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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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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즈
작품등록일 :
2016.04.20 19:44
최근연재일 :
2016.09.21 18:5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12,097
추천수 :
170
글자수 :
228,029

작성
16.04.25 12:47
조회
198
추천
2
글자
11쪽

피로 이어진 12

DUMMY

그때였다.


갑자기 환하게 불이 켜졌다. 한 순간 눈에 들어온 불빛 때문에 세 명 모두 눈을 찡그렸다. 얼마 후, 눈이 빛에 익숙해지면서 흐릿하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넓은 방 안에 있었다. 그들의 앞 쪽으로 통로가 하나 보이고, 그 통로에서 이어져 가운데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 밑으로는 알 수 없는 문자와 도형, 기호로 조합된 일종의 진陳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방의 천장에는 서라벌국의 전체 모습에서도 나타났던 오망성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각 꼭짓점마다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지금은 밤이기 때문에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평소에는 그 구멍을 통해 약간의 햇빛이 들어올 듯 했다.


천장을 비롯해 방의 모든 벽면에는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1구역에서는 볼 수 없던, 어떤 의미를 담은 듯한 조각들이었다. 아무래도 흐릿한 시야 때문에 그 의미를 알아보는 것은 힘들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모두들 명확하게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존은 여전히 피투성이가 된 채로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고, 랑칸은 몸을 심하게 움직였는지 쇠사슬로 묶여있는 팔 부분에 약간의 상처가 나 있었다. 예상보다 천력의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그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몸이 커졌을 때 쇠사슬에 묶였는지 대폭 줄어든 두 팔이 어깨가 빠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기절한 다음에는 강신술이 풀린다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의 앞에 류디엔이 서있었다. 흥미로운 눈빛으로 세 명을 바라보던 류디엔은, 예의 입가에 조소를 띄웠다. 그를 본 랑칸은 성질을 죽이기가 힘들 듯 이를 갈며 흡사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존은 그저 묵묵히 류디엔을 노려볼 뿐이었고, 천력은 류디엔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잽싸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류디엔이 입을 열었다.


“다들 꽤 시끄럽구만. 잠을 잘 수가 없잖아.”


그 말에 랑칸이 코웃음을 쳤다.


“뱀파이어가 잠은 무슨. 왜, 영원히 잠재워주랴?”


“역시나 입은 살았군. 뭐, 실컷 말이라도 해둬. 그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말야.”


말을 끝낸 후, 류디엔은 통로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한 무리의 뱀파이어들이 들어와 류디엔을 향해 목례했다. 개중에는 누리안의 어머니도 끼어 있었는데, 그녀는 품에 잠이 든 누리안을 안고 있었다. 끊임없이 품에 안긴 누리안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갈증을 겨우 참고 있는 듯 했다. 당장에라도 피를 빨고 싶지만, 류디엔의 명령에 의해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류디엔이 미소를 띈 채 말했다.


“조금만 참아 설란. 원 없이 피를 마시게 해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존이 눈에서 형형한 빛을 뿜으며 소리쳤다.


“그렇게 놔둘 줄 알아! 설란, 네가 그러고도 어머니야?”


인간이라면 그의 말에 조금 동요할 법도 한데, 설란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류디엔에게 고개를 까딱하더니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누리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은 자식을 보는 어미의 눈이 아니었다. 입맛 까지 다시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존은 그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류디엔은 그런 둘을 보며 재밌다는 듯 낄낄거렸다.


천력이 물었다.


“왜 우리를 살려두는 거지?”


류디엔이 답했다.


“너희들에게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야.”


“영광스러운 자리?”


류디엔은 말없이 주변 벽에 새겨진 조각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제 조각들은 선명하게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류디엔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모두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각들을 보았다.


조각들은 시계 방향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통로를 시작으로 해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한 사람의 모습과 그 앞에 엎드려 절하고 있는 여러 무리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었다.


