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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황금사과를 문 뱀과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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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작품등록일 :
2021.03.17 22:34
최근연재일 :
2021.12.06 15:09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2,978
추천수 :
72
글자수 :
187,815

작성
21.10.2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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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8

DUMMY

세번째 뿔잔은 금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술에서는 황금 이삭들의 벌판의 향과 새벽녘 긴 풀잎끝에 맺힌 물방울의 차가움이 맺혀있었다. 프레이와 프레이야들은 질린 눈으로 뿔잔을 보고있었다.


이번에는 거인들의 어떠한 신호도 없이 토르는 뿔잔을 들어올렸다. 사방은 조용했고, 거인들과 신들은 이제 토르만을 보고있었다. 토르는 심호흡을 하고, 술잔을 양손으로 들어올렸다.


커다란 술잔에는 파도처럼 물결이 쳤다. 토르는 심해를 들여다보듯 술잔을 내려다보고, 뿔잔에 입술을 댔다.


토르는 마치 사막에서 마지막 물을 찾는 나무뿌리처럼, 땅에 머리를 박아 첫 물길을 트는 강의 머리처럼 맹렬한 기세로 술을 들이마셨다. 술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소리, 신의 목구멍이 거대한 파이프가 되어 술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우레처럼 공기를 울렸다.


토르가 잔을 내려놓았을때, 아무도 감히 그 뿔잔 안을 들여다보러 다가서지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로키가 뚜벅뚜벅 걸어 다가갔다. 로키는 까치발을 들어 뿔잔 안을 들여다보았다. 뿔잔 안의 술은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높이만큼 줄어있었지만, 여전히 가득 차 있었다.


"이번 대결은 나 우트가르달로키의 승리일세."


거인들의 왕이 말했다. 토르는 뿔잔을 내려다보고,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온 뒤로 그는 생명력이 넘쳤지만, 또 이렇게 무력하게 느껴본것은 처음이었다. 거인들이 술수나 저주를 쓰고있는것이 아닌가 의심한적도 있었지만, 그들의 분위기는 평안했고 또 진심으로 따뜻했다. 토르는 로키를 돌아보았다. 로키는 아주 조용한 미소를 짓고있었는데, 평소의 놀리는듯하거나 조롱하는 듯한 미소가 아닌 무언가였다.


토르는 그 미소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로키의 얼굴위에 있었던 그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다음순간 로키는 등을 돌린채 반대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집이 천둥의 신께 맞지 않는건지, 위대한 신께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구만."


우트가르달로키가 말했다. 그는 옆에있던 자신의 늙은 유모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모의 이름은 오느탈르렌이라네. 나이가 들었지만 젊은이들도 씨름에서 유모를 당해내는 자가 없지. 천둥의 신이여, 자네가 한번 도전해보겠나?"


토르는 왕 옆의 늙은 거인을 보았다. 백발은 하얗게 눈이 덮인 버드나무 같았고, 손마디는 늙은 고목나무처럼 쪼글쪼글해져있는 노파였다. 평소라면 코웃음도 치지 않았을 제안이지만, 토르는 씩씩대며 일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늙은 유모라도 거인이고, 나는 오늘까진 거인에게 지기만 한 적은 없으니까."


토르는 일어나서 유모와 마주보았다. 유모는 반쯤 눈이 먼것처럼 보였지만, 토르의 허리춤을 잡았을때 토르는 여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을 받았다.


"그럼 시작!"


우트가르달로키가 소리쳤다. 토르는 있는 힘을 다해 쏟아냈지만, 유모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토르는 주변에 다른 거인들이 있다는 사실도잊어버렸다. 그의 팔뚝과 온몸에 흐르는 혈관에 번개와 폭우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는 있는 힘껏 다리에 주고 서서 유모의 다리에 발을 걸었고, 절대 꺾일것 같지 않던 유모의 한쪽 무릎이 비틀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다시 유모는 마치 대지 그 자체가 된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고, 토르는 영원처럼 느껴지는 긴 시간동안 늙은 유모를 쓰러뜨리려 했으나 결국 끝내 유모를 거꾸러뜨리지 못했다.


두사람이 떨어졌을때, 우트가르달로키는 묘한 눈으로 토르를 보고있었다. 토르는 왜인지 그 미소에서 로키의 미소가 떠오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보기전에, 거인의 왕의 미소는 다시 호쾌한 웃음으로 번져있었다.


"늙은 유모는 역시 씨름에서 당해낼 자가 없지. 그렇다면 우리집 고양이라도 들어보는게 어떻소? 하르트간드는 아주 무겁지만, 그래도 고양이일 뿐이니."


우트가르달로키가 말했다. 토르는 거인이 가리킨 고양이를 돌아보았다. 하르트간드는 호박같은 투명한 눈으로 토르를 보고있었다. 토르는 다가가 고양이의 허리를 잡고 들어올리려했지만, 거대한 고양이의 몸은 마치 수백년간 자라나 단단해진 고목처럼 땅바닥에 붙어 꿈적도 하지 않았다. 토르는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고양이를 잡아당겼다. 겨우 고양이의 앞발 하나를 들어올렸지만, 토르는 더이상 그를 들어올릴 수 없었다. 고양이는 귀찮은듯 하품을 하더니, 뱀처럼 스르륵 토르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고양이가 마지막으로 토르의 손길에서 빠져나갔을때, 토르는 어딘가에서 바다냄새와 차갑게 튀기는 물방울같은것이 피부에 닿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감촉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우트가르달로키는 토르와 신들을 보고 미소지었다.


"위대한 신들을 시험하는건 여기까지 해야겠군요. 초대한 집의 주인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하오. 대신 남은 밤은 여기서 바깥 세상을 잊고 가장 맛있는 음식과 가장 달콤한 술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봅시다."


거인들의 왕이 말했다. 토르는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았다. 한번도 대결에서 물러나본적이 없는 토르였지만, 오늘밤이면 그로서도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온몸이 전쟁이라도 나갔다온것처럼 욱신거렸다. 토르는 로키를 돌아보았다. 로키는 가만히 토르를 바라보다가, 잔을 들어 토르에게 들어올려보였다. 토르는 미소지어보였다. 그건 로키로서의 최대의 치사였다.


토르는 왕을 돌아보고, 자신의 앞에 있는 평범한 크기의 뿔잔을 들어올렸다.


"위대한 거인들의 왕을 위해 건배하겠소."


토르가 말했다. 우트가르달로키는 미소지었다.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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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21 21.11.29 39 1 6쪽
45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20 21.11.23 38 1 6쪽
44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9 21.11.07 42 1 6쪽
»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8 21.10.23 41 1 6쪽
42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7 21.10.21 47 1 3쪽
41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6 21.10.21 41 1 3쪽
40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5 21.10.21 39 1 2쪽
39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4 21.10.20 47 1 4쪽
38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3 21.10.19 40 1 3쪽
37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2 21.10.18 43 1 4쪽
36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1 21.10.18 40 1 3쪽
35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0 21.10.17 89 1 5쪽
34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9 21.10.17 86 1 4쪽
33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8 21.10.13 96 1 5쪽
32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7 21.10.04 74 1 3쪽
31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6 21.09.29 80 1 2쪽
30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5 21.09.29 81 1 2쪽
29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4 21.09.27 66 1 5쪽
28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3 21.09.25 66 1 6쪽
27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2 21.09.23 66 1 3쪽
26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 21.09.23 60 1 4쪽
25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10) 21.09.20 65 1 7쪽
24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9) 21.09.10 45 2 10쪽
23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8) 21.09.02 52 1 14쪽
22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7) 21.08.26 5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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