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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커피
작품등록일 :
2023.12.03 18:10
최근연재일 :
2024.02.13 23:50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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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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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0,932

작성
23.12.30 08:12
조회
992
추천
53
글자
11쪽

#53 오늘의 농업 일기

DUMMY

오늘의 농업 일기.


오이는 물 빠짐이 좋은 흙에서 잘 크고,

온도도 잘 맞춰줘야 한다.


비닐하우스에 맞는 태백 품종은

특히 더 온도 관리에 예민하다.


비료는

하얀 뿌리를 내게 하는,

지속성 좋은 영양성분 제품으로 사용한다.


비료를 쓰다 보면, 염류가 땅에 축적되는데,

염류는 오이 성장을 엇나가게 한다.


염류 줄이려면,

흙을 새로 갈아주거나,

물로 씻어내야 하는데,


흙이 물에 시달리면, 땅이 딱딱해진다.


이건 이것대로 문제가 된다.


염류 낮춰주는 보조제가 있긴 한데.


쓰기 전에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작년 봄, 서해안에서 소금풀을 캐와,

시범 삼아 오이와 함께 키웠다.


소금풀은 염분기를 빨아들이는데,

영양분도 먹어 치우는지라,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걱정했다.


그야말로 기도하는 심정이었는데,

오이와 궁합이 잘 맞았다.


3년 연속 최상품으로 납품할 수 있었다.


다른 비닐하우스에 소금풀 분양했는데,

어르신들 모두 좋아하셨다.


농사일은 정해진 것보다 항상 일이 많다.


멧돼지 떼가 텃밭을 망치면,

그 뒷수습도 농부의 몫이 된다.



*



농업진흥청이 슬기봇을 지원했다.


내 어깨높이 사람 형상 로봇 두 대와,

진돗개 크기의 사족보행 로봇 세 대였다.


사람 형상 로봇은

발가락은 세 개, 손가락은 다섯 개로,

사람이 하는 일은 다 하는 것 같다.


진돗개 로봇은 흙을 갈고,

미생물 약재를 뿌리고,

줄기 모양을 잡아주고

토양 적합성 따위를 분석하는 등,


할 일을 찾아서 한다.


둘 다,

잠자리처럼 양쪽에 큰 눈알을 달았는데,

동네 어르신들은 귀엽다고 하신다.


내가 볼 땐, 외계인과 곤충의 혼종 같았지만.


어르신들은 슬기봇에 많이 의지하셨다.


슬기봇의 스피커가 꽤 좋다.

밤이 되면,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다들 귀가 나빠, 소리를 크게 하셨다.


별밤에 등산에 올라, 가만히 귀 기울이면,

묘한 하모니가 동네를 맴돈다.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하더니,


캐갱!


개 비명이 들렸다.


심상치 않았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달려갔다.


팽 어르신 집이었다.


어르신이 기르는 잡종 개, 덕구가 당했다.


“멧돼지라고요?”


어이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팽 어르신은 파출소에 맡겨 논,

엽총을 받아와서, 멧돼지 사냥에 나섰다.


“같이 가드릴까요?”


“막내는 마을 지켜야지. 나는 아들이랑 같이 가면 돼. 아들이 꽤 쓸만하거든.”


팽 어르신이 말씀하신 아들은,

슬기봇이었다.


일 잘하고 노래 잘하는 건 알았지만,

멧돼지 사냥 도우미 기능은 의외였다.


“아주 큰 놈이었어. 엄니는 자네에게 줄게. 기대하라고.”


팽 어르신은 작년에도,

멧돼지 사냥에서 용돈을 버셨다.


표범이나 호랑이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멧돼지는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녀석들의 숫자를 조절하는 건,

인간의 몫이었다.

인간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지역 농부였다.


멧돼지가 동네 개를 잡았다는 건,

우리 동네가 놈의 영역이란 건데 ···.


배부른 멧돼지는 멀리 이동하지 않는다.

반나절 거리에 있을 성싶었다.


오늘 해지기 전에,

팽 어르신이 사냥에 성공할 것이다.


“좌표 찍어주시면, 수렵 운반 돕겠습니다. 근처로 트럭도 대 놓고요.”


“막내가 최고여!”


어르신은 활기차게 산기슭으로 향했다.


해 떨어지기 전, 좌표 찍힐 줄 알았는데,

안 찍힌다.


총소리가 들린 거 보면, 잡은 거 같은데.


연락해볼까?


내가 돕겠다고 나섰지만,

팽 어른은 요령이 좋으신 분이라,

혼자서도 해낼 것도 같다.


연락은 보류했다.


상황을 모르는데,


뜻하지 않게,

중요한 순간 방해될 수도 있다.


연락하지 않아도,

팽 어르신이 계신 곳을 찾아낼 순 있다.


위치 정보도 개인 정보에 해당한다지만,


요령껏 팽 어르신의 위치를 탐색했다.


해 떨어지고, 30분이나 지나서 감이 왔는데,

그분의 숨결이 가늘었다.


일이 터졌구나!


방심했다.

엽사로 이름을 날리신 분이라서,

가볍게 처리할 줄 알았는데 ···.


