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끄뚤루 님의 서재입니다.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끄뚤루
작품등록일 :
2020.12.05 03:27
최근연재일 :
2021.02.18 08:28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87,468
추천수 :
9,210
글자수 :
183,136

작성
20.12.26 16:43
조회
5,285
추천
238
글자
10쪽

첫 수업 (1)

DUMMY

입학시험에서 개교일까지 남은 1주일.


학생들은 그저 편히 심신을 가다듬으면 되는 기간이지만, 교사들에게는 마라톤의 막판 스퍼트처럼 전력으로 일해야만 하는 시간이다.


노하우도 뭣도 없이 모인 세 명의 교수들.

행정 부분은 도움을 받는다지만, 그것을 확인하는건 오롯히 그들의 몫이었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촉박하기만 하다.


커리큘럼을 확인하고, 수업 일정표를 완성한다.

그저 한두 시간만에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호 아카데미는 대한민국 최초의 헌터육성기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오류와 실수의 반복이었다.

노하우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수업에 필요한 교과서나 장비도 입수해야 했는데, 여기서 애로 사항이 생기기도 했다.

몇몇 물품들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강태환은 전화를 붙잡고 몇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학교의 여러 장치들을 정비하고 관리해줄 하청업체 선별을 끝내고 계약을 맺은 후, 부지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최종점검을 마친다.

혹시 게이트가 열리지는 않았을지 순찰하는건 덤이다.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상황.

급한 나머지 전력으로 뛰어다니다 큰 소란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이 모든게 끝나면 한겨울의 이른 밤이 찾아온다.

착한 학생들은 일찍 집에 들어가 어머니가 준비해준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시간.


그러나 신참 교사들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루 일을 마치면 다시 다같이 모여 회의를 시작한다.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서로 보고하고, 곤란한 문제가 생겼으면 상담 후 처리한다.

외부의 자문을 받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게 처음 시작하는 낯선 일 투성이다. 모르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다.

연락용 워치의 배터리가 닳아 급하게 컴퓨터의 채팅창으로 상담사와 연락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일과에 대한 보고를 마치면 이제는 내일의 업무에 대한 회의가 남는다.


기숙사의 배정부터 시작해서, 학급의 운영 시스템에 대한 논의까지.

원래 예상했던 100명의 학생들이 30여명으로 줄어든 상황이었기에 기존에 세워둔 계획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예상보다 학생수가 적으니···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기공과 마법, 특성으로 반을 나누서 각자 맡아보는게 어떻습니까?"


"괜한 갈등을 만들지 않겠나."


"한 곳에 다같이 두는게 서로를 더 쉽게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수업의 효율을 생각하면――"


"결국 탁상공론이군. 이런건 여러 시도를 반복할 수 밖에 없겠어."



나름 최선을 다해 지혜를 짜내보지만 어째 내놓은 구상물들은 전부 시원찮기 그지 없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은 아니었을텐데.

늙어서 잔걱정이 늘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기는 한데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야 하는건지·········


머리가 굳어서 그런지 이런 부분에는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다. 대학물 좀 먹은 이동식을 끌고서라도 데려와야 했을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과연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이게 과연 옳은걸까. 더 나은 방도는 없는 걸까.


계속 고민하고, 토론하고, 다시 고민하다보니 벌써 자정이 넘었다.


논의를 대강 끝내고 밖에 나와보니 로랜스가 담배를 피고있는게 보였다.



"힘드나?"


"아, 교장 선생님. ···담배 꺼드릴까요?"


"괜찮네. 계속 피게나."



처음 왔을 당시에는 얼굴을 보는 것도 당황해 하더니,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직급으로 부르며 익숙해진 로랜스였다.

함께 고생하던 와중에 기묘한 유대감이 생겨난 것이다.

상사와 부하도 아니고, 늙은이와 젊은이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동료 간의 유대감이었다.


로랜스에게 강태환은 더이상 어릴적 TV에서 괴수들을 때려잡던 영웅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고, 때로는 실수하며, 그렇게 같이 나아간다.


저 먼곳에 자리한 허상의 인물이 아닌, 바로 옆의 현실에서 숨쉬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가? 쉽지 않지? 나는 처음에 쉬울거라고 생각했네."


