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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크 님의 서재입니다.

미쳐버린 아들이 축구는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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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크
작품등록일 :
2024.08.06 21:38
최근연재일 :
2024.08.29 23:41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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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8
추천수 :
606
글자수 :
136,818

작성
24.08.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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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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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최고의 시작

DUMMY

지난번에 라커룸에서 한 번 스윽 질렀던 게 도움이 된 걸까.

그게 형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걸까.


“후후, 어떠냐? 나도 오늘은 주전이다!”


포지션 경쟁자들과 기량을 비교했을 때, 강찬이 형은 사실 주전이 될 확률이 높았다.

공격수가 원래 비싸기도 하고 클롭은 쓰리톱을 선호하는데 오른쪽 윙이 빈약하기도 했고 해서.

플레이스타일이 역습과 찰떡인 것도 크고.


“형은 당연히 주전이어야죠. 한국의 피를로인데.”

“하하하, 그렇지, 그렇지. 그게 내 별명이지. 왠지 네 말은 빈말이 아닌 것 같아. 그런 건 좋네.”


하지만 이안이 형은 아니다.

마인츠의 3선은 확고한 주전 안토니오 다 시우바 다음으로 기존 파비안 거버, 크리스토프 바바츠, 데니스 바일란트에 새로 영입된 페트르 루만, 밀로라드 페코비치, 톰 가이슬러가 이안이 형과 함께 경쟁하는 치열한 자리.

새로 영입된 선수만 네 명이나 될 만큼 빡센 자리다.


“6개월 실전 공백을 열흘 만에 극복한 사람에게 빈말 같은 건 필요 없죠.”

“크으, 더. 더 해봐! 나의 노력을 조금 더 알아줘봐!”


음... 상대도 상대고 시기도 시기라 주전 확정까진 당연히 아닐 텐데.

물론, 짧지 않은 공백이 있음에도 오늘 같은 날 주전으로 나섰다는 게 의미심장하긴 하지만.


반대로 그 공백 때문에 조금만 부진하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100%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이유로 기회가 미뤄지기도 쉽고.


그만큼 중요한 시기라는 걸 본인도 알아서 이런 식으로 긴장을 푸는 걸까.

그나저나...


“형도 알면 알수록 강찬이 형이랑 비슷하네요. 세세하게 보면 많이 다르지만 결이 비슷한 것 같은데.”

“헐!! 그게 무슨 말이야? 당장 취소 안 해!?”


순정만화에 나오는 고귀하고 예쁜 미소년 귀족처럼 생겼는데 말이나 행동이나 보면 영락없는 조기축구 아저씨.

완전 깡촌에서 어렵게 자랐다는 건 아는데 시골 출신이라고 다 투박한 건 아니니까.


‘너무 예쁘게 생겨서 괴롭힘이라도 당한 건가. 축구부 선배들한테.’


차라리 이쪽이라면 설득력이 있다.

원래 운동부라는 게 별 이상한 이유로도 죽어라 괴롭히는 이상한 집단인 건 전 세계 공통.

이안이 형 세대의 한국이면 꽤 심했을 거다.

예쁘장한 꽃미남이 품위까지 지켜가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뭐냐? 무슨 생각하는 건데? 왜 그렇게 불쌍한 눈으로 봐? 김강찬 닮으면 불쌍한 게 맞는데 난 아니라니까?”


그냥 원래 그런 성격일 수도 있고.

안쓰러우니 가볍게 혀를 차며 조용히 자리를 벗어난다.


“야! 말은 하고 가! 찝찝하다고!”


한지온도 애써 웃음을 참으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이건이 형도 무표정하게 다가가 반대편 어깨를 따뜻하게 잡아준 뒤 본인 라커로.


“형. 이제 그만 받아들여.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우린 동족이야.”

“야. 차라리 욕을 해. 욕을 하라고!”


강찬이 형만 옆에 남아 실실 웃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저 형은 손해 볼 것 없지.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쟤들 뭐하는 건데?”

“몰라. 한국어로 해서. 근데 표정이랑 소리만 들어도 재미있는데?”

“한국인들은 다 저런가? 재미있게 노네?”

“덕분에 라커룸 분위기 좋잖아. 잘 데려온 것 같아.”


갑자기 등장해 시즌 첫 공식전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

팀 내 입지야 언제나 유동적인 거지만.

동아시아의 축구 변방에서 단체로 넘어와 로스터를 차지하면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없었다.


‘상황 좋고 흐름 좋고.’


이제 결과만 좋으면 된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


"할아버지! 빨리요! 빨리 들어오세요!"

"하하하, 알았다. 너무 뛰지는 말고 조심하렴, 엘라."


리온의 단골 과일가게 사장님, 한스 렐.

그는 2005/06시즌 마인츠의 첫 번째 공식전이자 홈경기를 맞아 슈타디온 암 브루히베크를 찾았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된 귀여운 손녀와 함께.


"아빠! 아빠 같이 가요! 왜 이렇게 빨라..."

"너는 인마. 제일 팔팔해야 할 나이에 왜 자꾸 처져? 이제 서른 된 놈이!"


