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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4558_chldmswl1 995 님의 서재입니다.

귀신의 집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작뚜
작품등록일 :
2017.06.26 10:16
최근연재일 :
2021.07.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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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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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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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2,336

작성
17.08.2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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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들러리

DUMMY

38화/


영민의 집에서, 청소장은 마치 제 방인양 영민의 침대에 앉아있었다.

귀신이 된지 꽤 지났으면서도 귀신으로서의 능력은 투명해지는 게 전부인 민수는 진작에 수민을 보러 가라고 한 뒤였다.


‘여기에 제일 먼저 안 오면 낭팬데.’


확신이 들지 않으면서 청소장이 영민의 집에 온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그래도 여기 아니면 다른 데는 짐작도 못하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면 그 영민이라는 애가 오면 모습을 드러낼 각오를 하고 물어볼 수밖에.’


차선책을 생각하면서 청소장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귀신의 집 규칙을 어기는 건 아니었지만 될 수 있으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길 원해서 그저 사랑이 이곳을 제일 먼저 오길 바랄 뿐이었다.

청소장은 어쨌든 언젠가는 올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앞에 보이는 책상을 보았다.

옆에는 책을 가득 꽂을 수 있게 책장이 꽤 높이까지 있었는데, 뭐라도 읽을까 싶어 청소장은 책들을 유심히 살폈다.

큰 방이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손을 뻗어서 닿을 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청소장은 서양 처녀귀신에게 배운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이용했다.

원래는 집안의 물건 전체를 움직이게 해서 인간을 겁먹게 하는데 주로 쓰이는 능력이었지만, 제대로 다룰 수만 있으면 이만큼 편한 이용법도 없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책을 익숙한 몸짓으로 잡고, 청소장은 표지를 보았다.


‘얘도 추리 소설 좋아하나 보네.’


익숙한 제목이 보여서 선택했는데, 아무래도 청소장이 이 책을 읽었던 10년 전과는 표지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청소장은 내용보다는 바뀐 표지에 관심을 갖고 잠시 보다가 제자리에 돌려놓고 책들을 슥, 훑어보았다.

그러던 와중 책이 아닌 노트와 종이가 마치 옆의 종이 다발에 숨겨 놓은 것처럼 작은 노트가 살짝 보였다.

청소장은 호기심이 일어 이번엔 그 노트를 가져왔다.


“......”


한 장만 봐도 그 노트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날짜를 보니 매일매일 적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성실히 적은 일기였다.

청소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가장 마지막에 적은 곳을 찾아 일기장을 휙휙 넘겼다.

그 때,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집에 다가갈수록 불길한 느낌이 강해졌지만 영민은 발을 멈출 수 없었다.

멈췄다간 친구가 먼저 집에 들어갈 판이었다.

잘못된 판단 때문에 이미 짝사랑하던 선배를 잃었는데 친구마저 위험에 빠지게 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런 영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는 이미 계단을 두칸씩 밟고 올라가고 있었다.

영민의 집이 2층이었기 때문에 속도만 좀 낸다면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영민의 집에 도착한 것은 청소장의 예상과 다르게 영민도, 사랑도 아니었다.

청소장은 갓을 목에 걸고 두루마기도 제대로 여미지 않은 채 찾아온 저승사자를 눈살을 찌푸리며 보았다.

일이 조금 가벼워 졌다고 해서 바로 해이해진 옷차림을 보자니 탐탁치가 않았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냐니! 내가 악령 인도도 겸해서 귀신의 집에 초빙강사로 와있는 건데.”

‘초빙은 아니지만.’


얼마 전, 다짜고짜 찾아와서 마구잡이로 떼를 쓰던 저승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원래부터 저승사자를 좋게 생각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저승사자에 대한 청소장의 내적 호감도가 바닥을 친 것은 저승사자를 제외한 귀신의 집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 악령을 못 잡았어요. 저승사자님은 악령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잊었을 때 오시는 거 아니었나요?”

“... 어, 그래? 미안. 나는 또 시간도 꽤 지났고 해서 이미 잡은 줄 알았지. 악령이 저승길을 통과하지도 않아서.. 난 그럼 가볼게.”


저승사자는 말을 흐리다가 냉큼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자리를 뜨려했다.

난동을 부리는 악령을 만나는 것이 싫어서 귀신의 집 초빙강사가 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냥 가세요? 악령 인도 하셔야죠.”


하지만 그런 저승사자를 그냥 보낼 청소장이 아니었다.


“..어? 하지만 아직 못 잡았다고..”

“조금 있으면 잡을 텐데 괜히 번거롭게 왔다갔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


다시 귀신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저승사자가 동작을 멈춘 것은 살짝 웃는 청소장의 미소가 무서워서였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영민은 가까스로 친구보다 먼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저거.. 왜 떠있지?’


