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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상동 님의 서재입니다.

위즈위키 꺼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이하상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18:45
최근연재일 :
2018.10.29 22:36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1,900
추천수 :
501
글자수 :
209,488

작성
18.10.26 00:55
조회
432
추천
13
글자
17쪽

035. 2단계 (2)

DUMMY

035. 2단계 (2)



꿈이라도 꾼 듯, 멍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던 단말 의지는 이제 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불러 봐도 ‘활동 한계’라는 말만 송출되었고, 아쉽더라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AP에 관한 설명을 제대로 못 들었기에, 조금 찝찝함이 남았지만 괜찮았다. 쌓여만 있던 의문 대부분은 해결했고, 거기다가 생각지도 못한 조언까지 들었으니 일단은 만족이었다.


[사용자 안에서 태어난 저는, 사용자의 행복을 바랍니다.]


조금 전 대화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것은, ‘버튼을 눌러 위즈위키’의 정체도, 새로운 기능의 발견도 아닌 바로 이 말이었다.


“읏차!”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아까 떨어뜨렸던 노트를 주웠다. 조금 전 이 노트 때문에 생겼던 아픔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손에 든 노트를 툭툭 털었다. 조금 남아 있던 먼지가 뿌옇게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방치된 채 있던 걸까. 여전히 구석에 처박혀 있는 노트들이 보였다.


자리를 좀 바꿔야겠어.


우선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책상 위에 놓은 후, 나머지 노트들을 꺼내어 책상 위의 책꽂이에다가 정리했다. 내 방에서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었다.


만족스럽게 그 모습을 한 번 보고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노트를 펼쳤다.


또 하나,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2011년 3월 7일.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어. 이 노트는 이제 끝이야.]


지익!


종이와 펜이 마찰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내가 과거에 남긴 흔적 위에, 취소선을 그어 넣는 소리였다. 내가 써넣은 글귀 위로 그어지는 검은 선. 아픔이 남아 있던 페이지는, 그로써 빈 페이지로 변했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과거의 흔적을 수정하는 것은 손에 든 작은 펜 하나로도 가능했다.


나는 지워진 흔적 아래에, 새로운 글귀를 새겼다. 글씨는 조금 더 성숙해 보였다.


[2017년 10월 25일.

끝은 무슨 끝. 이제 시작이다.]


그 순간, 길을 선택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


잃어버렸던 장난감을 되찾은 아이처럼 적잖이 흥분하여, 노트에 이런저런 생각을 담았다. 저번에 가사를 썼던 것을 제외하면, 실로 오랜만에 해 보는 글쓰기였다. 사실, 글쓰기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민망했고, 그냥 일기 같은 끄적임이었다.


그러나, 즐거웠다. 꽤 오랜 시간을 끄적일 만큼. 손이 아플 지경이 되어서야, 끄적이던 것을 멈출 정도였다.


“으아!”


한숨 돌릴 겸 기지개를 켰다. 오랜 시간 앉아 있던 허리에서 뿌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시간은 이미 꽤 늦은 밤이었다. 대체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거야?


이제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노트와 펜을 정리했다. 펜은 필통에 넣고, 노트는 가방에 넣었다. 노트는 서울로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누우려는데,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시야 아래에서, ‘사용자 전용 위키’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게 있었구나. 잠시 잊고 있었다.


솔직히 단말 의지의 설명만으로는, ‘사용자 전용 위키’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잊었던 것 같았다.


나 혼자만 생성/열람/편집이 가능한 위키. 그게 대체 뭔가 싶었다. 따지고 보면, 그건 스마트폰 메모장이랑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아카식레코드 1단계의 영향으로 기억력이 상당히 좋아진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사용자 전용 위키’는 메리트가 없었다.


그나저나, 이 반짝임은 제발 좀 보라는 시위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눌렀다.


그러자 눈앞에 새하얀 창이 떠올랐다. 그것은 무척이나 단순한 구조였다. [페이지 생성], [페이지 수정], [페이지 열람]만 표시되어 있었다.


이게 정말 끝이라고? 아무런 설명도 없어?


기대한 것이 없기에 실망감은 적었지만, 당혹스러움은 별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초능력은 나에게 불친절했다.


일단은 [페이지 생성]을 눌러 봤다. 페이지가 없었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허, 참.”


