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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4558_chldmswl1 995 님의 서재입니다.

귀신의 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작뚜
작품등록일 :
2017.06.26 10:16
최근연재일 :
2021.07.29 1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7,483
추천수 :
16
글자수 :
402,336

작성
17.09.1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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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궤변과 반발

DUMMY

사랑이 교사 셋을 죽이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잘 된 덕분에 번듯한 절 마당에서, 가지각색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중에는 승려의 차림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왜 여기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신부의 차림을 한 사람도 꽤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른 무당 무리와 떨어져서 옆에 손녀로 보이는 아이와 앉아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 몸은 괜찮으세요? 올라오느라 힘드셨을 텐데.”

“괜찮아. 악기(惡氣)가 없어서 오히려 산 밑에 있을 때보다 편해.”

“음..”


그렇게 말한들 기운을 느낄 수 없는 성은은 할머니가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이제 막 20살이 된 성은의 또래는 종종 눈에 띄었지만, 성은의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은 적었다.

그래서인지 종종 할머니를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할머니는 그런 시선에는 익숙한 건지 조용히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때문에 성은도 아무도 자신들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 스님이 마이크를 들고 단상에 올라섰다.


“안녕하세요,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번년도 반(反)귀신연대의 회장을 맡게 된 유의입니다.”


웅성거렸던 분위기가 점점 수그러들었고, 사람들은 단상의 스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규정에 따른 거긴 하지만 이런 산 속까지 오시게 만들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들 힘드셨을 테니 조금만 하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유의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시작한 연설에 성은은 딱딱했던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 느낌을 받았다.


“이번 의제는 저번 의제와 비슷한 내용이 좀 있습니다. 첫째로, 전국에 퍼져있는 귀신의 터를 없애는 것에 대한 것인데..”



그 뒤로 30분이 좀 넘게 다른 사람들의 질문과 더불어 모임이 끝날 조짐이 보였다.


“그럼 이걸로.. ..하실 말씀 있나요?”


성은의 할머니가 손을 들자 유의는 표정과 말투는 나긋하지만 차가운 눈빛을 할머니에게 보냈다.

눈치가 없는 편인 성은조차 알아차릴 정도였다.

할머니가 이 모임에서 힘이 없다는 건 평소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근 교사 셋이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익사한 사건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 사건에 대해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도 괜찮은 겁니까?”

“...”


유의는 여전히 나긋하지만 차가운 시선으로 할머니를 직시하면서 말했다.


“저도 죽은 방식을 보고 악령이 관련된 사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며칠 동안은 같은 사건이 더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악령은 이미 사라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사할 필요도 물론 없고요.”

“그건..!”

“그렇게 불안하시면 직접 조사해 보시죠. 저희가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할머니의 말을 끊고 마치 할머니를 모임과 관계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에 성은은 화가 치솟았지만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유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면서 자리에 앉을 뿐이었다.


“......!”


성은이 부들부들 떨면서 세게 주먹을 쥐자 할머니가 살짝 성은의 손을 감사 잡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런 거지.. 악령이 없는 게 가장 좋은 일 아니겠니.”

“하지만 할머니..!”

“성은아!”

“...”


성은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서자 할머니가 단호하게 말했고, 성은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누가 봐도 악령 짓인데! 그리고 악령이 자연 소면이라니 그럴 리가..!’

“그럼 더 이상의 안건은 없는 걸로 알고 이번 모임을 파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은은 유의의 뒤통수에 구멍이 뚫리길 바라는 것처럼 노려봤지만 스님은 아무렇지 않게 단상을 내려갔다.



“어째서예요? 악령 짓인 게 분명한데!”


할머니는 산을 올라간 것이 많이 피곤했는지 자는 것처럼 이불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에게 성은이 화를 참지 못하고 말하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잠에 취한 사람처럼 천천히 말했다.


“누구의 짓인지,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단다. 다른 동료들은 이 사건에 손을 쓰지 않겠다고 한 것과 이젠 사건이 끝났다는 게 중요하지.”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동료라는 거예요? 그리고 사건이 끝난 지 조사도 안하고 어떻게 알아요? 저는 납득 못해요!”

“성은아,”


할머니가 눈을 뜨고 성은을 직시하면서 말했다.

성은은 항상 할머니의 이런 시선에 꼼짝을 못했었다.


“악령도 한 때 인간이었던 존재야. 그런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다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조사단을 보내지 않는 거고, 우리도 그 뜻을 존중해야 된단다.”

“그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 거 아시잖아요! 돈이 안 되면 안 움직인다고요! 사람을 도우려는 제령사는 이제 할머니뿐이에요. 나머지는 다 썩었단 말이에요!”

“성은아..”

“...”


할머니는 성은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반귀신연대는 돈에만 움직이는 단체로 변모해 있었다.

아마 순수하게 사람을 돕고 싶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제령사도 성은의 말대로 자신뿐일 터였다.

거기에 부모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자신을 두고 떠났으니, 성은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됐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서 이러는 거니까. 오히려 잘 자라준 것 같아서 고맙긴 하지만..’

“나는 제령사가 할 일은 악령을 퇴치하는 것이 아니라 한을 품은 존재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단다.”

“..퇴치를 안 하면 악령이 인간을 죽이잖아요.”

