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7>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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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스의 군막에서 나온 쫓겨나다시피 나온 아람스는 자신의 거처로 안내된 군막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미 해가 졌건만, 횃불은 대낮처럼 주변을 비추고 있었고, 경비를 서는 병사들의 군기는 엄정했으며,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휴식중인 병사들은 활기에 넘쳤다. 말로만 듣던 레이니스가 이끄는 원정군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두 눈으로 확실하게 볼 수가 있었던 아람스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터트렸다.
“ 대단하군.”
아람스는 어려서부터 검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기사가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꽤 규모가 큰 상인이었던 부모님은 귀족도 아니고 차남인 아람스에게 출세를 보장할 수 없는 기사가 아닌 성직(聖職)에 들 것을 강요했고, 결국은 크레온의 대신전에서 2년간의 견습 사제를 거쳐, 그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정식 사제로 서임되었다.
천성적으로 냉철한 성격이지만, 깔끔한 업무처리능력과 여타의 공적으로 인해 동기들 중 제일 먼저 사교로 승진될 것이 확실한 아람스였다. 하지만 귀족이 아니었다는 점과, 소망하던 기사가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신분에 열등감과 모멸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기도 했다.
즉, 성직에 든 성직자이면서도 출세에 대한 욕망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출세욕(出世慾)’은 성직에 있는 사제에게는 불필요한 요소였지만, 욕심이 있느니만큼 그는 활동적이며 열정적이었다. 그러한 그에게 쉴러는 좋은 본보기가 되는 존경심과 경외심의 대상이자, 야심이 큰 그의 중요한 라이벌이기도 했다.
아람스의 나이 스물 둘.
고작 일곱 살 위. 같은 세대에 쉴러 같이 안팎으로 인정받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는 것은, 아람스의 앞날에는 별로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쉴러가 막을 막고 있으면 그보다 항상 낮은 지위에 머물러야 할 가능성이 크기에, 한때 그는 매파 계열로의 전향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귀족적인 성향이 짙은 매파에서 그를 달가워 할리도 없을뿐더러. 주류에서 밀려난 매파에서 출세해봐야 한계는 명확했기에. 아람스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사실 비둘기파에서 매파로 소신을 바꾸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향(轉向)’은 양쪽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처음에는 젊은 인재인 그의 이용가치가 충분히 있겠지만 결국에는 귀족들이 대다수인 매파 내에서도 도태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한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아람스였다.
“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저 이교도들의 거성이라. 앞으로 즐겁기는 하겠군.”
시야 끝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브라이티스를 바라보면서 감상적으로 변했는지, 아람스는 시적어구를 중얼거렸다.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서 읊지는 않더라도, 아람스는 음유시인으로 나섰어도 성공했을만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감상적으로 변하니, 자신이 사제라는 신분에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절로 세속적인 시가 흘러나왔다.
[ 그 옛날.. 엘프들의 땅.
지금은 눈물 속에 떠밀려버릴 절망의 대지.
신의 은총은 햇살처럼 빛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날이었지..
험한 광풍 앞에서..
깃대 꺾인 깃발이로구나..
영광은 뿔 나팔 소리에 흩어지겠구나.]
짝짝짝~!
거기까지 시를 읊었을 때.. 저 멀리에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아람스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박수가 들려오는 방향에는 한명의 마법사가 서있었다.
“ 마리노스 후작?”
아람스는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50대의 마법사. 잿빛 장삼과 날카로운 눈매와 그리고 저 표정........ 분명 제국의 제일의 책사(策士)라는 마리노스였다.
스스로 귀족의 칭호와 제국 재상의 직위를 반납한 마리노스지만 크라이스 제국 내에서는 마리노스는 후작으로 통하고 있었다.
“ 훌륭한 시(詩)로군. 하지만 사제복을 입은 청년이 그런 시를 읊다니, 그대가 경배하는 여신에게는 불경이 아닌가?”
어지간한 사람은 압도하고도 남을 카리스마였다. 그러나 아람스 역시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으므로, 태연히 대꾸했다.
“ 칭찬입니까? 아니면 꾸지람입니까?”
“ 글쎄. 난 그대의 기백을 높이 산 것뿐이야. 복장을 보아하니 종군사제는 아니고, 그 문장은 크레온 대신전분인가?”
아람스가 걸치고 있는 사제복 가슴에 붙은 대신전의 문장을 알아본 마리노스가 묻자 아람스는 그제야 예를 표하는 것이 늦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서둘러 세이이라의 성호(聖號)를 그으며 예를 표했다.
“ 이안 아람스입니다. 조금 전에 크레온 대신전에서 도착한 사제입니다.”
“ 아람스라.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는 하군. 벌써 대공 전하를 알현하셨겠지? 누구와 함께 왔는가?”
“ 네. 쉴러 사교를 모시고 왔습니다..”
“ 쉴러라....... 그 말만 앞세우는 허풍쟁이 말인가? 하긴 요새 사제는 행동보다 말이 장황해야 좋은 사제 대접 받는다고 하더군. 자비가 넘치는 가식적인 표정과 뭇 여성들을 홀리는 달콤한 목소리 말이야. 그런 자들은 말로서 자비와 평화를 외치지.”
“ 공께선 쉴러 사교님을 모욕하시는 겁니까?”
“ 설마. 그럴 리가. 아니야....... 자네는 성정(性情)이 꽤나 차가울 듯 하구만. 보통 비둘기파 사제들과는 다르게 표정을 숨기는 법도 잘 모르는 것 같고. 그래도 가짜 사제들에 비해서는 눈빛이 사뭇 다르군. 마치.......”
마리노스는 무엇인가 말을 더 하려다가 속으로 삼켜버렸다. 어간의 맥락만으로도 그의 말을 짐작한 아람스는 미소를 짓는다.
“ 제가 매파 같다는 말씀이신가요?”
“ 잘 아는구먼. 난 관상쟁이는 아니네만, 자네 눈 속에는 상당한 야심이 엿보이는군. 여느 사제가 지녀서는 위험한 것 말일세.”
“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저도 여러 번 해봤습니다만.”
“ 부정인가? 아님 긍정?”
마리노스는 연신 즐겁다는 표정이다. 그 역시 레이니스와 같은 흥미를 이 젊은 사제에게서 느끼고 있었다.
“ 정확히는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 재밌는 인물이군. 그 시는 잘 감상했네. 그렇다고 너무 고민하지는 말게나. 고민이 많으면 쉬이 늙어버린다네. 나처럼 말일세. 하하하하”
마리노스는 대충 대화를 끝마치고 호탕하게 웃으며 순식간에 자신의 군막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마 걷기가 귀찮아서 마법으로 날아갔겠지....... 그리 생각하며 아람스는 땀으로 흥건한 이마를 소매로 훔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소문대로 엄청난 위압감이로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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