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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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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즈
작품등록일 :
2016.04.20 19:44
최근연재일 :
2016.09.21 18:5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2,093
추천수 :
170
글자수 :
228,029

작성
16.04.26 00:35
조회
258
추천
4
글자
11쪽

눈 위로 떨어진 꽃 1

DUMMY

눈보라가 세차게 불고 있었다. 온 세상이 다 하얗게 뒤덮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먼 곳에 보이는 산들과 군데군데 제 자리를 잊은 듯 툭 튀어나와 있는 바위들 뿐인데, 그마저도 눈에 덮여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다.


한참이나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눈밭 위에는 으레 있을 법한 새 발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저 멀리로 두 개의 선이 이어져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바라본다면, 그 선이 두 명의 발자국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으 추워. 빌어먹을, 꼭 이 길로 가야 돼?”


발목까지 푹푹 들어가는 눈길을 밟으며 랑칸이 말했다. 서라벌국을 떠나올 때와 달리, 그의 모습이 좀 변해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옷차림이었는데, 그가 애지중지하던 가죽 재킷을 벗고 터틀넥 워머를 입고 있었다. 바지 또한 검은색의 스키니진에서 일자 형태의 청바지로 갈아입은 뒤, 신발은 컴뱃 부츠가 아닌 평범한 운동화를 신었다. 아무래도 비무와의 싸움에서 옷이 몇 군데 찢어지자 이참에 바꿀 겸 추위를 잘 견딜만한 옷을 입은 듯 했다.


머리 모양 또한 한결 달랐는데, 그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쪽 눈을 덮는 흰색의 긴 머리는 그대로였지만 반삭발로 깎았던 나머지 검은 머리 부분이 길게 자라 뒤로 묶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아무튼, 여전히 요괴사냥꾼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네가 이 길로 가자고 했잖아. 앙?”


천력이 답했다. 천력 또한 민소매를 벗어 버리고 긴 가디건과 셔츠를 입고 있었다. 목에는 붉은색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고, 바지는 예전의 펑퍼짐한 것 대신 카키색 카고 바지를 입었다. 천력 또한 추위에 좀 더 견딜 수 있는 옷을 선택한 듯 했다.


랑칸과 달리 머리는 여전히 특유의 모히칸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길이가 좀 더 길어진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지. 아오 망할.”


“그렇다고 해서 ‘오르불 산맥’을 넘을 수는 없잖아? 돌아서 가야지 어쩌겠어.”


그들은 동부지구에서 서쪽에 위치한 도시국가, ‘오니고쿠’로 가고 있었다. 서라벌 국이 동부지구의 동쪽에서 가장 큰 도시국가라면, 서쪽에는 오니고쿠가 그만한 도시국가라고 할 수 있다. 서부지구와 근접해 있어 무역으로 큰 부를 쌓은 도시이며,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무조건 놀랄 수 밖에 없는 특징을 간직한 도시다.


아무튼, 서라벌 국에서 오니고쿠는 지도상으로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동부지구 자체가 다른 지구에 비해서 좀 작은 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랑칸과 천력은 북부지구에 근접한 길을 통해 멀리 돌아가는 것을 택했는데, 이는 두 도시국가의 중간에 위치한 오르불 산맥 때문이었다.


오르불 산맥은 현존하는 4개 지구에서 유일하게 요괴들의 지배하에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요괴들이 인간의 국가와 같은 어떤 세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안에 서식하는 요괴의 수가 너무나도 많은데다가, 산맥이 워낙 험준하여 요괴가 없다고 해도 보통 사람은 발을 들여놓자마자 목숨을 잃기 십상인 곳이었다.


수많은 모험가들, 요괴사냥꾼들이 산맥을 넘는데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요괴를 몰아내기 위해 국가들이 연합하여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성과조차 거두지 못한 채 몰살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알려지지도 않은 요괴들도 많은데, 개중에는 목격자-정말 운이 좋게도 살아나올 수 있던 인물-의 증언에 따르면 그 어떤 요괴보다도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증언까지 있었다.


"오르불 산맥을 넘다 죽으나, 추워서 죽으나, 그게 그거 같구만. 망할.”


랑칸이 투덜거렸다. 천력은 랑칸을 향해 약간 인상을 찌푸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워낙에 눈이 사방에서 몰아쳐 표정이 제대로 보이기나 할까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천력도 뼛속까지 느껴지는 추위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었기에, 이대로 가다간 둘 다 정말 이 허허벌판에서 얼어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민가를 찾아야 했다.


