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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커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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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커피
작품등록일 :
2023.12.03 18:10
최근연재일 :
2024.02.13 23:50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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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904
추천수 :
4,842
글자수 :
360,932

작성
23.12.04 06:21
조회
5,014
추천
130
글자
11쪽

#2 할 말, 다한다

DUMMY

울먹이던 윤아가 말했다.


“너 대학 안 갔다며!”


“응.”


“왜에!”


이번에는 더 크게 울었다.


뒤에 기다리던 손님은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집었던 물건을 슬며시 제자리에 놓고

그냥 나가려 했다.


“저기요 가시지 마세요. 먼저 계산해드릴게요.”


찬은 살며시 나가는 손님을 향해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


찬이 입학 원서 쓰지 않은 건,

끝까지 비밀이었다.


찬처럼 영향력 큰 학생이

대학 진학을 포기 소문이 돌면,

다른 학생들도 덩달아

따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찬이니깐, 진학 대신 진화를 선택하는 거다.

평범한 사람이 찬을 따라 하는 건,

찬도 원치 않는다.


“윤아. 네가 우니깐, 손님 그냥 가신다. 점장님이 아시면 너보다 더 슬퍼하실 거야.”


“내가 더 많이 사주고, 계속 울 거야. 말리지 마.”


그녀는 눈물 같은 콧물을 흘리며,

목청 놓아 울었다.


“나가서 울면 안 될까? 영업 방해야.”


“싫어! 지금 이 자리에서 대성통곡할 거야!”


“누굴 위해서?”


찬이 물었지만,

윤아는 대답 대신

연쇄 울음 분출 반응을 보였다.


찬이 할 수 있는 건,

티슈 몇 장을 건네는 정도였다.


귀찮네.


울지 말라고 달랠 이유도 없고,

영업에 방해되니, 나가서 울라고 하면,

더 서럽게 운다.


‘휴.’


깃털 한숨을 내쉬고, 주변 정리를 했다.


내가 대학 안 갔다고 우는 거 같은데,

의미도 없고, 도움도 안 되고.


울지 말라며,

인생 계획을 설명하는 것도 우스웠다.


윤아의 울음이 그칠 즈음,


“편의점에서 볼 일 없으면, 나가 줘.”


찬은 분명하게 말했다.


윤아는 훌쩍거리며 말없이 나갔다.

찬은 상품을 정리하고, 채워 넣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뭔가를 메모했다.




“아까 계산대에서 뭘 쓴 거야?”


윤아는 찬의 알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찬이 나오자 물었다.


“나 기다린 거야?”


“응. 메모 한 거 뭐야?”


윤아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찬은 대답할 의무는 없었지만,


“판매 물품과 금액이 맞는지 확인했어. 할인 체크가 빠져서 안 맞을 때가 있거든.”


“공부는?”


“그런 게 왜 궁금해?”


찬은 윤아와 거리를 뒀다.

같은 반이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다.


사실, 찬은 친구가 없었다.


동기들의 화젯거리는

‘의미 없는’ 학업성적과 연예계 뉴스였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처럼,

대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


찬은,

광신도와 관계 맺을 만큼 절박하지 않았다.


‘나에겐 아버지가 있다.’


이것이 찬의 결론이었다.



윤아가 바짝 다가왔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집에 가야지.”


걷기 시작했다.

윤아가 바로 따라붙었다.


“따라가도 되지?”

“안 될 이유는 없지만, 그러고 싶어?”

“응.”


“갑자기 울거나 그러진 않을 거지.”

“응.”


윤아는 큰 눈을 깜빡였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한 필살기 중 하나,

일명 반짝반짝 공격.


한바탕 눈물을 쏟은 후라,

평소보다 더 반짝였다.


찬은 된다. 안된다 하지 않고, 걸었다.


윤아도 더 묻지 않고 조용히 뒤따랐다.


찬의 걸음이 빠르다.


윤아를 따돌리려는 게 아니라,

원래 걸음이 빠른 편이었다.


찬을 잘 아는 윤아는,


‘그래도 좀 천천히 걷지.’


뛰다시피 걸어야 했다.



