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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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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즈
작품등록일 :
2016.04.20 19:44
최근연재일 :
2016.09.21 18:56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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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8
추천수 :
170
글자수 :
228,029

작성
16.04.2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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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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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피로 이어진 9

DUMMY

랑칸이 놀라며 물었다. 비무의 팔은 팔꿈치 아래로는 마치 연체동물의 그것처럼 하늘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계속해서 길어졌다 짧아지고, 굵어졌다 얇아지며 움직였다. 그냥 촉수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만, 그 끝에 달린 것이 분명 다섯 개의 손가락인 것을 보면 엄연히 팔이라고 불러주는 편이 옳을 듯 했다.


비무가 양 팔을 들었고, 그것들은 아까처럼 두 개의 줄기가 되어 랑칸에게로 쏘아져왔다. 랑칸이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놀랍게도 비무의 팔은 랑칸이 있던 지점에서 정확히 90도로 꺾이며 그를 따라왔다. 귀찮구만. 속으로 생각하며 랑칸은 몸을 틀었다.


이번에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 옷의 왼쪽 팔 부분이 찢겨져 나갔다. 다시 한 번 그 공격이 들어온다면 허공에서 잘 꿰뚫린 꼬치모양이 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비무의 팔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랑칸이 땅에 착지하며 말했다.


“네가 누군지 알겠어.”


비무가 움찔했다. 랑칸은 어디론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그들의 주변은 마치 공인된 경기장이라도 되는 듯 뱀파이어들이 원을 그린채 물러서 다가오지 않았다. 비무가 원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은 랑칸이 수월하게 말을 이었다.


“너 그 놈이지? 뱀파이어 군주의 머리를 날리고 지 팔도 잃었다던. 그 요괴 사냥꾼 말야.”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쉼 없이 흔들거리던 두 팔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으로 비무가 동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랑칸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지가 죽이려고 애쓰다가 팔까지 날린 놈한테 충성을 바치다니. 너도 참 특이하구만.”


랑칸이 미소를 지었다.


“참 뭐 같은 근성이야. 왜, 떡고물이라도 줬어?”


“닥쳐!”


비무가 고함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비무의 팔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랑칸에게 뻗어왔다. 아까보다 한층 더 빨라진 그것들에 의해 랑칸의 몸이 꿰뚫릴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랑칸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두 팔이 몸에 닿기 직전, 랑칸은 어디론 가로 뛰었다.


“어딜!”


두 팔들이 공중에서 궤도를 바꾸며 랑칸을 뒤쫓았다. 그의 발이 땅에 닿으려는 순간, 그의 가슴팍으로 두 팔이 날아들었다.



천력은 뱀파이어들에 둘러싸인 채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본다면 수적 열세로 인해 악전고투를 벌이는 형상이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천력의 힘 앞에서 뱀파이어들은 바람이 날리는 낙엽처럼 우수수 흩어질 뿐이었다.


평상시의 그라면 자신의 이런 모습을 상상도 하지 못할 테지만, 형상이 변하고 또 싸움에 취한 천력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즐거울 뿐이었다.


“더 와봐! 더!”


뱀파이어들조차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인간성을 잃고 피에 굶주린 요괴가 된 후, 그들이 얻은 것은 불사-그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의 능력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자신들을 손쉽게 막아내고 있지 않은가.


뱀파이어들은 팔에 치이고, 주먹에 맞으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접근하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를 박아 넣는다면 뱀파이어가 되기 전의 어마어마한 고통 덕택에 무릎 꿇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수없이 많은 뱀파이어들이 악다구니를 쓰며 천력에게 달려들었고, 운 좋은 몇 명은 그의 몸에 이를 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천력의 몸에는 날카로운 송곳니조차 박히지 않았다.


“이 놈들이!”


고막을 터뜨리고, 온 몸의 근육을 찢어버릴 듯한 고함. 그 뒤에 이어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주먹의 세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요괴 사냥꾼과 뱀파이어의 대결이 아닌, 한 마리의 거대한 요괴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무리들로 보일 정도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독고 청이 입술 사이로 신음을 흘렸다.


“저 녀석이 이 정도일 줄이야··· 존이 불러온 뜨내기일 줄 알았는데······.”