그러나 새롭게 나타난 [페이지 생성] 창 역시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이름란]과 [내용란]. 딱 두 개밖에 없었다. 이건, 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


결국, 부딪혀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이름란]에 들어가, ‘테스트’라고 글자를 작성했다. 무릇, 처음 해 보는 것의 이름은 테스트면 충분했다.


그리고 들어간 [내용란]. 나는 조금 더 어리둥절해졌다.


[기록]


이 버튼만 달랑 있었다. 혹시나 하고 [이름란]처럼, 무언가 쓰려고 했지만 입력되는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이건, [기록] 버튼을 누르라는 건가?


시험 삼아 [기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기록] 버튼이 [기록 중지] 버튼을 바뀌고······.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응? 이게 왜 이러지?”


당혹감만 느껴졌다. 나는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나 이리저리 살폈지만,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혹시, 뭔가 오류라도 생겼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기록 중지] 버튼을 눌렀다. 그것은 다시 [기록] 버튼으로 되돌아오고, 역시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뭐 이런 게 다 있냐?


황당한 마음에, 나는 다시 한번 창을 살폈다. 자세히 관찰하니, [기록 중지] 버튼을 누르기 전과 달라진 점이 딱 하나 눈에 띄었다.


[테스트]가 신규 페이지로 등록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그게 제대로 된 작동인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미심쩍었지만, 일단 [테스트] 페이지를 눌러봤다.


[테스트] 페이지 안에는 내용은 보이지 않았고, [재생]이라는 버튼만 있었다. 아무래도 이걸 눌러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어, 어?”


조금 전의 일이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정말로 생생하다. 마치 시간을 똑 떼어다가 붙여 놓은 것처럼, 과거의 시간을 다시 머릿속에서 재현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생생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심지어는 조금 전에 느꼈던 감정까지도 그대로 느껴졌다. 생생하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때를 다시 한번 경험하는 것 같았다.


“허, 허억! 뭐야 이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감각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기록되어 있던 정보가 모두 재생된 모양이었다. ‘생생하게’ 느껴지던 모든 감각과 감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하아······.”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 ‘사용자 전용 위키’ 버튼을 노려봤다.


예상외로, 굉장한 능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나는 평소보다 조금 늦잠을 잤음을 깨달았다. 이래저래 흥분할 일이 많아서인지, 잠을 조금 설쳤다.


방에서 나왔지만, 집 안은 조용했다.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음이 분명했다. 늦잠을 잤다고 해도 아직 8시밖에 안 됐고, 가게를 운영하는 우리 가족은 아침이 조금 늦었다.


나는 일이 이렇게 된 거, 아침을 준비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오랜만에 하는 효도였다. 물론 조금 이따가 꺼낼 말을 위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섞여 있긴 했지만.


프라이팬을 달구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고기를 꺼냈다. 그리고 양파를 썬 뒤 고기와 함께 볶았다. 여기에 소금으로 간을 하면, 한 끼 때우기 적당한 고기볶음이 되었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낸 나는, 적당히 된장찌개를 끓었다.


“오, 아들! 오늘 아침은 아들이 요리사야?”

“달그락거리길래 도둑이 들었나 했더니, 아들이 요리를 다 하고 있었네?”


안방에서 부모님이 나오며 말했다. 내가 움직이는 소리에 깬 모양이었다.


“그냥 일어났는데 할 게 없어서.”

“아이고, 엄마가 미안해.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손에 물을 묻히게 했네.”

“그건 그렇고, 지연이 얘는 몇 신데 아직도 안 일어났어?”


아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 일어났어. 아빠, 아들 대할 때랑 온도 차이가 너무 나는 거 아니야?”


누나가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온도 차이는 무슨? 니가 지식이처럼 일찍 일어나서 아침 좀 해 봐라. 그러면 아주 따뜻하게 대해 줄 테니까.”

“됐어. 그냥 차갑게 대접받고 편할 거야. 앗! 오늘은 아침부터 고기 파티네? 브라더! 아침부터 든든한데?”


누나가 쪼르르 식탁으로 오더니, 고기를 한 점 날름 물었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며, 머리를 짚었다.


“그만 집어먹고, 누나는 밥이나 좀 떠.”

“오케이, 오케이”


아침이 차려지고, 우리 가족은 식탁을 둘러앉았다.


달그락거리며 식기 부딪히는 소리 네 개가 동시에 울렸다.


