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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크 님의 서재입니다.

미쳐버린 아들이 축구는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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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크
작품등록일 :
2024.08.06 21:38
최근연재일 :
2024.08.29 23:41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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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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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글자수 :
136,818

작성
24.08.1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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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따뜻한 마음으로

DUMMY

“저녁은 먹었어?”

[당연히 먹었지! 너는? 이제 먹는다고 했나?]

“응. 우리 팀 형들이랑 약속 있어서.”

[한국 형들! 우리 리온이한테 이렇게 좋은 친구들, 형들이 생기다니! 나 요즘 진짜 너무 행복하잖아!]


오랜만에 쾰른으로 달려가 얼굴까지 보고 온 이후, 20년을 묵혀온 그리움이 폭발했다.

하루 세 번, 한 번에 한 시간씩 통화할 만큼.

미션, 도전에 대한 강박감 때문에 축구와 관련 없는 시간을 버티지 못하던 나였는데.


‘사랑할 때 나도 모르는 내가 나온다는 말은 정말 많이 들어봤는데.’


당연히 나도 그런 순간들을 겪어봤고 그때도 상대는 리나였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매번 놀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감동적이고.


[그럼 한국 대표하는 거야? 리히텐슈타인은 그렇다 쳐도 독일은? 독일 대표팀은 안 해줄 거야?]


... 아버지는 한국인이지만 엄마는 독일-리히텐슈타인 이중국적.

파독 간호사 출신 외할머니가 독일-리히텐슈타인 이중국적의 외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해서 낳은 딸이 우리 엄마.


국적법 때문에 한국 국적은 포기하셨지만 결과적으로 한지온과 나는 선천적 삼중국적자가 되었다.

물론 한지온은 이제 곧 만 22세가 되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제외한 나머지 국적들을 포기하게 되겠지만.


“새삼스럽게 뭘. 우리 아버지 때문에 다른 선택지 없는 거 알잖아. 아버지가 평생을 걸고 도전하는 꿈이 있으시니까.”


아버지의 비참한 은퇴와 평생을 건 목표.

첫 번째 세계선에서는 불운한 마지막과 유언까지.

내게 다른 목표 같은 건 있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세계선부터는... 미션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이제 와서는 나도 미련이 남아서 이대로 물러날 순 없을 것 같다.


독일 대표할 거였으면 진작에 했어야지.


[알지!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을 담아 응원할 텐데 유니폼이 뭐든 아무 상관없지! 근데 빨리 보고 싶긴 해. 어릴 때부터 꿈이었잖아!]

“나도 빨리 월드컵 나가고 싶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면 안 되나?”


지난 세계선에서 다섯 번을 도전했는데 실패했으니까.

이번엔 1년에 한 번씩 스무 번이라도 도전하고 싶다.

스무 번 도전하면 8강에 세 번은 가겠지.


보통 이런 식이다.

이런 그럴 듯하게 들리기만 하고 실제로는 쓸데없는 대화를 한 시간씩 이어가는 거지.

연애할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꺄-아, 시간 좀 봐.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지? 형들 기다리는데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 봐!]

“어, 그래야겠다. 와, 너랑 통화만 하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 아! 만나서 데이트할 때도 그렇고.”

[후후... 요즘 하는 말마다 합격이네? 내가 진짜 많이 좋아하는 거 알지?]

“그럼. 알지.”


음...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나도 많이 좋아해. 알고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하는 이 기분과 시간이 너무 좋다.

익숙한 것들만 끊임없이 반복해온 인생에 십 수 년 만에 기분 좋은 낯섦이 찾아온 거니까.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긴장할 땐 긴장하고 풀어질 땐 풀어져야 한다.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미션에 대한 생각 때문에 24시간 내내 긴장을 풀지 못했으니까.

잠들 때조차 페널티 때문에 힘이 빡 들어갔고.


‘한 사람만 내 옆에 있어도 모든 게 해결되는데.’