“그건 극단적인 경우지. 무턱대고 제령 시켰다간 귀신의 지인들도 속이 편하지만은 않으니까.. 그러면 귀신과 사람.. 모두 한이 풀리지 않게 되어버린단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사람이 죽잖아요.”

“성은아, 항상 사람이 귀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유를 상기해야 한단다. 대체 얼마나 미련이 강하면 죽어서도 죽질 못하고 영혼만 남아 이승을 떠돌겠니. 나는 평생을 그 ‘한’을 푸는 데 열중했어. 절대 제령이 목적이 아니었지.”

“...”

“사람과 귀신, 모두의 한을 푸는 게 가장 중요하단다. 그걸 잊지 마렴.”

“저는..”


성은은 고개를 푹 숙여 할머니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중얼거렸다.


“저는 모르겠어요. 사람을 죽이는 귀신은 악령이고, 인간으로 따지면 살인범이에요. 합당한 벌을 받아야 된다고요.”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걸지도 모르지. 모두가 내 방식을 존중해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단다.”

“저는 존중해요! 그냥..”


성은은 잠시 말을 골랐다.


“모임의 다른 제령사들의 방식을 인정 못하는 거예요. 만약 그 악령이 한을 풀고 사라진 게 아니면 어떡해요? 이렇게 날림으로 끝냈다가 나중에 더 큰 일이 생기면 어떡해요?”


할머니는 다시 눈을 감고 성은의 손을 쓸며 말했다.


“다들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뿐이란다. 나도 그 의견은 이해하고 있고.”

“..알았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성은은 불만스러운지 입을 잔뜩 내밀고 있었다.



그날 밤, 성은은 할머니를 혼자 두고 배낭 하나를 메고 집을 나섰다.


‘내가 아직 악령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증명할 거야.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줄 거라고.’

“...”


성은이 점점 집에서 멀어졌고, 그런 성은을 어둠 속에서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듯이 보고 있었다.



수민은 얼마 전 개총 때 만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얼핏 봤을 뿐이었지만 보는 순간 그 애와 닮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여기 없는 거 보니까 우리 학년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수민은 친구가 옆자리에 가방을 올리면서 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1교시를 빠져서 오늘 수업은 빠지나 싶었는데 모자를 쓰고 온 것을 보니 그냥 늦잠을 자서 늦은 것 같았다.

그래서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어제 얼마나 마셨길래 그래?”

“몰라, 꼬박 샜어. 1학년 복학한 애 중에 엄청 잘 마시는 애가 있더라고.”

“그렇다고 너까지 밤새면 어떡해”

“그건 그렇고, 그 애 원래 학년으론 2학년인데 1년 반이나 휴학해서 이번에 엇 학기로 복학했나봐. 특이하지?”


수민이 그렇게 궁금하다는 표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계속 그 복학생의 정보를 알렸다.


“이름이 주선호 더라고.”

“선호?”


수민은 자신도 모르게 반응했다.

성이 다르긴 했지만 그 애와 이름이 같으니 관심이 간 것이었다.


‘혹시 선호라는 사람이랑 내가 개총 때 봤던 그 사람이 동일인물이면..’


확인해야 했다.


“...”


고민에 빠진 수민을 보면서 친구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왜, 관심 있어?”

“어? 아니, 그렇다기 보단..”

“다행이네. 그럼 오늘 나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대화의 주제가 급격하게 바뀌자 수민은 이해가 되지 않아 친구를 멀뚱멀뚱 보았다.


“소개시켜 줄게. 그 애도.. 아니다. 어쨌든 오늘 저녁에 시간 비워 둬.”

“...”


평소에도 성격이 막무가내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면서 수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꽉 잡고 강요하는 친구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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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집념 17.12.06 71 0 8쪽
65 자만인가, 고통인가 17.12.01 72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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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내 미련은 그것뿐이야. 17.11.17 10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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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아무도 모르는 미래 17.11.10 71 0 8쪽
58 벗겨지는 가면 17.11.07 72 0 9쪽
57 후회 할 결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것 17.11.03 38 0 8쪽
56 단서와 기억이 마음에 끼치는 영향 17.11.01 43 0 8쪽
55 찾아가는 귀신들 17.10.27 31 0 8쪽
54 놓쳐버린 기회 17.10.24 35 0 7쪽
53 발전과 보상 17.10.21 33 0 7쪽
52 기억의 단편 17.10.17 36 0 7쪽
51 터지기 전 17.10.14 39 0 8쪽
50 아이와 괴물 17.10.10 31 0 9쪽
49 도박 17.10.07 39 0 8쪽
48 거짓말과 결론 17.10.03 35 0 9쪽
47 언니, 살인귀 17.09.30 62 0 8쪽
46 기회 17.09.26 36 0 12쪽
45 과거의 살인과 되새기는 기억 17.09.22 33 0 11쪽
» 궤변과 반발 17.09.19 41 0 10쪽
43 시선의 정체 17.09.15 33 0 12쪽
42 해주지 못한 말 17.09.12 30 0 14쪽
41 대화 17.09.08 37 0 7쪽
40 발악 17.09.05 32 0 9쪽
39 망상 17.09.01 34 0 8쪽
38 들러리 17.08.29 39 0 9쪽
37 이념 17.08.25 4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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