“아들, 오늘 몇 시에 간다고?”


엄마의 물음이었다.


“조금 이따가, 한 점심 때쯤?”

“밥은?”

“친구랑 만나서 먹을 거 같은데.”

“그래? 용돈이라도 좀 줄까?”

“엄마, 얘 3천······. 얼마라고 했지? 아무튼, 돈 많은 애야. 용돈은 무슨 용돈이야. 그럴 돈 있으면 날 줘.”


용돈이라는 말에, 옆에서 누나가 끼어들었다. 그 말에는 조금 진심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아, 그랬지. 우리 아들 부자인 거 깜빡했다. 그건 그렇고, 지연이 너는 용돈에 알바비까지 챙겨주는데, 뭔 또 돈이 필요하니?”

“아니 뭐,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엄마의 갑작스러운 추궁에, 누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그런 누나의 모습이 조금 짠했다. 아주 쪼끔.


“그러고 보니까 말이야. 어제 너희 둘이서 이야기 한 건 어떻게 됐니?”


아빠가 말했다. 우리 둘이 한 이야기라면, 내 상금에 관한 것이 분명했다.


누나는 나를 흘끗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식이 상금 말이야? 일단 나는 안 쓰기로 했어.”

“그러면?”


엄마가 물었다. 그 물음의 방향은 나였고, 나는 판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지금이 말할 타이밍 같았다.


“그냥 내가 쓰기로 했어. 쓰고 싶은 데가 생겼거든.”


나는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조금 각오가 필요했다.


“그런 의미로 말이야. 나 1년만 더 휴학해도 될까?”

“휴학?”

“응. 하고 싶은 게 있어. 내 상금을 거기에 한 번 써볼까 해. 생활비나, 방세 뭐 이런 거 충당하면서.”


부모님은 놀란 얼굴이 되었고, 누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고 싶은 것.’ 누나는 아마 내가 무얼 말하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내 글을 읽은 사람은, 누나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학교는 복학해야 하지 않을까? 1년 더 휴학하면, 학교에 적응할 수 있겠어? 1학년 전공 같은 것도 다 까먹을 테고······.”


우선 엄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빠는, 말은 없었지만 내심 동의하는 눈치였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렇기에, 곧바로 말할 수 있었다.


“아니야, 괜찮아. 나 이번에 퀴즈쇼 우승한 것 봐. 그거 진짜 어려운 거라고. 그런 것도 우승하는데, 1학년 때 배운 걸 까먹겠어?”


나는 부모님과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리고 딱 1년이야. 어차피, 휴학도 그렇게 많이는 못 해. 1년 해 보고, 안 되면 무조건 복학할 테니까, 허락해줘.”


제법 간절한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도 간절했으니까. 부디 설득이 먹혔으면······.


내 바람과 다르게, 엄마의 굳은 표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낭패다. 나는 다시 부모님을 설득할 전략을 빠르게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이 잘 나질 않았다. 어떻게 하지?


그때, 나를 돕는 구원투수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 그만해.”


엄마가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갑자기 끼어든 누나에게 말이 끊겼다.


“지식이도 성인이고, 생각이 있어. 엄마가 뭐라 할 게 아니야.”


누나는 예전에, 대학 문제로 부모님과 싸웠을 때처럼 뜨겁게 말했다.


“그리고 지식이 너도!”


응? 나는 왜?


“허락 구할 필요가 뭐 있어? 그냥 밀고 나가야지!”


부모님을 앞에 두고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일단은 들었다.


“정말로 하고 싶으면, 가출이라도 해. 자취방도 있겠다, 돈도 있겠다. 뭐가 문제야?”


순간, 부모님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듯 황당해졌다. 저건, 끝까지 반대하면 저렇게 하라는 일종의 조언이나 다름없었다.


“지연이 너······.”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엄마의 말에, 누나가 당당하게 답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고작 한 살 차인데도, 누나는 나와 완전히 달랐다.


“허락하자, 여보. 지연이 말이 맞는 것 같아.”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연이 말대로 할지도 모르지. 그럴 바에야, 마음 편하게 허락하는 게 낫지 않겠어? 가족 간에 얼굴 붉히는 일은 지연이 때로 충분해. 그리고, 지식이도 성인이니까. 알아서 어련히 하겠지. 언제까지 그렇게 싸고돌 수는 없잖아.”