지난 세계선의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하여튼 멘탈이 무너지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만 하게 된다.

여러 번 경험해봤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너무 늦진 않았죠?”

“너무 늦진 않았지. 이미 우리 집에 왔는데 늦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약속대로 만들어진 저녁 식사 자리.

장소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어서 가정이 가장 안정된 이안이 형의 집이었다.


“일찍 결혼하면 좋아요? 형이 스물셋에 했죠? 그럼 한지온 기준으로 1, 2년 안에 결혼하는 건데... 상상이 안 되네. 한지온이 가장이 되는 모습.”

“왜-에? 왜 그게 궁금한데-?”

“하하.”

“흐흐... 이안이 형, 다 알면서 왜 그래.”


아, 잘못 걸렸다.

이안이 형이 포문을 열고 조용히 앉아있던 이건이 형도 소리내어 웃고.

저 멀리 있던 강찬이 형은 급하게 달려와 식탁 위로 몸을 날리면서까지 한 마디 거들고.


“난 찬성이야. 리나라면 얼마든지. 리나처럼 좋은 애가 한리온을 데려간다는데 무릎 꿇고 감사 인사라도 해야지.”


화룡점정으로 한지온의 마무리.


“여기서 리나 이야기까지 했어?”

“그냥 형들이 물어보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했지. 딱 그 정도만 했어, 그 정도만.”


하긴. 하루에도 세 번, 세 시간씩 통화하는데 궁금해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리나가 나의 소꿉친구인 것처럼 한지온과도 어렸을 때부터 친했으니 아는 걸 대답 안 하기도 애매하고.


“근데 난 진심으로 추천한다. 만난 지도 오래 됐다며. 너한테 그런 표정을 짓게 하는 사람이면 나이가 몇이든 잡아야지. 내 경험이기도 해.”

“확실히 표정 엄청 좋아졌지? 어제 딱 보는데 형 연애할 때 생각나더라.”

“나도.”


역시 그런 건 숨겨지지 않나 보다.

이안이 형이 말을 꺼내자 강찬이 형, 이건이 형도 바로 동의하는 걸 보니.

심지어 한지온은 흐뭇하게 웃고만 있고.


“그렇게 날카롭고 예민하고 무뚝뚝하던 놈이 어제 봤지? 여자친구 한 번 만나고 오더니 바로 햇살처럼 따뜻해지는 거.”

“난 진짜 토할 뻔했잖아. 어색해서.”

“거의 태어났을 때부터 봐왔는데 나도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지.”

“이건이 형 말처럼 원래 저 정도는 절대 아니었어요. 리나랑 있을 때도 무뚝뚝한 놈이었는데 갑자기 왜 저렇게 된 거지?”


하루 종일 타겟 잡혀 놀림 받는데도 아무렇지 않다.

리나에게 받아온 따뜻한 기운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틀째인 오늘까진 꽉꽉 채워진 상태 그대로.


“그래서. 불만이십니까? 전처럼 할까요?”

“아니, 왜! 지금 보기 좋은데! 사람 냄새도 나고 딱 좋아. 이대로만 해.”

“어차피 이래봤자 경기 들어가면 똑같을 거면서. 넌 그것만 문제인데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전처럼 살아봤자 너만 힘들다. 까불지 말고 밥이나 처먹어라, 인마.”

“낄낄. 안 통하지, 안 통하지. 허접한 한리온아.”


아... 따뜻함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리나는 지금보다 자주 만나고 이 사람들은 좀 덜 만나야 할 것 같은데.

나의 건강한 멘탈을 위해서라도.


***


2005.07.21

프리시즌 매치

Mainz 4 : 2 St. Gallen

: 터크 25', 한리온 37', 시우바 49', 루만 84'

: 마라치 36', 하슬리 65'


[마인츠 프리시즌 종료. 좁혀지는 베스트 일레븐]

[리온, 터크는 이제 붙박이. 킴-아우어 경쟁에 바일란트-케이시-요바노비치로 구성될 듯]

[리온의 급성장과 킴, 루만 영입으로 순식간에 포화된 공격진. 케이시-요바노비치 중 한 명, 어쩌면 두 명 모두 처분 필요할 듯]

[공백이 있어도 주전은 문이안. 클래스가 다르다]

[바헤 2실점, 지온 무실점. 코리안 커넥션의 습격은 골키퍼 포지션까지?]