어두운 숲속을 전력 달리기도 주파했다.


구름이 잔뜩 낀 초승달.


보통 사람 눈으로는

소똥과 돌멩이도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보인다.


“어르신!”


만신창이였다.

그의 아들도 대차게 부서졌다.


아!


함께 왔어야 했는데.

내가 모셨어야 하는데!


“울지마. 아직 안 죽었어.”


라고 하셨지만, 상태가 좋지 않다.

어르신은 멧돼지에게 여러 곳을 뜯겼다.


쿨럭!


어르신은 기어이 피를 토하셨다.


“이거 받아.”


사냥용 단검이었다.


“작년 아들이 생일 선물로 사준겨. 알지?”


“네. 한 달 동안 자랑하셨잖아요.”


“잘 보관혀. 비싼 겨. 멧돼지 엄니로 단검 만들어 주려 했는데, 그건 힘들 것 같고 ···. 이거라도 ···. 그동안, 도와줘서 고마웠 ···.”


죽는 순간까지 허세라니!

팽 어르신다웠다.


어르신에게 서울로 올라간 아들은 있지만,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선물하지 않는다.

시골 사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신세대였다.


슬기텍 시절 이전,


늙은이들을 ‘틀딱 연금충’으로 부르며,

조롱하는 것이 유행했다.


선거 때마다 유행했는데 ···.

어르신과 신세대가 지지하는 정당이 달랐다.


대영제국 시절, 영국이 식민지에서 했던 짓.

갈등 조장하고, 이간질하고, 싸움 붙여서,

편하게 지배하던 그 기술.


그 짓을,

정치꾼들이 같은 민족에게 해댄 것이다.


가족들의 거리가 멀어졌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었고,

아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남자를 잠재적 범인으로 낙인찍는,

분위기도 있었는데,

여자를 무심코 쳐다만 봐도,

돌아오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팽 어르신이 자랑한 생일 선물은,


우체국 최씨에게 부탁해서,

해외직구로 직접 사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알면서 속아줬다.


해 떨어지기 전, 총소리가 두 번 들렸었다.


그래서 당연히 잡은 줄 알았는데 ···.


‘어르신 편히 쉬세요. 고생하셨어요.’


119와 경찰에 연락했다.


경찰은 나에게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으라 했지만,


나는 내 몫을 챙겨야 했다.


팽 어르신이 약속하신 엄니.


어르신 주변에 찍힌 발자국을 살폈다.

어둡지만, 보인다.


동네 개를 잡아먹는 건,

그러려니 한다.


내 개도 아니고 ···.


덕구는,

나만 보면 짖어대는 고약한 녀석이었다.


먹이를 주면 친해진다고 했는데,


내가 개랑 친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사람을 해친 것은 용서가 안 된다.


강자가 약자를 해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자연의 섭리 따윈 통하지 않는다.


발자국을 살폈다.


패턴이 이상하다. 이족 보행?


그러고 보니,

슬기봇도 머리통도 정수리부터 깨져 있다.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렸다는 건데,


거대 멧돼지는 네발로 뛰어와서,

팽 어르신을 들이박고,

두 발로 선 후 슬기봇을 내리쳤다.


여기까지만 하고, 물려갔다면,

내가 팽 어르신을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팽 어르신을 뜯었다.


팽 어르신 상처를 보면,

배고픈 멧돼지가 뜯은 자국이 아니었다.


상처는 송곳니까지만 찍혀 있었다.


치명상을 주기 위한 ‘공격’이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태어나서,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가려 했는데 ···.


어둠 속에서 놈을 쫓기 시작했다.


메타 연산, 각성, 이능, 능력 ···.


뭐라고 불러도 좋다.


조용한,

메타 연산자가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메타 연산은 꽤 피곤한 짓이다.


슬기수님은

몰입과 집중이 행복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피곤한 짓이다.


슬기수님과 그의 아들은

메타 연산이 적성에 맞는 것 같지만,


난 아니다.


조용히, 오이 키우면서 사는 게 좋다.


하지만, 오늘 밤은 예외로 하자.


내 몫을 챙길 때까지만.


멧돼지의 시력은 사람보다 못하지만,

밤이 되면, 달라진다.


어둠에서 멧돼지의 눈은 인간보다 밝다.


발자국 간격과 찍힌 깊이를 보면,

놈의 무게는 250kg 이상이고,

길이는 2미터가 넘는다.


뭘 잘 못 먹었길래, 이런 덩치가 된 걸까?


멧돼지 평균 덩치로 살아갔다면,


마을로 내려와서, 개를 잡지도 않았을 테고,

나에게 추적당할 리도 없었을 텐데.


놈의 거북스러운 엉덩이가 보였다.


녀석의 망막 뒤에 있는,

반사체가 별빛을 받아 반짝였다.


인간 따위가 한밤중에 찾아오니, 기쁘냐?


반갑냐?


놈은

인간에게 다시 사냥당할 건, 알았을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날이 오늘인지는 몰랐던 것 같다.


녀석은 ‘씩씩’ 거리는 거친 콧소리를 냈다.


“그런다고 도망갈 거면, 오지도 않았어.”


