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여월나래님의 서재입니다.

한 번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요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여월나래
작품등록일 :
2022.05.11 11:14
최근연재일 :
2022.06.22 11:0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40
추천수 :
99
글자수 :
154,610

작성
22.05.16 11:00
조회
15
추천
3
글자
12쪽

의심

DUMMY

“머리 아파···.”


잠시 시야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흐릿하게 보이는 천장의 불빛. 쿱쿱한 특유의 지하 냄새. 가위에 눌린 것 마냥 몸이 무거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


딱딱한 나무 침대가 무척 불편하다.


낯선 천장을 그저 눈을 껌뻑거리며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저기···?! 누구 없어?”


뻣뻣한 목 근육을 간신히 돌려 바라보니 어디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낡은 쇠창살이 맞이하는 쓸쓸한 풍경. 경비대 소속의 감옥 안이다.


“저기요???”


무명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사람을 부른다. 자신이 왜 감옥 안에 있는지는 몰라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으니 무척 갑갑하다.


다행히도 잠시 그러고 있자 사람이 온다.


리안과 같은 복장으로 경비대다.


“···잠시 기다려라. 대장님을 불러오겠다.”


역광인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와 체구로부터 확실한 것은 리안은 아니다.


잠시 불편하게 누워있자 곧 쇠창살문이 열리며 사람이 들어온다. 한 손에는 낮은 나무 의자를 들고 있다.


“몸은 괜찮나? 나는 베르가다. 경비대장을 맡고 있지.”


무명의 예상과는 다르게 중년 여성이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주름 진 얼굴은 고생을 꽤나 많이 했음을 보여준다. 그 뿐 아니라 머리를 관리할 시간도 없어 꽤나 거친 머릿결이다. 여장부라는 표현이 절로 생각난다.


복장은 경비대의 제복으로 붉은 색 완장을 오른쪽 팔뚝 위에 차고 있는 것만 다르다.


베르가는 들고 온 접이식 의자를 펴서 곁에 앉는다. 편하게 다리를 꼬고, 손에 깍지를 낀 채 앉아 있는 것이 여유로워 보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어.”


존대를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으나 눈치를 보니 굳이 안 해도 되는 모양이다.


“보고에 따르면 요기 속으로 뛰어 들었나 본데, 살아있는 게 기적이군.”


“여기는 감옥 같은데 어째서 ···?”


“아, 걱정마라. 아직은 참고인으로 잡아 두고 있는 것뿐이니.”


아직, 이라는 말이 걸린다. 잘 생각해보면 충분히 수상하게 생각할 수 있어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리사는? 프시케씨는?”


“둘이라면 괜찮다. 상당히 피곤해있었지만 지금은 둘 다 멀쩡하지.”


“다행이다.”


“삼 일이나 지났으니 그렇지.”


“···삼 일? 삼 일 동안 누워있었어?”


“말했듯이 살아 있는 게 기적이지. 리안과 프시케의 도움이 없었다면 기적조차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실감이 전혀 나지 않는다. 삼 일이나 흘렀다니,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앙이 개판이 나는 바람에 치료사는 부를 수 없었다. 눈을 뜬 것에 감사하도록.”


“···그러고보니 리안은 괜찮아?”


아주 잠깐이지만 합을 맞췄다. 어딘가 엉망진창인 느낌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정이 좀 붙은 모양이라 걱정이 된다.


“질문이라고 하나? 당연히 경비대원으로써 아무런 지장이 없다. 덧붙여 널 참고인으로 데려 온 것도 그 녀석이지.”


베르가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마냥 기가 찬 것은 아니고 자기 입장도 모른채 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꽤 흥미롭다.


“···궁금한 건 끝났나 보군. 나도 궁금한 것이 몇개 있다.”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꼰 다리를 풀고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무명은 침을 삼킨다.


“신변은 대강 프시케에게 들었다. 상황도 말이지. 내가 묻고 싶은 건 다른 것이다.”


리안의 자세한 보고와 프시케와 리사의 증언으로 대략적인 조사는 마쳤다. 물론 그래도 수상한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기억력이 좋다고 하던데. 맞나?”


별 상관없는 질문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절하기 위해 던진 것이다. 베르가는 이런 문답을 하는 것에 상당히 익숙했다.


“맞아. 봤으면 전부 기억할 수 있어.”


“다음, 리사의 말에 따르면 너희 둘이서 수상한 남자를 봤다.”


베르가는 리사의 증언을 떠올린다. 프시케와 더불어 상당히 큰 도움이 되어 감사를 표했었다.


