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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상동 님의 서재입니다.

위즈위키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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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상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18:45
최근연재일 :
2018.10.29 22:36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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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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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1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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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3. 예선전 (2)

DUMMY

013. 예선전 (2)



“사람이 되게 많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앞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을 보니, 이런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어림잡아 300명은 돼 보였다. 사실 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예선 신청을 했을 것이다. 추첨에서 떨어져서 그렇지.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 추첨의 벽을 뚫고 들어온 ‘운 좋은 사람들’이었다.


추첨. 나는 그것에 대해 떠올리며, 잠시 몸을 떨었다. 그것 때문에 무척이나 곤란해질 뻔했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사실, 나는 예선이 신청만 하면 다 붙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선’이기도 했고, 참가 신청을 할 때 만해도 무척이나 들떠 있어서 생각도 못 했다.


뒤늦게 추첨이라는 벽이 있으며, 그 벽을 넘어서야만 출발선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참가 확정 메시지를 받은 것은 저번 주 수요일. 그 메시지를 받고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이미 하령이와 사장님에게는 퀴즈쇼에 참가한다고 큰소리를 친 상태였고, 그런 상태에서 ‘추첨에서 떨어졌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척이나 면이 상했을 테니까.


“참가자님! 이거 가지고 가세요!”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스태프가 내게 화이트보드를 건넸다.


화이트보드에는 290번이라는 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아무래도 도착순으로 번호가 책정되는 듯했다. 그리고 자리 역시 그 번호에 맞춰서 배치되는 듯 보였다.


나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290번이라고 적힌 자리로 갔다. 꽤 뒤쪽이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화이트보드를 만지작거렸다. 매끈하면서도 차가운 감촉에 나도 모르게 술렁이고 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세.가.퀴>의 예선이 시작된다. 나는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미리 조사한 <세.가.퀴> 예선 규칙에 대해 떠올렸다.


<세.가.퀴>의 예선은 쉽게 말하면 골든벨 방식이었다. 앞에서 문제를 읽어주면, 주어진 시간 내에 화이트보드에 정답을 쓰고, 그것을 스태프들이 돌아다니면서 확인한다. 맞히면 그 자리에 남아있고, 틀리면 탈락.


물론 한 번 틀렸다고 단번에 탈락하는 것은 아니었다.


참가자에게는 두 번의 틀릴 기회가 있었다. 문제가 틀렸다면 화이트보드에 표식을 남겼는데, 이 표식이 세 개째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워낙에 어려운 문제가 많이 나오는 터라. 참가자에게 베푼 배려인 듯 보였다.


예선은 총 5명의 참가자가 남을 때까지 진행되었다. 이렇게 남은 5명의 참가자는 본선에 진출하게 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TV로 방영되었다. 물론, 여기에도 카메라는 있었으나, 예선전은 본선에서 자료 화면으로 사용되는 것이 끝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었기에 나는 ‘버튼을 눌러 위즈위키’로 <세.가.퀴>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트리비아(Trivia 하찮은 것, 또는 여담이라는 의미)’ 부분에서, 이런 예선 방식으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 했던 방식은 시험 같은 형식으로 상위 다섯 명을 뽑는 것이었다고 했다.


“꺄아아악! 오빠! 넘나 잘 생겼어!”


어마어마한 여자들의 환호성. 소음은 갑작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소음의 근원지는 현수막이 걸린 곳 뒤편의 여자들이었다. 현수막에는 [진원 오빠가 일등이야! 언제나 넘버원! 파이팅 이진원! -이진원 팬클럽 진원 Only One-]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니, 대체 언제 저런 게 생겼지? 그보다 이진원?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언뜻 기억나는 것은 유명인이라는 정보밖에 없었다. 이럴 때 쓰라고 위즈위키가 있는 거겠지. 나는 눈앞의 위즈위키 창에 이진원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검색의 속도는 생각의 속도였다. 주르륵. 프로필과 그에 관련된 정보들이 나열되었다. 가장 먼저 사진이 눈에 들었는데, ‘조각 같다’라는 진부한 표현이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나도 나름 잘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었는데, 이진원의 얼굴에는 도무지 비비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다음 눈에 들어온 정보는, 직업이 배우라는 것. 평가에 연기력 논란이 큼지막하게 박혀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프로필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5살 많고, 그리고······.


“대성대 출신?”


