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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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리비아
며칠 후,
벵가지 시청 청사에 있는 자유 리비아군 본부 작전 장교실.
건우가 팀원들을 밖에 대기하게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삐쩍 마르고 키가 큰 30대 후반 남자가 손을 내밀며 말한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언제 오시나 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급한 일이 있습니까? 저는 여기에서 할 일을 아직 전해 듣지 못해서 서둘러 오긴 했습니다만.
급히 할 일이 있으면 말해주십시오.
군사적인 일은 뭐든 바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하하! 아주 급한 건 아닙니다. 다만 다량의 RPG-7과 66 미리 LAW 대전차 미사일을 입수했는데 사격 훈련을 시킬 교관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RPG-7과 LAW 사격에 전문가들이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RPG-7이건 LAW건 제 팀원들이 전문가들입니다.
훈련 교관으로도 많은 경험이 있고요.”
“그거 잘 됐군요.”
“RPG-7과 LAW라면 전혀 걱정하지 마십시오.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훈련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일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럼 내일부터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건우가 흔쾌히 대답한다.
반군이나 게릴라들은 총과 알라의 요술봉만 쏠 줄 알면 거의 모든 군사 기술을 다 가지는 것이다.
대형을 갖추고 참호를 파는 일 같은 건 중동의 사막 벌판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시가전이 있지만, 시가전에서 가장 필요한 건 역시 알라의 요술봉이 최고다.
비록 RPG-7이나 LAW가 수십 년 전에 개발된 대전차 무반동 로켓포이지만, 가난한 나라에서의 전투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미군도 장갑 관통력이 형편없는 LAW대신 재블린을 보급했었지만, 중동에서 슬리퍼나 끌고 헬멧도 없이 AK-47이나 들고 다니는 무자헤딘과 전투를 하며 1억 원이나 하는 재블린을 쓸 수 없어 다시 저렴한 LAW를 도입해 쓰고 있을 정도이다.
RPG-7이나 LAW는 비록 싸구려 물건이고 최신 탱크에는 무용지물이지만 중동에서 굴러다니는 구식 탱크나 장갑차를 잡기에는 충분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보병 전투에서도 쓰임새가 많다.
건우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대답하자, 작전 장교 사미르 가넴 대위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더한다.
“해주실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정부군이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하니 훈련을 마치면 훈련된 병사들과 함께 정부군의 탱크와 장갑차를 제거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
건우는 배정된 숙소로 가 짐을 풀고 시리아에 남겨둔 무함마드를 제외한 팀원 6명을 불러 말한다.
“이번 임무는 민간 군사 기업인 블랙워터에서 받은 게 아니라, 원청인 CIA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다.
즉 보수가 다른 때보다 높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고객의 마음에 들게 완벽한 임무 수행을 해야 한다.”
건우가 팀원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반응을 확인한다.
[6명의 팀원]
1. 니제르 출신 파이잘 피뇽 (23세)
2.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인 데이비드 베들레헴 (29세)
3. 뉴욕 할렘가 출신인 흑인 올리버 스미스 (28세)
4.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출신인 이반 스톨라코프스키 (30세)
5. 리비아 출신 압둘 후세인 (29세)
6. 그리고 항상 적통 닌자 가문 출신이라고 자랑하는 일본인 사토 나오마사 (26세)
건우의 자랑인 팀원들이다.
한명 한명이 어느 한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이고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다.
이미 몇 년씩 같이 생사를 같이 해왔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100퍼센트 믿을 수 있다는 게 건우의 생각이다.
특별한 경우라면?
물론 믿을 수 없다.
잘 기획된 미인계에 걸릴 수도 있을 거고, 가족들을 인질로 배신을 강요받는 특별한 경우에는 배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우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경우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누가 용병 나부랭이에게 미인계를 쓸 것이며 가족을 인질로 삼겠는가?
건우가 잠시 말을 멈추고 주의를 집중시킨 후, 입을 열었다.
“일단 원청에서 받는 의뢰가 많을 것이니 돈 되는 의뢰를 더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배분은 전과 마찬가지로의 원칙에 따라 배분될 겁니다.”
“......”
“다들 분배에는 불만이 없을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혹시라도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확실하지는 않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아주 좋은 투자 건이 있을 것 같습니다.”
“...?”
“두 배 이상의 투자 수익을 보장한다는 사람이 있어 투자하려고 하는데 관심 있는 사람은 나에게 말해주기 바랍니다.”
건우는 데니스 제임스가 말한 10배로 뻥튀기할 수 있다는 투자 건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어 두 배라고 말하고 그간 모아둔 돈을 투자할 사람은 준비하라고 말한 것이다.
나중에 갑자기 이야기하면, 가지고 있는 돈을 다른 곳에서 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니 미리 언질을 줘 투자할 준비를 할 수 있게.
투자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들이 제각각이다.
“그런데 그거 확실한 거야?”
월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 베들레헴이 건우를 응시하며 말한다.
“투자에 관한 한 나보다 팀장에게 더 좋은 조언을 해줄 사람이 있었어?
내가 팀장에게 정보를 주고 조언해주는 사람들 대충 알고 있는데, 그중에 나보다 투자에 대해 좋은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는 거로 아는데 말이야.”
데이비드의 말에 건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한다.
귀신이 붙었고 그 귀신이 말해 줬다고 하면, 아마 이 방에 앉아 있는 팀원들이 다 함께 배꼽 빠지게 웃을 것이다.
이럴 경우엔···. 무조건 써먹을 수 있는 말이 있다.