그의 나이 72세. 지금은 1구역의 대 집정관으로 있지만, 그도 젊을 적에는 서라벌 국을 떠나 유학하며 수없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했었다. 그러나 그가 아는 요괴 사냥꾼들 중에는 저 정도로 강한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괴를 잡겠답시고 덤벼드는 자들 중에 얼마나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이가 많았던가.


두 팔을 잃었던 비무도 그랬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서른 살 즈음이었던가. 서부 지구에 있었을 적 머물렀던 마을에 뱀파이어들이 출몰했었다. 그 때 나타난 것이 비무였다. 독고 청이 보기에도 그는 강했다. 그저 공포의 대상이었던 뱀파이어들을 그는 어린 아이를 가지고 놀 듯 다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 끔찍할 정도로 뱀파이어들을 죽였다. 사지를 찢고, 말뚝으로 몸을 관통시키며, 산채로 불태우는, 피와 연기가 땅과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행위들.


그의 목적이 뱀파이어 군주를 불러내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독고 청은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그는 기대했었다. 그가 본 비무의 강함을 믿었다. 그라면 뱀파이어 군주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 믿음과 확신은 뱀파이어 군주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산산히 흩어졌다.


비무는 끈질겼다. 그의 어떤 공격도 먹혀들지 않는 상대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열심히 싸웠다. 그런 그를 조롱하듯 상대는 어느 순간 달려드는 그를 향해 아무런 몸짓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두 팔만을 벌렸다. 그런 상대의 입에 비무는 웃으면서 폭탄을 쑤셔 넣었다. 행여나 터지지 않을까봐 그의 손으로 직접 뇌관을 작동시켰다. 곧 일어날 끔찍한 결말에 독고 청은 순간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고 청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상상도 못했던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팔이 없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비무와 그 앞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는 뱀파이어 군주의 모습.


잠시 후 뱀파이어 군주는 비무의 목을 물었고, 고통 때문에 기절한 그를 뒤로 하고 독고 청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독고 청은 충성을 맹세했다.


‘공포 때문에? 아니, 힘 때문이었어.’


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었다. 수세기를 살아온 뱀파이어 군주는 단순한 육체적 힘뿐만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와 지식으로도 독고 청의 뒤를 봐주었다. 미로 속의 쥐는 먹이를 먹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인간이 보기에는 그것은 단순한 미로를 통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뱀파이어 군주가 바라보는 인간들의 세계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는 출세가도를 달렸고, 그의 고향인 서라벌 국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다. 모든 것이 뱀파이어 군주 덕분이었다.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는 고향을 바쳤다. 처음부터 약속된 조건이었다. 그가 뱀파이어가 되지 않은 것도 그 덕분이었다.


어차피 자신 이외의 다른 인간들에게 애정 따윈 없었다.


뱀파이어 군주가 전면으로 나설 수 없는 일, 가령 정적의 암살 기도 같은 것에는 비무가 알아서 처리를 해주었다. 누구보다 뱀파이어를 증오했던 그가 이제는 뱀파이어 군주의 충실한 심복이 되어 있었다.


예전의 그와 지금의 그가 같은 인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새로운 팔이 생긴 후 그 스스로 택한 것인지, 아니면 뱀파이어 군주가 가진 속박의 힘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복종인 것인지.


그 어느 쪽이든, 그는 인간일 때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얻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대상이 뱀파이어에서 인간으로 바뀌었을 뿐, 그는 여전히 예전의 방식을 유지했다. 사냥하고, 고문하고, 죽인다. 새롭게 얻은 두 팔은 그런 그의 방식에 더욱 적합했다.


‘그래, 비무라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도 있을거야.’


독고 청은 기대를 품은 채 천력에게서 시선을 돌려 비무와 랑칸이 싸우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쪽 상황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의 두 손 끝에 느껴질 감촉을 기대하며 비무는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쉽게 상대를 죽이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지만, 죽이지 않고 가지고 놀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어쩌면 죽지 않을 지도 모르지. 그리고 살리는 거다. 그 뒤에 어마어마한 고통을 안겨주마. 돌려줄 테다. 내가 겪었던 모든 것을.


승리를 확신하며, 비무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


팅.


예상치 못한 금속성의 소리가 들렸다. 비무의 눈이 커지고, 그 동공에 랑칸의 모습이 비쳤다. 어느새 랑칸의 손에는 추형도가 들려 있었다. 비무에게 말을 걸어 시간을 벌고서는, 그 사이에 뱀파이어에게 박혀 있던 그것을 꺼내들어 그의 두 팔을 막았던 것이다.


