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하상동 님의 서재입니다.

위즈위키 꺼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이하상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18:45
최근연재일 :
2018.10.29 22:36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1,926
추천수 :
501
글자수 :
209,488

작성
18.09.21 22:14
조회
601
추천
12
글자
12쪽

017.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3)

DUMMY

017.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3)



대머리 남자가 신태천 PD를 데리고 나간 후, 소회의실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상황을 통제하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소음 속에 있던 나는, 지긋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까부터 정신이 없었다. 사람이 휙 들어왔다가, 휙 나갔다가. 집에 가랬다가 가지 말랬다가. 돌아가는 상황이 복잡한 기분가 합쳐져서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피곤하기는 다른 참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소란은 점차 가라앉았다. 곧이어 조용해진 소회의실에는 지루한 침묵만이 이어졌다.


본선 진출자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다. 후덕한 인상의 아저씨는 책을 읽었고,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와 조금 어벙해 보이는 남자는 각자의 핸드폰을 들여다 봤다.


나야 뭐,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고.


우리 중 가장 특이한 사람은 이진원이었다. 아까부터 그 잘생긴 이마를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가까이 있던 나는 알았다. 이진원의 상태는, 조금 안 좋아 보였다.


마치 난관에 봉착한 사람 같았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미세하게 다리를 떨었다.


제작 PD가 바뀐다는 것이 그렇게 충격적일까?


분명, 제작 PD가 바뀐다는 것은 조금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인터뷰를 한 번 더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고,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생겼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상했다.


그럼 뭘까? 나는 조금 전에 접어 두었던 의문을, 상상의 나래와 함께 다시 펴봤다.


만약에 정말로, 이진원과 신태천 PD 사이에 뭔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대머리 남자에 의해 무산되어 저렇게 당황하는 것이라면?


의심이 공회전으로 돌아가며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어디까지나 상상이었으니까. ‘아직은’ 의심에 그쳐야 했다.


그러나 기분은 확실하게 나빠졌다. 상상뿐이긴 했으나, 불쾌한 결론이었다. 우숭자가 정해져 있는 퀴즈쇼를 만들려고 하다니. 도전하는 자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런 상상 속의 이진원에게서 나의 모습을 봤다.


‘커닝’


문제 유출과 커닝. 그 본질은 같다. 상상 속의 이진원이나, 나나 반칙을 저질렀다. 예선전에서 시작된 내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내가 <세.가.퀴> 우승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


데굴데굴. 마음속에 돌멩이가 굴렀다. 그 돌멩이의 움직임에 따라, 마음속의 시소는 쉼 없이 요동쳤다.


그러나 나는 곧 복잡한 마음을 잠시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소회의실의 문이 열린 것이다.


“아이고, 이거 오래 기다리셨네요.”


밖으로 나갔던 대머리의 남자와 신태천 PD가 다시 소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과 달리 대머리 남자는 무척이나 개운한 표정이었고, 신태천 PD는 그 반대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생기 넘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급하게 회의할 게 생겨서요. 인터뷰를 조금만 더 하고 금방 끝내도록 할게요.”


대머리 남자가 입에 진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내부적으로 정리가 된 듯, 신태천 PD는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하죠. 저는 예능국에 CP 중 하나인 이창훈이라고 합니다. <세.가.퀴>를 비롯해 몇몇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하고 있어요.”


‘CP’. 나는 위즈위키에 그것을 검색했다. Chief Producer의 준말로, 우리나라 말로 하면, 주임 프로듀서였다. 하는 일은, 프로그램 제작자인 연출자들을 관리였다. 즉, 신태천 PD의 직속 상사인 셈이었다.


“인터뷰를 추가로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최근, 인터넷 밈 관련 문제로 인해, 방통위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품위 부족’이 그 이윤데요. 이번 회차에서는 그 경고를 수용하여 인터넷 밈 관련 문제를 제하기로 했습니다.”


이창훈 CP의 말에 참가자들이 조금 술렁였다. 나야 그러려니 했지만, 저들에게는 조금 충격인 모양이었다.


하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 밈 관련 문제라면 <세.가.퀴>의 상징 중의 하나였으니까. 우리는 예능국에서 제작한다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어요. 꼭 이렇게 주장하는 듯한 문제들이었다.


이창훈 CP는 술렁임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대신에, 철학 관련 문제를 집중적으로 낼 겁니다. 지금껏 우리 <세.가.퀴>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것들이죠. 그래서 이 인터뷰가 필요한 겁니다. 여러분의 지식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지식수준이라······. 결국, 난도조절을 위한 인터뷰라는 말이었다. 참가자들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이창훈 CP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먹이를 발견한 대머리독수리처럼, 이창훈 CP가 말했다.


