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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랑(雪狼) 님의 서재입니다.

진혼의 기사(Knight of requiem)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설랑(雪狼)
작품등록일 :
2015.03.18 02:07
최근연재일 :
2015.04.15 11:3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27,633
추천수 :
429
글자수 :
156,533

작성
15.04.08 11:30
조회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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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Ep 1-5. 브라티이스 공략전. <4>

오늘도 화이팅!




DUMMY


#3.




비토리오 2세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의 목에 걸린 포상을 노리고 무자비하게 달려들던 크라이스의 병사들이 주춤거리듯 물러서고, 기사들이 1대 1 승부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양군이 뒤엉킨 난전 중임에도 그에게 도전해오는 기사들은 검을 거꾸로 쥐고 예를 깍듯이 표하고는 달려들었다. 이미 비토리오 2세를 호위하던 근위기사들과 병사들이 대부분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크라이스 군은 예의를 차리고 있는 것이다. 그 예의의 의미를 짐작한 피로 얼룩진 그의 입가에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 후후. 나를 그래도 국왕으로서 예우를 해준다는 말인가? 기사의 칼에 죽건, 병졸의 창에 배가 꿰뚫리던 매한가지거늘 불필요한 인정을 베풀다니. 망국지주(亡國之主)에게 최소한의 명예는 남겨주겠다는 건가. 지나친 사치로군.”

비토리오 2세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함껏 성검 켈리우스를 휘둘러 벌써 세 명의 기사를 베었지만 그는 기쁘지 않았다.

“ 헉헉.”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검을 휘두를수록 숨이 가빠오며 팔다리에는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마지막 기력을 짜내 버티고 서 있는 그의 눈앞에 이윽고 기골이 장대한 기사 한명이 나서 예를 표한다.

“ 그대는 누구인가?”

검정색 갑주를 두른 기사의 갑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역시 많이 지쳐 보였으나 투구 속에서 반짝이는 눈빛은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아 상당히 수양이 깊고, 지체가 높은 기사인 듯 보였다.

만만치 않은 기운을 느낀 비토리오 2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처음으로 자신에게 도전하는 기사의 이름을 물었다.

“ 패트릭 라 미라보 남작이라고 합니다.”

“ 지위는?”

“ 미흡한 실력이지만 크라켄 기사단에서 대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 기사대장이라.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겠군.”

“ 과찬이십니다.”

크라켄 기사단은 크라이스의 중앙기사단의 하나.

그곳의 대장급 기사라면 혈통으로 벼락출세한 못난이 아니면, 실력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간 뛰어난 검객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비토리오 2세는 직감적으로 미라보 남작이 후자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 아무래도 자네가 내 마지막 상대인 듯 하구만.”

숨을 고르며 애써 온화한 표정을 머금으면서 비토리오 2세가 말했다.

미라보 남작은 검 자루를 거꾸로 들어 보이며 다시 한 번 예를 취한다.

“ 국왕 전하를 영웅에 맞게 대우를 하시라는 대공전하의 명이셨습니다. 하지만 국왕께서 원하신다면 전하께서는 샤이나로 퇴각할 길을 열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쓸데없는 배려는 고맙다고 전해주게나.”

“ 싸우실겁니까?”

“ 당연! 허나 한 가지 말해줄 것은, 내가 죽더라도 브라티아는 쉽게 쓰러지는 일은 없을 걸세. 이 말을 꼭 그대의 주군에게 꼭 전해주게나.”

“ 반드시 그 전해드리겠습니다.”

“ 고맙군. 시간을 너무 끌었구만. 시작하세.”

54세의 비토리오 2세는 손에 들린 켈리우스를 고쳐 잡았다.

그의 의지에 답하듯이 켈리우스는 웅웅 공명하며 푸르스름한 오라를 내뿜었다.

그러한 기세에도 미라보는 움츠리는 기색 없이 손에 들고 있는 피 묻은 롱소드를 던져버리고는 허리춤에 매달린 검 집에서 새로이 검을 뽑았다. 그러자 켈리우스와는 다른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검은 북 대륙에서 유명한 인첸터인 레기우스가 마법을 불어 넣은 강력한 마법검 중 하나였다.

“ 좋은 검이군. 누가 마법을 불어넣은 검인가?”

“ 레기우스의 작품입니다.”

“ 내 육신을 베기에는 영광인 무기로군. 자! 그러면 나의 인생 일대의 사투를 벌여볼까?”

피 묻은 망토를 휘날리며 비토리오 2세는 몸을 날렸다.




@@@



“ 대공 전하 만세!”

“ 황제폐하 만세!”

“ 크라이스 제국 만만세!”

먼동이 터 오르며 브라이티스는 엄청난 함성에 휩싸였다.

아스티아력 1302년 7월 18일.

