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모습이었다
익숙한 꿈이다.
‘... 유감입니다.’
월드컵 신화의 여운으로 가득했던 2002년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떤 약물중독자가 운전하던 차량이 어머니를 덮쳤다는,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정신이 반쯤, 아니, 전부 나간 채 병원으로 달려온 우리를 맞아준 건 어두운 표정의 의료진.
‘......’
‘......’
그리고 처참한 컨디션으로 누워있는 엄마.
‘리, 리나---!!!!!’
아버지는 그 자리에 무너진 채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엄마의 이름만 끊임없이 되뇌면서.
그렇게 며칠 뒤, 우리 가족의 유일한 분위기메이커였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멀쩡한 게 없는 처참한 상태로.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주었지만, 약물중독자가 운전하는 차량은 그만큼 무서웠다.
평생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조금도 잊어버리지 못할 만큼.
그렇게 엄마가 떠난 뒤, 아버지는 일에 미쳤다.
유일한 분위기메이커이자 구심점이 떠나가면서 남겨진 남자 세 명은 점점 피폐해져갔는데 그중 가장 심했던 게 아버지.
일에 미쳐 살고, 시간이 빌 때마다 엄마를 찾아가고.
점점 폭음이 심해지고, 안 피우던 담배까지 하루 두 갑을 태우고.
‘... 유감입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자 이번엔 아버지가 쓰러졌다.
슬픔에 빠져 살면서 과로, 폭음, 흡연...
걱정이야 항상 했지만 1년 반 만에 속이 다 망가져서 쓰러지실 줄이야.
어떻게 손도 써보기 힘들 만큼 내부가 급격히 망가져 쓰러진 만큼 돌아가실 땐 아버지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엄마의 상태가 외과적으로 심각했다면 아버지의 상태는 내과적인 문제.
피부색, 붓기, 체중...
어떻게 보면 엄마의 마지막 모습보다도 충격적이었고, 마찬가지로 평생 잊을 수 없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들이 번갈아 나온 뒤 자연스럽게 페이드 아웃되는 화면.
분명 꿈인데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선명하고, 페이드 아웃마저 자연스럽다.
다만, 놀랍진 않았다.
처음이 아니라서.
<MISSION>
1. 4대 리그 중 3대 리그 이상에서 득점왕
2. 대한민국 소속으로 월드컵 역대 최다 골
3.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 or 8강 3회 이상 진출
- 세 번의 기회 중 세 번째
: 세 개 이상 달성 시 페널티 삭제 후 유지
: 세 개 미만 달성 시 MISSION 전으로 복귀
***
이 오프닝을 또 보는구나.
MISSION은 한없이 심각한데 무슨 게임처럼 꿈을 통해 오프닝을 보여주더라.
이미 한 번 회귀했다가 실패했고 한 번 더 회귀할 것도 알고 있었으니 놀랍진 않았다.
은퇴 직후 돌아온다는 것도 예상했던 참이라 놀라진 않았다.
세 번째 기회인데 오프닝은 왜 두 번째 보는 거냐고?
‘누가 준 미션인지 모르겠지만 악취미야.’
은퇴를 발표한 뒤 참가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네 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자 미션이 등장했다.
앞으로 세 번의 기회를 준다기에 속는 셈치고 받아들였고 바로 다음날 지금 같은 오프닝과 함께 회귀했다.
'두 번째 기회'라면서.
그래, 첫 번째 커리어도 포함이더라.
상상도 못한 회귀라는 현실에 안 그래도 멘탈이 나갔는데 그것 때문에 한 번 더 박살났지.
‘드디어 마지막인가.’
안 좋은 과거는 일단 넣어두고.
오프닝이 끝나자마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선다.
이미 모든 걸 예상하고 준비한 채 돌아온 거라 어색한 건 전혀 없었다.
“우리 둘째-! 일어났어어?”
“응, 엄마도 잘 주무셨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게 인사해주는 엄마의 모습도 어색하지 않다.
이것도 두 번째라서.
지금은 아직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의 시간대니까.
“아버지는?”
“잠깐 바람 쐬러 나갔지. 씻을 거야?”
자연스럽게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면서 엄마와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여기서 쓰러져서 거의 오열을 했었는데.’
그럴 이유가 있는 시점으로 돌아온 거라 의심을 받는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엄마가 걱정은 많이 했지.
지금은 그냥 뭐 평범한 느낌이다.
당장 어제, 아니, 어제?
하여튼 내 기준으로는 어제가 두 번째 세계선에서의 은퇴전이라 가족들과 잠들 때까지 함께 있었거든.
“뭐야? 막내 일어났냐?”
“산책 다녀오셨어? 안녕히 주무셨고?”
그리고 산책에서 돌아온 아버지와도 평범하게, 하지만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눴다.
세 번째 도전, 두 번째 회귀가 시작되는 평범한 하루였다.
- 작가의말
다시 한 번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