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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뚤루 님의 서재입니다.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끄뚤루
작품등록일 :
2020.12.05 03:27
최근연재일 :
2021.02.18 08:28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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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3,136

작성
21.01.0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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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3)

DUMMY

눈앞의 학생은 생명을 죽인 적이 있다.


그것이 괴수이던, 혹은 사람이던 말이다.


이 정도면 학생 하나를 퇴학시키는 데 충분하고도 남는다.

강태환 본인에게도 어느 정도 타격은 있을지언정, 위험분자를 학교에서 배제한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남는 장사이다.

스스로의 사회적 인망 따위를 훼손해 학생들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러나 강태환은 자신의 결정을 보류했다.

스스로도 떳떳치 못하는 청소년기를 살아왔으니 이진회라는 사람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니 그는 좀 더 이진회를 차분히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진회 학생은 위험합니다.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한 학생은 여령환이겠으나, 가장 위험한 학생은 이진회였다.


여령환은 환생자.

새로운 세계에 17년간 적응하며 무림인 특유의 날카롭고 독한 마음이 둥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길을 걸을 때 주변에 누가 암기를 숨겼을까 주의하지 않고 핸드폰의 화면에 시선을 집중한다.

암습을 대비해 두 손을 자유롭게 놓아두던 습관을 버리고 대신 커피컵을 손에 쥔 채 길을 걷는다.

아이나 노인을 보면 경계하기는 커녕 속 좋게 웃어보인다.


지난 세월의 평화는 착실하게 여령환을 무디게 만들고 있었다.


여령환이 약해졌다기보다는, 현대에 적응했다고 하는 표현이 올바르리라.



그러나 이진회는 다르다.


46살.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사회에 절망한 그는 하루아침에 어린 시절로 돌아와 버렸다.

마음을 정리할 여유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그렇기에 그의 마음은 지난날과 다르지 않다.


평화로운 현대를 살아가며 여러가지를 놓고, 대신 무언가를 얻은 여령환과는 경우가 다르다.


그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버리지 않았다.

그 증오 또한 자기 자신임을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기에.



도무지 자신을 버릴 수 없었다.



이진회의 마음에 똬리를 튼, 세계를 향한 지독한 증오는 아직까지도 살아 숨쉬며 자신이 나설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진회는 위험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강태환이었으나 세월로 담금질 된 그의 눈은 그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제 눈 말입니다만."


강태환이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날이 갈수록 침침해짐을 느낍니다. 동체시력도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졌고요."


이럴 때는 자신의 아우가 부러워진다고 그는 토로했다.

아우란 이동식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게 있습니다. 사람 보는 눈이 좋아지더군요. 세상이 더 넓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시간의 흐름에 동체시력같은 물리적인 부분은 닳고 마모되어 가나, 마음을 꿰뚫는 시야는 날이 갈수록 선명해진다.

그 눈으로, 강태환은 이진회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을. 그리고 그 너머에 자리한 증오와 마주했다.



"그러니까 좀 더 제 학생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이 아카데미의 교장이었다.

교장(校長).

이 학교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말한다.


어려운 자리였다.

한 조직의 장을 맡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책임감에 어깨가 짖눌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멀뚱히 집에 앉아있다 보면 여러가지 상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럴 때마다 결심하곤 했다.

군사부일체 같은 낡은 말을 쓰지는 않겠으나, 학생들의 아버지로서 행동하기로 말이다.

스스로를 아버지라 여긴다면 적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성인군자라 한들 생전 처음 보는 타인과 자신의 친혈육을 동일시 하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강태환이라 한들 낯선 학생들에게 바로 정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결심이 언제까지 갈지 강태환 스스로도 확신치 못했다.

마음이란 한없이 무거워질 수 있으나, 그만큼 가벼워질 수도 있는 것이니.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만큼 가벼운 약속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 학교의 선생으로서. 그리고 교장으로서.

자신의 눈을 믿고, 그리고 그 눈으로 본 학생을 믿는다.



"김태양 학생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둘을 대면시키고 악수하라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용서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저,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세요."



공부를 하고.

친구를 사귀고.

때로는 놀러 나가고.


그러다 보면 좋아하는 학생이 생길지도 모르지.

잘 되면 연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 잘못되면 헤어지고.

낙심하고 슬퍼하다, 친구들과 다시 즐겁게 놀러 간다.


그러면 좋다.

학생은 응당 그래야 한다.



"스스로를 증오하며 보내기에는, 학창생활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이진회는 김태양을 증오한다.


자신의 팔을 자르고, 자신의 인생을 망친 김태양을 죽일 만큼 증오한다.


그러나 이진회는 어른이었다.

열정과 충동에 몸을 맡기지 못하고, 사회의 세찬 풍파에 마모된 어른이다.


그렇기에 그는 김태양에게 죄를 묻지 못함을 안다. 아직 저지르지 않은 죄를 처벌할 수는 없지 않은가.

46살의 이진회는 냉정하게 그것을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이성에 따르지 않으니, 마음을 억압할수록 그 크기는 점점 불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참을 수 있다.

증오를 품을지언정 그것을 억누를 수 있었다.



이진회가 진정으로 증오하던 것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장애인이 되고,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헌터 업계를 전전하다 D급 짐꾼으로 생을 마친 이진회.

힘도, 명예도, 돈도, 자존심도, 재능도, 무엇 하나 없이 홀로 쓸쓸하게 죽어버린 이진회.

TV 속에 나오는 영웅들을 보며 남몰래 질투하고, 그런 자신에 회의감을 느끼며, 그렇지만 결국 남을 증오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 이진회.

