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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월나래님의 서재입니다.

한 번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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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월나래
작품등록일 :
2022.05.11 11:14
최근연재일 :
2022.06.22 11: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33
추천수 :
99
글자수 :
154,610

작성
22.05.31 11:00
조회
13
추천
3
글자
10쪽

혈자, 아키

DUMMY

“하아···.”


덮치려는 프뤼나를 다치지 않게끔 밀어트린 무명은 숨을 거칠게 쉰다. 얼굴이 그 누구보다 새빨개졌다.


“왜 그래요 무명씨?”


천연덕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살짝 갸웃이는 프뤼나는 천진난만한 여신 같다.


하지만 무명은 아름답기만 한 미소에서 불온감을 느낀다. 비유하자면 마치 친누나가 앙탈을 부리는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불쾌감일지 모른다.


“너··· 너, 누구야?”


“프뤼나에요.”


“증명해봐.”


억지라도 부리지 않으면 분위기가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루시드가 무엇 때문에 불렀는지도 무척 신경 쓰이기도 하다.


“몸으로··· 증명하면 될까요?”


원피스 어깨 끈을 슬며시 내리려 하길래, 얼른 시선을 돌린다.


“뭐하려고??!! 너 진짜 이상한 거 알지?? 술 마셨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


프뤼나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배를 부여잡고 웃는다. 게다가 목소리고 모습이고 일그러져 가기 시작한다.


10일 동안 아무 일 없던 등에 간지러운 자극이 느껴진다.


“하하핳하핳하.”


프뤼나는 한참을 그렇게 웃고 나서야 멈춘다. 더 이상 프뤼나라고 불러야 할 수 없는 존재로 어그러져 있다.


“너··· 누구야?”



“나는 기만의 혈자, 아키다.


아키라고 소개한 혈자는, 공중에 가볍게 뜬다.


“혈자···? 여기까지 무슨 목적으로 온 거지? 프뤼나는 어딨어?!”


혈자는 혈옥에 사는 고위 지성체 종족이다.

아직 수수께끼가 많은 종족이지만 분명한 건 인간에게 해악적인 존재라는 것이었다. 대개 혈옥 깊숙한 곳에 살기 때문에 동화나 전설로 취급되는 일도 있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프뤼나는 언젠가 만나게 될 종족이라며 자세하게 배워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작은 도서관에서 검열된 정보로 얻을 수 있는 양은 어림없이 적었다.


“재밌어, 아주 재밌어.”


얼핏 보면 인간의 모습이지만 일부분이 송곳니나 발톱의 모양으로 날카롭게 변형되어 있다. 검게 물든 색으로 제 각각 움직이는 것이 무척이나 기괴하다.


그 점을 제외한다면 금발 여성의 우아한 모습을 가진, 그러면서 앳된 소녀의 모습이다.


무명은 직감적으로 저 기괴한 신체가 요기를 함부로 쓴 자신의 말로일 것을 예상한다. 물론 지금은 아예 쓸 방법도 없다.


“대답해.”


“하핳하. 대답하라고? 너 바보야?? 걔가 죽었다고 하면 믿을 거야?? 아, 혹시 잘 못 들었나? 나는 ‘기만의 혈자’ 아키다.”


무명은 이를 꽉 문다. 우스운 질문이었다는 것쯤은 알지만 마음이 급하다. 한가롭게 말장난할 여유가 없다.


엘리에게 받은 펜으로 허공에 글씨를 쓴다. 분명 이론상으로 술식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체내의 마나가 없어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요 10일 동안 몇 번이나 증명했다. 마법에 비해 소모되는 마나량이 지극히 적어서 가능했다.


재빠르게 작성한 술식은 프뤼나의 위치를 추적하는 효과다.


“흐응. 특이한 글자를 쓰는구나?”


이세계 언어가 아닌 한글을 사용했기에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효과가 보여 질 일은 없다. 대책할 방법을 마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다.


덧붙여 영어나 일어도 시험해봤지만 말의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인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추적 술식은 분명히 성공했으나 작동하지 않는다. 순간 빛을 발한 것이 깨지는 것처럼 흩어지더니 그대로 사라진다.


어딘가 마나의 흐름이 강제로 끊겨 있는 곳에 있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어떡할 거야, 오빠?”


