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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님의 서재입니다.

봉황의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밤길
작품등록일 :
2013.09.06 23:05
최근연재일 :
2014.12.19 00:05
연재수 :
126 회
조회수 :
439,057
추천수 :
13,047
글자수 :
683,299

작성
13.09.06 23:56
조회
8,564
추천
164
글자
8쪽

제1장 1895년 그날(2)

이 글은 가상의 이야기이며 등장인물,사건등 모든 내용은 실제와 관련없는 허구임을 밝힙니다.




DUMMY

아악!

“안 된다 이놈들아! 차라리 날 죽여라!”

“어느 년이 민비냐? 말해라! 말하는 년은 살려주마.”

아악!

하하하! 흐흐흐! 킬킬킬!

분명 내 목숨은 끊어진 게 확실한데 웅웅웅 들리는 저 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이렇게 흐릿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육신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런 감각도 없다. 분명 조금 전에 칼에 찔리고 수많은 총알을 맞지 않았는가? 나는 분명 죽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도 내 의지로 까닥할 수 없었다. 아니 내 의지가 아니다. 의지도 없다. 그냥 보이고 들리는 것 뿐.

방울을 흔들던 왜놈은 계속 내 주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액체를 뿌려대며 요상한 소리를 지껄이고, 부적을 만지고 때론 방울을 흔들어 대었다.

그 짓들이 괴로웠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마다 밖을 향해 뛰쳐나가려던 나는 무언가 벽에 부딪쳐 다시 나의 몸 안으로 튕겨지듯 밀려 들어왔다. 속박 당한 듯 나의 의지로 이 몸을 벗어날 수 없었다. 벗어나고자 하는 것도 내 의지는 아니다.

무언가는 나를 이 몸 밖으로 끌어내려 하였고 다른 힘은 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벽을 만들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단 것도 내 의지가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 같았다. 그저 이끌리고 있을 뿐.


“이놈들!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내가 조선의 국모니라! 내가. 으윽!”

꺄악! 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여인의 앞섶이 갈라져 흩날리며 핏줄기가 허공에 뿌려졌다.

흐릿한 시선너머로 서서히 무너지는 그녀를 붙잡는 낭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술 취한 듯 비틀거리던 잡배들이었다. 그놈들은 키득거리며 두 놈은 그녀를 붙잡고 한 놈은 칼을 휘 두르며 떠들고 있었다.

다른 놈들은 그 짓거리를 보며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어떤 놈들은 궁녀의 앞가슴을 들쳐보거나 바닥에 쓰러진 어린궁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었다.

어린궁녀는 넋이 나간 듯 눈물을 쏟으며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이미 발가벗겨진 체로 쓰러져 피를 흘리는 궁녀도 있었고, 부서진 입구에는 목과 두 팔이 모두 잘려나간 시신이 걸쳐있었는데 아는 자였다. 궁내부 대신일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오는 저 짓거리들이 나에겐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저 보이니 보고 있고 들리니 듣고 있을 뿐. 아니, 생각한다는 그 생각자체도 들지 않았다. 얼른 이 몸을 벗어나고자 애쓸 뿐.

칼을 든 놈이 칼에 베여 찢어진 그녀의 윗도리를 확 열어젖히니 비스듬히 베인 상처가 벌어져 피가 솟구쳐 올랐다.

그녀는 혼절한 듯 고개가 뒤로 젖혀져 흔들리고 있었다.

놈은 피에 젖은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통쾌한 듯 웃으며 뭐라고 지껄이더니 칼을 푹 찔러 넣었다. 칼은 그녀의 옆구리를 뚫었고 놈은 다시 칼을 빼내어 또 찌르니 그녀의 복부는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고 붙잡고 있던 놈들이 손을 놓자 그녀의 가녀린 몸뚱이는 바닥으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어린 궁녀는 죽었는지 혼절을 했는지 이미 축 늘어져 있었다.

놈들은 쓰러진 왕비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내려와 앞마당에 패대기쳐 버렸다.

그러던 와중에 왕세자가 끌려나왔다.

놈들은 세자에게 큰소리로 뭐라 추궁을 하였다.

그러나 이미 넋을 놓은 듯 그는 눈이 풀려있었고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정신이 돌아오는 듯 꿈틀대며 신음을 흘리자 다른 놈이 가슴을 거세게 짓밟고는 엉덩이로 그녀의 배를 깔고 앉아 상처 난 가슴에 단도를 푸욱 찔러 넣었다.

그녀의 상체가 들썩 거렸다.

놈은 그대로 그녀의 하의를 찢을 듯 벗겨내었다. 그녀의 하얀 속곳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놈들은 사타구니에 차고 다니던 천 쪼가리들을 벗어던지고 교대로 그녀의 가랑이를 향했다. 놈들의 몸짓에 따라 무력하게 아래위로 흔들리던 그녀의 고개가 나를 향해 옆으로 툭 떨어졌다. 그녀의 입에서 울컥 핏물이 뿌려졌다.

그때, 그녀의 눈이 파르르 힘겹게 뜨였다. 그 눈에서 피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그녀의 입과 코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그런 모습으로 죽어 석상이 되어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번쩍! 우르르릉!

꽈광!

“크흑“

엄청난 충격이 찾아왔다.

그녀의 피 맺힌 눈길을 마주보는 순간,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던 나에게 비수처럼 고통이 내려 꽂혔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들 이보다는 못할 것 같은 고통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녀에게 닥친 이 모든 현실이 고통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그 고통보다 더한 울분과 원통함, 먹먹함이 비수가 되어 나를 찔러오는데 죽으면서까지 경험했던 아픔보다 더한 고통은 분노가 되어 폭발했다.

