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도박장에서 눈 돌아간 사람들처럼
<도박장에서 눈 돌아간 사람들처럼>
건우가 사과하자 잠시 후, 노인이 차분한 어투로 말한다.
[자네는 미국이 왜 끊임없이 전 세계에서 전쟁하고 있는지 아는가?]
건우는 왜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걸 묻는지 갸웃하며 말한다.
‘...?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힘없는 놈들이 가지고 있는 광물과 원유, 천연가스, 우라늄 같은 자원을 날로 먹으려는 거겠지요.’
[자네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아무리 날로 먹는다고 해도, 그걸 먹기 위해 쓰는 돈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지.]
‘...어차피 군대는 유지해야 하는 거긴 하지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돈 쓴 거 보면 말도 안 되는 건 맞군요.
이라크는 몰라도 아프가니스탄에는 먹을 게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십 원 한 푼도 못 먹으면서 한국 돈으로 거의 천조 원을 썼다는 게 믿어지는가?]
‘허! 천조 원이요···? 그렇게 많이 썼습니까?’
[천조 원 맞네. 기준은 미군이 슬리퍼 신은 탈레반에게서 빤스런 하는 2021년까지지만 말일세.]
‘천 조원이라···. 어마무시한 돈을 썼군요.’
[그 돈을 누가 먹었겠는가?]
‘...글쎄요.’
건우는 도대체 천 조원이라는 돈을 누가 먹었을까 생각해본다.
일단 무기 만드는 기업들이 제일 많이 먹었을 것이다.
그다음이 민간 군사 기업이 아닐까?
아들 부시때 국방부 장관이었던 럼즈펠드는 군대 업무의 외주화로 비용을 낮췄다고 자랑했었다.
그리고 누가 또 먹었을까?
로비스트들, 예산 담당 의회 의원들, 집행하며 떡고물 조금씩 떼먹었을 행정부 권력자들이겠군···.
건우의 생각이 길어지자, 데니스가 한숨을 쉬고는 말한다.
[군산복합 기업들, 민간 군수업체들, 워싱턴의 정치가들이 거의 반은 먹었지 않나 싶네.]
‘그렇게 보이는군요. 그런데 정말 대단하군요. 천조의 반만 해도 500조 원이니 말입니다.
그 정도만 해도, 배가 터질 정도이겠습니다.’
[배가 터질 정도가 아니라, 돈을 그렇게 먹으면 먹은 자들이 어떻게 되겠는가?]
‘흐흐흐. 계속 먹으려 하겠군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말입니다.
도박 중독도 한탕 먹는 쾌감 때문에 일어나는 거니까 말입니다.’
[그렇지. 그들은 완전히 중독되어 있네. 그들에게 전쟁은 카지노에서 터지는 잭팟보다 몇십 배, 몇백 배나 더 큰 잭팟이거든.]
‘...헐. 그러면 끊임없이 잭팟을 터뜨리려고 광분하겠습니다.
도박장에서 눈 돌아간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비극적이게도 그렇지. 그게 지금의 미국 권력자들 정신 상태라고 볼 수 있네.]
‘......!’
[지금 미국 권력자들은 전쟁 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어.
도로와 항만이 수십 년 전에 만들어져 노후화 되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도 새로 만들거나 대대적인 보수를 할 생각을 안 하고 있지.
공공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는 급식은 처참할 수준이고.
수천 만 명의 미국 시민들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을 정도인데도 관심도 없어.
길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나고 마약에 쩔은 자들이 좀비가 되어 대도시를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녀도 관심이 없어.]
‘...?!’
[왜냐고? 미국에서 힘 있는 놈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돈 처먹기 바쁘거든.
돈이 없으면 인쇄기 돌리고.]
‘...달러를 마구 찍어내서 쓰는군요.’
[매년 어마어마한 돈을 찍어내 쓰고 그것도 모자라 무한대로 채권을 발행하고 있지.
의회에서는 매년 돈이 없어 부채 한도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소리를 지르고 돈 없어 정부를 셨 다운을 시키는 쇼를 하다 슬그머니 부채 한도를 늘려 채권을 더 찍어 또 파티하고···.]
‘...흠. 신나게 해 먹고 있군요.’
[...뭐, 뭐라고? 미국이 망하니 기분이 좋고 신난다는 건가?]
‘하하! 아, 아닙니다. 그냥 부럽다는 말입니다.
안 부럽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매년 쇼하고 빚내서 배불리 먹는다니 말입니다.’
[...자넨 어째 미국이 개판 되어가니 기분이 좋은 것 같구만?]
‘하하.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아쉬울 뿐입니다. 저는 쥐꼬리만큼만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은? 자네도 잔치에 끼고 싶다는 건가?]
‘하하! 왜 아니겠습니까.
천조의 천분의 일만 먹어도 1조 원···.
흐흐.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군요.’
[......!]
데니스가 잠시 말을 하지 않자, 건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전 미국인이 아니라는 걸 참작해주십시오.’
[...그런데 말이야.]
‘예?’
[자넨 강해지는 게 목표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러면 강해진 다음의 목표는 무엇인가? 난 전부터 그게 궁금했었네.
강해진 다음에 뭘 하려는 건가?]
‘예?! 그,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그게 말이 되나? 그럼 자네는 무조건 강해지기만 위해서 사는 거란 말인가?]
‘예.’
건우는 잠시 생각해본다.
강해진 후의 일에 대해.
강해진 후에 뭘 하려는 걸까?
