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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뚤루 님의 서재입니다.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끄뚤루
작품등록일 :
2020.12.05 03:27
최근연재일 :
2021.02.18 08:28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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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36

작성
20.12.3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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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첫 수업 (5)

DUMMY

그 후로도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주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발놀림에도 신경을 써주세요. 자세한 건 다음 수업에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학생들과 합을 맞추며 하나하나 지도를 끝내고 나니 다음 수업까지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자, 다음은―――"


강태환이 시계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자니 저 옆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빛을 띄는 갈색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 소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학생 여러분들이 당장 어디를 목표로 해야 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강태환은 그녀를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고운 피부와 앙증맞은 이목구비를 가진 소녀는 다소곳이 앉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눈은 호승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양갓집 영애가 아닌, 천생 무인의 눈동자.


겉보기에는 세련된 아가씨의 모습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타오르는 눈은 당장이라도 다리를 쫙 벌리며 건들걸일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저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야만 했을까.

그녀의 아버지가 겪었을 고생을 어느정도 알 것만 같았다.



"여령환 학생. 앞으로 나오세요."



신체에 흐르는 오러의 파장이 급격히 날뛰기 시작한다.

강태환의 눈은 그녀의 주변 공기가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러의 파장은 체온과도 같다.

생명활동의 증거.

극한에 이른 제어력이 없는 한 이것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오러의 파장이 물리력을 갖추며 현세에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녀의 성취가 A급에 들어서고 있다는 징조였다.


즉, 일류를 넘어 초일류의 세계를 넘보고 있다.


경악스러운 성장 속도.



"제 앞에 선 여령환 학생은, 지금 여러분들 중에 가장 강한 학생입니다."



단순히 오러의 양을 말하는 게 아니다.

땅을 내딛는 걸음걸이, 자연스럽게 펴진 어깨, 주변 사물을 확인하는 시선,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게 준비된 두 팔.

단련된 무의 경지가 이미 학생의 수준이 아니다.



'여진생 그 녀석. 괴물을 만들어 냈군.'



천안의 염왕이라는 이명을 들었을 때 내심 폭소했는데, 그 딸을 보니 마냥 웃어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딸이 이 정도면 그 아비는 얼마나 높은 경지에 있는 것인가.

적어도 선생으로서의 경지는 강태환을 훌쩍 넘은 게 분명했다.


그녀가 이 나이대에 이룬 성취는 단순히 재능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그만큼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일 테지.



"그러니 여령환 양의 움직임을 자세히 봐두세요. 분명 나중에 도움이―――"


"――양?"



갑자기. 그녀의 분위기가 급변한다.


호승심에 날뛰던 오러의 파장이 가라앉고 생사대적을 만난 것마냥 차분히 날카로움을 가다듬는다.



"여령환 양?"


"···남자 대 남자로서, 내심 존경심이 들었건만!"



남자 대 남자.


남자?


강태환은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여령환을 살펴보았다.


여자 교복을 입고, 여자의 얼굴을 했고, 여자의 신체를 가졌다.

무엇보다 생활기록부에 성별이 여자라고 나와 있지 않은가.

아무리 노환으로 머리가 나빠졌다 한들 남자를 여자로 착각할 리가 없다.



'설마 성 정체성이······?'



예민한 문제를 건드리고 만 것일지도 모른다.

척추에 고드름을 쑤셔 넣은 것마냥 서늘한 감각이 등 위를 솟구쳐 올라온다.


LGBT나 젠더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요즘 세상이 그런 심리적 정체성에 굉장히 관대해진 것은 알고 있다.

세상이 반쯤 망하고 일단 인구부터 늘리자는 인식이 대세였던 강태환의 젊은 시절과는 다르다.


자칫 잘못하면 개학 1일만에 교장직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몰랐다.


이마의 땀 한 방울이 그의 턱선을 따라 서서히 흘러 내려온다.

어떻게 해야하지?

수많은 싸움을 통해 단련된 그의 전투논리도 답을 내지 못한다.

그가 힘겹게 외운 교육학 교과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정도 긴장감은 북한에서 내려오는 몬스터 웨이브를 향해 핵미사일을 안고 들이박았을 때 이후 처음이다.


강태환 올해 75세.

교사 인생 첫날에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다.



"그···"



자신이 무신경했다.

비록 여자 교복을 입고 여자처럼 꾸몄지만 내적인 성 정체성이 남자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태환은 사과하기 위해 재빨리 입을 열었지만 이미 뒤늦은 후였다.