부조이기 때문에 비록 옆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의 입에 날카롭게 삐져나온 송곳니를 보면 그가 인간이 아닌 요괴임을 알 수 있었다. 앞에 엎드린 무리도 마찬가지였는데, 긴 귀를 가진 것, 눈이 쫙 찢어진 것, 날개가 달린 것, 팔 다리가 여러 개인 것 등 다양한 요괴들을 나타내고 있었다.


다음 번 조각은 첫 번째 조각과 동일한 요괴로 보이는 존재가 높은 산 위에 올라 있고, 그 밑의 요괴 무리들을 향해 지시를 내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의 지시 아래 요괴들이 인간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넘어가니 또 다른 사람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요괴는 아니었다. 그는 한 손에 투박하게 생긴 칼을 쥐고 있는데, 그 모습이 랑칸이 추형도와도 비슷했다. 그는 다음 번 조각에서 역시 그 칼을 쥔 채로 요괴들과 맞서고 있었다. 그가 휘두르는 칼 앞에 수많은 요괴들이 도륙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다음으로 처음에 보았던 요괴들의 우두머리 앞에 서 있는 칼을 쥔 사내가 조각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그가 칼을 꽂아 넣는 모습이 보였다. 희한한 것은, 가슴에 칼이 꽂힌 상태인데도 요괴들의 우두머리가 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칼을 꽂은 사내가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조각이 아닌 글귀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귀를 이루고 있는 문자는 랑칸과 천력 둘 다 읽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고대에 쓰였던 실전된 문자인 듯싶었다.


그 때 존이 소리 내어 그 글귀를 읽었다.


“모든 것은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웃으며 사라질 뿐.”


그 말을 류디엔이 받았다.


“기다리라. 그리고 기다리지 말라. 어차피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건, 내가 무엇을 선택하건, 그렇지 않은 쪽은 지옥을 맛보게 되리.”


랑칸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류디엔이 답했다.


“‘그 분’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다. 너희 같은 존재들은 처 음 듣는 말이겠지.”


분명히 그 때의 기록은 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천력은 생각했다. 인간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 치욕스러운 사건, ‘대 재앙’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에, 모두들 아무도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었다. 때문에 정확히 그 사건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갔는지 아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앞에 그 때 당시의 일을 나타낸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인간들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서라벌 국에 저런 조각들이 있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누가 조각을 남겼단 말인가?


‘게다가··· 존이 저 글을 읽을 수 있다니?’


모든 지역에서 공용어가 통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읽을 수 없는 문자는 간간히 나타나는 고대어들 밖에 없었다. 물론 고대어들 중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언어들이 대 재앙 때 사라졌고, 그것을 기억하는 자들도 다 죽어 그들이 기억하는 것과 함께 사라졌었다. 그런데 존이 고대어를 능숙하게 읽을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류디엔이 이어서 말했다.


“말 그대로, 다시 돌아오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 분’ 의 재림을 실현시키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내가 왜 이 먼 곳까지 왔다고 생각하나?”


천력이 놀라며 물었다.


“최적의 조건? 그게 무슨 말이지?”


“뭐 이렇게 된 거, 모두 이야기해주지. 어차피 너희는 살아서 나갈 수가 없으니 말야.”


주변의 뱀파이어들이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류디엔은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손으로 그들을 제지시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서라벌 국이 처음부터 너희 인간들의 것인 줄 알았나? 이곳은 우리 요괴들의 가장 강력한 군단이 머물렀던 곳이야.”


예상치 못한 내용에 천력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는 랑칸과 존도 마찬가지인 듯, 그저 묵묵히 류디엔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 분’께서 돌아가신 후 이 곳에 머물렀던 요괴들이 이 조각을 남긴 거지. ‘그 분’의 죽음을 목격했던 요괴의 증언을 토대로 말야. 그리고 ‘그 분’이 돌아올 수 있도록, 조각들과 함께 이 서라벌 국을 만든 거야. 물론 처음에는 1구역뿐이었지만. 나머지 구역들과 귀한막이는 너희 인간들이 만든거지.”


이제야 천력은 1구역의 건물들이 왜 그렇게 특이한 외향을 띠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건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천력은 그 부분을 물었다.


