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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상동 님의 서재입니다.

위즈위키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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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상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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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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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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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9,488

작성
18.09.1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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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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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09. 나를 화나게 하는 남자

DUMMY

009. 나를 화나게 하는 남자



“아오, 오빠! 느끼하게 아가씨는 뭐야, 대체. 무슨 동네 아저씨도 아니고.”


혜연이 누나가 한동준에게 말했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인지, 꽤 친밀해 보였다. 한동준은 멋쩍게 웃더니, 나와 하령이 사이로 끼어들어 의자에 앉았다. 밀려나는 순간 어깨가 부딪혔는데, 생각보다 아팠다.


하령이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펴졌다. 워낙 빠른 순간의 변화라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가까이 있던 나는 그 순간을 확실하게 잡아냈다.


“아, 오빠 저기도 자리 많은데······.”


하령이가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한동준은 그 말을 웃어넘기고는,


“얼핏 들으니까, 지식이? 이 이름 특이한 친구가 음악을 그렇게 잘 안다던데? 진짠가 그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날카롭게 나에게 향한 손끝이 마치 어떤 공격처럼 느껴졌다.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다. 면전에 대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또 오랜만이었다.


“아니, 잘 아는 건 아닌데요. 그냥 뭐,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좀 있어서······.”


나는 내 기분을 티 내지 않게 노력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즐거운 술자리였다. 섬머벨의 첫 공연. 그 뒤풀이 자리를 망칠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조용히, 이 자리를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한동준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주워들은 걸 떠벌리고 다니면 안 되지.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다니면 어쩔 거야. 그런 걸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 좆문가라 그래. 좆문가.”


명백한 시비였다. 한동준의 말투는 나를 깔아뭉개려는 듯 고압적이었고, 경멸이 섞여 있었다. 그는 지금 스노비즘(Snobbism)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정보의 우위 그리고 가르치려는 태도를 스노비즘이라고 한다. 꼭, 편의점에 들려 한마디를 하던 진상처럼.


한 마디로, 한동준은 나에게 좆도 아닌 게 잘난 척을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빠, 무슨 그런 얘기를 해요. 갑자기 끼어들어서 분위기 이상하게 만드네.”


조금 전 그 말은 예진이 누나가 듣기에도 불쾌했는지, 누나는 나 대신 화를 내줬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무척이나 좋은 분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왠만하면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예진이 누나를 봐서라도 그래야지. 그러나 한동준은,


“뭐, 내가 틀린 말을 하진 않았지. 지금 음악 얘기를 하고 있었다면서. 어디서 별로 잘 아는 것도 없는 놈이 잘난 척하듯 떠들어 대고 있으면 그것만큼 민폐도 없다고. 안 그래?”


여전히 나를 걸고넘어졌다. 비틀려서 올라간 입꼬리. 그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한동준이 하령이를 봤다. 마치 뻐기는 얼굴이었다. 이 오빠가 이렇게 대단해. 그는 얼굴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이, 정말로, 내 신경을 긁었다.


아는 척 떠들어대는 게 민폐라고? 안 그렇게 생각한다 이 새끼야.


나는 그의 말에 속으로 답했다.


화가 났다. 그래, 내가 아무리 위즈위키를 보고 아는 척을 해봤자, 누군가가 써 내려간 지식을 보고 읊는 앵무새에 불과하다. 위즈위키에 올라온 지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틀릴 가능성이 농후한 것들. 나 역시 그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뭔가를 잘난 척을 하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내가 말한 게 틀렸다고 하면, 그대로 인정했지. 나는 그저 다른 사람의 말에 동조하고, 맞장구치며 대화의 양념 역할만 했을 뿐이다. 톱니의 한 조각처럼, 맞물려지는 것이 있어야 대화가 흘러가니까. 꼭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었다.


물론, 편의점의 진상에게는 강하게 말하긴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유가 있어서잖아?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한동준이 내게 하는 짓처럼.


한동준은 쉴새 없이 하령이를 흘끗거렸다. 나는 그것을 보고는 왜 이 자식이 나에게 시비를 거는지 깨달았다. 그래, 하령이의 관심을 끌고 싶겠지. 지금 이 언쟁은, 일종의 기 싸움이었다.