***


인터뷰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미 개인 인적 사항이나, 다른 분야에 관한 인터뷰는 신태천 PD이 끝내 놓은 상태였다. 쓸데없는 것을 생략한 인터뷰는 빠를 수밖에 없었다.


이창훈 CP는 신태천 PD의 선배답게, 무척이나 능숙한 솜씨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랫동안 소회의실에 있어야 했던 참가자들이 피로를 잠시 잊을 만큼, 훌륭한 솜씨였다.


이창훈 CP의 인터뷰는 요약하자면 이랬다.


우선 철학에 관한 경험을 묻는다. 그다음은 어떤 책에 관해 물어보고, 읽어본 적이 있다면 그 내용에 관해 묻는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의 인터뷰가 순식간에 끝났다.


“흐음, 가장 흥미로운 두 분만 남았군요. 두 분 다 예선전에서 한 문제도 안 틀리셨고······.”


이창훈 CP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의도한 것인지, 우연인지 마지막에 남은 두 사람은

이진원과 나. 두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출신 학교도 형설대와 대성대. 그야말로 숙명의 라이벌이네요. 최지식 씨 마스크도 괜찮고, 이진원 씨야 말할 것도 없으니. 방송에서 그림이 좀 되겠어요. 이야, 오랜만에 편집할 맛 나겠는데요?”


이창훈 CP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훌륭한 식재를 앞에 두고 있는 셰프처럼 느껴졌다.


“저 선배, 인터뷰. 인터뷰해야죠.”


사설이 길어지자, 옆에 있던 신태천 PD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에 이창훈 CP는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현장을 뛰어서 그런지, 제가 두 분을 앞에 두고 딴소리만 하고 있었네요. 자, 그러면 먼저 최지식 씨부터 시작할게요. 준비되셨나요?”


준비되었냐고? 준비는 이미 아까부터 끝나 있었다.


“네, 준비됐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최지식 씨. 이진원 씨랑 같이 예선 문제를 모두 맞히셨잖아요. 혹시, 철학에도 조예가 깊으신가요?”


철학이라. 나는 이창훈 CP의 말에 차분히 생각해봤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들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언제나 철학과 맞닿아서 살고 있겠지. 그러나 이창훈 CP가 말한 철학은, 조금 더 구체적인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배운 철학은, 고등학생 때 선택 과목으로 공부했던 윤리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으로 신청했던 철학과 사상. 이게 전부였다. 물론, 조금 흥미가 있어 개인적으로 책을 읽었던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의 독서였다. 그리 깊은 공부는 아니었지.


“그렇게 조예가 깊지는 않습니다. 그냥, 상식선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상식선이라, 그러면 이진원 씨는 어떻죠?”


이창훈 CP의 질문이 갑작스럽게 이진원에게 향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마지막이라 조금 바꿨나? 원래는 한 명씩 진행했었는데.


이진원 역시 생각지 예상치 못했는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저도 교양 정도로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뭐, 좋습니다.”


이창훈 CP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마지막 두 분은, 좀, 특별하잖아요? 예선에서 한 문제도 안 틀리기도 했고, 강력한 우승 후보. 뭐 이렇게도 부를 수 있겠네요. 그래서, 좀 특별한 방법으로 인터뷰가 하고 싶어지지 뭐에요?”

“특별한 방법이요?”


갑자기 그게 무슨 특별한 소리람?


“네, 인터뷰를 퀴즈쇼처럼 해볼까 해요. 그편이 더 재밌을 거 같잖아요? 뭐, 퀴즈쇼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간단해요. 제가 문제를 내서 어떤 분이 답을 못하시면, 그 질문을 다른 분이 답변하시면 됩니다. 어때요?”


이창훈 CP가 이마를 번들거리며 웃었다.


“라이벌끼리 미리 탐색전을 벌인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네요.”


탐색전이라······. 나는 이진원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얼핏 본 거지만 확실하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거든.


“CP님.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그냥 간단하게 하고 빨리 끝내죠. 시간도 많이 지체됐는데.”


이진원이 항의하듯 말했다. 그러자,


씨익


이창훈 CP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웃음은 어딘지 이진원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왜요, 혹시 제 실력이 안 나올까 불안해요?”

“아뇨, 뭐 불안하다기보다는, 그냥 시간도 많이 늦어졌고. 다른 분들이 불만이 생길까 봐 그렇죠.”