*



가파른 계단을 오른 탓에,

윤아는 심하게 헐떡였다.


이정도면 암벽 등산 아닌가? 싶다.


찬이 멈춘 곳은

산꼭대기 골목길 끝에 있는 반지하 단칸방.


윤아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생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건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찬, 왔어?”


무릎 밑 낡은 창문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아버지.”


대답과 동시에

윤아를 살짝 쳐다보았다.


윤아는,

찬이 같이 들어가자고 말하길 바랐지만,

찬은 무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윤아보다 아버지가 더 중요하니깐.


“같이 걸어서 즐거웠어. 아버지 잘 챙겨드려.”


윤아는 손을 흔들고,

뒤돌아서며, 곧바로 눈물을 쏟아냈다.


찬이네 집에 들어가지 못해서 아니었다.


반지하 단칸방이라니!


들어갔어도,

좁아서 서 있을 자리도 없을 것 같다.


그녀가 눈물을 쏟은 이유는,

찬은 정말 힘들게 사는구나.


그토록 힘들게 살면서,

학교에서 조용하고 우아한 모습을 보이면서,

뛰어난 성적까지 낸 걸까?

속이 얼마나 깊길래. 그런 게 될까?


그리고,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윤아는 계단 끝에서

남아 있는 눈물을 마저 쏟아내고,

그녀 집으로 돌아갔다.



*



슬기수는 UDT 부대 출신답게 체격이 좋다.


언뜻 멀쩡해 보였지만,

그가 받은 장애 등급은 중증에 해당하는

3급이었다.


뇌 손상으로 6살 수준의 지능이 되었고,

다리와 팔도 불편했다.


항상 통증을 느껴,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공공근로를 신청해서 해봤지만,

어르신들도 하시는 건널목 지킴이도

제대로 못 했다.


하루에 몇 번씩 찾아오는 발작이 문제였다.


발작할 때마다

슬기수는 지옥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항상 ‘판단이 빨랐던’ 아내는 떠났다.


슬기수가 원한 일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확실하게 해뒀다.


나 때문에 당신이 불행해지고,

힘들어지는 건, 싫어. 그러니 떠나라!


그녀는 남아 있으려 했지만,

슬기수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좋은 세상이야. 나 혼자, 어떻게든 살 수 있어. 당신이 곁에 있어도, 난 가능 없어. 둘 다 힘들 이유는 없잖아. 힘든 건 나 하나로 충분해.’


진심이었다.


그녀는 떠났고,


어린 아들만 남았다.


슬기수는

아내가 아들을 두고 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독한 통증과 발작, 죽으려고 했다.


그때,

어린 찬은 혼자 주민센터에서

생활지원금을 받아왔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이거면 우리 둘이 살 수 있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러니깐 이제 이러지 마세요."


찬은 피가 흐르는

아버지의 손목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분명 많이 놀랐을 텐데,

아빠를 생각해서 놀란 티를 내지 않았다.


아버지의 피를 봤던 날,

찬은 더 강해지기로 결심했다.


내가 흔들리면 아빠는 죽는다.

아빠를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리고, 아빠에겐 배울 게 많아!!


찬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는 제가 뭘 했으면 좋겠어요.”


“학생은,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열심히 했다. 공부.


전국 1등.


한국 대표로

국제 올림피아에서 금상도 받았다.


찬이 가장 많이 배운 곳은 학교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살아 움직이는,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정신줄과 정신줄이

만들어내는 매듭 그리고 고치.


아버지는 지금 애벌레처럼 꿈틀거리지만,

언젠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것이다.


그때가 오면,

아버지에게 부족한 아들이 되지 말자.


찬은 아버지를 보며, 어떻게 살지 결정했다.


앞으로 초거대 지능의 시대가 될 것은 분명했다.


아버지는 보여주셨다.


초거대 지능의 시대를

뛰어넘는 방법을!


찬은 아버지의 몸짓에서,


당신의 ···.


생각의 속도가

빛에 넘어서는 것을 보았다.



*



아버지는 새끼 고양이 같다.

잠을 많이 잔다.


찬은 방구석에 기대앉아,

책장을 넘기듯, 은하수 탭 화면을 넘겼다.


