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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랑(雪狼) 님의 서재입니다.

진혼의 기사(Knight of requ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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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랑(雪狼)
작품등록일 :
2015.03.18 02:07
최근연재일 :
2015.04.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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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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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토막 설정집 - 역사편.

오늘도 화이팅!




DUMMY

@ 개괄


본 기록의 수치는 크라이스 제국의 브라티아 왕국 침공 전인 아스티아력 1300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반적인 개괄은 1300년도 판 <연보(年譜)>를 기초로 작성되어있음. 다소 오차가 있는 기록이고, 자체 기록이 아닌 북 대륙 아스티아제국의 <연보>를 바탕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누락된 사항도 많으므로 100% 신뢰할만한 기록은 아니고 그저 참고 기록으로 활용을 바람.




★ 역사


아스티아 인들이 북 대륙을 떠나, 남쪽의 신대륙으로 개척에 나선 계기는 북 대륙 아스티아에서 발발한 30년 전쟁(A.C 765~794)이 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전쟁은 종교적인 문제로 발발한 전쟁으로서, 대륙의 주 종교인 3주신교(主神敎)의 온건노선을 신봉하는 국가와 강경노선을 지향하는 국가 간에, 아주 사소한 종교적인 교리에 대한 논쟁을 둘러싼 언쟁으로부터 시작된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 말기에는 종교국가가 아닌 보편국가들 또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참전하였으며, 그 결과 수많은 피해와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길고 긴 전화(戰禍)속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것은 아스티아력 630년 무렵 부터 계속 시도되어 온 신대륙으로의 안전한 항로가 발견되었다는 것으로서, 이전의 목숨을 걸어야만했던 120여일의 항해기간을 대폭 단축한 60일의 안전항로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신대륙으로의 이주가 가능해짐으로서, 전쟁에서 패망한 국가의 국민들이나, 몰락한 귀족 ,그리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의 도해(渡海)가 가능해졌다. 대륙의 국가들이 계속해서 전쟁의 겁화에 빠져있는 사이, 770년에서 800년 사이에만 30만 여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의 땅을 찾아 바다를 건너갔다.


하지만 신대륙은 그들만의 신대륙이 아니었다. 650년경부터 탐사를 시작해온 선구자(先驅者)집단의 측량과 탐사에 의하면, 신대륙은 중간을 가르는 큰 강을 사이로 북쪽은 아스티아와 비슷한 토양과 기후를 가진 지역으로, 남쪽의 사막과 초원, 정글로 이루어진 다소 척박한 구역으로 나누어져있는데, 양 지역의 비율은 대략 3대 7정도라고 추정되었다.


저명한 탐사 대장이자 능숙한 항해사였던 조안 라 데스푸치의 저서 <나의 반평생-신대륙을 찾아서>에 의한다면, 그들이 신대륙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대하(大河)의 북쪽 지역에만 거주하는 인간과 신민(神民)의 숫자는 대략 100에서 150만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

거기에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미 거주하고 있는 선주민(先住民)중 상당한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드워프와 엘프, 노움 등은 아주 오래전 3주신들과 드래곤들의 군주들 간의 전쟁 시기에 참전한 전사들의 후예로 아마 신대륙이 각 종교에 경전 속에 등장하는 신들과 드래곤과의 전쟁터가 분명한 것 같다는 견해를 내리고 있었다.


조안 라 데스푸치는 상당히 통찰력이 뛰어나고, 모험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불굴의 탐험정신을 발휘해 대하(大河)의 남쪽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설명을 해두었는데 그 내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 큰 강의 남쪽에는 광활한 초지(草地)가 펼쳐져 있다. 그 초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으며, 무수한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또한 그 곳에는 큰 강 북쪽유역에 살고 있는 루우 족(族)들과 비슷한 지펜인들과 비슷한 부족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타타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루우 족과는 달리 거칠고 무신론자이며, 다만 하늘을 숭배하고 있다.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말에서 자라고 먹으며 천부적인 전사들이다. 이들은 다만 협동심이 약하고 혈연을 통한 부족을 중시할 뿐, 같은 동족이라도 타 부족과는 원수인양 서로 싸우기를 즐긴다. 대략적인 추정에 의한다면 이들은 12개의 큰 부족과 7O여개가 넘는 작은 부족들로 갈라져있는데, 큰 부족은 무리 없이 2~3천의 전사를 차출할 수 있고, 작은 부족도 대개 수백의 전사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초지를 벗어나면 척박한 땅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사막과 오아시스, 그리고 간간히 건천(평소에는 말라있으나, 비가 오면 강으로 변하는 지형)이 있는 광활한 척박한 땅에는 구릿빛 피부를 가진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유일신을 믿으며 큰 하나의 제국과 다른 혈연을 가진 여러 개의 작은 민족국가로 나뉘어져 있다한다. - 하지만 자세히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들의 숫자는 놀랍게도 1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유목민들의 셈법인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그들의 수도가 있다는 남쪽으로 내려가 보려고 했지만, 척박한 토양과 뜨거운 모래바람에 대원들을 여럿 잃고, 다시 북쪽으로 진로를 돌릴 수밖엔 없었다.