-라인홀트 버크만 (ARD 메인 캐스터)

[1차전에서 6:0으로 승리한 마인츠는 로테이션과 벤치 자원으로 경기에 나섰습니다. 분데스리가 개막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 중인 것 같은데 확실히 주전-벤치의 기량 차이가 보입니다.]

-게르트 루벤바워 (ARD 메인 해설자)

[중하위권 팀은 어쩔 수 없죠. 마인츠는 그중에서도 더 가난한 팀이라 더욱 어쩔 수 없고.]

-보도 일그너 (前 독일 NO.1 골키퍼)

[그래도 골키퍼 지온은 눈에 띄는군요. 드미르타스, 아벨, 아우어까지 젊은 선수들은 괜찮고.]


1차전에서 6:0으로 이겼으면 홈&어웨이고 뭐고 끝이다.

다음 라운드 진출도 100% 확정이라고 보면 되고, 리그 득점왕과 관련도 없고.

출전 명단에서 빠진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 뒤 조용히 벤치에 앉았다.


‘리그였으면 지랄했을지도.’


아마 100% 그랬겠지.


[지난 시즌 주전이었던 바바츠, 거버, 아우어 같은 선수들도 최선을 다하고는 있는데 경기력 차이는 분명 보입니다. 교체 투입된 킴이 특유의 스피드와 돌파로 활력을 불어넣고 있지만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금 불공평하긴 하죠. 같이 뛰는 선수들의 수준이 다르니까. 다만, 아슈타라크가 완전히 포기한 상황에서 70분까지 1:0은 아쉽긴 해요.]

[심지어 지금 리온이 투입을 준비 중이죠. 만약 리온이 투입되고 골까지 터진다면 경쟁은 끝입니다. 안 그래도 많이 기울었는데. 리온과 킴은 뒷공간 침투에 특화된 선수들이라 아슈타라크 입장에선 최악의 상대고.]


“너 잘하는 거 해라. 딱 좋은 상황이니까.”

“그러게요. 딱 좋네요.”


등짝에 전해지는 클롭의 강렬한 응원을 받으며 아우어와 자리를 바꾼다.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뒷공간이 저렇게 넓은데.’


상대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기량 차이도 확연하고.

그런데 이걸 왜 못 털지?


<오늘은 안 당한다.>

“뭐라는 거야.”


아르메니아어는 아예 독립적인 언어라 6개 국어, 7개 국어를 해도 못 알아듣는다고.

아우어를 상대할 때와 달리 바짝 붙어 시선을 떼지 않는 걸 보면 나의 라인 브레이킹을 경계하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몰라서 당하는 게 아니라고.’


인자기가 얼마나 롱런했는데.

신경만 쓴다고 막을 수 있었으면 인자기 같은 선수는 2년 뛰고 아웃이다.


[계속해서 강하게 밀어붙이는 아슈타라크. 하지만 중앙에서 거버가 뺏어내고 왼쪽! 바이게르트가 한 번에 길게 찔러줍니다! 리온! 킴!]


라인 브레이킹은 찰나의 예술.

끊임없는 페이크와 움직임, 순간적이고 기습적인 침투, 수비수의 시야와 집중력을 파악하는 눈치가 핵심.


‘이렇게.’

<아악! 잡아!!>


이런 능력들을 갖추었다면 수비가 바로 옆에 붙어있어도 얼마든지 뒷공간을 털어버릴 수 있다.

지금처럼.


[또 한 번의 무시무시한 침투! 수비 두 명이 따라붙지만 리온이 무조건 빠릅니다!]