“이 교활한 놈!”


“네가 멍청한 거지. 아무튼 말이야······.”


랑칸이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비무를 향해 돌진해왔다. 비무 또한 지지 않았다. 랑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팔들을 거둬들인 다음, 그에게로 되쏘았다.


랑칸이 가볍게 몸을 틀며 말했다.


“한 번.”


역시나 비무의 팔들은 그 방향을 바꾸며 랑칸에게로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약간은 달랐는데, 두 팔의 방향이 서로 달랐다. 하나는 앞, 다른 하나는 뒤. 그러나 랑칸은 여유롭게 추형도를 휘두르며 두 팔을 모두 튕겨냈다.


“두 번. 너, 두 번이 한계구나?”


동의의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약점이 들켜버린 사실에 비무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를 악물며 두 팔을 다시 거둬들였지만, 어느새 랑칸이 눈앞에 와 있었다.


랑칸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가득 찼다.


“끅.”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음을 길게 내뱉지도 않았다. 아니, 그럴 수도 없었다. 비무의 가슴팍을 파고들은 추형도는 그의 폐까지도 꿰뚫어버렸다. 가슴에 난 구멍 사이로 공기와 함께 피거품이 끓었다. 막혀버린 기도는 어느새 호흡의 자유마저도 앗아갔다.


눈앞에서 웃고 있는 랑칸의 모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뚫린 가슴에서부터 자신의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단 것이 느껴졌다.


항상 바라왔던 것이었다. 누구보다 죽이고 싶던, 아니 갈기갈기 찢어서 그 흔적조차 남기고 싶지 않던 녀석이 생겼을 때부터. 그리고 그 녀석을 쫓는 동안에. 그리고 그 녀석을 만났을 때. 죽일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녀석의 입에 폭탄을 쑤셔넣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녀석의 힘에 무릎 꿇었을 때.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의 모든 삶은 바로 한 순간만을 향해 달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순간이 드디어 왔다.


마지막이라 느낀 순간, 비무는 미소 지었다.


‘이제 죽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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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선과 악 - 2 16.09.21 227 0 10쪽
46 선과 악 - 1 16.09.21 135 0 7쪽
45 눈 위로 떨어진 꽃 17 +3 16.05.11 248 3 16쪽
44 눈 위로 떨어진 꽃 16 16.05.10 200 1 9쪽
43 눈 위로 떨어진 꽃 15 16.05.08 248 2 13쪽
42 눈 위로 떨어진 꽃 14 16.05.07 213 2 11쪽
41 눈 위로 떨어진 꽃 13 16.05.07 201 2 12쪽
40 눈 위로 떨어진 꽃 12 16.05.06 290 2 13쪽
39 눈 위로 떨어진 꽃 11 16.05.05 211 2 11쪽
38 눈 위로 떨어진 꽃 10 16.05.04 218 2 10쪽
37 눈 위로 떨어진 꽃 9 16.05.03 210 2 13쪽
36 눈 위로 떨어진 꽃 9 16.05.02 238 3 13쪽
35 눈 위로 떨어진 꽃 8 16.05.01 215 3 16쪽
34 눈 위로 떨어진 꽃 7 16.05.01 216 3 9쪽
33 눈 위로 떨어진 꽃 6 16.04.28 236 3 10쪽
32 눈 위로 떨어진 꽃 5 16.04.28 206 3 12쪽
31 눈 위로 떨어진 꽃 4 16.04.26 200 2 12쪽
30 눈 위로 떨어진 꽃 3 16.04.26 157 3 9쪽
29 눈 위로 떨어진 꽃 2 16.04.26 238 3 15쪽
28 눈 위로 떨어진 꽃 1 16.04.26 259 4 11쪽
27 피로 이어진 16 16.04.25 208 3 9쪽
26 피로 이어진 15 16.04.25 213 3 11쪽
25 피로 이어진 14 16.04.25 205 3 10쪽
24 피로 이어진 13 +2 16.04.25 212 3 15쪽
23 피로 이어진 12 16.04.25 199 2 11쪽
22 피로 이어진 11 +2 16.04.25 213 3 14쪽
21 피로 이어진 10 16.04.24 218 3 13쪽
» 피로 이어진 9 +1 16.04.24 25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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