지은 죄가 있으니,

고통스럽게 죽이는 게 마땅하겠지만,


빨리 끝내줄게.


한창 바쁜 시기였고,

팽 어르신 장례도 치러야 한다.

체력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놈이 곰처럼 두 다리로 서서,

덩치를 자랑한다.


덩치 우람하고, 키 크네. 그런데 ···.


뭐 어쩌라고?


멧돼지답지 않은, 직립 위협하는 걸 보면,

뭔가 영향받은 것 같다.


날 들이받으면,

그 순간을 노려서 끝내려고 했는데,

오질 않고, 덩치만 자랑한다.


뭔가 느꼈나 본데, 이미 늦었어.


너, 이제 끝난 거야.


인간으로 태어나서

거대 멧돼지를 향해 달려가는 건,

자랑할 일은 아니었지만,


놈이 오질 않으니, 내가 다가가야 했다.


화가 난 상태라서, 빨리 끝내고 싶었다.


놈은 분위기 눈치채고,

사족 달리기로 도망쳤다.


하필, 오르막 지형이었다.


나는 단검을 입에 물고,

몸을 낮춰, 틈틈이 손으로 땅을 박차는,

간헐적인 사족 가속으로


놈을 덮쳤다.


놈의 목덜미를 붙잡고서야 알았다.


녀석이 개 거품 물고 도망치는 중이었음을.


내가 무서웠구나!


무서운 걸 아는 놈이, 사람을 해쳐?


있는 힘껏 단검을 찔러 넣어,

경동맥을 끊었다.


피를 뿜으며 지랄발광했지만,

젖은 이불 빨래처럼 축 늘어졌다.


다 끝났다고 여겼는데,


놈의 심장 속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더는 손에 피 묻히고 싶지 않았지만,

확인해야 했다.


창자와 큰 혈관이 터지지 않게

요령껏 배를 갈라, 심장을 꺼냈다.


심장 안에 주먹만 한,

루비 같은 광물이 들어 있었다.


돌연변이인가?

메타변이일까?


놈이 혼자 변이한 걸까? 아니면?



*



‘그냥 한국인’ 영상을 봐서,

한윤아가 누군지 안다.


깨진 유리컵을 들고,

쌍권총을 든 미치광이에 맞선,

정신 나간 처자.


그녀가 날 찾아왔다.


딱 보니, 메타 연산자는 아니었고,

메타 맛만 조금 본, ‘관계자’ 같았다.


관계자는 메타 나눔을 받은 사람을 뜻한다.


그녀는 메타 현상에 관심이 많다.


경찰에서도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바글에 불과한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메타 연산자인,

나도 멧돼지의 자발적 메타변이인지,

다른 메타 연산자의 ‘설정’인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한윤아는 이메일로 이런 짓을,

일삼는 그룹이 있다고 했다.


짐승의 메타변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었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계속 보고 되고 있었다.


“저는 메타 연산자가 아니지만, ‘메타 감각’이 있어서, 보면 알아요.”


그녀는,

이번 사건의 범인을 잡고 싶다고 했다.


바라던 바였다.


작가의말

이번 화는 풀땡님의 수필 ‘오늘의 농업 일기’를 참고 했습니다. 풀땡님의 좌표입니다. https://novel.munpia.com/384821 허락해주신 풀땡님, 고맙습니다. ♡⸜(ˆᗜ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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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 메타 연산자의 논리 +10 24.01.27 433 32 14쪽
60 #60 그럴 필요도 없네 +12 24.01.20 563 41 15쪽
59 #59 넘어지면 잠시 누웠다 가자 +21 24.01.13 687 40 13쪽
58 #58 모르셨구나 +14 24.01.06 871 52 14쪽
57 #57 메타 부족은 인생을 불안하게 한다 +6 24.01.04 825 41 12쪽
56 #56 바다 꿈틀이 +8 24.01.02 843 45 13쪽
55 #55 화려하게 떠오르는 직업 +12 24.01.01 846 47 12쪽
54 #54 벽에 던져진 토마토 +8 23.12.31 907 42 12쪽
» #53 오늘의 농업 일기 +10 23.12.30 993 53 11쪽
52 #52 봄날은 간다 +8 23.12.29 1,033 52 11쪽
51 #51 기수가 잠든 조용한 밤 +10 23.12.28 1,031 48 12쪽
50 #50 인생은 아름답다고? +12 23.12.27 1,083 54 12쪽
49 #49 슬기텍 차례였다 +14 23.12.26 1,132 46 12쪽
48 #48 그냥 한국인 +12 23.12.25 1,198 62 12쪽
47 #47 슬기로움 세상 +6 23.12.24 1,291 4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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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 뭐가 좋을까요? +8 23.12.22 1,389 57 11쪽
44 #44 슬기텍, 슬기수입니다 +22 23.12.21 1,491 58 13쪽
43 #43 소중한 존재 +14 23.12.20 1,562 58 12쪽
42 #42 메타 연산자라 했던가? +16 23.12.19 1,627 60 13쪽
41 #41 망령 깃든 인공지능 +14 23.12.18 1,720 6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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