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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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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즈
작품등록일 :
2016.04.20 19:44
최근연재일 :
2016.09.21 18:5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2,106
추천수 :
170
글자수 :
228,029

작성
16.04.28 00:38
조회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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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눈 위로 떨어진 꽃 5

DUMMY

눈은 더욱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마을에 인기척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집의 창문에 불이 꺼진 밤, 몇 몇 개 켜진 가로등만이 을씨년스럽게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분명 눈은 하얀빛인데, 세상은 온통 검정빛으로만 보였다.


거대한 몸집이 나타났다.


어둠으로 가득 찬 곳이라 그 모습을 정확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잠깐 잠깐 시야에 들어오는 것으로만 판단한다면, 몸에 털이 뒤덮여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법 했다. 인간과 닮았으나 같지는 않은, 목이 없고 머리가 바로 어깨 위에 붙어있는 형상이었다. 인간보다 세 배 정도는 키가 컸고, 팔 다리는 두 배가 될 정도로 굵었다.


눈동자는 한 집을 향하고 있었다.


“······.”


무슨 말이었을까. 아니 그저 신음소리였을까. 입을 열어 나온 그것은 눈과 함께 몰아치는 바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집에 가까워져 손을 뻗고 있었다. 손가락이 창문을 건드렸다. 손끝에 달린 날카로운 손톱에 긁힌 창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창문 커튼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소리에 방금 잠에서 깬 듯, 눈을 부비며 나타난 그림자는 커튼을 걷고 바깥을 보았다.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가운 밤공기를 타고 비명은 마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마을 이곳저곳에서 불이 켜졌다. 잠에서 막 깬 듯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세찬 눈보라 속에서, 옷깃을 여미며 그들은 비명이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의아한 눈을 하고 있는 가운데, 집 안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비명을 지른 남자였다. 사람들이 왜 비명을 질렀냐고 물었다. 남자는 그저 잠꼬대를 했을 뿐이라고,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평소에 그런 일이 없는 사람이라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몰려오는 졸음과 추위 때문에 그만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뭔가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발자국이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거대한,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그것이 분명히 눈 위로 찍혀 있었다.




“아쉽구만.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랑칸이 말했다. 간밤에 요괴가 나타났단 얘기는 마을 전역에 쫙 퍼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다 그 얘기만을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뭘 하고 있었냐며 요괴 사냥꾼들을 흘겨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킨의 거대한 칼 앞에서 대놓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섣불리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기에, 모두는 방 안에 모여 앉아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은 채 그저 침묵만을 지켰다.


“다녀왔어요.”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문간에 눈으로 범벅이 된 교네신이 서 있었다. 다른 일행들 대신,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교네신이 밖으로 나가 정보를 수집하고 온 것이다. 술집에서는 조명이 어두워 몰랐지만 교네신은 선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라면 사람들이 그다지 거부감을 갖지 않고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었다.


눈을 털어내며 교네신이 입을 열었다.


“그다지 좋은 정보는 얻지 못했어요. 뭐, 요괴를 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얼어붙은 입에서 나온 말이라 발음이 그다지 정확하지 않았다.


“뭐래?”


랑칸의 물음에 교네신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몸이 채 녹지 않은 듯 일단 난로가로 가서 몸을 쬐였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신발을 벗어 불에 가까이 대는 모습이 손발이 다 얼어있던 모양이었다.


짜증이 난 랑칸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치자, 교네신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어이쿠, 죄송해요. 너무 추운 나머지.”


“괜찮아. 말이나 해봐.”


어깨를 으쓱한 뒤, 교네신이 들은 이야기를 했다.


“뭐, 그리 큰 이야기는 없어요. 직접 본 사람이 이야기해준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 그냥 밤에 비명 소리가 나서 나가봤대요. 잠에서 깨서 어디서 나는가 두리번거리는데 바깥에서 나는 거 같아서 집 밖으로 나와봤더라구요. 알잖아요? 이 마을 하면 서로간의 끈끈한 정이란 거.”


“대단들 하시구만. 철저한 봉사의식이 있는 마을이야. 호기심이라고 해야 하나?”


랑칸이 턱을 괴며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의 말투에 익숙해진 모두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은 채 교네신의 말에 집중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해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두리번거리는데, 한 남자가 나왔다더라구요. 딱 보니까 비명을 지른 사람인거 같아서 사람들이 물어봤는데, 그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잠꼬대를 한거라고 했대요.”


