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둠에 잠긴 다락방 안, 침대 위 작은 인영이 연신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척였다.
“아휴···, 아우···, 후···.”
목조로 만들어진 침대는 인영이 뒤척일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진한 나무 향기를 다락방 안 가득 채워놓았다.
“에휴···.”
잠시 뒤, 계속될 것 같던 인영의 뒤척임은 때맞춰 들어온 아침 햇살에 제한됐다.
침대의 왼쪽 끄트머리를 차지한 햇살은 점차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고, 그 움직임에 따라 꿈틀대며 이어지던 인영의 도피는 결국 침대와 맞닿아 있던 목조 벽에 막혀 끝나버렸다.
“아씨···.”
앳된 목소리로 투덜거리던 8~9세 정도의 남아가 눈가로 쏟아지는 햇살에 잔뜩 눈을 찌푸리다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내려와 가리개를 가리기 위해 무심코 창가로 다가가던 아이는 돌연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잠시 창틀과 자신의 몸을 번갈아 바라보던 아이는 다시금 옆에 있던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내 침대 머리맡에 서서 한쪽 가리개를 향해 폴짝 뛰어올랐다.
오동통한 손가락이 가리개의 밑면을 ‘툭’하고 스쳐 지나갔다.
끼이익--
나무로 된 가리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뻥 뚫린 창가의 반을 막아갔다.
절반의 안전지대를 확보한 아이는 햇살에 드러난 맞은 편 전경을 바라보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맞은편 살림살이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 있었다.
서로 다른 굵기의 책상다리로 만들어진 책상.
어제 먹다 흘린 김칫국물 자국이 선연한 통나무 의자.
삐뚤빼뚤한 눈코입을 가진 남자아이의 모습이 새겨진 옷장.
모두 아이가 아닌, 모친의 작품이었다.
가구를 만든 이도, 국물을 흘린 이도, 낙서를 새긴 이도.
‘떡이 꺼’라고 새겨진 옷장의 한구석을 바라보던 아이가 중얼거렸다.
“꿈이든 꿈이 아니든,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잖아.”
아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의 모습을 살펴봤다.
재질을 알 수 없는 검붉은 비늘로 촘촘히 짜여진 갑옷을 입고, 귀신형상의 반 투구 가면을 쓴 아이가 바람 한 점 없는 방 한구석에서, 투구에 달린 검붉은 수실을 일렁이며 여전히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째서 실체 없이 밖으로 투영되어 있는지, 어째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붉은 귀신’의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의 일들은 모두 ‘진짜’였다.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은 모두 진짜이고 지금 역시 그 진짜에 의해 새롭게 부여된 기회였다.
설혹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이 처음부터 꿈이었고, 지금 또한 그 꿈의 연장선이라 쳐도 자신이 할 일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떡아!”
“빵떡!! 일어났지? 떡아!?”
“밥 먹고 시험 보러 가야지? 떡아!!?”
일 층에서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모친의 죽음을 막는 것.
“내려가 엄마! 그만 좀 불러!”
무엇을, 어떻게, 왜 막으라는 것인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반전된 자신의 상황 속에서 방덕근은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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