"사내 둘이 검을 쥐고 마주한다. 수다는 필요 없을 터. 간다!"



말투가 바뀐다. 기세 또한 바뀐다.


검을 고쳐잡은 그녀는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빠르게 돌진해왔다.

서로 간의 거리는 10미터 안팎.

간격은 순식간에 줄어들고, 햇빛에 번쩍이는 한검(漢劍)이 강태환의 어깨를 노리고 빠르게 찔러진다.



"오!"



강태환의 검이 불티를 튀기며 여령환의 공격을 막아낸다.

여령환의 오러와 비슷한 양만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순간 교차하는 시선.

둘 다 이것이 견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챙! 챠쟈쟈쟈쟝!



그다음 오가는 것은 순수한 검격의 향연.

주변에서 구경 중인 학생들로서는 알아보지 못하는 심오한 무리가 오간다.

이진회 정도가 가까스로 검끝을 쫓을 뿐인데, 무술을 수련한 적이 없는 함우빈이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


철의 소음이 분지에 울려 퍼지더니, 바람을 타고 사그라든다.

검투의 잔향은 메아리가 되어 학생들을 뒤흔들었다.


속임수와 편법을 배제한, 오직 검의 기예만이 오간다.



'굉장한 검법이군. 어떤 수련을 거친 거지?'



이미 일개 학생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검과 검의 쟁투는 어느샌가 과정이 생략되기 시작했다.

공기를 가르는 검격의 속도는 이미 전력으로 질주하는 기차보다 빠르다.

학생들이 볼 수 있던 것은 둘의 초식이 교차하는 한순간의 찰나뿐이었다.


검투를 끝낸 것은 여령환이었다.

서로의 검이 교차되며 하늘로 치솟은 그 순간, 여령환의 얇은 다리가 거력을 담아 강태환의 발등으로 쏘아졌다.



콰직!



바위를 산산조각내며 땅에 틀어박힌 여령환의 구두. 강태환은 발목을 살짝 돌려 회피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내 곧 그것이 단순한 하단 공격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강력한 발굴음은 곧 진각으로 이어진다.

발과 거의 동시에 뻗어진 여령환의 왼손이 검을 쥔 채 위로 뻗어있던 강태환의 오른 손목을 잡아챘다.


이어지는 연계는 막힘없는 강의 물줄기와 같았다.

검에서 손을 놓은 여령환의 오른손이 주먹을 쥔 채 골반 옆으로 옮겨진 것이다.



"남자는――"



여령환의 공세를 흥미롭게 보고 있던 강태환의 얼굴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뜨겁게 달궈지는 공기.

오러가 신체 밖의 현실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A급의 경지란 말인가?


아니, 이것은 약간 다르다.

의아해 하는 강태환.

그 찰나에 여러 가설들이 오갔다.


그러나 시간은 그에 개의치 않고 흐른다.



"――주머억!!!"



장법이나 지법은 계집애들이나 쓰는 얕은 술수. 그렇게 생각하며 뻗어진 그녀의 주먹이 강태환의 가슴 중앙을 향해 쏘아졌다.

명치를 노리지 않은 것은 이것이 친선 대련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어차피 키 차이 때문에 얼굴이나 턱을 가격하기는 힘들다.

대신 가슴 상체를 노린다.

목을 살짝 돌려 회피할 수 있는 머리와는 달리, 가슴은 허리나 발을 움직여야 한다.

내질러진 진각을 강태환의 발에 걸었으니 뒤로 물러서는 것도 불가능.

허리를 틀어 피하기에는 이미 늦다.



늙은 사냥꾼의 대응은 노련했다.

아니, 이것은 노련하기 보다 해괴했다.



툭.



무슨 수를 쓴 것인지, 거력이 담긴채 쏘아진 주먹이 착탄했음에도 시시한 소리가 새어 나온다.

충격을 완벽히 분산시켰다는 뜻.


강태환은 그녀의 공격을 막지 않았다.

그 작은 주먹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힘을 역이용해 뒤로 힘껏 밀려난 것이다.


현재 여령환의 손이 위로 올려진 강태환의 손을 단단힉 고정하고 있는 상태.

짧은 거리에서 생겨난 충돌은 원심력을 만든다.

강태환은 원을 그리며 순식간에 여령환의 위로 솟구쳤다.