“엥?”


무킨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했다. 교네신이 말을 이었다.


“뭐,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누가 본 거죠. 그 남자의 집 앞 눈 위에 찍혀 있는 발자국을.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구요.”


천력이 말했다.


“음, 그럼 요괴를 직접 본 사람은 없네요?”


교네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모두들 비명을 지른 남자가 봤을 거라고는 했는데, 그 사람에게 찾아가도 별 말은 하지 않더라구요. 이야기를 나누기도 싫어했고.”


랑칸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발자국이 발견됐다는 건 요괴가 나타났다는 건데. 거기다가 비명을 지른 놈 집 앞에 찍혀 있었다고 하고. 그건 그 놈이 봤다는 거 아냐? 근데 사람들한테는 못 봤다고 했다고?”


무킨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쫀 거 아니겠습니까? 요괴의 보복이 두렵다던가. 그래서 모른 척 하는 거 아니에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러면 차라리 사람들한테 말해서 어떻게든 힘을 모으겠지. 요괴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걔가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어떻게 알아?”


“아니 뭐··· 알아듣는 요괴도······.”


“왜, 그 놈의 도깨비?”


도깨비 소리가 나오자 무킨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자신이 했던 얘기가 생각나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커다란 몸이 자신보다 훨씬 작은 랑칸에게 움츠러드는 모습이 우스워 주변 사람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매번 그렇듯이 얼굴이 빨개진 무킨이 웃지 말라고 화를 냈지만, 그 모양새가 더 웃겨 이번에는 교네신까지 웃었다. 물론, 노려보는 무킨의 눈빛에 금방 정색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음을 멈춘 천력이 말했다.


“숨기는 게 있다는 얘기네요.”


유일하게 웃고 있지 않던, 적풍이 대답했다.


“요괴를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사람이라.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군요.”


무킨을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며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던 랑칸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미소를 지었다. 얘가 또 왜 이러나 싶어 천력이 그를 바라보았다.


“재밌는 곳이야. 실종 사건이 일어나질 않나. 마을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지 못해 안달이 나있질 않나. 거기다가 이번에는 요괴를 감싸는 놈이 나타나질 않나.”


랑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복잡해질 거 같은데. 야, 무킨. 어제 약속 못 지키겠다.”


“뭐요?”


“우리가 요괴 안 잡기로 한거 말야. 이거 아무래도 다 연결되있는거 같아.”


그게 무슨 소리냐,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무킨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그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랑칸은 방구석에 놓아둔 가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가방의 지퍼를 열고 그 안에 담아뒀던 추형도를 꺼냈다.


언제나처럼, 칼이라고 보기에는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날조차 제대로 서있지 않은 검신에 비무와의 싸움에서 묻었던 피가 아직도 말라붙어 있었다. 검을 아끼는지 아끼지 않는 건지, 제대로 닦는 것도 않는 듯 했다.


추형도를 본 무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교네신 또한 그 기묘한 모습에 잠시 정신이 팔렸다. 잠시 후, 둘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딴 것도 칼입니까?”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추형도를 허리에 찬 랑칸은 씩 웃으며 천력에게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천력이 고개를 끄덕였고, 둘이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무킨과 교네신을 놔둔 채 그들은 방 밖으로 나왔다.


아마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아차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랑칸의 추형도를 본 뒤,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진 적풍의 눈빛을.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바람과 눈이 얼굴에 와 닿았다. 마치 칼날에 베이는 듯한 아픔이 느껴지는, 상상도 못할 추위였다. 그와 대조적으로, 온수로 인해 충분히 난방이 가해지는 땅에서는 열기가 올라왔다.


위는 춥고 아래는 따뜻하다. 익숙해지기에는 꽤 시간이 필요한 곳이겠다고 천력은 생각했다.


랑칸은 천력보다 조금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역시나 건들거리는 특유의 걸음걸이였다. 허리춤에 찬 추형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있었는데, 그 자세로 주위를 둘러보며 마을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꼴이 꼭 요괴 사냥꾼보다는 동네 건달에 알맞았다.


사람들 또한 랑칸의 차림새에 주눅이 들었는지, 그의 눈빛이 분명 좋은 것은 아님에도 누구 하나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단지 고개를 푹 숙이고 걸음을 재촉해 가던 길을 갈 뿐.


“랑칸, 무슨 계획은 있는 거야?”