“지도에 따르면 이 근방에 마을이 하나 있다던데. 보이지를 않네.”


“제대로 가고 있긴 한거야? 사방을 봐도 다 똑같은데 길은 어떻게 찾어? 휴대폰이라도 되면 좋겠구만. 아오, 통화 불가능 지역이라니.”


“너무 크게 걱정 하지 마. 이정표는 확실히 보면서 가고 있으니까.”


“그게 정말로 있긴 있는 거야? 이거 원, 알 수가 없으니.”


떠나오기 전 천력은 미리 지도를 확실히 숙지해뒀었다. 몇 몇 지역을 제외하면 휴대폰은 무용지물이었기에, 다른 때처럼 내비게이션을 이용한다던가 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랑칸에게도 지도를 외우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이정표가 되는 지형들은 알아 두라고 조언했었지만 역시나 특유의 건방진 태도로 ‘난 그런 것쯤 몰라도 어느 곳이든 알아서 갈 수 있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눈보라가 내리는 지역에 접어들자마자 하는 소리가 ‘왜 진작에 가르쳐주지 않았냐. 답답해 죽겠다.’였다.


“그러게 진작 말 좀 듣지. 아, 잠깐만! 저기 봐봐!”


천력이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뭔가 싶어 랑칸이 따라서 그 쪽을 보았다. 처음에는 눈보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 찡그렸던 표정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화색이 돌았다.


“불빛이잖아!”


랑칸이 소리쳤다. 천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을을 찾은 것 같은데? 빨리 가보자.”


“좋지!”


대단히 희망적으로 끝난 대화였지만, 실제로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지금까지 걸어온 것과 맞먹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베킨마을]이라 붙어있는 입구의 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예상외의 광경이 펼쳐졌다. 마을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눈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오르불 산맥을 피해 돌아가려면 모든 여행자들은 필연적으로 이 마을을 들려야 한다. 그런 여행자를 상대로 장사를 해 어느 정도 번영을 이룬 것 같았다. 이만하면 도시국가는 아니더라도, 중소규모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했다.


특이한 것은 마을 안에는 눈이 별로 쌓여있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몇 걸음을 걸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을의 땅 속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에 천력은 열선을 이용한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런 외진 곳에 전기가 들어 올리는 없으니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주위를 둘러본 뒤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을 중앙에 거대한 물탱크가 있었는데, 그 위쪽에서 끊임없이 수증기가 올라왔다. 물탱크 밑으로 굵은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고, 관의 끝이 땅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니 뜨거운 물을 마을 전체 수도관을 통해 돌려 열기를 전달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물탱크 곁으로 쉴 새 없이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손에 든 것을 보니 불을 계속 지피기 위한 연료인 듯 했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답게 높은 건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가장 높아봤자 2층 건물 뿐. 희한한 건 이런 지역의 건물의 지붕은 눈이 쌓이지 않도록 경사진 형태를 띠는데, 죄다 평평한 지붕 밖에 없었다. 그 위에 눈이 쌓여있지 않은 걸 보니 마을의 땅과 마찬가지로 수도관의 열기를 통해 눈을 녹여 없애는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마을은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고 만들어졌는지, 길도 일직선으로 잘 만들어져 있고 구간 별로 건물이 세워진 것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런 계획은 처음 마을이 생겼을 때는 있지 않았던 모양인데, 마을 가운데, 물탱크 주변으로 갈수록 허름한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랑칸이 말했다.


“휘유. 되게 추울 줄 알았는데. 꽤 따뜻하구만?”


천력이 답했다.


“그러게. 이런걸 보면 인간이 참 대단한 거 같아.”


랑칸이 고개를 끄덕인 뒤, 손짓으로 뭐라도 먹자는 시늉을 했다. 꽤 오랜 시간을 걸어왔으니 배가 고플 법 했다. 천력도 배가 고팠기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 음식점을 물어보려 했다.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료를 나르던 사람에게 천력이 말을 걸었다. 얼굴에 검댕이 덕지덕지 묻고, 옷도 마찬가지로 더럽혀지고 너덜너덜해져 한 눈에 봐도 나 힘들게 살았소 하는 인상을 가진 청년이었다.


“뭐요?”


예상 외로 퉁명스런 답이 돌아왔다.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마을의 주민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일은 잘 없을 텐데. 천력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청년이 기분 나쁜 눈빛으로 랑칸과 천력의 행색을 살펴보더니, 입술을 비죽 내밀며 툭 말을 던졌다.


