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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뚤루 님의 서재입니다.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끄뚤루
작품등록일 :
2020.12.05 03:27
최근연재일 :
2021.02.18 08:28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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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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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36

작성
21.01.0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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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1)

DUMMY

"좋은 승부였습니다."


"변변치 않았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여령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상대는 내력을 제한했으니 내공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 온전히 경륜과 무공 성취에 의한 패배이다.


그러나 마음이 심란한 것은 강태환도 마찬가지였다.


늙은 사냥꾼은 젊은 새싹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경악스러운 재능이다.

검격이 교환될 때 마다 얼마나 감탄했는지 이 아이는 알지 못하리라.

다 늙은 나이에 하기에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한때 자신의 재능에 자신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아 아이라면 자신이 가지 못한 경지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기분 좋은 예감이다.



"진심으로, 전율했습니다――"



강태환은 다음 말을 위해 차분히 말을 골랐다.


여령환 양?

여령환 군?


아니, 이게 아니다.

조금 더 상대의 성 정체성을 존중하는 한편 위의 두 단어를 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 터.



"――여령환 학생. 그 나이대의 성취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더군요."



강태환은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여령환은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주 잡은 손. 여린 몸집과는 달리 단단한 손아귀다.

강태환은 자신의 늙고 주름진 손바닥 너머로 바위 같은 굳은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손바닥은 평범히 생기지 않는다.

노력의 흔적이다.



"아버지께서 정말 훌륭히 교육하셨나 봅니다."


"아니요. 아버님은 별로 해주신 게 없어요. 남자라면 제 힘으로 서야 하는 법."



당혹스러운 대답.

순간 여러 상상이 떠오른다.



'여진생 이 녀석. 집안에 문제가 있는 건가?'



혹시 아이가 유별난 성 정체성을 가진 것도 그런 가정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민한 문제였다.

천하의 강태환이라도 이런 문제에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언젠가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은 했었지. 그게 바로 오늘일지는 몰랐는데.'



변변찮은 이유라면 꽤 요란한 가정방문이 되리라.



'그건 그렇고···'



마음 한구석에서 욕망 한 줄기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가는 길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다.


자신이 명성을 탐했던가? 곰곰히 생각해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돈과 명예는 이미 충분할 정도로 있지 않은가.


이것은 다 늙어 죽어가는 늙은이의 집착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이 아직 할 수 있는 게 남아있다 믿는 오만.


자신이 남들보다 무어가 다 낫다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다들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것은 재물이 될 수도, 혹은 지혜가 될 수도 있다.

먼저 떠나가는 사람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유산.

강태환은 그런 유산을 남기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을 자각했다.

추한 미련이다.

초인이라며 떠받들여져도, 결국 자신은 평범한 노인네에 불과하단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분수에 맞지 않은 욕심이었다.

이 아이는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아냈으니.


눈 앞의 소녀는 밤의 어둠을 헤매이는 방랑객이 아니었다.

손수 만들어낸 횃불을 태양 대신 비추어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수도자였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강태환은 가슴 한편에서 솟아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혹시 추가 수업을 받으실 생각이 있습니까?"


"추가 수업이요?"


"네. 단순히 괴수에 대처하는 게 아닌, 게이트 너머로 들어가 적극적으로 이계침식을 막는 레이드 팀 특별반을 준비 중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않은 구상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없는 특별반은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려웠다.



"···스승이 돼주신다는 뜻인가요?"



여령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렇게 물었다.



"스승, 입니까?"



강태환은 잠시 생각했다.

솔직히 스승과 선생의 차이를 모르겠지만, 특별반에 들어가면 개인 지도를 많이 해줄테니 스승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으음. 아마 그렇겠지요···?"



강태환이 조심스럽게 대답하자 여령환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저야 말로 죄송합니다. 너무 성급하게 물었군요."



게이트 너머로 들어가는 레이드 팀은 다른 헌터들보다 몇십 배는 더 위험하다.

섣불리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

그녀의 재능을 보고 흥분한 나머지 너무 성급하게 물어본 듯하다.


여령환은 아직 어린 소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부담감을 주기 싫었기에, 강태환은 아쉬움을 애써 감추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그럼, 하고 고개를 숙인 후 아직도 얼이 빠진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강태환.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며 여령환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진정한 사내는 두 명의 스승을 모시지 않는 법."



**



본관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무리.


그 안에 섞여 걸음을 옮기던 함우빈의 뇌리에 방금 전의 싸움이 떠오른다.


'압도적이었어.'


여령환과 강태환의 대련은 가히 폭력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선사했다.

그것은 싸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에 가까웠다.

검의 축제.

피와 살이 터지는 대신, 강철의 환희가 들려왔다.

자신의 날이 나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의 인도에 따라 휘둘리는 두 자루의 검.


'그에 비해 나는···'


함우빈은 방금까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검을 떠올렸다.

분명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무구일 터인데, 왜 그리 초라해 보이던지.


단순히 무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인의 격이 낮은 탓이었다.


'이걸로 확실해졌군.'


오늘, 여령환과 강태환의 대련을 보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자신은 백날을 노력해도 저 경지에 오를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비슷해질 수는 있겠지.

그러나 함우빈이 노력해서 저 경지에 닿을 무렵이면, 여령환은 더 먼 곳으로 훌쩍 올라가 있을 게 뻔했다.