잠시, 부모님이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는 마음을 정했고, 엄마를 설득하는 모양새였다. 흐름을 보니, 엄마 역시 점점 마음을 푸는 것 같았다. 누나의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고마움을 담은 시선으로 누나를 보았다. 평소에는 장난만 치지만, 그래도 누나는 누나였다.


그때, 누나가 나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시작은 멋있었다. 브라더. 끝은 내가 캐리했지만.”


고맙지만, 역시 얄미웠다.


***


춘천 시외버스터미널. 나는 그곳에서 하령이를 기다렸다. 춘천에 진입했다는 메시지를 받았으니, 곧 있으면 도착할 것 같았다.


마침, 버스가 한 대 멈췄다. 그건 화천에서 오는 버스였다.


“지식아!”

“어!”


나는 곧 내 이름을 부르며 내리는 하령이를 볼 수 있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하령이. 고작 하루 못 봤는데, 무척이나 반가웠다.


“서울까지는 또 ITX타고 갈 거지? 이번에는 내가 창가에 앉을 거야. 구경할 준비는 충분히 했거든.”


하령이가 자신의 이마에 난 자국을 가리켰다.


“봐봐. 버스에서 졸다가 생겼어.”

“으이구······. 멍청이.”

“뭐?”


나는 순간 얼굴이 붉어진 하령이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잘못하다가 맞을라. 하령이는 그런 나를 보고 샐쭉하게 웃으면서도, 가까이 다가왔다.


“근데, 역까지는 어떻게 갈 거야?”

“걸어가면 한 15분 걸리나? 아까 보니까. 단풍이 멋있게 들었더라고. 구경하면서 걸으면 금방 갈 듯?”

“그래? 그럼 빨리 가자. 늦으면 안 되니까.”


우리는 터미널을 나와 대로변을 걸었다.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하령이도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


“우리, 사진 하나 찍을까?”


하령이가 내 쪽을 돌아보며 제안했다.


“사진?”

“응, 여기 되게 멋있는데, 그냥 지나가면 좀 아쉬울 것 같아서.”


하령이의 말에 마음이 동했다. 제법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하령이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좀, 가까이 좀 붙어봐. 뭐 이리 떨어져 있어.”

“아니, 그건 네가 너무 붙으니까 그런 거고.”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간의 거리를 조절하며 자리를 잡았다.


사진 하나 찍는데, 뭐 이렇게 공을 들이는지······.


그래도 기분은 썩 괜찮았다.


옆에서는 샴푸 향기가 곱게 올라오고, 가을의 도심은 멋졌다. 정말로, 기록으로 남기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기록]


이런 내 생각에 반응하듯, ‘사용자 전용 위키’가 작동했다. 아무래도, 이것도 생각에 반응하는 모양이었다. 때마침 적절했다. ‘사용자 전용 위키’에 [기록]하는 것만큼 이 순간을 잘 기억할 수는 없겠지.


“그럼 찍는다?”


하령이가 나에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앗!”


화악! 바람이 확 불었다.


낙엽이 휘날리며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꽃비처럼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그 속에는 핸드폰을 든 하령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고, 가을 낮의 햇살은 조명처럼 그녀를 비췄다.


“아, 아깝다. 방금 그거를 사진으로 남겼어야 했는데.”


하령이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을 모두 [기록]하고 있던 나로서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기록 중지]를 눌렀고 ‘사용자 전용 위키’가 물었다.


[페이지 이름을 설정해 주세요.]


별거 있나?


[추억]


작가의말

엄청 길어져서, 생각보다 늦어졌습니다. 끝 부분을 도려낼까 생각해봤지만, 아쉬워서 그냥 올립니다.

문장이 너무 거친 것 같아서, 내일 한 번 더 다듬을 것 같긴 합니다면, 내용면에서는 안 바뀔 거에요. 그냥 자기만족으로......

늦어서 죄송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자기만족 수정 완료했습니다. 문장을 줄줄 읽히도록 만드는 게 힘들군요. 내용은 바뀐 게 없습니다만, 대사가 조금 바뀐 게 있어요. 이 ps는 다음화로 올라오면 그곳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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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78 Necessit..
    작성일
    18.10.26 13:45
    No. 1

    갑질이나 능력배틀물 보다는 이런식으로 소소하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로 계속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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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30. 명인전 (1) +3 18.10.14 499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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