처음 현준이를 만났을 때, 끊겼던 이야기. 그게 뭔지 짐작이 되었다. 현준이는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미리 나에게 경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는 한동준에게 유리한 전장이기 때문이었다.


주최자, 연장자. 그리고 음악을 생업으로 한다는 권위. 이것은 한동준의 무기였다. 그는 지금 자신의 입장을 이용하여 나를 찍어누르려 하고 있었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질 이유는 없잖아? 고개를 숙이는 것은 편의점 일하고 있을 때면 충분했다, 이럴 때까지 자존심을 팔기에는, 나는 나 자신을 싸구려처럼 여기지 않았다.


나는 버튼을 눌러 위즈위키를 켰다. 그리고 검색창에 그레이 초콜릿을 빠르게 검색했다. 현준이의 기타 실력이 있는 밴드라면 마냥 무명은 아니리라.


대한민국 최다 사용 위키백과인 위즈위키에는, 인디밴드에 관한 정보도 엄청나게 많았다. 게다가, 그곳에는 별 시답잖은 것들까지 시시콜콜 적혀 있었다.


그 방대한 지식에는 적의 수급을 벨 만한 치명적인 공격도 숨어있으리라.


검색의 속도는 생각의 속도였다. 과연, 예상대로 그레이 초콜릿의 항목은 개설되어 있었다. 나는 빠르게 그것을 읽어나갔다. 기타 빼고는 볼 것 없는 밴드라는 평가가 눈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걸로는 부족하지. 페이지를 조금 더 내렸다.


마침 한동준의 항목만 따로 개설되어 있다.


링크를 타고 넘어가니, 개인적인 프로필(유명 작곡가 한도윤의 아들. 주석에는 표절로 유명한 그 작곡가라고 되어 있었다.)과 함께 한동준 개인에 대한 논란이 쓰여 있다.


표절 논란. 한동준이 아직 밴드를 만들기 전, 개인으로 활동할 때 찍힌 뮤지션으로서 치명적인 낙인이었다.


부전자전이신가? 도둑질이나 한 주제에 잘못된 정보가 어쩌고저쩌고 입을 놀릴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양심 없는 새끼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정된 날짜와 항목에 관한 토론 부분을 살폈다. 이견이 있는 정보일 수도 있으니까.


위즈위키는 많은 사람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위키백과였고, 이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박을 달 수 있었다. 일종의 검증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토론의 결과에 따라 항목의 내용이 수정되었다.


한동준 항목에도 반박이 달려 있긴 했다. 다만, 논지가 아주 처참할 정도로 박살 나 있어서 그렇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동준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음악 두 개를 재생해봤다. 동시에 재생된 두 음악은,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놀랄 만큼 흡사했다. 이러니 반박이 박살 날 수밖에 없지.


나는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나를 비웃고 있는 낯짝에 대고 똑바로 말했다.


“글쎄요? 적어도 음악을 잘 알아서 표절이나 하는 형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정적이 한바탕 술집 안을 훑었다.


내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또렷하게 술집 내부에 울렸다. 정적이 퍼진 술집에는 찌개 보글거리는 소리와 젓가락 떨어지는 소리만 울렸다. 그리고,


‘빠득!’ 한동준의 이가는 소리도.


여유롭게 나를 비웃고 있던 그 낯짝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마치 더러운 휴짓조각처럼.


“뭐 이 새끼야?”


녀석이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잘하면 한 대 칠 기세다. 나는 그것에 미소를 지었다. 찔리는 게 없는 사람은 이렇게 손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차분하게 해명할 뿐이지. 그는 지금 온몸으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형 노래 중에 ‘Belladonna's Message’가 Iron Butterfly의 ‘In-A-Gadda-Da-Vida’를 표절한 거잖아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밴드라 많이들 모르는데, 기타 리프를 제외한, 멜로디, 곡 구성, 분위기 코드 진행 이런 것들을 빼다 박았던데요?”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쐐기를 박았다.


“밴드를 만들기 전에 있던 일이라 잘 안 알려져 있다고 하던가요? 물론, 작사, 작곡을 한 형은 잘 알고 있겠지만요.”


