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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상동 님의 서재입니다.

위즈위키 꺼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이하상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18:45
최근연재일 :
2018.10.29 22:36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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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9,488

작성
18.09.1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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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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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2쪽

007. 빛나는 사람들 (2)

DUMMY

007. 빛나는 사람들 (2)



“지식아!”


마음속까지 깨끗하게 울리는 목소리. 하령이었다.


처음에는, 하령인지 전혀 못 알아봤다. 내가 아는 하령이는 언제나 분홍색의 추리닝을 입고,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깔깔대며 웃는 여자였다. 털털하면서, 수수한.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그러나 내 어깨를 건드린 여자는 깔끔한 베이지색 코트에, 하얀색 스웨터를 입은, 누가 봐도 옷 잘 입고 세련된 인상의 여자였다. 옅은 화장기는 특유의 청초한 매력을 돋보이게 했고, 살짝 롤이 들어간 머리는 꾸민 듯 안 꾸민듯한 수줍은 매력이 느껴졌다.


아니, 얘가 이런 식으로 꾸밀 줄도 알았나?


내가 놀라고 있는 사이, 하령이가 입을 열었다.


“아고 깜짝이야! 뭐야! 너인 줄 못 전혀 알아봤잖아. 누나 공연한다고 이렇게 예쁘게 꾸미고 온 거야?”


누가 할 소리를······.


목소리와 말투는 분명 하령이가 맞다. 그런데 차분하면서도 청초한 옷차림으로 깨방정을 떠니까, 지켜보고 있는 나는 뭔가 기분이 묘했다. 굉장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이건 그냥 예의지. 아니 예의라기보다 사람이 어디 외출하면 이 정도는 입는 게 맞지 않나?”


나는 되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어디 외출하더라도, 이렇게 불편한 옷차림은 잘 입지 않았다. 답답한 건 딱 질색이었다.


“그러는 너도 되게 예쁘게 꾸몄는데? 딴 사람인 줄 알았어.”


나는 칭찬을 그대로 하령이에게 돌려줬다. 진심이 담겨 있는 칭찬이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하령이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그녀의 하얀 얼굴은 홍시처럼 붉어져 있었다. 뭐야. 내가 한 말에 열 받은 건가? 조심스럽게 하령이를 살폈다.


“아니, 뭐, 아니······. 그냥 같이 밴드 하는 언니들이 이렇게 입어보라고 해서······. 별로 꾸민 건 아니고······.”


아······. 화난 게 아니라, 그냥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보니, 나도 어색해졌다. 꼭 첫 데이트를 나온 연인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지금 여기 공연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은데, 다 너희 팀이야? 그, 섬머벨?”


하령이는 그제야 얼굴색을 원래대로 돌리고, 도리질을 치며 말했다.


“아니, 오늘 버스킹 공연은 이 근방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이 연합해서 하는 건데, 우연히 섬머벨이 꼽사리 꼈지롱~ 그냥 두, 세곡 정도? 끝나고 있다는 뒤풀이가 그, 오늘 행사 주최한 쪽에서 하는 거야.”


그제야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버스킹 공연이라고 해서 단독으로 하는 건 줄 알았더니, 연합해서 하는 형식이었다.


멀리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양한 성별,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저 음악 하나가 좋아서 이렇게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새로웠다. 원래라면 이들과 내가 연관될 일은 없었겠지. 아마 우연히 공연을 보았더라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이런 신선한 경험도 다 하령이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 여기서 나랑 이렇게 떠들고 있어도 되나, 다른 팀들 보니까 뭐 앰프니 마이크니 세팅 때문에 바빠 보이는데. 나는 조금 걱정이 돼 하령이에게 말했다.


“너희 팀은? 너는 뭐, 준비 안 해도 돼?”

“아아, 우리 팀은 미니멀한 어쿠스틱 밴드라서, 악기 구성이 단순하거든. 그냥 내가 기타치고, 예진 언니가 스네어(snare)랑 카혼(Cajón)으로 퍼커션, 혜연이 언니가 베이스(base)인데, 아까 진작에 세팅 끝냈지.”


