 다른 시작 (2) +2 22.05.19 23 3 12쪽
10 또 다른 시작 +1 22.05.18 25 3 11쪽
9 조사 22.05.17 17 2 12쪽
8 의심 (2) 22.05.16 15 3 12쪽
7 의심 22.05.16 15 3 12쪽
6 첫 실전 +2 22.05.15 18 3 9쪽
5 세계의 역전 22.05.13 16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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