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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비행장

무한의 물자로 대한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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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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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4.08.15 17:16
최근연재일 :
2024.09.18 07:20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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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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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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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4쪽

필리핀 침공

DUMMY

중국군과 미군이 합동훈련에 들어갈 차례가 되었고, 미군은 태현과 독립군 간부, 중국군 장교들에게 M3스튜어트 경전차를 보여주었다.


병두는 잘 보이지 않는 감탄하는 눈빛과 표정으로 스튜어트를 보며 태현에게 물었다.


“이거, 중형(Middle) 전차?”


“아니, 경전차야.”


나석웅도 스튜어트를 보고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와, 치하가 중(Heavy)전차인데 미군은 이게 경전차예요? 기름 엄청 먹겠는데?”


“치하가 작은 거고···”


치하와 스튜어트의 무게는 14.8톤과 14.7 톤으로 거의 비슷하다.


중국군은 많은 실전을 겪어 온 군대답게 훈련을 잘 수행해냈고, 그걸 본 미군도 자극받아 기대 이상으로 훈련 성과를 이루어냈다.


미군 사이에서 넘어서야 할 팔씨름의 벽 '암스트롱' 이 된 이송헌은 미군 정보과에 붙어 암호 해독 작업을 도왔다.


“형님, 형님. 잠깐만요. 타이완에서 얻은 무전이랬죠? 그러면 사쿠라 코드하고 비슷할 수 있거든요. 다른 거 다 떨궈내고 한 줄마다 5-7-5, 다음에 7-5-7로 쪼개고요. 각 마디에서 맨 첫자, 아니면 맨 끝자, 그것도 아니면 양 끝을 지우면 규칙성이 보일 수 있어요. 해보죠.”


이송헌이 제시한 규칙은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태현은 송헌에게 주의를 주었다.


“미군 장교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면 안 돼··· 중국군하고 문화가 좀 달라.”


“에이, 색목인 아저씨들 까탈맞구만. 중국에선 대형이라고 부르면 다 잘 통하는데.”


이송헌은 일본군의 암호 규칙이 바뀔 때마다 빠르게 파훼법을 찾아냈고, 곧 미군에게 강한 신뢰를 받았다.


태현은 웨인라이트 소장과 자주 보게 되었다.


중국군의 작전 수행 능력을 정확히 아는 채로 미군 장교와 의논해 방어 작전을 짜는 것이 태현의 일이고, 웨인라이트 소장이 그 회의에 자주 방문했기 때문이다.


소장은 방어 부대 간의 연계에 관심을 보이며 간혹 태현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뒤편에는 하프트랙 장갑차 대대가 있어요. 중요한 방어선이고 후방의 지원이 빨리 도착할 수 있으니 위치를 조정해도 좋겠군요.”


“그러면 해안에 가까운 초소와 진지 위치를 더 안쪽으로 당기겠습니다.”


태현은 여러 방법으로 중국군과 미군, 덤으로 자신의 부대까지 거부감 없이 섞일 시도를 했고 그것은 소장의 마음에 들었다.


“우리 병사들이 워낙 혈기가 좋아 걱정했는데, 협력장교님의 방식이 효과가 있군요.”


21세기 한국에서도 외국인 노동자와 생활권이 겹치고 협력하는 일이 많은 지역에선 외국인에 대한 불안이 많이 감소해 있다. 교류하며 서로 알아가면 편견이나 오해는 조금씩 희석되는 법이니.


“다같이 섞여서 같은 목표를 갖다 보면 어울리게 되지 않을까 예상했습니다.”


“가능성과 방법에 많은 고민을 하신 것이 보였습니다. 대단하세요.”


맥아더는 아무래도 자주 볼 일은 없었지만, 태현은 그의 환심을 살 방법도 간부들 및 중국군의 장교들에게 알려주었다.


“어쩌다 그 장군님을 마주치면, 복도 한 쪽으로 물러나서 와 저분이 그 전설의, 하는 느낌으로 이렇게, 존경한다는 눈빛으로 힘줘서 경례하면 돼.”


이송헌이 궁금해한다.


“그 장군님이 그렇게 대단해?”


“대단하긴 해. 25년 전 독일군하고 싸우면서 얻은 훈장이 열 다섯개라나.”


한국에는 인천상륙작전과 그 이후의 승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맥아더는 1차 세계 대전 중의 완벽한 커리어와 이후 일어날 태평양 전쟁의 승리를 이끈 것으로 좀더 유명하다.


