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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크 님의 서재입니다.

미쳐버린 아들이 축구는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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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크
작품등록일 :
2024.08.06 21:38
최근연재일 :
2024.08.29 23:41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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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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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글자수 :
136,818

작성
24.08.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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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밀렵꾼은 인내한다

DUMMY

‘남자 셋이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훈련이 끝나고.

왠지 모르게 강찬이 형, 한지온과 함께 마인츠 트램에 몸을 싣고 있었다.


“키야아, 드디어 우리끼리 한 번 놀러 가는구나!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데!”

“뭘 그렇게 기대했는데?”

“여긴 세비야와 다르게 한국 동료들이 수두룩하잖아! 안 심심하다고!”

“아, 그거? 하여튼 외로움 엄청 타는 형이라니까.”


한지온에게 하는 말만 들어봐도 알 수 있듯 이렇게 될 줄은 뻔히 알았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재능만큼 성공하지 못한 한국 선수들을 철저히 분석해왔으니까.


다만.

거기에 나까지 끼게 될 줄을 몰랐던 거지.

한지온에게 전부 맡겨두려고 했는데.


“야. 한리온. 이왕 가기로 한 거 너도 와서 좀 껴라.”

“뭐야? 가기 싫었어? 나 때문에 가는 건가?”


봐. 지금도 가만히 안 두잖아.


“가기로 한 거니까 딱히 불만 없는데. 그냥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는 거지.”


그나마 다행인 부분.

한지온은 나와 둘이 있을 땐 투머치 토커지만, 다른 사람이 끼면 말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다.

이 정도는 그래도 버틸 수 있다.


“근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왜 그렇게 가고 싶은 건데.”

“간지나잖아? 작살나잖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통칭 IAA.

Internationale Automobil-Ausstellung.

세계 최초의 모터쇼이자 제네바, 디트로이트와 함께 세계 3대 모터쇼로 꼽히는 대형 행사.


강찬이 형이 여길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해서 가는 중.

차에 관심이 있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면 한 번 가볼만한 곳이긴 하다.


“어차피 형 구독하는 잡지에 다 나오잖아. 인터넷에도 나오고. 마음에 드는 차 있으면 선뜻 살 수 있을 만큼 돈도 있을 거고.”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게 똑같나.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다르지.”

“한리온이 이렇게 뭘 몰라. 거기 나오는 차들 출시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심지어 컨셉트 카도 많아서 아예 출시 안 되는 차도 많고.”

“역시 한지온! 한리온은 축구만 잘하지 아는 게 없어.”

“그러니까. 심지어 축구도 지금 잠깐 잘하는 거거든. 언제 또 박살날지 모른다니까?”


어색한 사람들이 친해질 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뒷담화, 나아가서 앞담화.

공통으로 아는 사람 한 명을 두고 신나게 욕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친해지니까.

그래서 어떤 집단이 끈끈해지려면 마음 편히 욕할 수 있고 재미있게 받아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다만, 내가 그 욕받이가 될 줄은 몰랐지.

개인적으로 탱커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성격이라 생각하는데.

그냥 반응이 없으니까 마음이 편한 건가.

반응 한 번 끌어내고 싶다는 도전정신도 생기는 것 같고.


‘근데 편해.’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반응도 안 하고 조용히만 있어도 이 집단에 도움이 되니까.

이렇게 친해지면 발이 땅에 닿게 되는 거고 그러면 적응도 금방 하는 거고.


아버지와 한지온에게만 오롯이 맡겨두려고 했는데 나까지 역할이 생긴다?

심지어 따로 노력도 안 하는데?


이거야말로 개꿀이지.

십 수 년 뒤에 생길 신조어로 표현하자면.


“근데 진짜 마인츠 오니까 좋다.”


한참을 웃더니 갑자기 창밖을 바라보는 강찬이 형.

심지어 표정까지 아련해진다.

저 형도 감정기복이 정상인은 아니다.


“세비야에 있을 땐 훈련 끝나면 같이 놀 사람도, 하고 놀 것도 없어서 너무 힘들었는데.”

“형이? 형 완전 친화력 최곤데.”

“이렇게 말 놓으라고도 안 했는데 동생이 놨다고 지 맘대로 놓는 놈도 없었고.”

“아니, 동생이 말을 놨는데 형이 존댓말하는 족보가 세상에 어디 있어? 이 형도 웃기네.”


세비야라...


“그러니까 왜 스페인으로 가서.”

“내 말이. 그때 에이전트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지. 내가 월드컵에서 스페인 잡은 사람인데 스페인을 보냈다니까?”

“근데 형은 그때 깍두기 아니었나? 스페인 잡은 건 다른 선배들이지.”

“... 알면 알수록 이 새끼가 한리온보다 훨씬 나쁜 놈이라니까? 그게 할 말이야? 내가! 대표팀의 분위기메이커로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가끔은 핑계를 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말 큰일이 나는 게 아니라면 핑계를 대면서 나를 용서해 봐도 좋다.