한스 렐의 나이는 올해로 52세.

아들인 로만 렐이 30세, 손녀인 엘라 렐은 8세.


"아빠가 지나치게 건강하신 거지. 나보다 운동량도 훨씬 많고."

"자랑이다. 사무직이면 쉴 때 운동을 하든지. 서른에 그 꼴이면 시간 없고 피곤해도 해야지."

"아빠 운동해! 너무 약해!"


덕분에 손녀와 충분히 놀아줄 힘이 있다는 게 한스의 첫 번째 자랑이었다.

아들이 일부러 약한 척해주는 것도 있겠지만, 매일 새벽 과일도 직접 떼어 올 만큼 그가 건강한 것 역시 사실이니까.


"할아버지, 할아버지! 오늘은 우리가 이기겠죠? 우리 작년에 너무 못 이겼어!"

"하하하, 글쎄? 그래도 오늘은 당연히 이기지!"


한스도 지금 손녀 나이쯤 되었을 때 마인츠의 팬이 되었다.

그가 기억하는 마인츠는 60년대 초반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 2부와 3부리그를 오가다가 재정 문제로 10년간 아마추어리그까지 강등된.

80년대 중반에야 3부리그로 복귀한 뒤 90년부터 겨우 2부리그 붙박이가 된 클럽이었다.


그런 팀이 기어이 역사상 최초의 분데스리가 승격을 이뤄내고 첫 시즌 11위에 UEFA컵 진출권까지 따냈으니...

이제 고작 8살인 그의 손녀와는 상황이 달랐다.

지금 이 정도만 해도 마인츠는 한스의 두 번째 자랑이었다.


"마인츠의 UEFA컵 홈경기를 직관하게 될 줄이야... 이게 꿈인가 싶다."

"저도 그래요, 아빠. 저도 아마추어 시절부터 보기 시작했잖아요."


이는 아들인 로만 역시 마찬가지.

아직 조별리그도 아니고 1차 예선일 뿐이지만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대부분의 마인츠 팬들이 비슷한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다가 3차 예선까지 통과해서 조별리그라도 나가면 다들 쓰러지는 거 아닐까요?"

"쓰러질 땐 쓰러지더라도 그건 꼭 보고 싶구나."


마인츠는 이미 팬들의 자랑이 되었지만.

1을 받으면 2를 원하고, 또 3을 원하게 되는 게 인간의 심리.

기나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찾아온 마인츠의 전성기.

팬들은 아직도 배가 고팠다.




<UEFA Cup QF 1st Round 1st leg>


1.FSV Mainz 05

터크-한리온-김강찬

문이안-페코비치-다 시우바

바이게르트-노베스키-프리드리히-선이건

바헤


MIKA Ashtarak

아다미안

아사트리안-마디에프-모로조프-아다미안

다브티안

멜로얀-호바니시안-타마지얀-미카엘리안

호바니시안



<ARD>

-라인홀트 버크만 (ARD 메인 캐스터)

[2005/06시즌의 시작입니다. 이번에 또 신선한 팀이 티켓을 따내지 않았습니까?]

-게르트 루벤바워 (ARD 메인 해설자)

[이게 페어플레이 제도의 특징이죠. 전력과 관계없이 파울과 카드가 적으면 유럽대항전 출전이 가능하다는 것.]

-보도 일그너 (前 독일 NO.1 골키퍼)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안 듭니다만, 클롭의 축구를 큰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게 기대는 됩니다.]


당연히 분데스리가 중계권과 유럽대항전 중계권은 별도 구매였다.

독일에서 가장 큰 방송사인 ARD는 두 가지 중계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A매치 중계권까지도 형제 채널인 공영방송 ZDF와 나눠가진 상태였다.

BBC를 제치고 유럽 내 수신료 수익 1위, 매출액 역시 BBC를 넘어 NHK까지 넘어서는 거대 공영방송이 바로 ARD였으니까.


그렇다 해도 중계권료는 결코 작지 않은 돈.

그 돈이 아까워서라도 최대한 많은 경기를 중계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ARD 역시 주목도가 많이 떨어지는 오늘 경기를 메인 채널에서 송출했다.


인지도와 인기 모두 부족해 지역채널 중계가 대부분인 마인츠에게 메인채널 중계는 아주 큰 기회였다.


[본인들의 홈구장 슈타디온 암 브루히베크가 아닌 프랑크푸르트의 발트 슈타디온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게 변수이긴 합니다.]

[슈타디온 암 브루히베크가 실제로는 20,300명까지 수용 가능하지만 UEFA 규정에 따르면 10,400명으로 제한되니까요. 발트 슈타디온은 38,000명까지 들어올 수 있으니 네 배에 가깝죠.]

[거리도 편도 40km밖에 안 되니 큰 손해는 없습니다. 조금 어색하다는 것만 빼면 티켓 수익, 함성 소리 등 이득만 있죠.]


마인츠의 바로 옆 도시인 프랑크푸르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전통적인 강호였지만, 유럽대항전을 치른 건 10년 전이었다.