육군 참모총장 시절 대공황에 휩쓸려 추가수당 지급을 앞당기라는 전직 군인들의 시위를 강경진압한 것으로도 좀 유명하지만.


어쨌든 맥아더는 그 태도에 만족했고, 사소하게 음식의 편의를 봐주는 등의 보답이 있었다.


1941년 6월이 되었고, 독일이 소련을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전세계가 숨을 죽이고 두 군사 강국의 충돌을 지켜보았다.


독일은 8월까지 승승장구했고, 일본의 군부가 그 승리에 흥분했다는 첩보에 따라 필리핀의 미군도 본격적으로 전쟁을 준비했다.


웨인라이트 소장은 태현과 간부들 및 중국군의 지휘관을 데리고 필리핀의 주요 기밀 시설을 보여주었다. 그중에는 잠수함 기지도 있었다.


“이 곳은 일본군에게 위치가 노출되었겠지만, 상급 지휘관만 아는 잠수함 기지도 작게 몇 있어요. 외부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죠.”


태현의 요청에 따라 탱크 대대와 중국군의 보병합동전술 훈련이 시작됐다.


그렇게 겉보기로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가기는 했지만 태현은 그걸 보고 있어도 답답할 뿐이었다.


웨인라이트 소장은 그런 태현의 모습을 유심히 보다 한 번 사무실로 불러내었다.


“협력장교님. 지금은 연대장님이라고 불러야 좀 더 낫겠군요. 우리의 방어 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맥아더 사령관님의 복안인데, 제 평가가 의미 없지 않겠습니까?”


소장은 빙긋 웃었다.


“솔직하게.”


태현은 속에 쌓아 왔던 말을 쏟아내었다.


“특히 북쪽으로 얕은 방어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좁은 지역에서 항공기와 군함의 엄호를 받는 대규모 상륙작전이 진행되면 지연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 의견과 같군요. 네. 그리고요.”


태현은 계속 말했다. 전체적으로 적을 막아내기보다 때려서 격퇴하겠다는 의도가 보이고, 항공 기지에 가짜 모형이 없는 등 방어에 투자되지 않아 적의 공격에 취약할 것이라고.


소장은 그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 보셨군요. 사령관께서는 항공전력으로 적의 수상함을 침몰시킬 수 있다 생각하시죠. 저는 그것이 우려되고요.”


“일본 전투기의 수는 많고··· 성능도 마냥 부족하지만은 않습니다.”


“사령관을 설득해 보겠어요. 그건 그렇고, 협력장교님.”


“네.”


“어떻습니까. 미군 보병학교에 연수를 좀 다녀오시지 않겠어요?”


받아들일 이유는 거의 없는 제안이다.


“전장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봤지만, 장교님처럼 아까운 사람이 없군요. 미국에서 태어나서 전쟁을 겪었다면 장군도 한 번 해보실 만할텐데.”


태현은,


칭찬에 약했다.


“과찬··· 이십니다.”


“방어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은 제가 사령관님에게 다시 건의할게요. 연수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너무 오래 걸리지도 않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태현이 인사하고 일어날 때, 소장이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의 독립 전쟁을 하셔야 할 수 있으니까요. 굳이 학습 뿐 아니라 미군에 얼굴을 알리시는 것도 좋은 결과에 보탬이 될 거예요.”


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임시정부가 정한 공식적인 영어 국가명. 태현은 그에게 놀라면서, 또 조금 감격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고민해 보겠습니다.”


1941년 9월. 미군과 중국군은 서로 라이벌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했고, 그럭저럭 사이도 괜찮아졌다. 서로 말이 안 통한다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태현에게는 필리핀군의 훈련을 돕는 역할이 주어졌고, 허술하게 분류되어 있던 군인들을 적성대로 재배치하고 총기를 관리하고 다루는 법을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그런 중에도 맥아더의 방어 전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태현은 날이 갈수록 불안해졌다.


방어 진지를 더 자주 찾아보고 비행장에 대공포를 더 두자는 건의를 올렸다.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가까운 사람들은 알 수밖에 없고, 한 번은 맥아더가 직접 부르기까지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직도 아군의 방비에 불만이 있나?”


“아닙니다! 사령관님! 제가 예민한 탓에 불편을 드리고 말았습니다! 송구한 마음입니다!”