멘탈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으니까.

너무 자주 그러면 성장에 문제가 생기겠지만, 적절히만 활용한다면야.


강찬이 형은 아직 괜찮아 보인다.

최근 분위기가 좋은 것도 있고, 아주 심각하지도 않은 것 같으니.

옆에서 겪어본 결과 외로움에 영향을 받는 것도 맞는 듯하고.


‘나와는 다르지.’


나는 핑계를 댈 수가 없다.

핑계를 대봤자 실패와 성공, 결국 그게 전부니까.

실패하면 부모님이 안 계시는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하고, 성공해야만 이 세계에 남을 수 있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핑계도 대고 변명도 하면서 그렇게 편안했으면 좋겠다.

이건 내가 착해서가 아니다.

그냥 같은 인간으로서 나처럼 힘든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

특히 그게 내 주변 사람이라면 더더욱.

강찬이 형처럼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더더더욱.


감정이 무뎌진 거지, 못된 사람이 된 게 아니니까.


“어쨌든 한국인이라서 실패했다, 이거지? 독일은 우리가 졌으니까 문제없고?”

“오, 그러네? 한리온 이 자식 똑똑한데? 그러네. 독일은 우리가 졌던 팀이네, 제기랄.”

“봐. 생각도 안 했잖아. 스페인에서 그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도 핑계라니까.”

“야. 너 꺼져. 모터쇼는 한리온이랑 둘이 갈 테니까.”


어쩌면 소시오패스 같은 무언가가 될 뻔했다가 리나 덕분에 인간으로 남은 건지도 모르겠고.

원래는 이번 세계선에선 인간관계를 조금이라도 신경 쓰겠다는 계산이었지만.


요즘 들어, 정확히는 리나를 만나 땅에 발이 닿은 이후부터 느끼는 건데.

이런 목적도 없고 쓸데도 없는 평범한 대화가 오랜만에 꽤 괜찮다.

대략 수십 년 만에.


***


2005.09.10.

분데스리가 4라운드


1.FSV Mainz 05

터크-한리온-김강찬

문이안-페코비치-시우바

바이게르트-프리드리히-노베스키-선이건

바헤


Hamburger SV

라우트-바르바레즈

반더바르트

야롤림-비키-마다비키아

아투바-불라루즈-반바이텐-드멜

베히터



2주의 휴식이 끝나고 슈타디온 암 브루히베크를 찾아온 함부르크 SV.

2000년대는 기본적으로 함부르크의 전력이 꾸준히 괜찮은 시기였다.

지금도 세 시즌 연속 TOP 8과 유럽 대항전 진출에 성공한 상태였고.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초대 골든보이 수상자 라파엘 반더바르트를 제외하더라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오래 활약한 다니엘 반바이텐, 첼시에서 활약한 할리드 불라루즈 역시 이 시점에선 함부르크 소속.

기 드멜, 메흐디 마다비키아, 다비드 야롤림, 세르게이 바르바레즈 등도 빅리그에서 오랫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좋은 선수들이었다.


‘피부도 반짝반짝한 것이 푹 쉰 것 같고.’


반면 우리는...


“다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뭔가 피골이 상접하다.


“게임을 뛴 것도 아니고 체력훈련 좀 며칠 했다고 다들 이렇게 된 건가.”


나의 혼잣말에 좀비처럼 돌아다니던 이안이 형이 멈칫하더니 방향을 바꿔 다가온다.


“너는 몰라. 모른다고, 인마.”

“내가 뭘요.”

“넌 아직 젊다 못해 어린 나이니까. 지치고 힘들다는 게 뭔지 모른다고.”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마흔까지 뛰어봤던 사람인데.


뭐, 설명은 절대 못하겠지만.


“그리고 나한테는 왜 존댓말 하냐? 강찬이한테는 말 놨던데.”

“말 놓을까요? 나야 상관없는데.”


별걸 다 질투하시네.

원래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 유치해진다지만 그래봤자 20대 중후반이잖아.


2010년대 후반부터는 20대 후반 선수의 남은 선수생명을 10년쯤으로 잡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아니다.

대략 5, 6년 정도로 봐주면 길게 봐주는 느낌?

다만 아무리 그래도 젊은 건 젊은 거다.


“그래, 말 놔. 앞으로 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계속 같이 뛸 텐데 말이라도 편하게 하면 좋지.”

“그럼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근데 진짜로 지친 건 아니지? 표정만 그런 거지?”


이안이 형은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자세를 바로잡았다.


“당연하지, 인마. 시즌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지쳐?”


포스 있게 몸을 풀면서 덧붙이는 한 마디.


“저 자식들 낯빛 보니까 푹 쉬었나 본데... 한창 시즌 중에 건방지게. 쟤들이 우리보다 강팀이라고 했지? 어디 한 번 보자고.”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포스가 굉장한데.

