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다보스 별장의 제국 책사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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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다보스 별장의 제국 책사들 (2)
키신저는 러시아를 가볍게 보지 말라고 충고해주고 싶어 말한다.
“그런데 애송이 빅토리아 눌런드가 뭘 할 수 있겠나.
꿈 깨는 게 나을 거라는 충고를 해주고 싶구먼.”
눌런드는 1961년생 50살로 나토 미국 대사로 있는 몰도바-벨라루스계 유대인이고 브레진스키를 비롯한 원로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브레진스키는 여러 번 눌런드가 우크라이나를 미국의 손아귀에 넣어 줄 거라는 말을 했다.
“나도 눌런드는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쿠데타나 내전의 뒤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네만,”
키신저의 말이 길어지자, 브레진스키가 불쾌한 표정으로 지겹다는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친구의 앙탈에도 쉽게 그만둘 마음이 없는 키신저다.
이곳에서 결정되는 것에 따라, 세계가 요동치게 되기 때문이다.
브레진스키와 그의 동조 세력이 우크라이나를 미국 손아귀에 넣으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우크라이나 공작이 본격화될 것이고, 그것으로 우크라이나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게 되고 결국 러시아와 한판 승부가 벌어지게 된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와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키신저의 끈질긴 설득을 무대응으로 무시하던 브레진스키가 말한다.
“조만간 우크라이나에 구체적인 결과가 나타날 거야. 야누코비치를 몰아내고 친미 정권이 들어설 준비가 진행되고 있어.
그만 징징대고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친구!”
키신저도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야누코비치를 몰아낼 빌드업이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는 걸.
그러나 키신저는 여전히 기분이 찝찝하다.
‘그렇다면 확실히 일을 처리하는 게 나으려나···?’
“눌런드 말고, 확실히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녀석들을 알려 줄까?”
“...쓸데없는 소리. 나중에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오면 오늘 한 헛소리에 책임이나 지라고.”
“허어···.”
“눈 위에서 발가벗고 30분 누워 있는 건 어때?”
“예끼, 이 사람아.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눈 위에서 발가벗고 30분이야.”
“그러니까 그만 징징거리라는 거야.”
말을 마치고 브레진스키가 키신저가 했던 것처럼 앞에 있는 탁자를 ‘탁!’ 내려치며 우크라이나 논쟁을 끝낸다.
#
둘이 아웅다웅 하는 걸 벽난로 앞에서 말없이 위스키를 마시고 있던 리처드 펄이 다가오며 말한다.
“자네들은 나이를 처먹을 대로 처먹어 80이 넘어도 여전히 아웅다웅이 구만.
도대체 나이는 어디로 처먹는 건가?”
펄은 1920년생으로 나이가 가장 많다.
초강경파이고 밤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워싱턴에서 영향력이 있다.
폴란드계 유대인 리처드 펄.
펄은 폴란드계답게 러시아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브레진스키보다 더 강경하다.
국무장관이 되면 청문회를 거쳐야 해서 장관직을 사양한 초강경 매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산 복합 회사들과 끈끈하게 밀착된 거로 유명하다.
당연히 돈도 많다.
힘의 균형을 중시하는 키신저.
미국은 세계 최강이니 아무것도 신경 쓸 거 없다는 초강경파 리처드 펄.
빅 마우스에 폭탄 마우스 리처드 펄이 다가오자, 키신저가 둘을 다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일어나며 말한다.
“나 손 좀 씻고 오겠네.”
“크흐흐흐!”
“흐흐흐! 역시 키신저에게는 펄 자네가 쥐약이야.”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키신저를 바라보며 브레진스키와 리처드 펄이 서로를 쳐다보며 낄낄거린다.
둘이 키신저를 놀려먹고 좋다고 떠들고 있는데, 또 다른 동유럽 국가인 헝가리 출신인 조지 소로스가 전화를 마치고 친구들에게 다가온다.
소로스는 러소포비아 (러시아와 러시아인을 혐오하고 배척하는 정서)를 넘어 유대인 대학살을 일으킨 유럽의 주류인 게르만인에 대한 반감도 크고 사회주의 자체에 반감을 품고 있다.
전화를 품에 넣고 천천히 걸어와 푹신한 소파에 앉으며 말한다.
“자네들 또 키신저를 놀려 먹고 있었는가?”
1930년생으로 나이는 제일 적지만, 70대가 된 소로스는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 먹고 있는 동료들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윙크를 한다.
펄이 어깨를 으쓱한 후, 말한다.
“일은 다 봤는가?”
“응. 별거 아니야. 좀 귀찮은 일이 생겨서 말이 길어진 거지.”
“다행이구먼.”
소로스가 탁자 위에 있는 쟁반 위에 놓인 포도주잔 하나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키신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 우리가 이해해야지.”
“거야 우리도 잘 알지. 별명은 무자비한 막후 조정자이지만, 실제로는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는, 도대체 속 시원하게 처리하는 일이 없는 쫄보잖아. 크크크.”
펄의 말에, 브레진스키가 말을 더한다.
“러시아와 중국 일에는 그자들 사정을 너무 많이 봐주며 말해서 우리 속을 뒤집어 놓으니까 우리도 열 받은 만큼 키신저 속을 뒤집는 거 아니겠어?”
“흐흐흐. 그런 면이 있지. 특히 자기가 소련을 견제한다고 끌어들인 중국에는 무슨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애지중지하고 말이야.”
“당연한 일 아니겠어? 중국 놈들이 키신저라면 정신줄을 놓고 환대를 하니 키신저도 편을 들 수밖에 없지.”
키신저 뒷담화를 하며 포도주를 한 잔씩 다 비우고 펄이 말한다.