“검은색이 인상적인 남자였어.”


무명은 봤던 것을 그대로 전한다.


“···그런가. 혹시 살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나?”


베르가는 기습적으로 질문한다.


“살인? ······리안이 프시케 씨의 가게에 들른 것이 그거 때문이야?”


똑똑히 기억한다. 리안이 ‘추적 술식’을 받으러 왔었다. 그것과 사건이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 짐작 가는 것은?”


“있을 리가 없는데. 혹시 그 때 봤던 남자와 연관이 있나?”


무언가 유도 심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지만 찔리는 구석 하나 없어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 삼자의 입장에서 사건이 조금 궁금할 뿐이다.


살인이 비록 비윤리적인 사건임을 알지만 너무 머나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마치 이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사 중이다. 마지막 질문, 리안의 말에 따르면 이상한 글자로 술식을 썼다더군.”


“한글, 이라는 건데 내 세계에서 쓰던 글자야.”


“······쉬도록.”


“······어차피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여전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손가락이라도 움직이면 덜 답답하겠지만 슬프게도 움직이지 않는다.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근성으로 해결해라.”


“······.”


“농담이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베르가는 웃음기 하나 없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는 감옥에서 나온다. 푸석한 머리카락을 이마에서 부터 쓸어 넘긴다.


“대장님, 뭐 좀 알아냈습니까?”


방금 경비대원, 파라이아다. 성인 남성치고는 조금 왜소한 체구지만 강직함이 있는 남성이다. 리안과 동갑으로 고작 다섯 명인 경비대는 베르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비슷한 나잇대다. 남은 세 명은 역전 현상으로 붕괴에 직면한 마을을 복구하고 있다.


“글쎄. 뭐라 단정하기는 힘들겠군.”


머리카락을 연거푸 쓸어 넘긴다.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을 때의 습관이다.


“리안이 꽤나 변호하던데 말입니다.”


“그 녀석치고는 특이한 일이긴 하지. ···난 프시케 자매에게 가겠다. 잘 지키고 있도록.”


자매라는 말을 무명이 들었다면 이상하다고 생각 했을 것이다. 프뤼나와 프시케는 분명한 자매가 맞지만 단지 조금 사정이 있어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던 것이다.


“무슨 일인지 여쭤도 됩니까?”


“확증되면 말해 주지.”


파라이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말하지 않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경비대장으로써 신뢰하기 때문에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지하실에서 걸어 올라온 베르가는 혀를 찬다.


“쯧, 청소 좀 하고 살라니까. 이것만큼은 죽어도 모른 척하는군.”


작은 마을 촌이지만 역시 다섯 명은 고작인 수준이라 상당히 많은 업무를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경비대 막사가 난장판인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각자 자원해서 하는 것이므로 강제적으로 시키지 않는 것도 있다.


외곽 길을 둘러서 걸을 시간조차 아깝다. 중앙을 가로질러 프시케에게 향한다.


겨우 한 시간도 안 되게 일어났던 ‘세계의 역전’ 현상. 그럼에도 마을 하나가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고 중앙의 일부분이 망가졌다.


그 여파가 아직도 생생히 보인다.


다행히도 프시케가 현장에 있던 덕분에 2, 3차 피해는 막을 수 있던 게 행운이다. 만약 대처가 늦었다면 네 마을 전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완전히 복구하는 건 일주일 이상이 걸릴 터다.


프시케에게 무명에 관해서 들었다. 프뤼나에게도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직접 무명하고 대화해봤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의문이 남아 있다.


살인 사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지금으로부터 5일전, 키니아 마을에서 피해자가 발생했다. 최대한 수사를 했으나 범인에 대한 증거는 없었다.


피해자는 중앙의 인물. 하지만 중앙의 협력은 없었다. 피해자와 개인적인 접점은 없었으나 주변인의 증언으로 볼 때 허세가 강한 남자였다. 특이점으로는 여기 변방까지 쫓겨난 마나 연구자였다.


그의 집에서 요기 연구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양이 없는 상태로 범인이 가져갔을 것이다. 전부 가져갔다면 오히려 눈치 챌 일이 없었을 텐데 고의로 남겨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보란 듯이 일어난 요기의 확산과 역전 현상.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 사이에 일어난 무명의 전송 역시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중앙 쪽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수상한 남자. 중앙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사이렌, 그 두 명 밖에 못 들었군.”