"뭐, 사회생활에 안힘든게 어디 있겠습니까. 초창기 멤버로 자리잡는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득이죠."


"일단은 공무원 취급이니까 딱히 월급이 오르지는 않네만?"


"직급은 오르잖습니까. 도연 선생님 은퇴하시면 다음 교감 자리 노려봐도 되겠지요?"


"글쎄. 마도연 교감은 앞으로 오십년은 더 거뜬히 살 거 같은데."



로랜스는 마력폭탄을 광기어린 눈으로 만지작 거리던 마도연을 떠올렸다.

백살까지는 정정하게 살 것 같다.



"음. 확실히···"


"그때가 오면 나는 은퇴했을테니까, 도연 선생이 교장하고 자네가 교감하면 되겠군. 후후."


"벌써 은퇴 이야기를 하십니까? 적어도 삼십년은 하셔야죠."



참고로 강태환은 75세였다.

여기서 30년을 더하면 백살을 넘는다.

순간 지금 죽을때까지 일하라고 저주하는건지 헷갈린 강태환이었다.



"여생을 일하며 보내라고? 나는 싫네. 은퇴하면 흥청망청 놀면서 지내야지."


"하하하. 뭐, 교장 선생님은 적금 모아두신거 많으실테니 돈걱정은 없으시겠네요."


"없어도 자식놈들이 어련히 챙겨주겠지."


"그러다 안 챙겨주면요?"


"그럼 손주네 집에 가야지."



가장 큰 손자도 올해 스무살이니 은퇴할 쯤이면 노인네 하나쯤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내가 복 많은 삶을 살았지만, 가장 큰 복은 자식복일세. 마누라 잘만나서 애만 넷 가졌고, 손주만 일곱이야."


"햐아. 정말 많으시네요. 저는 아직 노총각인데."


"나중에 좋은 인연이 찾아올걸세. 아, 그래도 학생은 건들이지 말고. 이 나이에 뉴스타기는 싫거든."



도시와 떨어져 산 한중턱에 위치한 건물.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 두 사내가 입김을 내뱉으며 클클거린다.


저 먼 경치를 바라보며 찬바람을 들이마시니 새삼 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바람결에 퍼져나가는 담배 냄새. 은은히 풍겨오는 페인트 냄새. 그리고 밤이슬이 맺힌 초목의 풀냄새.

지난 일주일간 숱하게 맡아온 냄새이건만, 오늘 따라 새롭게 다가온다.



"긴장되나?"


"당연하죠. 교장 선생님은요?"


"나도 그렇지."



내일.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오늘 이른 아침.

이 학교는 처음으로 문을 연다.


입학시험 때처럼 물리적으로 문을 연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학생을 받아들이고, 가르침을 베푼다.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첫걸음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 끝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아카데미의 잘못된 예시로 길이길이 전해질지도 모르고, 혹은 그저 그런 평범한 아카데미로 남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무명으로 쓸쓸히 잊혀지지는 않겠지.

일단은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니 어딘가의 위키에 한줄 정도는 남지 않을까 예상하는 로랜스였다.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니까··· 상당히 압박되더군. 날이 갈수록 심해져."


"제자가 없으셨던 것도 아니잖습니까."



당장 강태환의 세 아들들도 그의 제자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거하고는 약간 다르지. 솔직히 그때는 내가 선생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네."


"정말이요?"


"나도 젊었지. 책임감같은건 없었어. 기술 교류의 연장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고 후학을 기르는 것.

당시의 인류에겐 당연시 여겨진 사상이다. 오로지 생존이 우선시되던 시대였기에.

투박한 순수성이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네. 그때와 뭐가 다른지는 자세히 설명하기 힘든데···"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다.

산의 정상만을 바라보던 시선은 어느샌가 그 너머의 달을 향해 있었다.

길을 오르던 청년이 저 꼭대기에 서있을 무렵에는 노인이 되어 있다.



"좋은 스승이 되고 싶네."



더 많은 것을, 더 좋은 것을 가르치고 싶다.

그러지 못할까봐 두려움이 몰려온다.

참으로 중증이지 않은가? 제대로 만나지도 않은 학생들이 이리 애뜻하다니.



"자네는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나?"


"아직 모르겠습니다. 모든게 새롭고 힘들지요. 정작 제대로된 교사일은 아직 시작도 못해봤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얼떨떨하다.