대성대면, 상당한 명문이었다. 내가 다니는 형설대와 라이벌 학교라 불리는 곳인데, 이진원은 덕분에 고학력 연예인으로 유명한 듯했다.


“꺄아! 오빠!”


여자들의 비명은 아직도 계속되었다. 이렇게 난리 치는 것을 보면, 이 예선 장소에 이진원이 있는 게 분명했다. 배우가 퀴즈쇼 예선이라니.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배우가 퀴즈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렇게 이진원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이내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얀색 셔츠에 청바지만 입었어도, 자연스럽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이진원은 환호하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했고, 팬들의 목소리는 그에 비례해서 더 커졌다.


이진원이 도착한 것은 나보다 훨씬 일렀는지, 그의 자리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대각선 앞쪽에 앉았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어딘가 갔다 온 모양이었다.


“이야, 연예인이네. 연예인. 아까 잠깐 검색해보니까, 뭐? 강력한 우승 후보? 대학만 좋은 데 나오면 다가 아니잖아? 안 그러냐 무지식?”


뒤편에서 누군가 어깨를 치며 말을 걸었다. 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투의 주인공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이영석이였다.


“뭐, 그렇긴 하죠. <세.가.퀴> 자체가 머리 써서 푸는 퀴즈를 겨루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식의 절대량이 많으면 이기는 퀴즈쇼이니. 그 말은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나는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 참으려고 했지만, 더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별명은 그만 좀 하지? 그거 옛날부터 별로였어요. 우린 더는 군인도 뭣도 아니잖아요. 민간인이고, ‘옛’ 선후임이지.”


굳은 얼굴로 딱딱하게 말하자, 그 녀석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축축한 안개처럼 다가와, 내 기분을 한층 더 불쾌하게 만들었다.


“최지식이, 많이 컸네? 군대에 있을 때는 한마디도 못 하더니.”

“그건 군대였으니까. 이등병이 병장한테 대드는 게 말이나 되나? 규칙은 준수하라고 있는 거거든. 그리고 여긴 사회라 그 규칙이 적용 안 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군대놀이를 하려고 하니, 우습기 짝이 없다. 나는 코웃음을 치고, 말을 이었다.


“됐고요. 그냥 서로 할 거 합시다. 피곤하게 옛날 인연 들먹이지 말고.”

“하,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우드득.


대뜸 인상을 찌푸린 이영석이 목을 까닥였다. 그리고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래도 괜찮아. 더러운 성질머리라면, 이러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역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나이 먹어서 애처럼 주먹질하기는 좀 그렇지만, 공격해 오면 돌려주기는 해야지.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참가자 여러분,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자(아쉽게도, <세.가.퀴>의 진행자인 개그맨 육덕한 씨가 아니었다.)의 말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예선이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영석은 분한지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공교롭게도 그는 내 바로 다음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이런 악연이 있나.


이영석이 자리에 앉더니 눈을 감고 뭔가를 중얼거렸다. 화가 나서 달아올랐던 얼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모양이었다. 정말로 별걸 다 알고 있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군대에 있을 때부터 쓸데없는 걸 많이 아는 것으로 유명했다. 부대에 있을 때도 책도 많이 읽었고. 그런데 퀴즈까지 이렇게 좋아한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뭐, 열정이 있으니까 이렇게 예선까지 보러 왔겠지만.


“자, 이제부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퀴즈쇼! 예선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가자 여러분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제출해 주세요!”


스태프들이 돌아다니며, 핸드폰을 걷었다.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세.가.퀴>의 예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사회자의 안내 후, 곧바로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빈자리가 많은데도 시작하는 것을 보니, 아마 지각자는 가차 없이 탈락으로 처리되는 것 같았다.


예선전은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틀린 답에 아쉬워하고, 몇몇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그런 평범한 예선전이었다.


문제의 난도와 달리, 초반 탈락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분명히 내가 봤을 때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맞힐까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것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초반 탈락자가 적었던 것은, 참가한 사람들이 이번 <세.가.퀴>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원래 아는 것이 많은 사람도 있었겠지,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분명, 어떤 이들은 고진만 사장님처럼, 열심히 퀴즈에 관련된 책자도 찾아보고, 지식의 절대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열정과 노력을 쏟아붓는 그 모습. 어쩐지, 하령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가끔은 정말로 대놓고 틀리라고 내는 문제들이 있었다. 아마 변별을 위해 그런 것일 텐데, 솔직히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령, 이런 문제가 있었다.