리사의 증언을 토대로 주민들에게 물었지만 비교적 가장 가까이 중앙에 있던 사람도 듣지 못했다. 중앙의 사람들은 이야기를 거부한다. 기본적으로 중앙 사람은 인근 마을 주민이 아니라 국가에서 파견한 일종의 공무원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근본적인 의문점은 무명이 과연 정말로 전송자라는 것인가, 다.


프뤼나와 프시케의 말에 따르면 전송의 전승 중 물체의 재구성을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승이다. 전승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경비대를 하기 전, 전방에서 근무할 때부터 꽤나 있는 상황이었다. 사람끼리의 일은 아니었지만 타인의 상식을 사용하는 것은 기만의 기본이다. 비록 더 이상 몸이 혈옥의 환경에 버틸 수 없어 물러난 상태지만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무명을 통해 살인 사건을 묻히게 하려는 것이고, 역전 현상을 통해 무명을 묻히게 할 수도 있다. 굉장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미끼 전략이다. 눈앞에 큰 것을 흔들어 주면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무명은 요기를 찾은 것과 수상한 남자를 리사와 ‘같이 본’ 것 자체를 의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지식한 리안이 변호하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일지 모른다. 신뢰를 얻기 위한 자작극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리안이 말했던 처음 보는 글자로 짠 술식. 그것이 한층 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한글, 이랬나.”


베르가는 중얼거린다. 전송자라고 주장한 만큼 원래 세계의 것이라고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르는 고대의 언어의 일종일 수 있다.


룬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보고받았다. 하지만 술식이라는 것이 초심자도 간단하게 사용 가능할 수 있었다면 이미 누구나 쓰고 있어야 했다. 지식으로만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마나의 운용과 구성식, 의미, 환경, 소재, 조건 모든 것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논리의 비약은 싫어하지만,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인과를 맞출 수가 없다.


“칫. 이런 머리 쓰는 일은 싫은데. 대장이라는 것도 고역이군.”


즉 베르가의 생각을 종합하자면 중앙에서 무명과 함께 혹은 이용해서 이 평안한 시골에서 위험한 사건을 일으킬 셈이라는 것이다.


한편 무명의 곁에 파라이아 혼자를 둔 것이 신경 쓰이지만 그라면 섣불리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무명의 몸이 상당히 망가져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게다가 마법으로 슬쩍 구속했기에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파라이아에게 미리 자신의 생각을 말해두지 않은 것은 단순한 조심이었다. 가능한 혼자 알고 있는 편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무명에 대해 확실히 알 필요가 있어, 그리고 경고하기 위해 프시케에게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프뤼나는 몰라도 프시케는 사람 하나 의심할 줄 모르는 상냥한 사람이었기에 걱정이 된다.


베르가의 이러한 생각들은 ‘누군가’에 의해 전부 유도당한 것이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이 기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서두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한 번 본 것은 잊을 수 없는 모양인데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수수께끼 (2) 22.06.22 7 1 10쪽
33 수수께끼 (1) 22.06.20 8 1 9쪽
32 야영 22.06.17 8 1 9쪽
31 막간 22.06.16 9 1 9쪽
30 습격 (4) 22.06.15 10 2 10쪽
29 습격 (3) 22.06.14 10 2 9쪽
28 습격 (2) 22.06.13 11 2 9쪽
27 습격 (1) 22.06.10 11 2 9쪽
26 2장, 루시드 22.06.09 13 2 10쪽
25 출발 (2) 22.06.07 10 2 10쪽
24 출발 22.06.06 12 2 10쪽
23 참여 22.06.03 11 2 9쪽
22 유적지 (2) 22.06.02 11 2 9쪽
21 유적지 22.06.01 11 2 9쪽
20 혈자, 아키 +1 22.05.31 14 3 10쪽
19 지원 22.05.30 10 2 11쪽
18 상충 22.05.28 16 2 11쪽
17 산책 22.05.27 15 3 10쪽
16 엘리 22.05.26 14 3 10쪽
15 헤일 산맥 22.05.25 23 4 10쪽
14 제안 22.05.24 17 3 10쪽
13 소환 +1 22.05.23 15 3 10쪽
12 배움 +1 22.05.20 20 4 12쪽
11 또 다른 시작 (2) +2 22.05.19 23 3 12쪽
10 또 다른 시작 +1 22.05.18 26 3 11쪽
9 조사 22.05.17 17 2 12쪽
8 의심 (2) 22.05.16 15 3 12쪽
» 의심 22.05.16 16 3 12쪽
6 첫 실전 +2 22.05.15 19 3 9쪽
5 세계의 역전 22.05.13 16 3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