자신의 일기장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고 영민은 문을 열어젖힌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고, 머릿속으론 몇 초 만에 사랑=귀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자신의 일기장을 들고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동안 청소장은 머뭇거리지 않고 영민의 뒤를 이어서 친구가 들어오려고 하자 손도 대지 않고 억지로 방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나..’


사람도 볼 수 있도록 모습을 드러내는 청소장을 보고 저승사자는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어버버 거렸다.


“너 뭐하는 거야?”

“저 애는 어차피 귀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별 문제는 없을 거예요.”


영민은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대걸레를 등에 맨 젊은 청소원을 보고 흠칫 몰라 방문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그 청소원이 마치 제 것인양 자신의 일기장을 넘기면서 말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뭐라고 말하려다가 방문이 부서질 것 같은 소리에 말을 멈췄다.


“쿵! 쿵!”

“영민아! 문 열어!”


영민의 친구는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 영민이 안에서 잠군 탓이라 생각하고 밖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고 있었다.


“...... 누구세요?”


하지만 지금 영민에겐 친구보다 청소장의 존재와 일기장이 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귀신.”

“..네?”

“귀신이라고. 너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청소장은 말하면서 영민이 어제 쓴 일기의 내용 중 한 곳을 짚으며 그대로 읽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선생님들 세 분이 전부 다 죽었다. 이건 선배가 복수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귀신이던 뭘로던 간에 선배가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난 거다.] 뭐..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거지.”


청소장이 자신의 일기장을 태연하게 잃고 다루는 것을 보면서 영민은 얼굴을 찡그렸다.

상황파악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청소장의 존재 유무도 자신의 환각이 아닐까 걱정될 만큼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자신의 일기장을 저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돌려주세요. 제 일기장이에요.”

“알고 있어.”


인정하는 말과 달리 청소장은 일기장을 돌려주는 듯 한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그런 청소장은 보고 영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알고 있으면 돌려주세요!”

“그래, 너 대체 뭐하는 거야? 갑자기 인간한테 모습을 보이질 않나, 그 일기장은 뭐하려고?”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네?”


상황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영민에게 청소장이 말했다.


“여기 나만 있는 게 아니라서. 방금 말은 흘려들어.”

“...”


방금 나눈 대화만으로 영민은 청소장의 성격을 파악했다.


‘처음 봤는데 반말하질 않나, 자기주장을 굽힐 생각도 없는 것 같고. 그리고 주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기장을 읽는 거 보니까 배려심도 없는 것 같고.’


영민이 어떻게 생각하건, 감이 좋긴 해도 청소장이 알 턱이 없었기 때문에 본인 말을 계속 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너한테도 손해되는 일은 아니니까 아는 대로 말해 줬으면 해.”

‘무슨 내용인지 알아야 대답을 하든 말든 하지.’


영민은 속으로 불만을 표하면서도 일단 물었다.


“어떤 건데요?”


청소장은 영민의 질문에 일단 일기장을 펼쳐 원하는 날짜를 찾은 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어.. 이 ‘사랑’이라는 애에 관한 거야.”

“......”


영민은 청소장이 일기장을 가이드북처럼 사용하는 것에 화가 나기 전에 ‘사랑’이라는 단어에 얼굴이 파래졌다.


‘그러고 보니까 저기엔 내가 그 날 봤다는 내용도 적었는데..!’

“여기 보니까 가해자 놈들을 본 것 같아서. 누군지 알려 줄 수 있어? 전부.”

“..당신 대체 누군데 그런 걸 알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경찰이라도 되요?”

“말했잖아, 귀신이라고.”

“그거 말고요! 아니, 그걸 믿는다고 말하는 것부터 내 정신이 이상한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선배랑 무슨 관련이 있으니까 알려달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중간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영민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와서 누가 물어본다고 술술 말하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선배가 죽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하니 말하면서 동시에 마음도 무거워졌다.


“관계.. 설명하려면 오래 걸릴 것 같고 말하기도 좀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근신이 풀리는 조건만이 지금 청소장이 움직이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는 청소장이었다.

물론 영민은 청소장의 그런 사정까지는 몰랐고, 청소장이 알려줄 것 같지도 않자 청소장에 대한 불신만 깊어졌다.

애초에 신뢰하는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해서 저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거예요?”


청소장은 살짝 밋를 지으며 말했다.


“니가 지금 느끼는 죄책감을 덜 수 있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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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기억의 단편 17.10.17 35 0 7쪽
51 터지기 전 17.10.14 3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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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거짓말과 결론 17.10.03 3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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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해주지 못한 말 17.09.12 29 0 14쪽
41 대화 17.09.08 36 0 7쪽
40 발악 17.09.05 31 0 9쪽
39 망상 17.09.01 33 0 8쪽
» 들러리 17.08.29 39 0 9쪽
37 이념 17.08.25 4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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