“자, 그럼 문제입니다. 유대계 독일인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의 이름은······”


여기까지만 들으면 쉽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세.가.퀴>가 아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입니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이 졸업한 대학교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이걸 정말로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아인슈타인에 대해 전공을 했거나, 팬이거나, 위인전을 철저히 읽은 사람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다.


보기가 제시되기는 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변하지 않았다. 4개의 보기. 그중에 한 개의 정답. 찍더라도 25%의 확률이었다.


그런데 저게 뭐였더라? 나는 문제를 곱씹으며 생각했다. 저 문제는 사장님이 주신 책에 있던 문제였다. 그렇게 곰곰이 기억을 뒤지니,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라는 말이 떠오른다.


뭐야, 내 기억력이 이렇게 좋았던가?


깜짝 놀랐다. 사장님의 책을 여러 번 보기는 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떠오를 줄은 몰랐다. 원래 기억력이 좋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약간의 의구심을 품으며, 버튼을 눌렀다. 내가 생각한 답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위즈위키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검색하니, 여러 가지 정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중에는 그가 졸업한 대학교의 이름이 있었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내가 떠올렸던 답 그대로였다.


맞았네? 약간 소름이 돋은 채, 나는 답을 썼다. 그리고,


“정답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입니다!”


정답. 나는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우연히 기억에 잘 남았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예선전은 계속되었다.


중반쯤 가자, 이런 어이없는 문제들이 한두 개가 아니게 되었다. 참가자들을 떨어뜨려서, 솎아내겠다는 제작진의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참가자들은 모두 지뢰가 잔뜩 매설된 모래사장을 걷는 기분으로, 한 문제 한 문제 헤쳐 나가야 했다. 물론 지뢰를 밟아서 펑! 터진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아쉬워하면서 털래털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조금 안쓰럽네. 마음이 조금 따끔했다.


남은 사람들은 걸어가는 저 사람들이 자신이 아님에 안도하며, 다음 문제들을 준비했다. 예선이 진행되는 내내, 이런 희비가 끊임없이 교차했다.


그러다가, 그 문제가 나왔다.


작가의말

한글 2018에 포함된 맞춤법 검사기가, 개그맨 육덕환을 개그맨 풍만한으로 바꿔서 교정할 때마다 웃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터지네요.


오늘은 표지도 만든 겸, 아침 시간에 올려봅니다. 유입이 없어서 걱정이네요 ㅠ 아, 표지는 보시면 알겠지만, 자체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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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036. <세.가.퀴> 방영 (1) 18.10.29 330 15 12쪽
35 035. 2단계 (2) +1 18.10.26 433 13 17쪽
34 034. 2단계 (1) +1 18.10.25 386 12 12쪽
33 033. 분식집 막내아들 (2) +3 18.10.22 417 11 13쪽
32 032. 분식집 막내아들 (1) +1 18.10.19 429 14 13쪽
31 031. 명인전 (2) +2 18.10.17 452 14 14쪽
30 030. 명인전 (1) +3 18.10.14 499 14 13쪽
29 029. 아이돌 서주현 (2) +1 18.10.12 464 10 13쪽
28 028. 아이돌 서주현 (1) +2 18.10.11 528 12 14쪽
27 027. 본선 (6) +3 18.10.10 457 12 13쪽
26 026. 본선 (5) 18.10.05 497 14 14쪽
25 025. 본선 (4) 18.10.04 508 14 13쪽
24 024. 본선 (3) +1 18.10.03 553 11 14쪽
23 023. 본선 (2) +1 18.10.02 558 9 13쪽
22 014. 본선 (1) +2 18.10.01 524 7 12쪽
21 021. 재장전 (3) +2 18.09.29 538 12 13쪽
20 020. 재장전 (2) +1 18.09.28 542 10 13쪽
19 019. 재장전 (1) +6 18.09.27 588 10 13쪽
18 018.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4) +2 18.09.22 607 14 13쪽
17 017.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3) +2 18.09.21 601 12 12쪽
16 016.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2) +1 18.09.20 547 16 13쪽
15 015.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1) +3 18.09.19 679 16 13쪽
14 014. 예선전 (3) +2 18.09.18 587 13 13쪽
» 013. 예선전 (2) +2 18.09.17 605 12 12쪽
12 012. 예선전 (1) +6 18.09.15 591 11 13쪽
11 011.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해장국을 (2) +1 18.09.14 591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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