눈을 빛내며, 전설을 대면해 황홀하다는 듯이, 사령관님의 위신에 스크래치를 내다니 쇤네가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이.


그런 태도는 자신이 잘 나온 사진을 보도자료로 내보내곤 했던 맥아더에게 그럭저럭 통했다.


“병사들이 볼 때 장교에게 틈이 있으면 안 된다. 행동에 주의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겨울이 되었다. 미군 장교들의 얼굴도 모두 긴장으로 빳빳이 굳었고, 웨인라이트 소장이 맥아더를 찾아가 의논하는 횟수가 늘었다.


진주만 공습을 예상하는 태현 말고도 모두가 일본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직감했고, 평소보다 더 많은 탄약과 식량이 수송되어 필리핀에 쌓였다.


그리고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이 시작됐다.


미 해군의 손실은 8척의 전함 손상, 그중 USS 애리조나와 USS 오클라호마 2척의 완전파괴. 6대의 전함은 1943년이나 1944년에나 전장에 복귀할 수 있을 정도로 파괴된다.


순양함 헬레나, 라일리, 호놀룰루도 큰 손상을 입고 구축함 캐신, 다운즈, 쇼도 전투에 투입될 수 없을 정도의 손상을 입는다.


진주만에 없었던 세 척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와 요크타운, 호넷 세 척은 무사했다.


그렇게 선전포고 없이 일본의 함대 전력이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공격해 일거에 궤멸시켰고 그 소식은 당연히 같은 시간 새벽이었던 필리핀에도 전해진다.


웨인라이트 소장은 그 정보를 전하면서도 태현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협력장교님의 예측이 들어맞았군요.”


“소장님, 우선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방어 전략과 아군의 전개를 모두 수정해야죠. 하지만.”


지도를 내려다보는 웨인라이트 소장의 눈에는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겠군요. 당장은 적의 공격에서 우리 피해를 최소화하는 걸 우선하지요.”


태현은 몇 개월간 그럴 훈련을 계속해왔고, 일본군이 가장 먼저 공격할 지점도 알고 있었다.


진주만이 공격받은지 9시간 후, 일본의 항공기가 날아와 필리핀 북쪽 투게가라오와 바기오의 미군 부대가 폭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파되었다.


‘시작됐다.’


태현은 클라크 비행장에 도착해 적의 공격을 대비하려 했지만, 미군기가 대부분이 지상에서 급유를 기다리는 상황에 기가 막혔다.


‘그렇게 애썼는데도... 이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고.’


당일까지 공격만 계획했던 지휘관들의 당황과 패착, 부대들 간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정보는 태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습경보가 비행장에 울린 지 몇 초만에 일본의 폭탄이 떨어졌다. G3M 96식 지상공격기의 폭격. 미군 항공기는 단 4 대의 P-40을 제외하면 급유를 기다리며 지상에 있다.


수많은 P-40이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적의 공격을 대비한다고 날고 있었지만, 그러다 연료만 소모하고 착륙해있는 것이다.


여러 문의 76.2mm 대공포가 잘 보이지도 않는 6km 상공의 폭격기를 노리고 포를 쏘아올리지만 폭격은 멈추지 않는다.


곧 20대가 넘는 미쓰비시의 A6M, 통칭 제로센이 날아와 하늘을 낮게 날며 지면에 있는 미군 항공기를 파괴한다.


공중에 있는 몇 대의 P-40이 애써 교전하지만 제로센은 Ki-27보다 공중전 수행 능력이 좋은 전투기. P-40이라고 마냥 불리한 건 아니지만 하늘에 떠 있는 숫자에서 큰 차이가 난다.


태현이 그렇게 늘리자고 했던 20mm 오리콘 대공포와 40mm 보포스 대공포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지만 지상에 가만히 있는 항공기를 지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고, 지금 항공전력을 보존한들 보급이 끊길 상황에서 얼마나 운용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두 번에 걸쳐 일본의 폭격기와 전투기 편대가 비행장을 공격했고, 수많은 미국 항공기가 지상에 있는 채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다.


태현은 자신의 대원들과 중국군을 움직여 물자와 전사자를 수습하도록 했다. 미군 중에는 제로센의 20mm 기관포에 맞아 흩어진 시체를 담담히 치울 정도로 경험을 쌓은 자가 많지 않았기에.