아키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묻는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배시시 웃는 모습이 꽤나 잔망하다.


리안의 위치도 추적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건네받은 고유 마나가 없었으므로 불가능하다.


“목적이 뭐야?


“그야 놀러왔지. 누군가 전송 의식을 했는데 신경이 안 쓰이고 배겨? 공기가 좀 답답하지만 어쩌겠어?”


등의 요기가 간질거려 미칠 것만 같다. 저 소녀를 과연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건인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힘이 꽤나 붙어 자신이 생겼지만 프뤼나로 변한 것을 보면 어떤 능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섣불리 다가가기 힘들다.


“아, 말해두겠는데 싸울 생각은 않는 게 좋아. 여길 혈옥으로 만들 생각은 없거든♡”


“역시 요기를 쓰나 보네···. 그래서, 재미 좀 봤으면 돌아가지?”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재미 볼 게 더 많아 보이네?”


아키는 반 바퀴 돌아 무명의 뒤로 이동하고는, 등에 손을 댄다. 바람이 흩날리고 나서야 움직임을 눈치 챌 정도로 아주 조용하고 재빨랐다.


“에잇.”


무명이 황급히 손길을 쳐내기도 전에 아주 살짝 요기를 불어 넣는다.


다시 한 번 격통이 척추를 타고 흐르지만, 간신히 버텨낸다.


“아하하핳. 요기를 쓰면서도 요기에 아파하는 거야? 재밌어♡”


“못, 쓰거든?! 쓸 생각도 없어!”


“그래? 알려줄까?”


요망하게 미소 짓으며 무명 주위를 느긋하게 공중에서 돈다.


알려준다는 말에 무명은 일순 동공이 흔들리지만 넘어가지 않는다. 등에서 자꾸 벌레가 꿈틀대는 것만 같다. 고통에 의존하니 아키의 말이 먼 얘기처럼 들린다.


“속임수는 안 통해.”


“진심이야. 인간 심복 하나 정도는 두고 싶었거든. 게다가 전송자잖아. 생각만 해도 흥분 되는걸♡”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무명의 뺨을 어루만진다.


“내가 전송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혈옥은 여기서 하루 이틀 거리가 아닐텐데.”


“세계 단위의 의식을 하는데 모르는 바보가 있겠어? 게다가 역전 현상도 여기서 일어났잖아?”


“···알고 있는 걸 말해 줬으면 하는데.”


“문답은 싫어! 재미없어. 내 심복이 될 건지나 말해. ”


볼을 부풀리며 말한다.


“될 리가 없잖아?!”


“그래? 아쉽다. 그럼 죽어줘.”


여유만만한 자세로 공중을 떠다니던 아키는 한 손을 움켜지듯 꽉 쥐고는 편다.


그러자 무명에게 살짝 불어 넣은 요기가 폭발하듯 꿀렁거리며 몸 밖으로 흘러나와 몸을 덮어간다. 근육이 점차 경직되어 가는 것이 느껴진다.


간신히 움직이는 오른 손으로 술식을 써 내린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나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떠올린 것은 엘리가 근처에 있다는 것과 엘리가 용이라는 사실.


힘겹게 쓴 술식의 마지막 획에서 붉은 색 빛이 난다.


아키는 충분히 대비할 반사 신경이 있었지만 반응 하지 않는다. 못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가까울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그녀의 사고방식과 그녀가 모르는 글인 ‘한글’이 만들어 낸 시너지였다.


펜 끝에서 달아오른 불꽃이 아키를 감싸 오른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온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아키는 불을 끄려 발버둥 치지만 소용이 없다.


그가 상상한 숨결은 꺼지지 않은 불꽃이었기에 좀처럼 꺼지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영원히 지속되는 불꽃은 되지 못했지만 위력은 충분하다.

오히려 생각했던 것 보다 강력하다.


즉석에서 새로 짠 술식임에도 대단한 완성도지만, 프뤼나가 있었다면 글자의 낭비가 많다고 한 마디 했을 것이다.


“아아아악―!!!!!!!”


소녀였던 모습이 조금씩 부풀러 오르는 것이 보인다. 인간의 모습은 그저 장난을 위한 가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불을 끄기 위해서는 요기를 더 흘러야 했다. 요기를 쓰지 않으려는 이유는 역전 현상이 혈자들에게도 곤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키에게 새어나온 요기는 불을 끄면서도, 질척하게 새어 떨어진다.


