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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크 님의 서재입니다.

미쳐버린 아들이 축구는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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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크
작품등록일 :
2024.08.06 21:38
최근연재일 :
2024.08.29 23:41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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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2
추천수 :
606
글자수 :
136,818

작성
24.08.06 22:20
조회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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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이런 게 총체적 난국이라는 건가

DUMMY

쓴웃음을 지으며 욕실로 들어와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미션의 페널티는 대략 두 개 정도인데, 그중 하나가 부모님의 얼굴.

가끔 뜬금없이 아버지와 엄마의 얼굴 위로 돌아가셨을 당시의 마지막 모습이 겹쳐 보였다.


‘처음에는 진짜 기절 직전까지 갔었지.’


두 번째 페널티는 꿈.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순간을 포함해 인생 최악의 순간들이 종종 꿈으로 재현된다.


이건 첫 번째 페널티보다 훨씬 자주 겪는 일이다.


‘중요한 경기나 일정 앞두고 그런 꿈 한 번 꾸면 아침부터 기분 확 잡치는데. 심리적인 문제인 건지 결과도 딱히 좋진 않았던 것 같고.’


두 개의 페널티 모두 사람의 심리를 크게 건드리는 것들.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겪다 보니 사람이 미쳐가는 과정을 누구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정신과 전문의, 심리학 전문가들 못지않을 거라 확신할만큼.


그리고 자칭 전문가인 내가 봤을 때.


‘지금의 난 100% 미친놈이지.’


적어도 정상은 절대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님의 사망 당시 얼굴을 종종 봐야 하고, 꿈에서는 두 번의 인생을 사는 동안 쌓인 최악의 기억들만 리플레이하는데 제정신일 리가.


결국, 뇌가 결단을 내린 건지 모든 감정이 무뎌져 버렸다.

그대로 두었으면 100% 망가졌을 나를 어떻게든 살려내기 위해 그랬겠지.

상황을 머리로는 이해하니까 아예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데 감정의 폭 자체가 좁아졌다.


그래도 이 정도에서 끝난 게 천만다행이긴 하다.

일반인 코스프레는 충분히 가능한 수준에서 안정을 찾았으니까.

감정이 무뎌지긴 했으나 남들이 언뜻 봤을 때 큰 문제는 없는 수준.

이 정도면 됐다.


'무엇보다 신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한숨을 푹 내쉬면서 샤워기로 정수리부터 물을 뿌린다.

처음 겪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신은 차려야 하니까.


차갑다.

뼈가 시릴 만큼 차가운 물 때문에 찌릿찌릿한 이 기분.

감정의 기복이 거의 사라진 삶이다 보니 이런 순간들이 꽤 반갑다.

그래서 찬물 샤워를 좋아하게 된 걸까.


'빨리 끝내고 나가서 준비해야지. 머릿속에 넣어둔 것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찬물 샤워를 좋아하긴 하지만 시간이 없다.

두 번째 회귀를 예상한 만큼 철저하게 준비해왔으니까.

이때의 내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어떻게 하면 의심과 걱정을 피할 수 있을지, 이 시기에 개인, 가족, 팀, 국가, 세계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행착오를 피하기 위해 준비해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세 번째 삶, 두 번째 리셋, 마지막 기회인만큼 시행착오 따위로 낭비할 시간 따윈 없으니.


3개 빅리그 득점왕, 월드컵 역대 최다 골, 월드컵 4강 1회 혹은 8강 3회 진출..


‘시행착오까지 겪어가며 해내기엔 너무 빡세지.’


여기까지 오니까 그냥 악의로만 가득 찬 미션 같기도 하고.

처음부터 선의 따위는 1%도 없었던 게 아닐까.

모르겠다.

사람 하나가 이렇게까지 피폐해지는데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다면 대성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사이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거칠게 털어냈다.

동시에 복잡한 생각들도 전부 털어냈다.

고민해봤자 달라질 건 없으니까.

어차피 취소할 수도 없고 취소해서도 안 되는 미션이니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이 미션을 성공한다 해도 다시 멀쩡해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어쩔 수 있나.

5년을 꼬박 투자해 마지막 도전을 준비했는데.

정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5년이 뭐야. 10년, 15년, 20년도 투자할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성공이 먼저다.


***


역시 사람은 준비를 해야 한다.

샤워 후 부모님과 적당히 대화를 나눈 뒤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주 약간의 어색함도 없었거든.


나름대로의 만족감을 느끼며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부팅했다.

느끼는 감정의 크기 자체가 터무니없이 작아진 지금은 이런 소소한 만족감도 반갑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소소한 감정만 느낀다는 것도 정상은 아닐텐데.

그렇게 됐다.


‘한인수 제1호 최고 과학자 선정, 국적법 개정안 부결, 주 5일 근무제 전국 실시..’


