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모집
"아, 기다리고 있었네. 침식대책본부에서 왔다지?"
김현석이 마저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 문이 열렸다.
짧게 쳐진 새하얀 머리는 완전히 뒤로 넘겨졌고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진 노인이었다.
깔끔하게 면도된 턱과 길게 뻗은 코가 날카롭다.
무정하다 말해지는 시간조차 남자의 외모를 해치지 못했다. 긴 세월은 젊은 시절의 미모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 뿐이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르신. 침식대책본부의 김현석이라고 합니다."
"강태환이네."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강철같이 단단한 손이지만, 손등의 주름은 숨기지 못한다.
본디 오러 사용자는 노화가 늦다.
그러나 강태환의 피부는 평범한 노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했다는 증거였다.
이계침식이 시작했을 무렵 가장 먼저 최전선에서 싸워왔던 1세대 헌터이니만큼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김현석은 강태환의 왼손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애써 눌렀다.
"자, 안으로 들어가지."
김현석은 강태환을 따라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장 넓이의 초특급 단독주택을 신축해도 간에 기별도 안 될 재산을 쌓은 강태환이었지만, 그가 사는 곳은 평범한 아파트였다.
72평 아파트를 평범하다고 하는 건 억지일지도 모르지만, 비행 괴수의 출현 이후 아파트의 값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조촐하게 사는 셈이었다.
김현석의 시선을 깨달은 강태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혼자 사는 노인네에겐 너무 넓지."
"적적하지 않으십니까?"
"가끔 손주 녀석들이 놀러 온다네. 자식이라고 있는 놈들은 명절에나 오면 다행이고."
거실로 향하는 넓찍한 복도에는 수많은 사진과 훈장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황금 액자에 넣어진 유치한 그림이었다.
액자 안에는 삐죽 솟아오른 회색 머리를 가진 노인이 자신과 비슷한 크기의 용에게 발차기를 날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크레파스로 삐뚤삐뚤하게 그려진 그림.
학교에서 그려온 것일까.
나라에서 미술에 조금씩 투자할 여유가 생겼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손주가 유치원 때 그려준 거네. 가장 큰 보물이지."
김현석의 눈길을 눈치챈 강태환이 그리 말했다.
자세히 바라보니 액자에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성인 남성이 전력으로 해머를 휘둘러도 끄떡없으리라.
나라에서 내려준 훈장보다 저 유치한 그림이 더 소중히 간직되고 있었다.
공무원으로서는 묘한 감상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강태환은 김현석을 거실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아 강태환을 정면에서 마주하자 어깨가 무거워진다.
단순히 시선을 가득 메우는 근육질 외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눈빛. 그의 눈에는 세월이 담겨있다.
"솔직히 전화를 받았을 때는 꽤 놀랐네. 은퇴한지 6년은 된 퇴물한테 또 뭘 받아 가려고 그러나 생각했지."
"겨,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후후. 농담일세."
끌끌거리며 그리 농을 건낸 강태환이었느나, 정면에 앉은 김현석에게는 마냥 웃어넘기기 어려운 말이었다.
14살에 나라에서 건네준 총을 쥔 채 지구를 침식해가는 이계에 맞서 싸웠고, 6년 전에 은퇴했다. 그리고 그는 올해 75살이다.
다시 말해, 55년을 전쟁터에서 보낸 것이다.
"어르신께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난 그쪽 이야기는 잘 모르니 간단하게 말해주게나."
김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많이 고민하지 않았는가.
역사의 산증인, 구국의 영웅에게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전 정권의 정책, 줄줄이 엮인 비리, 거대 스캔들, 여당의 반발, 국민 지지도 하락, 그로 인한 정치적인 변동.
차마 말하기에는 얼굴 붉어지는 이야기들뿐이다.
강태환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기에 대범하게 넘겨준 것이다.
그런 배려를 알기에, 김현석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국내 최초의 헌터 아카데미. 그곳의 교장이 되어주십시오."
- 작가의말
조아라에서 쓰다가 훈타아케데미는 문피아에서 쓰는거라고 듣고 옮겨왔습니다.
주인공은 처음 게이트 열렸을때는 가녀린 소년이었습니다. 지금은 풍성한 타노스
게이트는 대충 2020년에 열렸습니다. 작중은 대충 20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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