조안 라 데스푸치 <나의 한평생- 신대륙을 찾아서> P321~ . 아스티아 황립 출판소



후일 데스푸치가 가보지 못한 남쪽의 유목민의 제국은 투크 제국으로 밝혀졌지만, 그가 믿지 못했던 1천만이라는 인구는 과대포장이 아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아스티아력 1300년경의 투크의 추정인구는 2천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아스티아 제국의 네 배가 넘는 땅을 소유하고 있고, 180여개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종교와, 문화,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는 또 하나의 문명세계이다.


아스티아의 달력으로 770년에서 800년 사이에 도해(渡海)하여, 신대륙으로 정착한 이주민의 숫자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략 30만 가량이었다.

이들은 대개 같은 종교를 가진 여러 개의 소집단으로 나뉘어져있었으며, 개중에는 망국 출신의 마법사와 기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선주민인 드워프와 엘프, 그리고 노움과 다크엘프등은 대개 대하(大河)의 북쪽 중에서도 최북단의 거친 산악지역에 몰려 살고 있었고, 대하 유역의 지역에는 루우 족(族)이라는 타타이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인종이 부족단위로 살고 있었는데, 호전적인 타타이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개척민들에게 우호적이었고, 평화적으로 대해줬다.


결국 개척민들의 생존의 범위는 대하(大河)의 북쪽, 그중에서도 최북단의 산악지역을 제외한 중부지방의 완만한 구릉과 평야지대로 한정되었다. 그렇지만 30여만의 인구로는 그 넓은 지역을 개척하기는 터무니없이 어려웠기 때문에, 초기의 개척은 샤이나라고 명명된 서쪽의 항구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초기의 개척민들은 활기에 차 있었다. 북 대륙은 계속해서 전쟁 중이었고, 국가단위의 대규모 개척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모두 자유민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들은 아이를 많이 낳았고, 그 아이들은 자라서 다시 건장한 개척민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 아스티아 대륙에서의 인구유입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인구가 늘어나고 점점 개척 사업이 박차를 가해지자, 개척민들은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북쪽의 드워프나 노움들의 땅에서 산출되는 광물들의 수입과 농산물의 용이한 수송을 위해서는, 행정과 국방을 책임 할 공권력의 필요성이 대두 된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바램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나선 것은 바로 개척민들의 정신적인 지주라고 할 수 있는 각 교단이었다.


820년경에 이르러 각 교단의 수뇌부들이 대륙인들이 아닌 개척민들의 자제들로 채워지게 되고, 새로 유입되는 인력과 대륙의 본당(本堂)과의 관계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된 각 교단의 수뇌부는 면밀한 토의와 상호이해 및 양보를 거쳐서 822년 <브라티아 신성동맹>을 발족 시켰다.

여기서 처음으로 ‘브라티아’라는 국가명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브라티아라는 말은 각 종교의 경전에 나오는 ‘신들의 전쟁터’를 뜻하는 말로서, 개척 이전에도 실존이 불확실한 신대륙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들은 각 교단의 수뇌부와 개척민들 중 명망 있는 재력가, 그리고 마법사길드를 중심으로 원탁회의를 구성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개척 사업을 조직적으로 실행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역사적으로 이 신성동맹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신성동맹은 국가나 정부라기보다는 하나의 합의체에 가까웠으며, 초기부터 북 대륙의 본당과 여타의 국가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함에서 시작함으로서, 향후 브라티아의 모든 국가들의 완전 독립의 발판을 놓았다.

물론 구대륙의 힘꼴이나 쓴다는 국가들은 전쟁의 복구에서 허덕이고 있었으므로, 대규모 선단을 통한 원정이 불가능했다는 호재도 작용하고 있었지만.......


신성동맹은 북쪽의 아르스 지역에서 산출되는 광물을 가공하여 한참 전쟁복구에 열심인 북 대륙으로 수출하는 일을 시작으로 재정을 풍부히 하였다. 또한 개인자격이라면 전쟁에서 몰락한 구 귀족이나, 기사들 또한 일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옹색하지 않아. 100여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질적으로, 양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팽창해 나갈 수 있었다.