강태환의 속셈을 눈치챈 여령환이 황급히 그의 손목을 놓으려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강태환의 두터운 손아귀가 그녀의 손목을 쥐고있는 상태였다.


"뭣?!"


잡힌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노련한 금나수.


'아직 늦지 않았―――'


재빨리 대응하려던 여령환의 고개가 갑자기 옆으로 튕겨나가듯 돌려졌다.


'뭐야?!'


흔들리는 시야에 보이는 것은, 강태환이 쥐고 있던 검이었다.

그 짧은 순간. 손목만을 이용해 회전하며 쏘아진 검은 그녀의 머릿결을 손상시키지 않고 돌돌 말아 묶어 그 머리채를 잡아당긴 것이다.



"젠장, 이 노괴(老怪)가···!!"



전생의 무림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수법.

경악하는 여령환의 귓가에 늙으수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학교에선."



어느새 여령환의 뒤로 착지한 강태환.

그가 아직 여령환의 손을 단단히 붙잡고 있던 턱에, 그녀의 상체가 비틀리며 신체의 균형이 깨졌다.



"좋은 말을 씁시다."



다음 순간 그녀는 땅에 쓰러져 제압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맡는 흙냄새.



"···졌습니다."



패배에 대한 핑계는 많다.

특히 마지막의 머리카락.

긴 머릿결만 아니었다면 몇 수는 더 버틸 수 있었으리라.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그녀의 아버지가 유교까지 들먹이며 기르게 한 머리카락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여령환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승패는 결론 난 상황.

그에 토다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


옛 중원의 남자들이 고집하던 헤어스타일과 닮아있어 내심 좋아했던 그녀의 잘못도 없지는 않으리라.


즉, 그녀는 남자다움을 관철한 끝에 패배한 것이다.

이는 본인의 신념을 지킨 셈이니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하리라.



또 하나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감사와 존경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작가의말

여령환은 일단 B급 최상위 정도입니다. 무림식으로 말하면 일류. 참고로 화경 현경은 없습니다.


회빙환 캐릭터들 이름 외우시기 힘드시면 이름 끝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이진회 - 회귀자. 회귀해서 미래지식으로 차근차근 강해지는 주인공 타입
함우빈 - 빙의자. 빙의해서 뒷설정으로 제로부터 강해지는 주인공 타입
여령환 - 환생자. 환생해서 처음부터 나존나쎄 하는 주인공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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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현장학습 (2) +19 21.02.17 1,448 89 12쪽
36 현장학습 (1) +35 21.02.02 1,936 126 11쪽
35 개인교습 (4) +34 21.02.01 1,873 127 9쪽
34 개인교습 (3) +29 21.01.23 2,319 141 10쪽
33 개인교습 (2) +9 21.01.23 1,863 113 9쪽
32 개인교습 (1) +58 21.01.19 2,474 165 11쪽
31 무기 선택 (2) +20 21.01.17 2,528 137 10쪽
30 무기 선택 (1) +30 21.01.11 2,841 159 13쪽
29 달리기 수업 (2) +36 21.01.10 3,060 184 14쪽
28 달리기 수업 (1) +26 21.01.09 3,188 165 13쪽
27 회의 +35 21.01.05 3,607 194 13쪽
26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3) +33 21.01.04 3,617 237 11쪽
25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2) +15 21.01.04 3,736 191 13쪽
24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 (1) +48 21.01.01 4,422 262 11쪽
» 첫 수업 (5) +43 20.12.31 4,461 247 11쪽
22 첫 수업 (4) +46 20.12.30 4,595 253 14쪽
21 첫 수업 (3) +39 20.12.28 5,052 268 13쪽
20 첫 수업 (2) +25 20.12.27 5,075 256 9쪽
19 첫 수업 (1) +23 20.12.26 5,286 238 10쪽
18 징조 (2) +43 20.12.23 5,857 271 15쪽
17 징조 (1) +44 20.12.22 6,011 329 9쪽
16 입학시험 (6) +86 20.12.20 6,142 355 13쪽
15 입학시험 (5) +26 20.12.17 5,716 291 8쪽
14 입학시험 (4) +24 20.12.17 5,694 276 9쪽
13 입학시험 (3) (+수정) +14 20.12.17 5,878 269 8쪽
12 입학시험 (2) +16 20.12.13 5,818 279 8쪽
11 입학시험 (1) +16 20.12.13 6,152 26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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