별로 할 거 없어~ 하령이가 노래하듯 말했다. 근데 섞여 있는 단어가, 꼭 암호문처럼 들렸다.


나는 이제 버릇이 된 위즈위키로 모르는 단어들을 검색했다. 카혼은 박스를 닮은 악기 이름이었고, 퍼커션은 리듬 파트였다.


“아아, 그렇구나.”

“응, 버스킹이기도 하구. 정식 녹음이랑은 또 다르니까. 뭐, 기타 하나 정도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네.”


하령이가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악기가 많으면 소리가 풍부해진다고 했던가, 하령이는 그걸 원하는 것 같았다.


“야! 박하령! 어디 갔어!”


아쉬워고 있는 하령이를 누군가가 갑자기 불렀다.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였다.


“히익!”


하령이가 순간 잔뜩 움츠러들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살펴보니, 눈매가 약간 사나운 미인이 하령이의 이름을 부르며 불을 뿜고 있었다. 보아하니, 섬머벨의 멤버인 듯했다.


“저기, 저분이 널 찾는데 정말로 괜찮은 거 맞니?”


나는 그 여성분을 가리키며 말했고, 하령이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 그럼 나는 이만 가볼 게, 어, 언니들이 뭐 할말이 있나봐.”


아무래도, 준비가 끝났다는 말은 일부만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쪼르르 달려갔고, 이름을 불렀던 그 여성분에게 딱밤을 한 대 맞았다. 딱! 흠······. 딱 소리가 여기까지 울리는 것을 보니, 많이 아파 보이는군.


얼핏, 공연 순서나 가사 숙지를 다시 한번 하라는 말이 들리는 걸 보면, 악기 세팅 말고도 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하령이는 울상을 지으며,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이제 뭘 한다?


공연의 시작은 일곱 시. 현재 시각은 여섯 시 반. 공연 시작까지는 대략 30분가량 남아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던 나는 쉼터의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 나만 한가했다. 그리고 그런 내게,


“어? 너 최지식 아니야?”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남자 목소리였다, 누구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명확히 잘 떠오르지는 않았다.


나는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조금 사납게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와 귀에 꽂혀 있는 검은 피어싱. 둘 다 멋있어 보이려고 한 것이겠지만, 내 눈에는 조금 어색해 보였다. 왜냐하면, 나는 이 남자의 예전 모습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남자의 어색한 부분들을 하나씩 지웠다. 염색한 머리는 검은 빡빡이로, 동그랗게 뜨고 있는 눈에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그리고 꼴같잖은 피어싱을 뺐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조금 돌려, 노화를 덜어냈다.


그러자 그 남자는, 김현준이 되었다.


“현준이?”


나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현준이는 그런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래, 인마 나야. 반갑다야!”

“와! 이게 얼마 만이야?”


정말로 놀랐다. 설마 하령이의 공연을 보러와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신기하다는 듯 나를 보고 있는 현준이. 나는 천천히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현준이는,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반에서 좀 막 나가는 친구였다.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선생님에게 대들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착실한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공부 대신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야자를 빠지는 건 일상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깨어있는 꼴을 못 봤다. 연필 대신 기타를 들었으며, 독서실 대신 연습실을 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준이는 학교를 자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학교에서 있을 시간에 기타를 한 번 더 치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보수적인 그의 부모님과 언제나 부딪혔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사이에 끼어 있던 선생님만 불쌍했다.


아무튼, 현준이는 그 시절 그런 학생이었고, 우습게도 나는 그가 항상 부러웠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열정, 그리고 그것을 밀고 나가는 패기.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나는 그저 주어진 레일을 따라 착실하게 공부를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으니까.


그랬기 때문일까. 나는 항상 현준이의 꿈을 응원했고, 우리는 고등학생 때 꽤 친하게 지냈었다. 물론, 졸업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연락이 뜸해지긴 했지만. 녀석은 자기 꿈을 좇기에 바빴고, 나는 조금 맞지 않는 전공에 적응하기 바빴었다.