“그런 사람이 있어. 나중에 말해줄게.”
“...나중에? 나중에 말해준다고? 우리 목숨 값으로 번 돈을 투자하라고 하면서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한 거야?”
“...흐흠. 하여간 믿을만한 사람이니까 그리 알고 내가 최종적으로 말할 때 돈을 집어넣을 준비들 하라고.
물론 마음 내키지 않는 사람은 안 해도 되니까 그리 알고.”
“흐음···.”
데이비스가 팔짱을 끼며 미간을 좁히더니 말한다.
“그간 팀장은 돈이 생기는 족족 미국 정부 채권을 사 온 거로 알고 있고, 아주 보수적으로 돈을 운용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투자 대상을 바꾼다는 건 뭔가 확실한 게 있다는 말이겠지?”
“믿고 안 믿고는 자유니까 그리 알고. 혹시 몰라 이야기하는 거야.
나중에 같이 투자하고 싶을 때, 돈을 다른 데 묶어두어 참여 못 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아 말해두는 거니 각자 알아서 하자고.”
“...일단 믿음은 안 가지만···. 나는 나중에 들어보고 판단할게.”
데이비스의 말에 몇명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사토 나오마사가 말한다.
“난 팀장이 한다면, 무조건 같이할게.”
사토 나오마사가 말하자, 뉴욕 할렘가 출신으로 머리에도 근육으로 가득 찬 올리버가 말한다.
“나도 나오마사하고 같아. 어차피 내가 머리 굴려봐야 뭘 아는 것도 아니고.”
올리버의 말에 건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투자 건에 대해서는 이걸로 마감하고, 이번에 새로 맡은 임무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
“다들 알고 있겠지만, 리비아에는 석유가 많이 있고 질도 괜찮아 생산도 많이 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뭘 의미할까요?”
건우가 질문하며 데이비스를 쳐다보니 데이비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석유는 많은데 미국 말 안 듣고, 감히 아프리카 연방 얘기하고, 아랍의 맹주 어쩌고 하면서 강력한 군사력을 키우고 있는 카다피.
그냥 사망 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카다피를 제거하고 말 잘 듣는 정권이나 군벌을 만들어 미국 마음대로 석유를 뽑아내고 팔아먹겠지요.”
“정답!”
“흐흐.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아는 이야기인데 새삼스럽게 말하는 이유는 뭔데?”
“반군하고 카다피 정부군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기나 체계가 정비된 정부군이 밀어붙이는 모양이야.
카다피 정부군이 벵가지 쪽으로 오고 있는데 우리 보고 병사들을 훈련 시켜 기갑 전력을 맡아 달라고 했어.”
“...카다피 정부군 기갑 전력이 허접하긴 해도 숫자가 꽤 될 텐데, 우리만으로 가능할까요?”
“당연히 우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지. 이번에 반군에 거의 천 개 이상의 RPG-7하고 66밀리 LAW가 공급되었다는군.
여기 있는 반군들을 훈련시켜 우리와 함께 움직이라고 했어.”
“그러면 주력 보병도 같이 움직여준답니까?”
“당연하지.”
“그렇다면야 충분히 가능하지요. 그러면 프랑스와 영국, 미군의 항공 지원은?”
“그건 미정이야. 내 생각에는 조만간 항공 지원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는 건, 어느 정도 방어선을 만들고 버티고 있으라는 말인데···.”
“어차피 반군만으로 정부군을 이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미국, 영국, 프랑스가 대대적으로 폭격해 정부군의 힘을 빼놓으면 승기가 반군 쪽으로 넘어올 겁니다.”
“결과는 정해졌구만요.”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우린 벵가지 인근에서 작전하다 기회를 봐 제일 먼저 시테르에 들어갈 기회를 노려야 할 겁니다.”
건우의 말에 데이비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그런데 팀장님!”
“응?!”
“내가 팀장님하고 같이 지낸 지가 3년이 돼가잖아요?”
“그렇지요.”
“지난 3년간 내가 팀장을 지켜봐 왔는데 저번에 말한 시테르의 카다피 보물창고는 정말 뜬금없는 말이라서 말입니다.
지금 세상에 보물창고를 만드느니 차라리 다 달러로 바꿔 스위스 은행에 넣지 않겠어요?
게다가 카다피가 보물을 모은다는 소문도 없었잖습니까?”
데이비스의 말에 건우가 미간을 좁히며 생각해본다.
‘데이비스의 말이 맞긴 하다.’
보물이라고 한다면 금은보화나 고가의 미술품, 골동품인데···.
카다피가 미술품이나 골동품, 고가의 보석들을 따로 모으고 있다는 말도 없었다.
혹시 금괴?
리비아 중앙은행에 있을 금을 카다피가 개인적으로 쓰려고 빼돌려 놨을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런데 중앙은행의 금을 카다피가 개인적으로 쓰려고 빼돌려 놨다는 건···.
솔직히 너무 나간 상상인 것 같다.
아무리 40년 독재자라고 해도 어떻게 한 나라의 중앙은행 금을 혼자 먹으려고 하겠는가?
어차피 카다피가 마음만 먹으면 중앙은행 돈을 차지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답이 궁한 건우가 데이비스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을 한 후 말한다.
“그 대답은 다음에 해주겠습니다.”
곤란한 상황에서는 어설픈 답을 하기보다는 시간을 버는 게 낫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을 수도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뭔가 드러날 수도 있고.
‘......’
뻔한 변명을 하는 건우를 쳐다보며, 데이비스가 묘한 미소를 짓는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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