힘겹게 돈을 벌어오고, 피곤한 몸뚱이를 끌고 와 아무도 없는 집구석에 쳐박혀 쓸쓸히 잠자리에 드는 이진회.

더 나아질 가망도 없이 그저 살아갈 뿐인 이진회.


그것이야 말로 이진회가 증오해야 마땅한 적이었다.


나약한 나.

우둔한 나.

미련한 나.

가난한 나.

힘없는 나.

무능한 나.

비참한 나.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우연히 날아온 기적이 아니었다면 평생 그리 살았을 것임을 잘 안다.


그런 자기 자신이 제일 증오스럽다.



강태환이 이진회를 내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생의 경험이 있고, 같은 반 학생에게 증오섞인 살기를 품은 이진회.

학교에 품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그렇지만, 가장 증오를 품은 대상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그가 너무 애처로웠다.



"처음 제가 이진회 학생을 주의한 건 살기를 느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눈여겨보게 된 것은 대련 이후 입니다."


"···대련이요?"


"여령환 학생처럼 압도적이지도 않고, 함우빈 학생처럼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다못해 김태양 학생처럼 반짝이는 센스도 없고요. 게다가 안 좋은 습관까지 배여 있더군요."


"··················"


"하지만 노력했습니다."



이진회는 선천적인 오러의 한계가 낮다.

평생 건강하게 사는 것은 문제없겠으나, 정해진 한계가 얄팍하니 영약이나 의식을 치루지 않는 이상 상승의 경지를 목표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신체능력도 특기할 부분이 없다.

머리 또한 빠른 편이 아니다.

예리한 직감이 있지도 않다.

급박한 상황에 대응하는 센스나 임기응변이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특성마저 전투에는 알맞지 않다.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부터 오래 수련하였으니 첫 학기에는 시간의 양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우위에 서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것 뿐.


이런 이를 이르러,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


회귀 전의 이진회는 이것을 연습과 경험으로 때웠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실제 상황을 상정하고 그에 알맞는 자세와 초식을 연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회의 인생은 D급 짐꾼으로 끝났다.


너무나도. 참혹스러울 정도로. 재능이 없던 것이다.


설령 팔이 멀쩡했더라도 C급.

기연에 기연을 중첩해 어떻게든 오러의 양을 늘리더라도 B급이 한계인 인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노력했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없으니 검로를 수백 수천 번 고심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자신이 없으니 온갖 상황을 미리 대비하며 움직이는 게 보였습니다. 무척 노력했음을 느꼈습니다."



강태환은 결국 부외자다. 자세한 사정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또한 선생이었다.



"검. 포기하려는 건가요?"



강태환의 시선이 이진회의 손에 들린 봉으로 향했다.

학교 내부에선 날붙이의 소지를 금한다.

날이 없는 연습용이니, 실전에선 창을 사용하려는 것일 터.


사용하기 간편하고, 리치가 기니 견제에도 유용하다.

그러니 방패와 검의 조합을 애용하는 기공사보다는 마법사들의 보조 무기로 자주 사용되는 편이었다.



"만약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잠시 생각하고, 말을 고른다.



"돕겠습니다."



어느새 둘의 걸음은 갈림길 앞에서 멈춰져 있었다.

이대로 고개를 끄덕인다면, 전설적인 영웅은 같이 단련실에 방문해 몸소 가르침을 내려줄 것이다.



"······아니요."



이진회는 수평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방금 전까지 빨갛게 불타오르던 노을은 어느샌가 저 너머로 모습을 숨긴 상태였다.

텅 빈 하늘이 쓸쓸하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그렇지만··· 검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네요."



강태환은 이진회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마도연 선생을 찾아가세요. 물론 저에게 오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강태환은 단련실과는 반대 방향으로, 그러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도록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마치 기다리겠다는 것 마냥.


그러나 이진회는 끝내 손을 뻗지 않았다.



"만약."



시야 밖으로 사라진 강태환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약 당신이 그때 있었다면―――"



이내 말끝을 흐리다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태양이 사라져 쓸쓸하게 여겨졌던 하늘은 어느샌가 따스한 별빛들로 채워져 있었다.



"왜 지금에서야."



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작가의말

세 명에게 너 내가 개인과외 해줄까? 하고 제의했지만 다 퇴짜맞은 할배....

나름 유명인이라고 자부하던 할배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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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무기 선택 (1) +30 21.01.11 2,840 15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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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달리기 수업 (1) +26 21.01.09 3,187 165 13쪽
27 회의 +35 21.01.05 3,607 194 13쪽
»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3) +33 21.01.04 3,617 237 11쪽
25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2) +15 21.01.04 3,736 191 13쪽
24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1) +48 21.01.01 4,422 262 11쪽
23 첫 수업 (5) +43 20.12.31 4,460 247 11쪽
22 첫 수업 (4) +46 20.12.30 4,595 253 14쪽
21 첫 수업 (3) +39 20.12.28 5,052 268 13쪽
20 첫 수업 (2) +25 20.12.27 5,075 256 9쪽
19 첫 수업 (1) +23 20.12.26 5,286 238 10쪽
18 징조 (2) +43 20.12.23 5,857 271 15쪽
17 징조 (1) +44 20.12.22 6,011 329 9쪽
16 입학시험 (6) +86 20.12.20 6,141 355 13쪽
15 입학시험 (5) +26 20.12.17 5,716 291 8쪽
14 입학시험 (4) +24 20.12.17 5,694 276 9쪽
13 입학시험 (3) (+수정) +14 20.12.17 5,878 269 8쪽
12 입학시험 (2) +16 20.12.13 5,818 279 8쪽
11 입학시험 (1) +16 20.12.13 6,152 26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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