라인을 한껏 끌어올린 상황에서 수비의 타이밍까지 빼앗았으니 생각보다 여유로운 상황.

수비 두 명과 골키퍼가 나만 바라보고 있지만 그래도 어려울 건 없다.

수비 두 명은 한 발 이상 떨어져있고 골키퍼 혼자 커버하기에 골대는 너무 넓으니까.


그러나.


‘어차피 리그도 아니니까.’


그리고 필드 위에서만큼은 한국 선수들의 적응을 도와주겠다고도 했으니까.

의도적으로 속도를 살짝 늦춘 채 몸을 돌려 왼쪽 측면으로 움직였다.


‘지금.’


그렇게 수비를 최대한 끌어들인 뒤.

발목만 확 꺾어서 반대편으로 빠른 스루패스.


[수비 끌어들이고 반대편으로! 킴! 1on1!]


그렇게 만들어진 김강찬 형의 일대일 찬스.

선수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이런 건 넣어야지.


‘이런 것도 못 넣으면 도와줄 가치도 없는 거고.’


천하의 한리온이 골까지 포기하고 넘겨준 기회다.

못 넣으면 아주 많이 피곤해질 거야.


[한 번 더 치고 오른발! Tore! 킴 역시 두 경기 연속 골! 리온과 킴, 두 명의 한국산 공격수가 시즌 초반 마인츠의 공격을 이끌어갑니다!]

[리온이 이런 어시스트도 할 줄 아네요? 어려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 패스는 상당히 깔끔했거든요?]

[생각만큼 단순한 선수는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분데스리가 팀들도 머리가 복잡해지겠습니다.]


“한리온, 이 자식! 너 내가 완전히 용서했다. 이걸로 다 용서했어.”

“네, 고맙네요. 아주.”


용서만 완전히 하지 말고 적응도 완전히 해줬으면.

이제 곧 개막이고 월드컵까지 대략 11개월.

시간이 많지 않다고.




2005.07.28

UEFA컵 1차 예선 2차전

Mainz 3 : 0 Ashtarak

: 루만 38', 김강찬 71', 거버 88'

: .


1.FSV Mainz 05, UEFA컵 2차 예선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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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미쳐버린 아들의 사회생활 +1 24.08.27 269 17 11쪽
24 탐욕과 집념 24.08.26 292 19 11쪽
23 타임어택 24.08.25 326 18 11쪽
22 지긋지긋한 도전 24.08.24 338 18 12쪽
21 나는 집착한다 +1 24.08.23 348 19 12쪽
20 전성기의 팀을 상대할 땐 24.08.22 404 18 12쪽
19 배고픔 +1 24.08.21 411 19 12쪽
18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1 24.08.20 427 21 11쪽
17 그녀의 품 안에서 +1 24.08.19 474 24 12쪽
» 따뜻한 마음으로 +1 24.08.18 463 21 12쪽
15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3 24.08.17 479 21 13쪽
14 당신들이 적응해야지 24.08.16 493 24 13쪽
13 최고의 시작 +1 24.08.15 549 22 12쪽
12 축구만 잘해주면 +2 24.08.14 561 23 13쪽
11 마인츠 5형제 어셈블 +1 24.08.13 623 23 15쪽
10 마지막 컨셉 +2 24.08.12 653 25 13쪽
9 또 한 명 재꼈다 +2 24.08.11 668 26 13쪽
8 기분 좋은 날의 시작 +1 24.08.11 726 23 12쪽
7 나의 도시에서 24.08.10 796 25 13쪽
6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24.08.10 865 23 12쪽
5 충분한 시간, 20분 +1 24.08.09 910 24 12쪽
4 여유는 없다 +2 24.08.08 1,045 29 11쪽
3 이번에야말로 자신 있다 +2 24.08.07 1,269 35 13쪽
2 이런 게 총체적 난국이라는 건가 +6 24.08.06 1,550 31 11쪽
1 익숙한 모습이었다 +12 24.08.06 1,833 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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