'결국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지식이야. 원작이 망가질까 봐 꺼려했지만··· 이제 와서지.'


함우빈은 이미 언론에 아카데미와 관련된 비리를 풀어 정계를 흔든 전적이 있다.

풍비박산 냈다고 하면 과언이겠으나, 적어도 한차례 폭풍을 가져온 것은 확실했다.

원작과 같은 전개는 이미 물건거갔다고 해도 되리라.


'나는 지금까지 무서워하고 있던 거 뿐이야.'


정보 누설자를 찾아다니는 언론과 깡패들.

그 아수라장을 오직 임기응변과 한 줌의 행운으로 돌파했던 함우빈이다.

도중에 본인도 모르게 몇 번 착각계를 찍기도 했지만 아무튼 그런 혼란은 더이상 사절이었다.

사절이었지만···



"아, 함우빈 군. ···아니, 실례. 함우빈 학생."



생각을 이어나가던 도중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같이 움직이던 학생들은 이미 어디론가 떠나간 상황.

아무래도 생각에 잠겨있다보니 발걸음이 느려졌던 것 같다.


함우빈은 목소리가 들려온 뒤를 돌아보았다.



"교장 선생님?"



그곳에는 혹 함우빈의 성 정체성이 외관과 다른 게 아닐지 고민하고 있는 강태환이 서 있었다.



"네.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듯 해서 불렀습니다."



교무실로 돌아가던 도중, 강태환은 멍하니 복도에 서있는 함우빈을 발견했다.

안 그래도 눈에 띄던 세 명의 학생 중 하나였던 차라 가볍게 말을 걸어본 것이다.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두워진 얼굴.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학기 첫날에 따돌림이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강태환은 방금 있던 수업을 떠올렸다.

함우빈이 강태환의 인상에 강하게 남았던 이유는, 그가 반에서 가장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아무래도 실력이 그 열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자신의 실력에 고민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초보 교사 강태환은 이럴 때 무어라 위로해줘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명의 무인으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원했다.



"혹시 나중에 추가 수업을 받아보시겠습니까?"


"추가 수업, 이요?"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여령환과는 경우가 다르다.

학급 초창기인 만큼 여러가지로 바빴지만, 뒤쳐지는 학생의 진도를 맞춰주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나눌 용의가 있었다.


"·········아니요."


함우빈은 강태환의 제의를 곰곰히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검과 검이 부딪치며 자아내던 불티의 향연이 떠오른다.

패배자의 자조일지도 모르겠지만, 도무지 그것을 따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

함우빈은 여령환이나 강태환같은 검의 경지에 오를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그 둘보다 강해질 자신은 있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좀 더 혼자 해보려구요."



강태환은 함우빈의 눈을 바라보았다.


흔들리지 않는 눈빛.

무언가를 결심한 듯했다.


"그런가요."


강태환은 슬며시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 일어서려는가.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

젊은이의 열정은 때론 늙은이의 예측을 가볍게 벗어난다.


"그럼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저희는 그걸 위해 여기에 있으니."


그러나 강태환은 왠지 함우빈이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이 소년이라면 무언가를 해낼지도 모른다.

언젠가 찾아올, 기분좋은 오산을 기대하며 강태환은 등을 돌렸다.



"·········"



그 등을 바라보며, 함우빈은 다시 한번 각오를 가다듬는다.



'이제 흔들리지 않겠어. 미안하지만, 기연을 가로챈다.'



과거의 지식을 가진 환생자는 알지 못한다.

미래의 지식을 얻은 회귀자도 알지 못한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알려지지 않고 어둠 속에 묻힌 지식.

오직 현재를 부감할 수 있던 빙의자만이 알 수 있는 것.


누군가 이기적이라 욕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처음 이 책 속으로 빙의했을 때, 결심하지 않았는가.



모든 것은 불구대천의 원수와 대적하기 위하여.



"각오해라, 천마."



멀쩡하던 작품을 TS백합장미물이라는 혼종으로 만든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으리니.


작가의말


원래는 이진회도 나와야 했는데 쓰다보니 힘들고 함우빈의 여운을 남기기 위해 여기서 끊었습니다

저 TS백합장미물은 좀 더 천박한 단어로 말할 수 있기는 한데 여기는 고상한 문피아니 굳이 생략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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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2) +15 21.01.04 3,736 191 13쪽
»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1) +48 21.01.01 4,422 262 11쪽
23 첫 수업 (5) +43 20.12.31 4,460 247 11쪽
22 첫 수업 (4) +46 20.12.30 4,594 253 14쪽
21 첫 수업 (3) +39 20.12.28 5,052 268 13쪽
20 첫 수업 (2) +25 20.12.27 5,074 256 9쪽
19 첫 수업 (1) +23 20.12.26 5,286 238 10쪽
18 징조 (2) +43 20.12.23 5,857 271 15쪽
17 징조 (1) +44 20.12.22 6,011 329 9쪽
16 입학시험 (6) +86 20.12.20 6,141 355 13쪽
15 입학시험 (5) +26 20.12.17 5,716 291 8쪽
14 입학시험 (4) +24 20.12.17 5,693 276 9쪽
13 입학시험 (3) (+수정) +14 20.12.17 5,878 269 8쪽
12 입학시험 (2) +16 20.12.13 5,818 279 8쪽
11 입학시험 (1) +16 20.12.13 6,152 26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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