“키신저는 무조건 강자는 강자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우기는데 말이야!
그런데 러시아가 강자냐고.
이빨 빠진 곰이지.”
“흐흐. 이해해줘야지. 우리 3명은 나치와 소련에게서 혹독한 일을 너무 많이 당해 치를 떨고 있지만, 키신저는 아니지 않나.”
소로스의 말에, 펄이 발끈하며 말한다.
“무슨 소리야! 저 친구 친척들도 다 죽었어.
게다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독일에서 다니면서 히틀러의 유겐트 갱단에게 처맞기도 많이 맞았다고.”
“그렇기는 하지. 그렇지만 그건 전부 독일에서 겪은 일이고,
소련에게서 당한 건 없어서 러시아와 관련된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게다가 독일은 중요 정·재계 인사들이 다 친미파로 구성되어 있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게 되었고.”
소로스와 펄의 대화에 브레진스키가 끼어들며 말한다.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도 들어먹질 않아.
어떤 일이 있어도 우크라이나를 친서방 국가로 만들어 러시아가 강해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내 말에 절대 동의하지를 않아.
나이가 들어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가?”
“흐흐흐흐.”
#
화장실에서 일을 마친 키신저가 손을 씻으며 중얼거린다.
“큰일이야, 큰일!”
손을 다 씻은 후 거울을 보며 다시 한숨을 내쉰다.
“제국들의 역사를 보면 이렇게 제국의 핵심인물들이 막무가내 자신감을 가질 때부터 하락하기 시작하는데 말이야.”
키신저는 제국의 외교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딥스테이트의 구성원들이 너무 과도하게 제국의 힘을 과신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린다.
키신저는 정확한 힘의 평가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힘없는 국가들은 완전히 무시하지만, 힘 있는 제국 간의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다.
힘 있는 강자들은 언젠가는 힘을 쓴다.
뒤통수를 때릴 능력을 갖추고 있고, 때론 그게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약자들의 통수는 무시해도 되지만, 강자들의 통수는 무시할 수 없다.
‘......!’
별장에서 모여 다보스 포럼의 여독을 풀고 있는 친구들은 러시아에 원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은 어거지로라도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반대쪽에 세워 러시아가 강력한 제국이 되는 걸 막으려 한다.
‘......!’
문제는, 러시아는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제국이라는 것이다.
즉, 해양 세력인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를 포위하고 압박해도 쉽게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곤란하게 만들고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무너지게 할 수는 없다.
러시아는 남미나 중동, 아프리카의 약한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나라다.
우크라이나 공작이 전쟁으로 귀결되면?
‘...?!’
‘과연 미국과 나토(NATO)가 이길 수 있을까?’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독일의 히틀러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멸망했다.
러시아는 늪과 같은 나라다.
밖에 나오면 별 볼 일 없지만,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순간 망하게 된다.
내버려 두면 그냥 별 볼 일 없는 늪이다.
하지만 정복하려고 들어가면?
러시아는 죽음의 장소가 된다.
그러니 안 들어 가고 내버려 두는 게 답이다.
내버려 둬 별 볼 일 없게 만드는 게 답이다.
문제는···.
친구들의 뒤를 잇고 있는 폴 월포위츠, 빅토리아 눌런드 같은 젊은 애들이다.
이들도 러시아를 쉽게 보고 있다.
‘...!’
거울에 비친 자신의 종족 특성을 나타내는 매부리코를 쳐다본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구별하는데 매부리코를 기준으로 했다.
어렸을 때 매부리코라고 독일 친구들에게 조롱받았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에 사는 어린 유대인 아이들은 인터넷에 휘어진 코를 어떻게 하면 펼 수 있냐는 질문을 한다.
실제로 수술을 받는 이들도 많다.
‘......!’
매부리코는 유대인만이 가진 건 아니다.
유럽의 지중해, 남캅카스 사람들, 중동의 아랍인들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코이다.
미모의 클레오파트라도 매부리코였다.
주화나 석상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세 이전에는 매부리코에 대머리는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상징했다.
소크라테스가 매부리코에다 대머리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도 매부리코였다.
합스부르크 가문도.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도 매부리코였다.
르네 데카르트도.
벨기에의 왕가에도 매부리코가 많다.
그런데 지금은 유대인의 상징이다.
‘......!’
#
키신저가 다시 거실로 나가며, 주제를 돌리기 위해 말한다.
“오늘 폴 월포위츠와 빅토리아 눌런드가 인사하러 온다고 하지 않았나?”
폴 월포위츠도 1943년생 폴란드계 유대인이고 눌런드는 1961년생 몰도바-벨라루스계 유대인이다.
폴은 공화당 부시 시절 국방부 차관으로 재직하며 이라크 침공을 기획하고 집행했다.
빅토리아 눌런드는 최근 들어 동유럽 출신 강경파 유대인들을 등에 업고 우크라이나에 공을 들이고 있다.
비록 여자지만 누구보다도 호전적인 강경파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내전과 쿠데타를 뒤에서 조정한 경력이 있어 우크라이나 공작도 잘할 거라는 게 전반적인 평가이다.
“한 시간쯤 후에 올 것 같은데···?
왜?
그 친구들한테 또 잔소리하려고 그러는가?”
“음···.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키신저가 미간을 좁히며 말하자, 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또, 또, 또, 그놈의 힘의 균형 어쩌고저쩌고를 훈계하려는 건 아니겠지?”
펄의 말에, 브레진스키가 주제를 바꾼다.
“...그만 떠들고 보드게임 어떤가?”
잠시 후,
4명의 늙은 제국의 책사들이 촉망받는 젊은 후배 책사들을 기다리며 보드게임을 하며 즐겁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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