랑칸이 돌아보았다.


“응.”


얼굴에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이번에는 뭔가 제대로 된 계획이 있는 듯 했다. 천력이 물었다.


“뭔데?”


“뭐긴 뭐야, 요괴를 본 놈한테 가서 물어보는 거지.”


그럼 그렇지, 천력은 잠시나마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라 생각했다. 그래도 어디 한번 끝까지 물어보기나 해보자 하는 마음에 질문을 이었다.


“마을 사람들한테도 얘기를 안 해주던 사람이 우리한테 말해주겠어?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으면?”


랑칸이 주먹을 내보이며 말했다.


“뭐, 그럼 이걸 써야지. 세상에 맞고도 말 안하는 녀석은 없더라구.”


랑칸의 말에, 천력이 걸음을 옮겨 랑칸의 눈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약간 인상을 쓴 눈에 화가 어려 있었다.


“그 놈의 주먹타령. 도대체 언제까지 할 거야? 네가 어린애냐? 어딜 가든 그렇게 사고만 칠래?”


랑칸이 피식 웃었다. 어라, 천력은 이상했다. 이런 말을 하면 보통 자기도 화를 내야 정상인데. 랑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네가 만날 이렇게 말씀을 해주시는데 내가 어찌 그런 짓을 하겠소이까. 앙?”


능글맞은 말투였다. 그러나 어느새 천력의 인상이 풀어져 있었다. 랑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뭐, 주변 사람들한테 차근차근 물어봐서 알아가야겠지? 교네신이 어느 정도 탐문을 해봤다지만, 분명 놓친 게 있을 거 아냐. 게다가··· 짧은 시간에 많은 걸 알아봤을 리도 만무하고. 일단 요괴를 봤다는 그 사람 주변부터 시작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보도록 하자고. 어때, 이만하면 됐지?”


천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랑칸이 씩 하고 미소를 짓더니 몸을 돌려 다시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까와 다를 바 없는 건들거리는 모양새였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천력이 중얼거렸다.


“흠, 가끔가다 신기하단 말야. 어른스러울 때가 있어······.”


벌써 몇 년을 같이 다녔지만, 천력은 아직도 랑칸이 어떤 녀석인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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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선과 악 - 2 16.09.21 227 0 10쪽
46 선과 악 - 1 16.09.21 136 0 7쪽
45 눈 위로 떨어진 꽃 17 +3 16.05.11 248 3 16쪽
44 눈 위로 떨어진 꽃 16 16.05.10 201 1 9쪽
43 눈 위로 떨어진 꽃 15 16.05.08 248 2 13쪽
42 눈 위로 떨어진 꽃 14 16.05.07 213 2 11쪽
41 눈 위로 떨어진 꽃 13 16.05.07 201 2 12쪽
40 눈 위로 떨어진 꽃 12 16.05.06 290 2 13쪽
39 눈 위로 떨어진 꽃 11 16.05.05 212 2 11쪽
38 눈 위로 떨어진 꽃 10 16.05.04 218 2 10쪽
37 눈 위로 떨어진 꽃 9 16.05.03 210 2 13쪽
36 눈 위로 떨어진 꽃 9 16.05.02 239 3 13쪽
35 눈 위로 떨어진 꽃 8 16.05.01 215 3 16쪽
34 눈 위로 떨어진 꽃 7 16.05.01 216 3 9쪽
33 눈 위로 떨어진 꽃 6 16.04.28 236 3 10쪽
» 눈 위로 떨어진 꽃 5 16.04.28 207 3 12쪽
31 눈 위로 떨어진 꽃 4 16.04.26 200 2 12쪽
30 눈 위로 떨어진 꽃 3 16.04.26 157 3 9쪽
29 눈 위로 떨어진 꽃 2 16.04.26 239 3 15쪽
28 눈 위로 떨어진 꽃 1 16.04.26 259 4 11쪽
27 피로 이어진 16 16.04.25 209 3 9쪽
26 피로 이어진 15 16.04.25 213 3 11쪽
25 피로 이어진 14 16.04.25 205 3 10쪽
24 피로 이어진 13 +2 16.04.25 213 3 15쪽
23 피로 이어진 12 16.04.25 199 2 11쪽
22 피로 이어진 11 +2 16.04.25 213 3 14쪽
21 피로 이어진 10 16.04.24 218 3 13쪽
20 피로 이어진 9 +1 16.04.24 257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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