생각해본 적이 없다.
‘......?’
아마도 가까운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걸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까?
파이잘이 니제르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고 금과 우라늄을 제 값 받고 팔려고 할 때 도움을 줄 것 같고···.
건우가 두서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 데니스가 한심하다는 어투로 말한다.
[잘 생각해 보게. 난 이만 가보겠네.]
‘예?! 아. 네. 살펴 가십시오. 노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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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네가 사라지자, 건우가 생각을 계속한다.
강해진 후에는 뭘 하고 싶은 거지?
아마 팀원들이 하려는 걸 돕지 않을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도 도와주고?
그런데 팀원들 말고 가까운 사람이 있나?
‘시리아 일이 끝나면 한국으로 가서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아봐야겠군.’
그리고···.
친척 중에서는 이모가 잘 대해줬으니 한번 찾아뵙고.
그리고···.
갑자기 보육원에 있을 때, 유난히 따랐던 여자아이가 생각난다.
워낙 경황이 없어 잊고 있었는데 건우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을 퇴소하게 되었을 때 그 여자애가 엄청나게 서운해 했던 게 갑자기 생각난다.
‘잘 지내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하군.’
그건 그렇고 정말 돈 많이 벌고 조직도 갖춰 강해지면 뚜렷하게 뭘 할 지가 생각나지 않는다.
‘영감 말대로 생각 좀 해봐야겠군.’
#
하루 종일 국경선을 따라 이동하는 차에 앉아 생각했지만, 건우는 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일단 강해진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 후,
모텔 뒷마당에 있는 탁자에 건우가 파이잘, 무함마드와 술을 마시다 뭔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을 꺼낸다.
“무함마드! 아사드 정권이 살 방법이 생각났다.”
건우의 말에 무함마드가 깜짝 놀라며 말한다.
“예?! 그, 그게 뭡니까?”
“러시아다. 러시아에 도움을 청하는 거지. 미국의 공작을 이겨낼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밖에 없다.”
“...러시아요? 미국 눈치를 봐야 하는 러시아가 시리아를 도와줄 수 있을까요?”
“흐음···.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했거든.”
건우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없어진다.
데니스 영감이 러시아가 개입해서 아사드 정권이 살아난다고 했지만, 건우가 생각해도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계기가 있는 건가? 큰 사건 같은···. 10년 전에 일어난 911 무역 센터 빌딩 폭파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끼어들 명분이 없다.
잠시 말없이 건우가 생각에 잠기자, 무함마드가 눈치를 보며 말한다.
“러시아가 명분도 없이 시리아에 개입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그렇겠지. 그런데 러시아는 개입하게 될 거야.”
“...?”
“아마 무슨 일이 일어나고 개입할 명분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하하! 글쎄요. 그렇게만 된다면 좋겠습니다.”
“하여간 네가 전에 말했던 그 친척 장군에게 말을 해 놔.
그래야 미리 러시아에 도움을 청해 놓으면 무슨 일 있을 때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게 말이야.”
“큼···.”
“내 생각이 맞을 것 같지?”
“......”
단순 무식하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무함마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다.
‘그 머리에 생각한다고 결론이 나겠냐?’
건우가 무함마드의 심각한 얼굴을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짓자, 무함마드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하하하! 오랜만에 생각이라는 걸 했더니, 머리에 쥐가 나려고 하네요.
팀장님이 그렇다면 그렇겠죠.
제가 갑자기 생각이라는 걸 한다고 시간 낭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크···. 음.”
무함마드는 복잡한 걸 싫어한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오래 생각하는 걸 하려고 하지 않는다.
무함마드가 시리아를 떠나 프랑스 외인 부대에 들어간 이유도 시리아 사정이 너무 복잡해 골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무함마드의 머리로는 해결 불가,
사고 지속 불가였다.
건우가 봤을 때 무함마드의 사고 시간 한계는 3분 정도다.
“저는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그거로 족합니다.”
‘...흠. 무함마드다운 결론이다.’
이런 특성때문에 무함마드는 매사에 건우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무함마드는 종교에도 관심이 없다.
26살로 큰 키에 단단한 체격에 기관총과 소형 박격포를 애용한다.
간단히 말하면 힘 좋은 단세포 고릴라다.
‘다시는 골 아픈 생각 안 함’이라고 얼굴에 쓴 무함마드를 보며, 건우가 쓴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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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는 시리아에서 내전에 대해 생각해본다.
건우에게 있어 내전이란,
인세의 지옥이다.
아프리카에서 경험했던 내전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일반적으로 외부 침공은 단기간에 끝난다.
침략하는 군대가 병참을 조달하기 어려운 게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런데 내전은 어떤가.
정부군과 반군은 병참을 현지 조달한다.
당연히 약탈이 필수가 된다.
자연스럽게 민간인들이 전쟁에 깊숙이 개입된다.
약탈하지 않으면 적이 약탈해서 더 많은 식량을 가지게 되고,
민간인을 죽이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징집되어 적의 전력이 강화된다.
그래서 약탈과 학살이 필수가 된다.
내전은 오래 지속한다.
십 년 이십 년이 넘기도 한다.
‘.......’
“무함마드! 내전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알지?”
“잘 알지요.”
“네 친척, 친구들도 많이 죽을 거다.”
“하하! 아랍인은 죽음을 옆에 끼고 사는 게 숙명 아니겠습니까.
죽으면 죽는 거지요.
멸족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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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내어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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