“두 사람이 한꺼번에 인터뷰를 하는 건데, 시간은 더 적게 걸리죠. 그리고 다른 분들은 이쪽에 더 흥미를 보이시는 것 같은데요? 안 그런가요, 여러분?”


이창훈 CP가 뒤를 돌아보며 말하고, 이미 인터뷰를 마친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만은 있기는커녕 오히려 흥미롭다는 눈을 우리를 보고 있었다. 과연, <세.가.퀴>의 참가자들이었다.


이진원은 그에 할 말이 없는지 조용해졌다.


“그러면, 최지식 씨는 어때요? 불안하신가요?”


이창훈 CP가 내게 말했다. 그의 입매는 비틀린 그대로였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도발처럼 느껴졌다. 승부욕에 불을 지피기 위한 도발.


그러나 그건 쓸데없는 노력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니까.


“저는 뭐, 상관없어요.”

“호오.”


내 짧은 답변에, 이창훈 CP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진원은 나를 보며, 이마를 살짝 일그러뜨렸다.


이창훈 CP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했다. 인터뷰가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해야 할 것인데, 형태가 무슨 상관일까.


나와 이진원의 대결 구도를 만든다고 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뭐가 걸려 있지도 않은 대결이었다. 다만, 한 가지. 나는 이번 인터뷰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위즈위키를 사용하지 않고 퀴즈를 푸는 것.


마음속을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거슬렸다. 생각이 완전히 정리될 때까지, 위즈위키를 퀴즈에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가.퀴>를 위해 공부한 가락도 있고, 또 어느 정도 철학은 좋아했으니까 웬만하면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까 다른 사람들 인터뷰하는 걸 보니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럼, 이진원 씨는?”


소회의실에 있던 이들의 모든 시선이 이진원에게 집중되었다. 기대가 담긴 시선이었다. 예선전에서 모든 문제를 맞혔던 둘의 대결이었다. 아마 보고 싶은 거겠지.


그렇기에 이진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정 그렇다면······. 좋습니다.”


이렇게 말했다. 그 표정은 무척이나 떨떠름해 보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위즈위키 꺼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036. <세.가.퀴> 방영 (1) 18.10.29 330 15 12쪽
35 035. 2단계 (2) +1 18.10.26 433 13 17쪽
34 034. 2단계 (1) +1 18.10.25 386 12 12쪽
33 033. 분식집 막내아들 (2) +3 18.10.22 417 11 13쪽
32 032. 분식집 막내아들 (1) +1 18.10.19 429 14 13쪽
31 031. 명인전 (2) +2 18.10.17 453 14 14쪽
30 030. 명인전 (1) +3 18.10.14 499 14 13쪽
29 029. 아이돌 서주현 (2) +1 18.10.12 464 10 13쪽
28 028. 아이돌 서주현 (1) +2 18.10.11 529 12 14쪽
27 027. 본선 (6) +3 18.10.10 457 12 13쪽
26 026. 본선 (5) 18.10.05 497 14 14쪽
25 025. 본선 (4) 18.10.04 509 14 13쪽
24 024. 본선 (3) +1 18.10.03 553 11 14쪽
23 023. 본선 (2) +1 18.10.02 558 9 13쪽
22 014. 본선 (1) +2 18.10.01 525 7 12쪽
21 021. 재장전 (3) +2 18.09.29 538 12 13쪽
20 020. 재장전 (2) +1 18.09.28 543 10 13쪽
19 019. 재장전 (1) +6 18.09.27 589 10 13쪽
18 018.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4) +2 18.09.22 607 14 13쪽
» 017.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3) +2 18.09.21 602 12 12쪽
16 016.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2) +1 18.09.20 547 16 13쪽
15 015. 인터뷰와 대머리독수리 (1) +3 18.09.19 679 16 13쪽
14 014. 예선전 (3) +2 18.09.18 587 13 13쪽
13 013. 예선전 (2) +2 18.09.17 605 12 12쪽
12 012. 예선전 (1) +6 18.09.15 592 11 13쪽
11 011.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해장국을 (2) +1 18.09.14 591 15 13쪽
10 010.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해장국을 (1) +3 18.09.13 636 12 13쪽
9 009. 나를 화나게 하는 남자 +2 18.09.12 620 14 12쪽
8 008. 빛나는 사람들 (3) +3 18.09.11 642 18 12쪽
7 007. 빛나는 사람들 (2) +3 18.09.10 708 1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