260여 년간을 신성왕국 브라티아의 왕도(王都)로서 그 위용을 자랑해왔던 거성 브라이티스는 크라이스 제국군에 의해 완전히 함락됐다.

밤새 치열한 시가전을 마지막으로 성안 모든 곳을 확실히 제압한 크라이스 군은 호위 기사들과 더불어 백마를 타고 개선하는 레이니스를 피 묻은 갑옷과 무기를 아직 닦지도 못한 상태 그대로 환호와 함께 맞이했다.

“ 엄청난 환호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야 승리가 실감이 나는군요.”

레이니스보다 말머리 하나를 뒤로 하며 함께 개선하는 쉴러가 흥분에 복받쳐 오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병사들의 함성에 묻혀 버렸다.

브라티아의 왕궁으로 향하는 대로(大路)변에는 병사들뿐만 아니라 브라티아 인들도 많이 나와 새로운 정복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약탈과 방화. 강간 등. 승리자의 권리로 당연시되던 행위를 모두 금지시킨 레이니스에게 두려움과 동시에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 .......”

그렇다고 그들에게서는 함성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도 가끔씩 눈에 띌 정도로 성 내는 초상집 분위기이기는 했지만 반면에는 ‘레이니스’라는 크라이스 제국의 황태자를 구경할 요량도 있어 거리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 궁으로 가시겠습니까?”

“ 궁보다는 대광장으로 가지. 길에 나와있는 브라이티스 주민들도 최대한 많이 모아주게.”

레이니스는 알고 보면 상당히 정치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파괴되지 않은 왕성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기 보다는 먼저 브라티아의 왕궁 앞의 대 광장(廣場)에 병사들과 브라이티스 민(民)들이 모인 앞에 나타나,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연설문을 낭독했던 것이다.

이른바 <레이니스의 4개조 선언문>이라는 이 명연설문은 북대륙에서 점차 일어나고 있는 만민평등사상의 영향을 받은 레이니스가 평소에 꿈꾸고 있는 이상적 국가의 구상을 처음으로 그의 지지자라고 볼 수 있는 병사와 기사들, 그리고 피정복민이라 칭할 수 있을 브라이티스 민들에게 털어 놓은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4개조 선언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크라이스가 정복한 지역에 거주하는 브라티아인은 브라이트와 세이이라교 중. 어느 신앙이라도 자유로이 섬길 수 있다.

둘째. 크라이스 령 브라티아인은 과중한 납세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

셋째. 브라이트교단은 크라이스 령 브라티아에서 신전과 사제의 숫자를 제한 받지만. 이교로 탄압받지 않는다.

넷째. 크라이스 제국민과 크라이스 령 브라티아인은 평등하다.


엄청난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이날 레이니스에 의해 선언된 이 선언문은 물론 황제인 알렉산데르 4세의 직접적인 재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차기의 황위 계승권자인 레이니스가 선포한 것이니 만큼 그 효과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통념상 정복민과 피정복민 사이의 수직적인 신분관계와 강제적인 배교(背敎)와 개종(改宗)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었는데 불구하고, 레이니스는 크라이스 제국과 브라티아의 관계를 정복이 아닌 통일(統一). 또는 평화적 합병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는 파격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세이이라 교단에서도 비둘기파의 온건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되던, 사교 쉴러마저도

“ 처음 대공의 선언을 듣는 순간. 전쟁을 승리했다는 기쁨이 날아가고 허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라고 자신의 심정을 옆에 있던 아람스에게 토로하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이미 알았을 공산이 큰 두 사람. 마리노스와 휠리스는 담담한 표정을 보였다.

이러한 파격적인 선언으로 모든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레이니스는 자칫 우려될 수 있는 평민이 아닌 귀족계층인 기사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논공행상을 단행했다.

공을 세운 모든 기사들이 공정한 평가에 의해 상을 받았고, 특히 브라티아의 국왕인 비토리오 2세를 일대일로 대결해 쓰러뜨린 미라보 남작은 백작으로 그 작위가 높여졌을 뿐만 아니라. 크라이스 본국 내에서도 상당한 넓이의 영지가 포상으로 주어졌다.

그밖에도 모든 병사들에게도 공적에 따라 두루두루 포상이 내려졌다. 그로인해 병사들은 레이니스에 대한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복자인 크라이스인들에게 레이니스의 조치는 그저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기만책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두둑한 포상에 만족했다.

몇몇 생각 있는 기사들과 사제들은 레이니스의 구상이 얼마나 제국의 체제에 반(反)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그 독단적인 선언이 크레온에 알려져 황제의 진노를 사지는 않을까 두려워했지만 표면적으로 불평을 할 수 없었다.

논공행상을 마치자, 피정복민인 브라티아인들에 대한 조치도 레이니스는 즉각 시행했다.