미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쓸데없는 생각들은 던져버리고.

인터넷으로 현 상황이나 한 번 더 점검했다.


2005년 6월의 핫이슈들은 무엇이 있는지.

두 번째 커리어를 2026년에 마치고 돌아왔으니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했어도 21년은 만만치 않은 시간.

한 번 더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사형제 폐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취임 등.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독일의 총리와 한국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있었고, 런던 지하철 폭탄테러도 있었고.


다만, 내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들은 따로 있었다.

이제 곧 ‘한국축구의 자존심’이 될 최승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지난 5월 독일 월드컵 진출에 성공하며 6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뤄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리오넬 메시의 바르셀로나 데뷔 골 등등이 그것.


‘중요한 만큼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들이긴 하지만.’


이 시기를 사는 것만 세 번째지만, 첫 번째 세계선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두 번째 세계선은 뚜렷하게 기억한다.

실패를 직감한 이후부터 꾸준히 마지막 도전을, 그러니까 이번 생을 준비해왔으니까.


특히 축구계의 주요 사건들은 빠삭하게 조사했다.

미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만큼 한국축구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고.

다행히 기억 속 그대로 한국축구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2002년부터 2010년까지가 한국축구의 전성기.


'이후 고꾸라지긴 하지만 내가 있고 아버지도 계시니 극복할 수 있어.'


2006년 월드컵 16강, 아시안게임 금메달만 따내도 병역특례가 더블.

선수의 성장에 있어 군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대충 극복이 가능하다.

일단 첫 번째 목표는 2006년 월드컵 참가와 16강 진출로 해둘까.


'좋아. 조사해온 것과 완벽하게 똑같아.'


조사하고, 또 조사하고, 다시 외우고.

그렇게 철저히 준비했는데 완벽하게 똑같아야지.


그때부터 확신을 가지고 문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하고 외워왔어도 인간인 이상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두 번째 세계선만 해도 20년이니 굉장히 방대한 양이었다.

정말 목숨 걸고 외웠는데도 빡셌을 만큼.


그래도 그렇게 외우니 기억이 나긴 한다.

축구계의 주요 사건, 시기별로 기회받기 좋은 팀,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터지기 전 소속팀 등.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완벽하게 기억하는 중.

인간의 잠재력이란...


'두 번째 세계선에서도 나름 훌륭한 커리어를 보내긴 했지만.'


3개 빅리그 득점왕에 발롱도르 포디움 1회, 월드컵 득점왕 1회.

월드컵 8강 진출도 1회 있으니 가능성은 확인했다.

초반에 멘탈이 터져 흘려보낸 시간만 아니었다면 혹시 몰랐을 만큼.


그러니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그걸 위해서 인간의 잠재력까지 최대한 발휘해가며 준비한 거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길이의 문서를 쉬지 않고 작성해나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지만 검토까지 완벽하게 문서 작성을 끝낸 뒤.

마침 식사 준비가 끝났다는 엄마의 부름에 식탁으로 향했다.

열심히 연습한 밝은 표정과 은은한 미소를 띄운 채로.


“아버지. 형들 집은 다 구했어요? 계약도 끝나고?”

“집은 다 구했다. 이제 볼일 다 마치고 날 잡아서 이사만 끝내면 돼.”


식탁에 앉자마자 아버지에게 질문을 건넨다.

은퇴 후 마인츠 유스팀 감독에 이어 2군 감독까지 맡으며 지도자 코스를 밟던 아버지는 현재 에이전트로 진로를 수정한 상태.

에이전시까지 직접 설립한 대표라서 한창 바쁠 시기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나도 소속선수 중 한 명이었고.

우리 형도.


“이안이나 강찬이나 외로움 많이 타는 성격이라니까 너도 좀 챙겨줘라. 지온이한테도 말해 놨다.”

“형이 잘 챙기겠죠. 이건이 형도 있고.”


아버지는 나와 형을 포함해 한국선수 다섯 명을 데리고 있는데, 이번 이적시장을 통해 놀랍게도 다섯 명 다 마인츠 소속이 되었다.

세컨 골키퍼였던 형은 다음 시즌부터 NO.1 경쟁을 시작할 테고, 나는 아직 2팀 소속 유망주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마인츠 소속인 건 맞으니까.


우리 형은 나와 달리 외향적인 사람이라 알아서 잘 챙기더라.


"그래도 도와는 줄게요. 필요하다고 하면."


한국선수들이 성장하면 미션에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들을 위해 주도적으로 행동하진 않겠지만, 아버지와 형을 도와줄 순 있다.

그게 이번 세계선에서 두 사람에게 내준 역할이기도 하고.


멋대로 맡긴 거지만 원래 그런 성격이니 이번에도 알아서 잘 할 거다.

