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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상동 님의 서재입니다.

위즈위키 꺼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이하상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18:45
최근연재일 :
2018.10.29 22:36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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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28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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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9,488

작성
18.09.1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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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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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008. 빛나는 사람들 (3)

DUMMY

008. 빛나는 사람들 (3)



예정된 시각이 되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주 형편없는 팀이 있는가 하면, 너무 훌륭해서 얘네가 인디밴드가 맞아? 하는 팀도 있었다. 음악을 듣는 귀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 감상은 그랬다.


특히, 현준이가 속해 있다는 팀. ‘그레이 초콜릿(Gray Chocolate)’은 후자의 정점이었는데, 어쿠스틱 기타로 펼쳐지는 화려한 연주에 나는 넋을 놓았다. 음표가 날아다니는 듯한 연주였다.


무척이나 놀랐다. 연주하는 현준이는 정말로 멋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노란 머리와 피어싱이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잘 어울려 보였다. 이제 저곳에는 고등학생 현준이는 없었다. 우리가 못 본 지 3년. 뮤지션을 꿈꾸던 아마추어는 프로가 되어 있었다.


그레이 초콜릿의 리더(이름은 한동준이라 했다.)가 한 말에 따르면, 그들은 원래는 사이키델릭 록을 기반으로 하는 밴드라고 했다. 오늘의 버스킹을 위해 특별히 어쿠스틱으로 편곡을 했다나?


사이키델릭 록이니 무슨 이야긴지 몰라 중간중간 찾아봐야 했지만, 아무튼 기타가 무척이나 고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슬쩍 도움을 줬다니, 뭐니 하니 자랑을 섞어 놓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재수 없었다. 물론, 아까 현준이가 한 이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여러 밴드가 거쳐 간 다음에야, 드디어 섬머벨의 공연시간이 되었다. 사회를 보던 한동준은 간단히 섬머벨을 소개했고, 곧이어 나타난 그녀들에게 연주 공간을 양도했다.


관객의 앞에 선 하령이는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녀가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언제나 매력적인 곡선을 그리던 입가가, 조금 굳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쿠스틱 밴드, 섬머벨입니다!”


인사를 하는 하령이의 목소리 끝이 조금 떨렸다. 파들파들 떨지만 않을 뿐이지, 무척이나 불안해 보였다. 그녀를 보니 내가 더 긴장되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긴장 때문에 공연을 망칠 것만 같았다.


적어도 아는 사람이 하나 관객에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나를 불렀다고 했지. 나는 하령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여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잠시만, 실례할게요. 아는 애가 있어서······.”


조금 뒤편에 있던 나는 빽빽한 관객들의 틈을 잠시 관객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맨 앞으로. 하령이가 나를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그렇게, 가장 앞쪽으로 가서 손을 한 번 흔들자, 하령이가 내 쪽을 바라봤다.


그 순간, 나와 하령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베시시. 하령이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의 얼굴에서 긴장이 씻기듯이 사라진다. 굳어 있던 입꼬리는 풀리고, 기세가 달라진다. 이제 그곳에는 내 방을 무대로 만들던, 별이 하나 있다.


“자,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하령이가 어쿠스틱 기타를 퉁겼고, 음악이 시작되었다. 첫 곡은 나도 잘 알고 있는 대중적인 노래.


그 순간만큼은 시끄럽게 음악을 키우던 댄스팀도, 다른 밴드들의 음악도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비록 구성이 단순한 미니멀한 사운드였지만, 섬머벨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하령이의 목소리. 그것만으로도 지금까지의 모든 공연을 잊을만한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관객들은 서서히 그녀들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쟤네 좀 잘하는데?”


관객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 옆에 있던 남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흐름은 투명한 물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관객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단 한 곡. 그것만으로 섬머벨은 관객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다시, 나와 하령이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 갔다. 관객들에게 인정을 받은 순간, 섬머벨은 별이 되어 빛나기 시작했다. 무대 위를 화려하게 빛내는 별. 그녀들은 자신의 빛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런 섬머벨을, 그리고 하령이를 붕 뜬 기분으로 보았다.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어느새, 연주는 끝나 있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밴드들보다 좋은 반응이었다. 역시, 나만 섬머벨이 만들어내는 음악이 좋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하령이의 공연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총 세 곡이 배정되어 있다고 했던가. 그녀가 멘트를 시작하며,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직감했다.


아, 그 노래구나.


“자, 그러면 다음 곡입니다. 이번 곡은, 저희의 자작곡이구요. 제목은 ‘Love like Ricochet’입니다. 가사는 이틀 전에 막 완성되었어요. 어떤 친구가 도와줘서 겨우 완성했네요. 만남에 관한 노래입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아르페지오. 한 줄 한 줄 기타 줄이 퉁기고, 방 안에서 들었던 그 노래가 시작되었다. 다만,


“갑작스러운 만남은 어느새 이렇게, 나는 그 기분을 몰라 단어를 고르죠······.”


허밍 대신 가사가 붙어 있다는 점이 달랐다.


내가 내뱉었던 단어들은 부드러운 멜로디 속에 담겨 내 마음속을 녹였다. 그 속에는 설렘이 들어 있었고, 신선함이 담겨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령이의 목소리가 가진 따뜻함에 포장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전달되었다.


그 어두침침한 자취방에서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툭, 던져 주었던 단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아름다운 노래가 되었다. 무척이나 새로운 기분이었고, 마음 어딘가에서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잊고 있던 꿈, 그 조각이 조금 빛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령이의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하령이의 노래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 내가 함께 만들어낸 노랫말이 모두의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짜릿하면서도, 뿌듯했다. 그리고 신선했다. 나는 그제야 완성된 노래는 공연장에서 들으라는 하령이의 말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깨달았다. 하령이는 나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와! 진짜 좋아!”