아직 브라이티스 서편의 샤이나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완전히 정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왕도인 브라이티스가 수중에 넘어온 것으로, 전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브라이티스의 함락으로 원정은 이제 마무리만 남겨두고 있을 뿐, 모든 것이 종결되었다는 것이 레이니스의 생각이었다.

그는 브라이티스의 대신전을 제외한 성 안팎에 난립한 27개소의 소규모의 신전을 모두 폐쇄하였으며, 대신 가장을 잃은 가정에는 자립을 위한 자금을 무상으로 지원하면서 민심을 다스려나갔다.

그 결과 일자리를 빼앗긴 신전의 사제들에게서 약간의 반발이 있었으나, 민중들은 표면적으로는 레이니스에 대하여 부정적인 활동을 중단했다. 또한 살아남은 브라티아의 기사들에게도 사면령을 내렸으며, 그들의 무기를 빼앗지 않고 명예를 지켜주었다.

“ 레이니스는 엄청난 추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일에 공명정대(公明正大)하였으며, 병사들과 민중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법은 브라티아의 엄격한 율법보다는 온건했고, 내면에 공포를 머금고 있지 않았으나 때로는 단호하고 강력한 효율을 발휘했다.”

아람스가 레이니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일기에 적은 글귀이다.

그는 레이니스가 브라이티스 함락이후, 한 달간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는 브라이트 교단과 세이이라 교단의 평화적 화합을 위해 노력했고, 그간의 실적은 상급자인 쉴러를 뛰어넘는 활약을 보였다.

아람스 등이 힘쓴 덕분에 비둘기파의 종군사제들은 브라이티스의 대신전의 사제들과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도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다만 안타까운 일은 브라이티스가 함락 된 다음날. 최고사제 엘레니스가 병사(病死)했다는 것인데, 브라이티스 시민과 대신전에 의한 국민장(國民葬) 요청을 폭동의 조짐이 있다고 하여 반대하고 나선 쉴러를 대신하여, 레이니스에게서 허락을 받아내는 것에서 한술 더 떠 크레온 대신전의 대표로 참석하기까지 하는 대범함을 보여줌으로서 브라이티스 내에서 아람스의 입지는 크게 상승했다.

“ 전쟁은 끝났다! 이제는 내정의 안정이 우선이다!”

레이니스는 7월과 우기인 8월을 브라이티스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민심안정에만 주력했다. 그러는 동안 브라이티스를 비롯한 크라이스 군에 의해 점령당한. 8개 주(州)는 빠른 시간 안에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러나 상황은 그것과는 달리 정세는 급변하게 돌아갔다. 그 회오리의 중심지에는 브라티아가 아닌 크라이스 제국 본령(本領). 즉 크레온이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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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 1-5. 브라티이스 공략전. <4> 15.04.08 462 15 12쪽
30 Ep 1-5. 브라티이스 공략전. <3> +1 15.04.05 549 4 15쪽
29 Ep 1-5. 브라티이스 공략전. <2> 15.04.04 477 3 14쪽
28 Ep 1-5. 브라티이스 공략전. <1> +1 15.04.03 503 5 14쪽
27 토막설정집4- 마법. 15.04.03 456 4 13쪽
26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8> 15.04.02 467 7 16쪽
25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7> 15.04.01 550 9 7쪽
24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6> 15.04.01 481 6 9쪽
23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5> 15.03.31 584 7 13쪽
22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4> 15.03.30 483 5 10쪽
21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3> 15.03.30 572 6 10쪽
20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2> 15.03.29 663 11 9쪽
19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1> 15.03.29 635 5 10쪽
18 토막설정집3- 군사. 15.03.28 638 6 9쪽
17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5> +1 15.03.27 494 8 12쪽
16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4> 15.03.27 505 9 12쪽
15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3> 15.03.26 646 4 11쪽
14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2> +1 15.03.25 741 13 11쪽
13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1> +1 15.03.24 828 10 11쪽
12 토막설정집2- 경제와 사회. 15.03.24 741 10 8쪽
11 Ep 1-2. 베레스 공방전. <4> 15.03.23 805 14 10쪽
10 Ep 1-2. 베레스 공방전. <3> 15.03.23 658 8 8쪽
9 Ep 1-2. 베레스 공방전. <2> 15.03.21 899 10 9쪽
8 Ep 1-2. 베레스 공방전. <1> 15.03.20 891 14 11쪽
7 토막 설정집 - 역사편. 15.03.20 1,193 16 17쪽
6 Ep 1-1. 폭풍전야(暴風前夜) <5> 15.03.19 1,239 23 10쪽
5 Ep 1-1. 폭풍전야(暴風前夜) <4> 15.03.19 1,366 30 9쪽
4 Ep 1-1. 폭풍전야(暴風前夜) <3> 15.03.18 1,518 30 10쪽
3 Ep 1-1. 폭풍전야(暴風前夜) <2> +2 15.03.18 1,795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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