이렇게 열심히 힘들게 준비했는데, 이제 출발선에 들어선거라는게.



"처음에는 교장 선생님의 명성을 믿고 들어왔습니다. 연구소에선 취급도 별로였고, 연구도 지진부진했으니까요. 여기에 오면 뭔가가 바뀔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가?"


"모르겠습니다. 바로 오늘이 첫 수업이 있는 날인데··· 아직도 확신이 없어요. 제가 제대로 하고있는 것인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그래서 더 불안합니다."



강태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입학시험 끝나고 얼마 안가서 전화가 걸려왔네. 여진생이라고 아는 후배의 아들인데."


"천안의 염왕(炎王)이요?"


"그래. 그 친구. 딸이 이번에 여기 합격했다는군. 그래서 안부인사를 보냈다나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 딸아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나."



강태환은 슬쩍 웃으며 클클거렸다.

그 건방지던 아이가 딸아이 선생님이랍시고 굽실거리던게 얼마나 웃기던지.



"자기가 제대로 애비노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 그 성공한 친구도 우리랑 비슷해. 인생에 확신이 없어."



인생에 확신을 가진 놈이 어디있겠는가.

그렇기에 사는건 언제나 힘들다.



"인생이라는게 참 이상하지. 부족한 점이 도무지 채워지지 않아. 참 답답해."


"교장 선생님은 그럴때 어떻게 하십니까?"


"나라고 뭐 있겠나. 그냥 사는거지 뭐."



살다보면 답을 찾게되지 않겠는가.

혹은 답이 없어도 사는데 문제가 없다는걸 알게되거나.



"자, 이제 그만 자러가세. 내일··· 아니, 오늘부터 또 바빠질테니까."



밤하늘의 별빛이 깊어진다.

오늘은 새학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작가의말


크리스마스 잘 쉬셨나요? 저는 뭐 조아라에서 해리포터 패러디소설 정주행하며 보냈습니다. 해리랑 같이 있으니 쓸쓸하지는 않더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3화 수정 (묘사 추가) 20.12.24 1,008 0 -
공지 팬아트를 받았습니다 (12/27/2020 갱신) +6 20.12.22 5,672 0 -
38 현장학습 (3) +48 21.02.18 2,038 105 15쪽
37 현장학습 (2) +19 21.02.17 1,447 89 12쪽
36 현장학습 (1) +35 21.02.02 1,936 126 11쪽
35 개인교습 (4) +34 21.02.01 1,872 127 9쪽
34 개인교습 (3) +29 21.01.23 2,318 141 10쪽
33 개인교습 (2) +9 21.01.23 1,862 113 9쪽
32 개인교습 (1) +58 21.01.19 2,474 165 11쪽
31 무기 선택 (2) +20 21.01.17 2,527 137 10쪽
30 무기 선택 (1) +30 21.01.11 2,840 159 13쪽
29 달리기 수업 (2) +36 21.01.10 3,059 184 14쪽
28 달리기 수업 (1) +26 21.01.09 3,187 165 13쪽
27 회의 +35 21.01.05 3,606 194 13쪽
26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3) +33 21.01.04 3,616 237 11쪽
25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2) +15 21.01.04 3,735 191 13쪽
24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1) +48 21.01.01 4,421 262 11쪽
23 첫 수업 (5) +43 20.12.31 4,460 247 11쪽
22 첫 수업 (4) +46 20.12.30 4,594 253 14쪽
21 첫 수업 (3) +39 20.12.28 5,051 268 13쪽
20 첫 수업 (2) +25 20.12.27 5,074 256 9쪽
» 첫 수업 (1) +23 20.12.26 5,286 238 10쪽
18 징조 (2) +43 20.12.23 5,857 271 15쪽
17 징조 (1) +44 20.12.22 6,010 329 9쪽
16 입학시험 (6) +86 20.12.20 6,141 355 13쪽
15 입학시험 (5) +26 20.12.17 5,716 291 8쪽
14 입학시험 (4) +24 20.12.17 5,693 276 9쪽
13 입학시험 (3) (+수정) +14 20.12.17 5,877 269 8쪽
12 입학시험 (2) +16 20.12.13 5,818 279 8쪽
11 입학시험 (1) +16 20.12.13 6,151 26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