“니들이 말하는, 소위 ‘그 분’의 죽음을 목격한 요괴는 어떻게 살아남은거지? 저 조각에 나오는 칼을 든 자는 그 근처의 요괴들을 살려두지 않았을 텐데?”


류디엔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나도 잘 모르지. 운이 좋았을 수도.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말을 계속 하면서, 류디엔은 천천히 방의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서라벌국의 모양이 오망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건 너희들도 알겠지? 물론 이 방도. 모두 ‘그 분’의 재림을 돕기 위한 것들이야. 그리고······.”


류디엔이 방 한 가운데 멈춰 섰다. 그리고 나머지 이들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 재림이 시작된다.”


류디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뱀파이어들 무리가 방 여기 저기로 흩어졌다. 그들이 자리 잡고 나자, 각자가 오망성의 각 꼭짓점과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란은 누리안을 안은 채로 류디엔의 곁에 가서 섰다. 설란을 한 번 바라본 후, 류디엔은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읊기 시작했다.


“Des Armo Quntinos··· Morh Natto Quntinos······."


존이 소리쳤다.


“그만 둬!”


그 옆에서, 랑칸이 말했다.


“그런다고 듣겠냐. 빌어먹을, 내 평생에 다시 못 올 순간이겠구만······.”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도 긴장했는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천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그들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Armo Quntinos de hano··· Armo Quntinos de hano······!"


류디엔이 크게 소리치며 말을 맺었다. 그와 동시에 그가 땅바닥의 진을 손으로 짚었다. 오망성을 그리고 섰던 뱀파이어 모두가 그 동작을 따라했다. 설란은 그 모습을 환희에 가득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랑칸은 주먹을 꽉 쥐었고, 천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존은 체념했는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류디엔이 사악한 미소를 지은 채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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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선과 악 - 2 16.09.21 227 0 10쪽
46 선과 악 - 1 16.09.21 135 0 7쪽
45 눈 위로 떨어진 꽃 17 +3 16.05.11 248 3 16쪽
44 눈 위로 떨어진 꽃 16 16.05.10 200 1 9쪽
43 눈 위로 떨어진 꽃 15 16.05.08 248 2 13쪽
42 눈 위로 떨어진 꽃 14 16.05.07 213 2 11쪽
41 눈 위로 떨어진 꽃 13 16.05.07 201 2 12쪽
40 눈 위로 떨어진 꽃 12 16.05.06 290 2 13쪽
39 눈 위로 떨어진 꽃 11 16.05.05 211 2 11쪽
38 눈 위로 떨어진 꽃 10 16.05.04 218 2 10쪽
37 눈 위로 떨어진 꽃 9 16.05.03 210 2 13쪽
36 눈 위로 떨어진 꽃 9 16.05.02 238 3 13쪽
35 눈 위로 떨어진 꽃 8 16.05.01 215 3 16쪽
34 눈 위로 떨어진 꽃 7 16.05.01 216 3 9쪽
33 눈 위로 떨어진 꽃 6 16.04.28 236 3 10쪽
32 눈 위로 떨어진 꽃 5 16.04.28 206 3 12쪽
31 눈 위로 떨어진 꽃 4 16.04.26 200 2 12쪽
30 눈 위로 떨어진 꽃 3 16.04.26 157 3 9쪽
29 눈 위로 떨어진 꽃 2 16.04.26 238 3 15쪽
28 눈 위로 떨어진 꽃 1 16.04.26 259 4 11쪽
27 피로 이어진 16 16.04.25 208 3 9쪽
26 피로 이어진 15 16.04.25 213 3 11쪽
25 피로 이어진 14 16.04.25 205 3 10쪽
24 피로 이어진 13 +2 16.04.25 212 3 15쪽
» 피로 이어진 12 16.04.25 199 2 11쪽
22 피로 이어진 11 +2 16.04.25 213 3 14쪽
21 피로 이어진 10 16.04.24 218 3 13쪽
20 피로 이어진 9 +1 16.04.24 25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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