“가사가 정말 최고예요!”

“음원 나오면 꼭 살게요!”


이전 곡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환호성이 내질러진다. 하령이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고 나는 그 미소를 보며 어설프게 웃음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 곡 부를게요. 다음 곡은 아까처럼 커버곡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가수······.”


그렇게 두 번째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가 계속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섬머벨의 첫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가끔 그것을 뛰어넘는 술잔 부딪히는 소리도 시끄러움에 한몫했다. 그러나 지금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가장 큰 소리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였다.


그렇다. 나는 지금 술집에 와 있었다. 내 옆에는 소주를 가득 채운 소주잔을 들고 있는 하령이가 섬머벨의 멤버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러면, 오늘 이벤트 뒤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잔을 채워주세요!”


그레이 초콜릿의 리더, 한동준의 말에 모두가 잔을 들어 올렸다. 나 역시 어정쩡하게 술을 채운 잔을 들어 올렸다.


원래는 이 뒤풀이 자리는 이벤트에 참여했던 음악인들만 참여하는 자리였다. 아무래도 관객들까지 끼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버렸기에, 애초에 그런 식으로 계획이 되어 있던 것이다.


그런 자리에 내가 있는 이유는, 하령이 덕분이었다. 하령이는 한동준에게 초대한 친구가 있는데 뒤풀이 자리 좀 같이 가면 안 되겠냐는 말을 했고, 헤헤거리며 얼굴이 녹아내린 그는 간단하게 승낙을 했다.


물론 내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얼굴이 굳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지만. 뒤이어 현준이가 내가 자기 친구이기도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자리에 못 왔을지도 모른다.


“자, 그럼 선창하겠습니다. 오늘의 만남을 위하여!”


한동준이 말하고, 같이 온 사람들이 ‘위하여’를 따라 외쳤다. 내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선창의 문구는 아주 촌스러웠다.


“그래, 같이 온 분 이름이, 뭐라고요?”


바로 내 앞자리에 앉은 단발머리의 누님이 물었다. 아마, 퍼커션을 하던 분이었지? 그러고 보니 간단한 인사만 했지, 아직 통성명은 나누지 않았다.


“아 네, 저는 최, 최지식이고요. 하령이 옆 방에 사는 친구입니다.”


으아, 내 이름은 언제 말해도 부끄러웠다. 과연, 웃음을 참는 모습이 보인다. 그건 옆에 있는 베이스 치던 누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예의가 있는 사람들이라 다행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대놓고 비웃으며 놀렸으니까. 고등학교 담임이라던가, 군대 선임이라던가. 어휴.


“이름이 무척 강렬하네, 아, 말 놓아도 될까? 나는 25살이고 이름은 성혜연. 하령이랑은 어쩌다가 인연이 닿아서 같이 밴드를 하고 있어. 포지션은 원래 드럼이고, 오늘처럼 간단하게 할 때는 퍼커션. 퍼커션, 알지?”


25살. 나는 나이를 듣고 살짝 놀랐다. 사실, 더 많을 줄 알았다. 늙어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쩐지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26살이고, 이름은 신예진. 혜연이 고등학교 선배였고, 어쩌다가 같이 밴드를 하고 있지. 만나서 반가워”


옆에서 겨우 웃음을 삼킨 베이스 누님이 인사를 했다. 나는 다시 놀랐다. 긴 머리 때문인지, 이 분은 나이보다 상당히 어려 보였다. 실례되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혜연이 누나가 가장 연장자일 줄 알았다.


“지금 뭔가 실례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뭐, 나랑 예진 언니를 번갈아 보면, 뻔하지만.”


으억, 귀신이다. 나는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혜연이 누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젠장, 평정심을 유지했어야 했는데.


“아니,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악기 연주하시는 분들은 정말로 멋있구나. 그런 생각이었어요.”


혜연이 누나는 그런 내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이라며 퍽퍽 치는 손길이 너무 아프다···.


“그래, 그래서 너는 대체 우리 하령이랑은 무슨 사이야?”


매섭게 찔러 드는 것은 옆에 있는 예진이 누나가 더 날카로웠다. 무슨 사이긴, 그냥 옆 방에 사는 친구지.


내가 그렇게 말하려고 할 때, 하령이가 말을 끊었다.


“언니! 왜 자꾸 지식이 괴롭혀요! 저희는 그냥 친구 사이에요!”


···하령이의 말이 가장 아팠다.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치고는······.”

“아악! 그만 해요! 언니!”


서로 눈을 마주치고 어딘지 음흉한 미소를 지은 두 누님이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하령이의 필사적인 커트에 잘리고 말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대화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와글와글 떠드는 분위기에 맞춰, 한 잔 두 잔 술잔도 비웠다. 그러다가 어느새 내가 벼락을 맞은 얘기까지 갔고(이 얘기를 듣던 두 사람은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그다음은 방에서 나눈 음악 얘기에 도달했다.


“지식이 얘가, 음악에 대해 진짜 잘 알더라고요. 그때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모르는 밴드가 없어요.”


물론, 모르는 밴드가 없는 것은 위즈위키입니다.


양심이 찔린 나는 별거 아니라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것이라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미처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


훅, 누군가가 우리 사이를 끼어들었다.


“그래, 우리 아가씨들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나누고 있어?”


한동준이였다.


작가의말

위즈위키 꺼라를 쓸 때는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듣습니다. 굉장히 좋은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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