아아아악! 내 지옥이라도 찾아가리라.

내 영혼이라도 팔아 기어이 이 원한을 풀어 주리라.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분노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분노는 고스란히 생각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난 이미 죽어 영혼이 결박당한 상태였다.

듣고, 보고, 원한을 세기고, 분노를 키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서럽고 그녀의 처지가 원통했다.

놈들은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그녀를 빙 둘러싸고 저희들끼리 킥킥대며 떠들고 있었다. 그녀의 벗겨진 사타구니를 벌려놓고 들여다보며 더러운 짓을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칼끝으로 그녀의 가슴을 쿡쿡 찔러대는 놈까지, 그러다가 돌아가며 그녀의 몸에 칼을 쑤셔대더니 급기야 만세를 불렀다.

미칠 노릇이었다.

참담함이 분노를 넘어 원한으로 사무쳤다.

그때, 양이복장을 한 왜놈이 그들에게 다가가 얘기를 하자 그제야 놈들은 그녀의 난자당한 시체를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바닥은 그녀가 흘린 피로 검게 물들어 흘러내리고 주변에서 탄식과 함께 울부짖는 소리들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딸랑 딸랑 딸랑!

갑자기 왜놈의 주문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빨라졌다. 놈이 당황하여 허겁지겁 방울도 흔들고 주문도 외며 나의 머리 여기저기에 부적을 더 붙여대고 있었다.

드드드득!

이미 죽어버린 나의 몸이 미세하게 진동을 하고 있었다. 빠져나가지 못한 영혼이 충격을 받아 발작하는 모양이었다.

영혼이던, 혼백이던, 그것도 아니면 귀신이던 지금 나의 상태는 분명 저 주술을 부리는 놈에 의해 구속당해 있기 때문에 육체에서 빠져나가 저승을 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검은 복면의 우두머리는 이 상황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뭐라 지시를 내린다.

그러자 놈들은 어딘가에서 지붕이 없는 가마를 가져와 나를 실으려 했지만 굳어버린 나의 시체는 눕혀지지 않았다. 놈들은 칼을 지탱하여 앉은뱅이 자세 그대로 나를 가마에 태우고선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마가 지나간 자리에 점점이 핏자국만이 뒤를 따랐다.

궁을 빠져나가는 사이 그녀의 시신을 불에 태우는 낭인들이 보인다.

놈들은 잔악무도한 자신들의 짓을 숨기려는 것인지 그녀의 죽음마저 불태워 없애버리려 하는 것이다.

나는 무덤덤한 상태로 그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그 불꽃을 피워 올리는 그녀를, 그녀의 처참한 시신을 거저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다시 주술의 힘에 잠식 당해버린 내 영혼은 분노의 불길을 잠재우고 몽롱한 의식의 끝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원한도 분노도 주술의 힘에 의해 사그라져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저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었다.

기름을 끼얹은 듯 불은 활활 타올랐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따라 그녀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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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제17장 귀로(4) +2 14.12.17 1,547 58 12쪽
124 제17장 귀로(3) +4 14.12.15 1,375 59 13쪽
123 제17장 귀로(2) +6 14.12.14 3,255 79 12쪽
122 제17장 귀로(1) +4 14.12.12 1,970 62 13쪽
121 제16장 진정한 용서(5) +4 14.12.10 2,044 62 12쪽
120 제16장 진정한 용서(4) +4 14.12.08 1,551 57 12쪽
119 제16장 진정한 용서(3) +8 14.12.07 1,648 56 12쪽
118 제16장 진정한 용서(2) +9 14.12.05 1,580 53 12쪽
117 제16장 진정한 용서(1) +7 14.12.03 1,608 63 12쪽
116 제15장 단죄, 그 마지막(6) +6 14.12.01 2,660 85 12쪽
115 제15장 단죄, 그 마지막(5) +2 14.11.28 1,459 56 11쪽
114 제15장 단죄, 그 마지막(4) +2 14.11.26 2,503 76 11쪽
113 제15장 단죄, 그 마지막(3) +6 14.11.24 1,450 49 12쪽
112 제15장 단죄, 그 마지막(2) +6 14.11.21 1,793 55 11쪽
111 제15장 단죄, 그 마지막(1) +2 14.11.19 3,046 69 12쪽
110 제14장 일본징벌(6) +4 14.11.17 2,209 63 13쪽
109 제14장 일본징벌(5) +6 14.11.14 2,114 58 12쪽
108 제14장 일본징벌(4) +8 14.11.12 1,437 59 12쪽
107 제14장 일본징벌(3) +6 14.11.10 1,854 49 12쪽
106 제14장 일본징벌(2) +8 14.11.07 2,447 132 12쪽
105 제14장 일본징벌(1) +2 14.11.05 1,622 56 12쪽
104 제13장 불바다(7) +6 14.11.03 1,532 51 11쪽
103 제13장 불바다(6) +2 14.10.31 1,732 57 12쪽
102 제13장 불바다(5) +4 14.10.29 2,770 155 12쪽
101 제13장 불바다(4) +4 14.10.27 2,419 72 12쪽
100 제13장 불바다(3) +4 14.10.24 2,558 177 12쪽
99 제13장 불바다(2) +6 14.10.22 2,849 139 12쪽
98 제13장 불바다(1) +4 14.10.20 2,139 61 12쪽
97 제12장 살육(8) +4 14.10.17 1,845 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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