“딱 보니 여행자시구만. 우리 마을에는 처음이요?”


랑칸이 인상을 찌푸렸다. 청년의 말투에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그가 한 마디 하려는 찰나, 천력이 눈치를 주고는 먼저 대답했다.


“예. 이쪽 길로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저, 뭐라도 먹으면서 몸이라도 녹일까 하는데. 갈만 한 곳 없겠습니까?”


청년이 턱짓으로 마을 한 쪽을 가리켰다.


“저 쪽으로 쭉 가보슈. 당신들 같은 사람들한테 장사하는 술집이 있을 거요. 숙박도 할 수 있을 거고.”


천력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의 공손한 태도에 청년도 조금 당황했는지, 얼굴이 붉어진 채로 다시 낑낑거리며 연료를 나르기 시작했다.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걸음을 멈춘 청년이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뭐, 여기서 함부로 말 걸고 돌아다니지 마쇼. 댁들 같은 여행자들 우리 모두 썩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냥 곱게 잠이나 자고 빨리 뜨쇼. 알았수?”


말을 마친 뒤, 청년은 홱 돌아서서 다시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랑칸이 주먹을 쥐고 쫓아갈 자세를 취했다.


천력이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참아. 또 사고칠려고 그래?”


천력의 손을 거칠게 털어내며 랑칸이 말했다.


“사고는 무슨. 저 새끼 말 하는 게 맘에 안 들잖아.”


“뭐, 말은 저렇게 하지만 우리를 걱정해주는 것도 같은걸.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에이 씨, 괜스레 랑칸은 바닥을 한 번 걷어찼다. 그 덕에 들고 있던 가방 안에 있는 추형도가 덜그럭 거리는 소리를 냈다.


“요괴 사냥꾼이라고 밝힐 걸 그랬나? 그럼 잘해줬을지도 모르잖아.”


천력이 고개를 저었다.


“가는 곳마다 사기꾼 소리나 들으면서 무슨. 오히려 더 적대감만 키울지도 모르지. 그냥 이번 마을에서는 조용히 있다 가자구. 알았지?”


랑칸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력이 아까 청년이 가리켰던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랑칸도 따라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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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선과 악 - 2 16.09.21 227 0 10쪽
46 선과 악 - 1 16.09.21 135 0 7쪽
45 눈 위로 떨어진 꽃 17 +3 16.05.11 248 3 16쪽
44 눈 위로 떨어진 꽃 16 16.05.10 200 1 9쪽
43 눈 위로 떨어진 꽃 15 16.05.08 248 2 13쪽
42 눈 위로 떨어진 꽃 14 16.05.07 212 2 11쪽
41 눈 위로 떨어진 꽃 13 16.05.07 201 2 12쪽
40 눈 위로 떨어진 꽃 12 16.05.06 290 2 13쪽
39 눈 위로 떨어진 꽃 11 16.05.05 211 2 11쪽
38 눈 위로 떨어진 꽃 10 16.05.04 218 2 10쪽
37 눈 위로 떨어진 꽃 9 16.05.03 209 2 13쪽
36 눈 위로 떨어진 꽃 9 16.05.02 238 3 13쪽
35 눈 위로 떨어진 꽃 8 16.05.01 215 3 16쪽
34 눈 위로 떨어진 꽃 7 16.05.01 215 3 9쪽
33 눈 위로 떨어진 꽃 6 16.04.28 236 3 10쪽
32 눈 위로 떨어진 꽃 5 16.04.28 206 3 12쪽
31 눈 위로 떨어진 꽃 4 16.04.26 200 2 12쪽
30 눈 위로 떨어진 꽃 3 16.04.26 157 3 9쪽
29 눈 위로 떨어진 꽃 2 16.04.26 238 3 15쪽
» 눈 위로 떨어진 꽃 1 16.04.26 259 4 11쪽
27 피로 이어진 16 16.04.25 208 3 9쪽
26 피로 이어진 15 16.04.25 213 3 11쪽
25 피로 이어진 14 16.04.25 205 3 10쪽
24 피로 이어진 13 +2 16.04.25 212 3 15쪽
23 피로 이어진 12 16.04.25 198 2 11쪽
22 피로 이어진 11 +2 16.04.25 213 3 14쪽
21 피로 이어진 10 16.04.24 218 3 13쪽
20 피로 이어진 9 +1 16.04.24 25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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