미군은 온전한 항공기를 분산하고 방어를 준비했지만, 다음날에는 니콜스 비행장과 카비테 해군기지가 공격받았다.


이틀간 이어진 공습으로 파괴된 미군 항공기는 필리핀 항공 전력의 절반 정도. 남은 미군기와 공격해오는 일본기의 수 차이는 어마어마했고, 공중전을 하기 위해 떠오른 전투기가 하나 둘 떨어지고 항공기지와 해군기지가 계속 파괴되었다.


미군 사이에 분노와 절망이 어지럽게 번졌다. 아무리 분노해도 적을 쓰러트릴 수 없고, 얼마나 절망한들 궁지에 몰린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12월 12일에 이르러는 필리핀에서 출격 가능한 P-40은 20대가 안 되는 데 비해 공격해오는 일본의 폭격기만 63대, 제로센은 그 이상이었다.


공습이 계속되는 중에 일본군의 상륙도 계속되었다. 필리핀 미군의 B-17 폭격기가 상륙함이나 경순양함을 폭격하기도 했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하고 되려 일본의 제로센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격추되었다.


잠수함 기지 역시 공격받아 피해가 막심했고, 살아남은 잠수함들은 오세아니아 방면으로 후퇴했으며 공군기지에서도 적에게 넘어갈 중유를 폐기하고 항공기를 대피시켰다.


사실상 공군도, 해군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중에 필리핀의 방어는 북부 루손군 사령관인 웨인라이트 소장의 몫이 되었다.


소장은 공격 첫 날부터 태현에게 요청했었다. 전 필리핀에 흩어진 미군과 필리핀군을 바탄 반도에 모아 저항하도록, 그들을 빠르고 안전하게 결집시킬 작업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태현은 소장의 요구를 모두 수행할 것이라 대답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성공시킨 이상 필리핀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태현으 당장 착수할 일을 머릿속에 그리면서도 초조함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어떻게 할까.’


미군의 끈질긴 저항 끝의 항복과 일본의 포로 살해를 목적으로 한 포로 강제 행진, 그후 2년간 계속될 포로들의 죽음.


평소와 달리 후방에서의 보급이나 충원은 전혀 없다. 모두 완전히 고립된 중에 태현 자신만이 상황을 바꿀 변수였다.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다른 결과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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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작품 내 오류 수정 내역입니다. 24.09.02 112 0 -
40 북아프리카 전역 (1) NEW 11시간 전 33 3 12쪽
39 1942년부터 43년, 과달카날에서 파푸아까지 24.09.17 53 3 12쪽
38 나치 독일에 드리운 그림자 24.09.16 59 3 16쪽
37 필리핀 탈출 24.09.15 76 3 14쪽
36 탈출 계획 24.09.14 81 4 13쪽
35 악전고투 24.09.13 83 3 15쪽
» 필리핀 침공 24.09.12 95 3 14쪽
33 필리핀으로 24.09.11 96 4 13쪽
32 철과 화약은 생명과 같이 비산하고 24.09.10 97 4 13쪽
31 신임 장교 24.09.09 99 3 12쪽
30 때로는 싸우지 않는 것이 24.09.08 102 4 12쪽
29 조선의용대 24.09.07 107 4 13쪽
28 우한 방어전 (2) 24.09.06 102 4 15쪽
27 우한 방어전 (1) 24.09.05 113 4 15쪽
26 모두는 서로 다른 미래를 꿈꾸고 24.09.04 120 5 13쪽
25 협상, 짧은 평화, 다른 협상 24.09.03 136 6 16쪽
24 이청 전투 (2) 24.09.02 119 6 13쪽
23 이청 전투 (1) 24.09.01 130 4 14쪽
22 호랑이들 24.08.31 148 5 17쪽
21 사나이의 약속 24.08.30 147 4 15쪽
20 공산당의 조선인 24.08.29 167 4 13쪽
19 우한의 범 24.08.28 170 3 12쪽
18 미국의 장교 24.08.27 171 5 12쪽
17 국제 정세 24.08.26 171 5 13쪽
16 고된 크리스마스 24.08.25 170 5 12쪽
15 겨울의 우한에 꽃잎이 흩날리고 24.08.24 175 7 11쪽
14 세 가지 물질 24.08.23 196 5 12쪽
13 임시정부 24.08.22 200 6 12쪽
12 난닝 전투 (4) 24.08.21 20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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