“너···, 너. 후회하지 마라.”


아키는 공간을 찢듯이 갈라 몸을 숨기고 사라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뿌리고 간 요기의 압박감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몸을 덮으려던 요기는 등에 몰려, 무언가 솟아날 것처럼 꿀렁거린다.


간신히 아키를 쫓아냈지만 기뻐할 여유도 안심할 틈도 없다.


“헛!”


기합소리와 함께 작은 단도가 내려쳐진다.


“···?!”


분명 등이 베인 감각이 있지만 고통은 없다. 오히려 요기로 인한 고통이 덜어져, 개운하다.


“이런 이런, 다행이구나.”


익숙한 중성적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엘리였다. 잘려나간 끈적한 요기를 병 안에 담고 있다.


“엘리?”


“자리에서 자꾸 머물기에 정이라도 나누나 해서 내 구경와봤더니, 이런 사태일 줄이야.”


“덕분에 살았어.”


“봉인 술식 하나만 써 보거라.”


엘리는 요기를 담은 병을 가볍게 무명에게 던진다. 하마터면 못 받을 뻔 했지만 용케 받고 술식을 짜고서 돌려준다.


말이 봉인이지 단순하게 열기 어렵도록 병 자체를 조정한 것이다.


“혈자였어···.”


“고생했느니라. 포션 하나 꺼내 마시 거라. 헌데, 상당한 녀석이구나 마나의 기척까지 흉내 내다니.”


좀 전에 펜과 같이 건네줬던 작은 주머니를 가리킨다.


겨우 세 손가락 들어갈 크기지만 내부의 끝이 잡히지 않는다. 먼저 잡히는 병을 꺼내니 붉은색 액체가 들어있다.


단숨에 들이키고는 다시 가방에 넣는다.


“프뤼나를 찾아야 돼. 추적이 안 돼.”


“그럼 마나를 끊는 결계거나, 스스로 추적을 거부하거나 이겠구나.”


“전자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짐작 가는 곳 있어?”


스스로 추적을 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납치의 가능성이 떠오르는데 그 프뤼나를 과연 어떻게 납치했는지 골머리가 아프다.


“내 여기 이사 온 날 부터 내내 은거하고 살았으니 근처에 짐작 가는 곳이 없느니라.”


엘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면··· 리안에게 물어봐야겠네. 미안, 아무래도 급하게 가봐야겠어.”


“일 있으면 연락 잊지 말거라.”


무명은 달려서 산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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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수수께끼 (1) 22.06.20 8 1 9쪽
32 야영 22.06.17 8 1 9쪽
31 막간 22.06.16 8 1 9쪽
30 습격 (4) 22.06.15 10 2 10쪽
29 습격 (3) 22.06.14 10 2 9쪽
28 습격 (2) 22.06.13 11 2 9쪽
27 습격 (1) 22.06.10 10 2 9쪽
26 2장, 루시드 22.06.09 13 2 10쪽
25 출발 (2) 22.06.07 10 2 10쪽
24 출발 22.06.06 11 2 10쪽
23 참여 22.06.03 11 2 9쪽
22 유적지 (2) 22.06.02 11 2 9쪽
21 유적지 22.06.01 10 2 9쪽
» 혈자, 아키 +1 22.05.31 14 3 10쪽
19 지원 22.05.30 10 2 11쪽
18 상충 22.05.28 16 2 11쪽
17 산책 22.05.27 15 3 10쪽
16 엘리 22.05.26 14 3 10쪽
15 헤일 산맥 22.05.25 23 4 10쪽
14 제안 22.05.24 17 3 10쪽
13 소환 +1 22.05.23 15 3 10쪽
12 배움 +1 22.05.20 20 4 12쪽
11 또 다른 시작 (2) +2 22.05.19 23 3 12쪽
10 또 다른 시작 +1 22.05.18 25 3 11쪽
9 조사 22.05.17 17 2 12쪽
8 의심 (2) 22.05.16 15 3 12쪽
7 의심 22.05.16 15 3 12쪽
6 첫 실전 +2 22.05.15 18 3 9쪽
5 세계의 역전 22.05.13 16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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