“잘 지냈냐?”


나는 예전과 달리 그늘이 옅어진 얼굴을 보며, 현준이에게 물었다. 그는 내 말에 씨익 웃었다.


“잘 지내긴, 부모님이랑 대판 싸우고 집에서 나왔잖아. 한동안 좀 힘들었지. 그래도 뭐, 지금은 살만해. 너는 뭐, 군대는 무사히 전역했어? 최근에 소식 들었을 때는 군대에 있다더니. 아, 참고로 나는 이미 전역한 지 오래다.”


군대라··· 아주 파란만장했지. 나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전역한 지가 벌써 3개월 째다. 그러니까 여깄지. 지금은 뭐, 아르바이트하면서 지내고 있어. 일이 꼬여서 복학이 내년으로 밀렸거든. 너는 음악 한다고 하더니만, 변함이 없구나?”


나는 현준이 녀석이 매고 있는 기타 케이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현준이는 그 사나운 얼굴로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 사실 나 오늘 버스킹 공연이 있어. 여기서 다른 팀들이랑 연합해서 이벤트 같은 걸 열거든. 우리 팀 리더 형이 주축이 돼서 하는 건데 말야.... 그래, 만난 김에 좀 보고 갈래?”


이런 우연이 있나. 하령이가 참가하는 이벤트를 현준이가 있는 팀의 리더가 주최하다니. 진짜로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어··· 사실은 나도 네가 말한 이벤트를 보러 왔는데, 섬머벨이라는 밴드에 내가 아는 애가 있거든. 걔가 꼭 보러 오라는 말을 해서.”


현준이는 기억을 더듬는 듯, 잠시 섬머벨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듯 되뇌었다. 그러더니만, 눈을 번쩍 뜨며,


“그 여자들만 있는 그 밴드? 거기에 네가 아는 애가 있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되게 실례가 되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이 녀석아, 나라고 알고 지내는 여자가 있으면 안 되냐. 물론, 알고 지낸 지는 일주일이 조금 넘었지만.


나는 조금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물론이지 짜샤. 그, 보컬인 박하령이라고 알아?”

“박하령···? 아··· 혹시 머리 길고? 혹시 사귀는 사이니?”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뭐야. 왜 당황하는 거지? 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내색하진 않고 답했다.


“아니, 뭐 사귀는 사이는 아니고 그냥 옆 방에 사는 친구인데 우연한 계기로 친해지게 되서··· 왜?”

“아, 별건 아니고. 우리 그, 리더 형이 좀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라. 아니 뭐 그렇다고 딱히 무슨 썸을 타고 그러는 사이는 아닌데, 혹시 곤란한 삼각관계 같은 게 펼쳐질까 봐 그랬지. 우리 리더 형이 멘탈이 좀 그렇거든.”


성격도 좀 그지같고. 중얼거리며 현준이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아, 그렇구나."


짧게 답했다.


입 밖으로 나간 내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고 또 날카로워져 있었다.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여기서 내가 기분이 나쁠 것이 뭐가 있을까. 누가 하령이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도, 질척질척한 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현준이는 내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그 하령이라는 애랑 좀 친한 모습을 보이면, 갑자기 시비를······.”


지이잉! 현준의 말은 갑작스럽게 들린 소음에 잠시 끊겼다.


“자, 이제 버스킹 이벤트를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참가팀 여러분들 모두 모여주세요!”


커다란 목소리로, 느끼하게 생긴 남자가 쉼터에 모여 있던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다.


“형이 부르네, 시작하나보다. 조금 이따 보자.”


현준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런 현준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신경을 너무 빼앗겼다.


현준이네 팀 리더가 하령이를 좋아하면 또 어떠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작가의말

하령이네 팀 이름이 왜 섬머벨이냐면, 여름 하夏에 방울 령鈴이라 섬머벨입니다. 그냥 그렇게 지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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