마침 상황도 이렇게 되었으니 쿨하게 홈구장을 대여해준 프랑크푸르트의 호의 역시 큰 기회.

가난한 클럽에게 네 배의 유럽대항전 티켓 수익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UEFA컵에서 오래 버텨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만큼.


앞으로 강한 팀을 만나게 된다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게 오늘은 아니었다.



* 위르겐 클롭 (마인츠 감독)

: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순간입니다! 우린 승격 첫 시즌 강등을 피했을 뿐 아니라 11위에 올랐고 UEFA컵 티켓까지 따냈죠. 마치 우승한 것만 같다니까요!?

: 행복이 기대로 대체된 이상 힘든 시즌이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린 할 수 있어요. ‘축제의 도시’, ‘독일의 카니발 수도’는 다시 한 번 축제를 벌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 아르멘 아다미안 (아슈타라크 감독)

: 우리의 앞길이 가시밭길임을 알고 있다. 가장 큰 벽은 심리적인 압박감이며 상대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운만 따라준다면 우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클롭 감독의 말처럼 마인츠는 실제로 축제를 벌이는 중입니다. 2차전 아르메니아 원정 때 서포터즈의 호텔 비용을 대신 지불하겠다고 발표한 것처럼요.]

[‘축제의 도시’다운 결정이었죠. 가난한 클럽이지만 축제를 위한 지출은 전혀 아끼지 않아요.]

[인터뷰를 들어보니 클롭은 앞으로의 고난을 이미 예상한 것 같군요. 모르고 맞는 것보다는 알고 맞는 게 훨씬 낫긴 할 겁니다.]


마인츠라는 낯선 팀의 경기를 시즌 첫 공식전 중계로 송출하는 상황.

다양한 자료를 준비한 덕분에 뷰어십의 큰 이탈 없이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렸고, 중계진과 방송팀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만 시작되면 채널이 돌아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마인츠는 생각보다 강합니다. 클롭 감독이 팀을 워낙 잘 만들어놓은 덕분에 UEFA컵에서도 돌풍을 기대해볼만합니다.]

[적어도 예선 1라운드 정도는 가볍게 뚫을 수 있죠.]

[승리는 당연한 거고 재미도 당연한 거고. 경기력이 중요하죠. 독특하게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을 다수 영입했는데 이게 과연 좋은 선택일지도 봐야 하고.]


중계진은 경기의 재미와 승리만큼은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어봐도 이들이 얼마나 확신에 차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만.


[어? 어어!? 이안이 길게 때려주고 날카롭게 침투하는 리온! 리온! 리온!? 와... 들어갔습니다. 지금 몇 초죠? 30초는 됐나요?]

[내부 평가전에서도 47초 만에 골을 넣었다더니... 와...]

[방금은 진짜 골 사냥꾼의 정석과도 같은 골인데요. 경기력, 한국선수 영입 효과, 제가 의심했던 모든 걸 30초만 만에 증명해주네요. 민망하게.]


그들의 확신보다도 빠르게 결과가 나왔을 뿐.

그저 그뿐이었다.


작가의말

Jestal 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바탕화면에 태극기를 띄워놓고 있었습니다.

광복절이라 그런 건지 기분이 뭔가 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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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밀렵꾼은 인내한다 24.08.28 239 13 11쪽
25 미쳐버린 아들의 사회생활 +1 24.08.27 269 17 11쪽
24 탐욕과 집념 24.08.26 292 19 11쪽
23 타임어택 24.08.25 325 18 11쪽
22 지긋지긋한 도전 24.08.24 338 18 12쪽
21 나는 집착한다 +1 24.08.23 347 19 12쪽
20 전성기의 팀을 상대할 땐 24.08.22 403 18 12쪽
19 배고픔 +1 24.08.21 410 19 12쪽
18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1 24.08.20 426 21 11쪽
17 그녀의 품 안에서 +1 24.08.19 473 24 12쪽
16 따뜻한 마음으로 +1 24.08.18 463 21 12쪽
15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3 24.08.17 478 21 13쪽
14 당신들이 적응해야지 24.08.16 492 24 13쪽
» 최고의 시작 +1 24.08.15 549 22 12쪽
12 축구만 잘해주면 +2 24.08.14 560 23 13쪽
11 마인츠 5형제 어셈블 +1 24.08.13 622 23 15쪽
10 마지막 컨셉 +2 24.08.12 653 25 13쪽
9 또 한 명 재꼈다 +2 24.08.11 667 26 13쪽
8 기분 좋은 날의 시작 +1 24.08.11 726 23 12쪽
7 나의 도시에서 24.08.10 795 25 13쪽
6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24.08.10 865 23 12쪽
5 충분한 시간, 20분 +1 24.08.09 910 24 12쪽
4 여유는 없다 +2 24.08.08 1,045 29 11쪽
3 이번에야말로 자신 있다 +2 24.08.07 1,268 35 13쪽
2 이런 게 총체적 난국이라는 건가 +6 24.08.06 1,549 31 11쪽
1 익숙한 모습이었다 +12 24.08.06 1,831 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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