부들부들. 주먹을 꽉 쥔 녀석의 손에 핏기가 없어졌다. 사정없이 부들거리는 그의 주먹을 보며 나는 살짝 긴장했다. 이러다가 진짜로 주먹을 휘두를 것 같았다.


맞으면, 상당히 아프겠지. 그래도 시선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잘못 한 게 없다. 시비는 저쪽에서 먼저 걸었고, 그 점에 있어 나는 당당했다.


그래도 준비는 했다. 맞으면 바로 되돌려 주도록.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니가 음악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여!”


녀석이 정말로 주먹을 휘둘렀다.


이런.


나는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텁!


녀석의 손은 혜연이 누나의 손에 막혀 있었다. 뭐야, 뭐가 이렇게 가볍게 막아? 누나의 팔은 가늘다고 생각했는데, 힘을 주니 드러나는 근육은 또 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취미로 복싱을 한다고 했던가.


“오빠! 이제 좀 그만해. 진짜, 내가 오빠 사촌 동생인 걸 부끄러워서 밝힐 수가 없어! 그리고 오빠 그 곡 표절 맞잖아. 지식이가 틀린 말 한 거 하나도 없는데. 인정할 건 인정 해야지!”


어······. 혜연이 누나와 한동준은 사촌지간이었나 보다. 내가 다음 하려고 했던 말은 ‘표절은 유전자 때문인가요?’라는 말이었는데. 큰 실례를 할 뻔했다. 잘 참았다. 지식아.


한동준은 자신의 주먹이 혜연이 누나에게 손쉽게 잡힌 게 충격적이었는지, 뭐랄까······. 벙쪘다. 멍한 표정으로 주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일어날게. 오빠 때문에 기분 잡쳤으니까. 우리 테이블 비용은 오빠가 계산해. 나 간다.”


혜연이 누나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예진이 누나 그리고 하령이가 옳다구나 하고 일어났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따뜻한 무언가가 내 손에 닿았다.


하령이었다.


그녀가 손을 잡아 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가자.”


나는 그렇게 하령이에게 이끌리듯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혜연이 누나가 나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지식아. 우리 사촌 오빠가 좀··· 쪼다라서 즐거운 자리를 망쳐버렸네.”


원인제공은 저쪽이 하긴 했지만, 자리를 대차게 망쳐버린 것은 나였기에, 나는 그 사과를 받으면서도 어쩔 줄을 몰랐다.


“아, 아뇨. 괜찮아요. 누나. 뭐 저도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바람에, 막말했는데요, 뭐······.”

“그거야 사실인데 뭐 막말이겠니, 나는 사실, 네가 동준 오빠 개인 활동 시절까지 안다는 거에 더 놀랐어. 옛날 일이기도 하고. 삼촌이 필사적으로 막았거든. 음악에 대해 잘 안다는 말이 정말이었구나.”

“그냥 우연히 검색해보다가 알게 된 수준이라······.”


검색은 즉석에서 했지만.


“아니, 그걸 기억한다는 게 대단한 거지.”


옆에서 예진이 누나가 거들었다.


“그나저나, 아쉽게 됐네요. 오랜만에 술 한 잔 걸치나 했는데.”


나는 화제도 바꿀 겸, 말을 꺼냈다. 물론 빈말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공짜 술자리였다. 대학 생활 1년 동안 거의 말술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무척이나 아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예진이 누나가 아주 마음에 드는 제안을 했다.


“뭐야, 너 술 꽤 좋아하는구나. 그럼 이렇게 집에 가는 것도 아쉬운데, 우리끼리 한잔이나 더 하자. 내가 한 잔 사지 뭐.”

“그래, 조금 이따가 하령이도 데려다주는 겸. 같이 마시자 지식아. 바로 옆 방이라며.”


정말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나는 잠시 하령이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예진이 누나의 말이 마음에 드는지, 웃고만 있었다. 그렇다면,


“좋아요. 한잔하러 가죠. 대신, 예진이 누나는 후회하지 마요. 좀 많이 마시거든요.”


기분 좋게 한잔해야지.


그리고 우리는 그날, 좀 많이 마셨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e killers의 Run for cover를 들으며 썼네요. 좋은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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