나는 내 축구만 하기에도 바쁘다.


“왜요?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믿음직한 형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식사를 이어가려는데 아버지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다.

엄마도 마찬가지였고.


“네가 다른 사람 신경 쓴다는 게 좀 신기해서? 아주 조금이지만 성장은 했구나.”

“그러게. 한국 형들 왔다고 우리 둘째 기분이 많이 좋나 봐, 여보.”


아.. 이건 좀 변수인데.

그것까지 생각해서 형에게 미루고 퉁명스레 대답한 건데 이 정도로도 깜짝 놀란다니.

아무 일 없었던 첫 번째 세계선에서도 어지간히 남들한테 관심 없었구나.


“그냥... 팀원들이 도와주면 기회도 더 많아질 테니까요. 그게 끝인데.”


그래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까진 아니다.

미션 달성이 좌절된 이후 두 번째 생의 마지막 5년은 통으로 투자해 준비했는데 이 정도 변명 쯤이야.


“그래. 우리 막내도 성장을 하는...”

“흑! 엄만 너무 감동이야! 애들은 왜 이렇게 빨리 크지?”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잡은 채 눈물까지 글썽일 정도로 감동한 엄마.

잘 넘어간 것 같긴 한데 저 정도로 감동할 일인가 싶다.

지금의 나는 사람의 평범한 감정이 어떤 건지 좀 헷갈려서 더더욱 모르겠다.


‘하필 이 타이밍에...’


게다가 완벽한 타이밍에 바뀌어버린 부모님의 얼굴.

돌아가실 당시의 모습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동한 엄마.


이건 알겠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총체적 난국이라 부르잖아. 맞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Lv.41 한방인생
    작성일
    24.08.06 22:53
    No. 1

    주인공 혼자가 아니라 대표팀 생각해서 여러명 성장시키나 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ap***
    작성일
    24.08.13 00:46
    No. 2

    처음 날치기로 읽었을때 부모님 얼굴이 매순간 죽은 시점의 얼굴인걸로 읽어서 페널티 너무 강하네 싶었는데 그건 아니라 다행 ㅋㅋㅋ
    언제나 완결까지 믿고 보는 취향저격인 작가님이라 다시 따라가봅니다.
    그리고 그 카드뽑아서 패시브스킬 받던 농구작품도 언젠가 리메해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유세이
    작성일
    24.08.13 07:03
    No. 3

    순식간에 3년이 지난 건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종강이
    작성일
    24.08.13 12:26
    No. 4

    일단 초반만 보면 설정과다긴 한데 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7 하아늘지기
    작성일
    24.08.16 00:09
    No. 5

    낭사필 이후 쭈욱 팔로잉 중인데 가족의 가치를 참 소중히 생각하는 듯한 작가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강고리
    작성일
    24.08.20 22:35
    No. 6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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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버린 아들이 축구는 잘한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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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연재 중단 공지입니다 +3 24.08.29 345 5 1쪽
26 밀렵꾼은 인내한다 24.08.28 240 13 11쪽
25 미쳐버린 아들의 사회생활 +1 24.08.27 269 17 11쪽
24 탐욕과 집념 24.08.26 292 19 11쪽
23 타임어택 24.08.25 326 18 11쪽
22 지긋지긋한 도전 24.08.24 338 18 12쪽
21 나는 집착한다 +1 24.08.23 348 19 12쪽
20 전성기의 팀을 상대할 땐 24.08.22 403 18 12쪽
19 배고픔 +1 24.08.21 411 19 12쪽
18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1 24.08.20 426 21 11쪽
17 그녀의 품 안에서 +1 24.08.19 474 24 12쪽
16 따뜻한 마음으로 +1 24.08.18 463 21 12쪽
15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3 24.08.17 479 21 13쪽
14 당신들이 적응해야지 24.08.16 492 24 13쪽
13 최고의 시작 +1 24.08.15 549 22 12쪽
12 축구만 잘해주면 +2 24.08.14 561 23 13쪽
11 마인츠 5형제 어셈블 +1 24.08.13 622 23 15쪽
10 마지막 컨셉 +2 24.08.12 653 25 13쪽
9 또 한 명 재꼈다 +2 24.08.11 668 26 13쪽
8 기분 좋은 날의 시작 +1 24.08.11 726 23 12쪽
7 나의 도시에서 24.08.10 796 25 13쪽
6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24.08.10 865 23 12쪽
5 충분한 시간, 20분 +1 24.08.09 910 24 12쪽
4 여유는 없다 +2 24.08.08 1,045 29 11쪽
3 이번에야말로 자신 있다 +2 24.08.07 1,269 35 13쪽
» 이런 게 총체적 난국이라는 건가 +6 24.08.06 1,550 31 11쪽
1 익숙한 모습이었다 +12 24.08.06 1,833 4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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