전자책보다 진짜 책의 질감이 더 좋지만,

집이 좁아서 진짜 책을 놓는 건 사치다.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잠깐 살펴보고,

좋아하는 분야의 최신 동향을 살폈다.


초거대 인공지능이 수학계의 8대 난제인, 양-밀스 질량 간극 가설을 증명했는데, 초일류 수학자들이 팀을 이뤄 이를 검증하고 있었다.


리만가설 증명도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인공지능이 증명해도,

인류가 이해할지, 알 수 없지만.


세상 사람들이

초거대 인공지능에 빠져들고,

숭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찬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에겐 아버지가 있다.’


뭔가를 배워야 한다면,

‘아버지에게 배워야 했다.’


아버지의 ‘몸짓’은 이미 지능을 뛰어넘었다.



*



산꼭대기 반지하 단칸방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지만,

‘좋은 세상’이라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도 살아계시고, 나도 살아 있으니깐.


“아들.”


아버지가 잠에서 깼다.


“네. 배고프시죠. 밥 차릴까요?”

“학교는 잘 다녀왔니?”


“두 달 전에 졸업했어요. 편의점 알바하고 왔어요.”


“아. 그랬지. 요즘도 깜빡깜빡하네.”


아버지는 은하수 탭을 무릎에 올려둔,

아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학교 졸업했으면, 군대는?”


“어떻게 할까요? 아버지 말씀대로 할게요.”


“빨리 갈수록 좋지.”


“제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아버지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요즘, 발작도 예전처럼 심하지 않아.”


“주민센터에 병역 상담받고 좋은 방법 찾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말까요?”


“병역 의무는 해야지.”


“아빠처럼 UDT로 갈까요.”


“UDT는 직업 군인 중에서 뽑아. 직업 군인이 되면, 월급이 나와서 ···.”


“네. 생활지원금 끊기면 안 되죠.”


“나 때문에 네가 힘들면, 안 돼.”


“힘들지 않아요. 이거 느껴지세요?”


찬은 아버지의 미간을 짚었다.


아버지가 옳은 소리를 할 때,

아버지의 미간 사이에서

정신줄이 나와 독특한 ‘매듭’이 됐다.


“뭐가 났니?”


아버지가 손으로 미간을 문지르셨다.



*



아버지가 생활지원금을 너무 사랑하셔서,

편의점 알바도 생활지원금이

유지되는 수준에서 한다.


폐기 삼각김밥은 덤이고,


아버지가 군에 가라고 한,

이유가 생활지원금을 지키려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건강하시면 그걸로 좋다.


그리고 군 생활은 좋은 ‘경험치’였다.



찬은 병무청에 접속해서 입대를 신청했다.


아버지의 ‘뿜뿜’ 정신줄을 보고,

배운 것 중 하나는,


선택과 집중, 몰입의 삼박자를 완성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찬은 군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



“너, 군대 간다며?”


윤아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반짝였다.


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알았지? 아무에게도 말 안 했는데?


“아버님께서 알려주셨어. 너 없을 때 인사드리려 갔거든.”


그랬단 말이지.


“신체검사 날짜는 언제야?”


“다음 주.”


“잘 됐다. 운전면허 땄거든. 데려다줄게.”


“그럴 필요 없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야.”


윤아 눈동자에서 광채가 났다.


때맞춰 손님이 들어왔는데,

윤아는 그 손님을 한 번 쳐다보곤,

심호흡했다.


수틀리면, 엉엉 울겠다는 신호였다.


그 말이 맞았다.

여자의 최고 무기는 눈물이라는,


“이거 주세요.”


손님이 캔맥주와 안주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동시에 윤아가 그녀의 두 눈에 힘을 줬다.


찬은

시한폭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계산했다.


“주차장이 부족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라 했어.”


“근처 카페에 차 세워놓고 기다릴 테니, 끝나면 연락해. 바로 픽하러 갈게.”


“그러지 마.”


“그럴 거야! 너 내 차 타기 싫어?”


“응.”


즉각적인 대답에 윤아가 당황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슬기찬의 돌직구 성격.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했지만,

찬은 완전 다르다.



할 말,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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