한 번 믿어볼까.

상대가 아무리 강팀이라도 최소 한 골은 넣어야지.



<ARD, SWR>

-에리크 회네스 (SWR 캐스터)

[인터토토 컵에 참가하느라 시즌 초반 미친 듯이 달렸던 함부르크 아니겠습니까? 2주간의 휴식을 취하면서 완전히 살아난 모습입니다.]

-올라프 마르샬 (전 독일 국가대표)

[심지어 우승까지 했으니까요. 기세는 이미 하늘 끝까지 올라왔고 체력까지 회복되었으니 거칠 게 없겠죠.]


예상은 했지만 일방적으로 밀리는 분위기.

베르더 브레멘전과 비슷한 느낌이다.


UEFA 인터토토컵은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에 나가지 못하는 팀에게 초청장을 주어 치러지는 대회.

보상도 별로고 프리시즌부터 시즌 초에 걸쳐 치러지는 대회, 심지어 우승팀만 세 팀씩 나오는 대회라 딱히 매력은 없지만, 어쨌든 공식적인 유럽대항전이었다.


우리도 UEFA컵 예선부터 참가하느라 분데스리가 4라운드에 벌써 시즌 9번째 경기를 치르고 있는데 함부르크는 무려 14번째 경기.

마인츠도 분위기가 나쁜 편은 아닌데 유럽대항전 우승트로피를 들고 휴식까지 취한 이상 기세에서나 전력에서나 우리가 앞설 게 없다.


‘뭐. 예상한 거니까.’


브레멘과 붙을 때도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이런 경기에선 한 골만 넣으면 된다.

한 골을 넣으면 두 골을 바라겠지만 어쨌든 목표는 한 골.

그 다음은 나중에 생각한다.


[반더바르트, 페코비치와 시우바 사이에서 빼앗기질 않습니다. 야롤림에게 내줬다가 다시 돌려받고 빠져나옵니다.]


반더바르트, 저 인간.

저 인간 폼을 보니까 더더욱 기회가 많진 않겠다.

고전적인 10번에 가까운 선수라 한계도 있고 단점도 뚜렷해서 점점 평가가 내려갈 선수긴 하지만.

우리 쪽에서 제어를 못하거나 본인의 폼이 좋으면 혼자서 경기를 지배하는 스타일이기도 해서.


조금 더 축구가 발전하면 어쩔 수 없이 도태될 스타일이지만 지금은 2005년.

그 혼자서도 충분히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


[바르바레즈와 원투패스로 돌려받고 중거리!! 크로스바 위를 스쳐지나갑니다! 반더바르트의 강력한 슛이 마인츠의 골문을 위협했습니다.]

[오늘의 첫 번째 슛이네요. 반더바르트의 컨디션이 괜찮은 걸 보니 오늘은 함부르크가 주도할 것 같죠?]


그러니 일단은 기다린다.

포처의 원래 뜻은 밀렵꾼.

밀렵꾼의 제일 덕목은 인내심이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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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연재 중단 공지입니다 +3 24.08.29 345 5 1쪽
» 밀렵꾼은 인내한다 24.08.28 240 13 11쪽
25 미쳐버린 아들의 사회생활 +1 24.08.27 269 17 11쪽
24 탐욕과 집념 24.08.26 292 19 11쪽
23 타임어택 24.08.25 326 18 11쪽
22 지긋지긋한 도전 24.08.24 338 18 12쪽
21 나는 집착한다 +1 24.08.23 347 19 12쪽
20 전성기의 팀을 상대할 땐 24.08.22 403 18 12쪽
19 배고픔 +1 24.08.21 410 19 12쪽
18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1 24.08.20 426 21 11쪽
17 그녀의 품 안에서 +1 24.08.19 474 24 12쪽
16 따뜻한 마음으로 +1 24.08.18 463 21 12쪽
15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3 24.08.17 478 21 13쪽
14 당신들이 적응해야지 24.08.16 492 24 13쪽
13 최고의 시작 +1 24.08.15 549 22 12쪽
12 축구만 잘해주면 +2 24.08.14 560 23 13쪽
11 마인츠 5형제 어셈블 +1 24.08.13 622 23 15쪽
10 마지막 컨셉 +2 24.08.12 653 25 13쪽
9 또 한 명 재꼈다 +2 24.08.11 667 26 13쪽
8 기분 좋은 날의 시작 +1 24.08.11 726 23 12쪽
7 나의 도시에서 24.08.10 795 25 13쪽
6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24.08.10 865 23 12쪽
5 충분한 시간, 20분 +1 24.08.09 910 24 12쪽
4 여유는 없다 +2 24.08.08 1,045 29 11쪽
3 이번에야말로 자신 있다 +2 24.08.07 1,268 35 13쪽
2 이런 게 총체적 난국이라는 건가 +6 24.08.06 1,549 31 11쪽
1 익숙한 모습이었다 +12 24.08.06 1,832 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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