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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황금사과를 문 뱀과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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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달
작품등록일 :
2021.03.17 22:34
최근연재일 :
2021.12.06 15:09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2,987
추천수 :
72
글자수 :
187,815

작성
21.10.13 19:08
조회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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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5쪽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8

DUMMY

티알피는 너른 벌판을 보았다. 수백마리의 양떼들이 뛰어노는 넓은 언덕에서 자란 티알피로서도 이런 벌판은 처음이었다.


들판은 너무나도 넓어 지평선의 어디에도 그 어떤 산조차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티알피는 그 광경을 보며 약간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괜찮니?"


남자가 물었고, 티알피는 놀라 남자를 돌아보았다. 발드르였다. 이제 오두막을 찾아온 이 손님들이 신이었다는것을 알게된 후로도, 티알피는 새삼 발드르의 모습에 경외감을 느꼈다. 로키와 프레이야, 프레이 모두 아름다웠지만, 발드르에게는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오딘과 그의 형제들이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를 깎아 인간들을 만들었고, 긴눙가가프의 최초의 얼음과 불에서 신들이 탄생했다. 그 신들이 얼음과 불의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발드르는 그 신들이 태어나기 전 우주를 빚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의 숨결이 닿아있는 존재 같았다.


그렇게 높은존재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라면 티알피는 상냥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려울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발드르는 친절했고, 그 진심은 태양에서 지구의 대양의 수면위로 전해지는 따사로움같이 가장 뜨겁고 깊은 근원에서 우러난것이었다. 티알피는 그저 수많은 피조물들 중 하나로서, 그런 발드르의 존재와 친절함을 마치 어떤 경이로운 자연을 보듯이 지켜보게되었다. 그래서 그 경이가 무엇을 바라보는 순간을, 그래서 그 눈빛이 변화하는 순간을 보면서 놀라움에 휩싸이게 되는것이다.


티알피는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신이 자신에게 질문을 했음을 깨닫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괜찮습니다. 목숨을 살려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티알피가 말했다. 토르는 로키의 말에 '자비를 베풀었'고, 로키는 요르나를 죽이는 대신 몸종으로 쓸 인간을 데리고 가자고 말했다. 티알피는 나는듯한 두 다리를 가진 자신이 신들의 몸종이 되겠다고 자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티알피는 아직도 금발이 폭풍우속에서 나부끼던 천둥의 신의 발치에 엎드려 빌었다.


"제가 신들을 모시게 해주십시오."


토르는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으로 티알피를 내려다보았고, 폭우가 점차 그치고 햇빛이 들었을때, 그리고 티알피의 머리위로 드리운 황금빛 빛살을 어느 찬 그림자가 가리며 로키가 말을 걸었을때에야 티알피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토르는 자비로운 성격이지."


로키는 아직도 바닥에 납작 엎드려 덜덜 떨고있던 티알피와 요르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요르나는 차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토르는 너를 마음에 들어할거야."


그리고 티알피는 간소한 행낭만을 챙긴채 신들을 따라 여행길에 올랐다. 그들은 동쪽으로, 끝없는 동쪽으로 이동했다. 티알피는 길 또한 물처럼 얇은 개천이 모여 강이 되고, 또 그 강들이 흐르고 구부러져 만나 바다가 되는것처럼 끝도없이 이어지고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시간은 모래알처럼 쌓이고 또 그들의 머리위를 지나는 구름처럼 아무 흔적없이 흩어지는듯했다. 티알피가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것은 오직 자신의 길어지는 머리카락과 수염, 그리고 낡아지는 옷 덕분이었다. 그와 함께 이동하는 신들은 당연히도 어떤 시간의 숨결조차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티알피는 어쩌면 자신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노인으로 변화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며, 티알피는 프레이의 자랑과 (신으로서도 허풍이 섞인듯한) 화려한 무용담들과, 대지와 바람조차 귀를 빼앗기게 되는듯한 로키의 매혹적이고 위험한 이야기들, 그리고 세상 이곳저곳을 여행한 발드르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죽음과 상처에서 자유로운 신들이 수천년간 수만가지의 장소들에서 겪은 수개의 이야기들은 듣는것만으로도 티알피는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늙은 노인처럼 지혜로워지는듯했다.


어젯밤에는 남자 구십명의 죽음을 야기시킨 프레이야의 꾀꼬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오늘은 토르의 차례였다. 토르는 묠니르를 즐겁게 휘두르며(티알피는 실수로 거기에 맞아 신들을 더이상 모실 수 없게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않도록 조심해야했다) 자신이 여행한 무스펠 근처의 이무기들의 둥지에 떨어졌을때의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천둥의 신이 의기양양해서 우레처럼 울리는 목소리로 재현하는 무용담은 제법 손에 땀을 쥐게할정도로 근사했다. 티알피와 프레이들을 비롯한 모두가 토르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있었다.


그때 토르는 산과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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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사랑에 빠진 프레이 4 21.12.06 36 1 6쪽
50 사랑에 빠진 프레이 3 21.12.03 37 1 5쪽
49 사랑에 빠진 프레이 2 21.12.03 37 1 6쪽
48 사랑에 빠진 프레이 1 21.12.01 38 1 3쪽
47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22 21.11.29 35 1 4쪽
46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21 21.11.29 39 1 6쪽
45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20 21.11.23 38 1 6쪽
44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9 21.11.07 42 1 6쪽
43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8 21.10.23 41 1 6쪽
42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7 21.10.21 47 1 3쪽
41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6 21.10.21 41 1 3쪽
40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5 21.10.21 40 1 2쪽
39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4 21.10.20 48 1 4쪽
38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3 21.10.19 40 1 3쪽
37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2 21.10.18 43 1 4쪽
36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1 21.10.18 40 1 3쪽
35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0 21.10.17 89 1 5쪽
34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9 21.10.17 87 1 4쪽
»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8 21.10.13 96 1 5쪽
32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7 21.10.04 75 1 3쪽
31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6 21.09.29 80 1 2쪽
30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5 21.09.29 81 1 2쪽
29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4 21.09.27 66 1 5쪽
28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3 21.09.25 66 1 6쪽
27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2 21.09.23 66 1 3쪽
26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인과 멸망한 도시 이야기 1 21.09.23 60 1 4쪽
25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10) 21.09.20 66 1 7쪽
24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9) 21.09.10 45 2 10쪽
23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8) 21.09.02 52 1 14쪽
22 이야기꾼을 만들어주는 꿀술 이야기(7) 21.08.26 55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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