신성동맹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그 역할을 기대이상으로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그렇지만 여타의 사건보다 신성동맹이 발족한 후, 최초이자 최대의 사업으로 인정받는 일은 오늘날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일이 바로 샤이나를 대신할 새로운 수도로서 브라이티스를 건설한 것이었다.

샤이나는 안전항로의 종착점으로서, 지정학적으로서나 항구로서의 위치와 역할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지만, 너무 서쪽에 치우쳐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아르스 지역과 접한 북부산맥은 이미 대략적인 무역루트가 뚫려있었고, 개척 사업은 남쪽과 중부의 폰타우 강을 건너 동쪽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개척지를 통괄할 행정적으로 완벽한 계획도시의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새로이 건축될 도시는 바다와 면한 샤이나와는 달리 툭 트여진 평원에 3중 성곽을 가지고,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가도와 통해야만했다. 신성동맹 원탁회의는 곧바로 브라이티스 건축계획을 발효시켰고, 30년에 걸쳐 브라티아 최대의 대도시는 이렇게 해서 역사에 화려하게 등장하게 된다. - 왕궁의 규모로는 후에 건축된 크라이스의 황도(皇都) 크레온의 황궁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지만, 인구나 물산의 물동량이나 도시로서의 기능은 브라이티스가 크레온을 훨씬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


신성동맹의 발족은 확실히 브라티아의 개척사에서 실(失)보다는 득(得)이 많은 것이었지만, 신성동맹의 영화와 단결심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비록 ‘개척’이라는 공동의 목표 때문에 손을 잡고 힘을 합치기는 했지만, 3개의 교단은 불과 얼마 전까지 교리와 율법에 대한 이해차이 때문에 전쟁까지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개척이 진행될수록 교단의 수뇌부가 개척지 출신의 인물들로 채워지고, 새로운 땅에 걸 맞는 합리적인 교리와 율법의 해석이 시도되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3개 교단은 서로 하나가 될 수는 없었다.

만약 한사람의 영웅이 등장해 신성동맹을 발판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고, 종교를 배제한 보편국가로서의 길을 걸었다면, 교단간의 다툼은 단지 별 위험성이 없는 세력다툼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각 교단은 어느새 정치세력화 되어 있었고 원탁회의를 통해 실질적인 권한과 힘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다툼은 단순한 언쟁으로 그치지 않았다.

신성동맹 발족 후 50여년이 흐른 870년을 기점으로 각 교단은 분쟁에 대비해 독자적인 무력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교단간의 다툼은 막 개척의 틀을 잡아가던 브라티아 내부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다.

개척에 투입되어 몬스터를 몰아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기사들과 병사들은 편을 가르기 시작했고, 위험한 임무나 전투에는 자기 교단에 속한 부대를 참전시키지 않는 등. 교단간의 반목은 극에 달하여만 갔다.

그 결과 탄력이 붙었던 동쪽으로의 개척 사업은 점점 활기를 잃었고, 그에 맞춰 브라티아인들에게 밀리던 몬스터들과 남쪽 대하(大河)와 면한 초원지대에서 궁지에 몰리던 루우 족이 반격을 시작해, 루우족과 전쟁을 벌이던 기병군단이 전멸하고, 델리모 요새가 함락. 개척화가 끝난 변경도시 아일리아가 함락직전에 몰리는 등의 군사적인 위험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원탁회의는 서로 책임을 다른 쪽에 전가할 뿐, 예전과 같은 추진력과 대응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신성동맹의 권위가 약해질수록, 일반 민중들은 영웅을 원했다.

아니 자신들을 이끌고 개척을 완수해줄 새로운 힘을 원하고 있었다는 말이 옳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계속되는 신성동맹 내부의 분열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912년 루우 족의 거센 반격에서 델리모 요새가 함락되고, 중립파 기사 중에 단연 제일이라는 데바이 브로켓이 원탁회의의 뜨끈 미지근한 대응에 반발. 신성동맹 기사단장의 휘장을 벗어던지고 자유기사로서 싸우다 전사했다는 소식에 민중들의 불안과 불만은 극에 달했다.

916년 샤이나에서 대대적인 폭동이 일어났고, 이듬해에는 브라이티스에서도 수차례의 소요사태가 벌어졌다.

그들은 민주적인 보편국가로서의 공화정을 요구했다. 당장에 신성동맹을 해체하고 민주적인 의회 선출을 골자로 한 민중들의 대대적인 모습에 신성동맹의 교단 측은 부랴부랴 일을 수습하기 위해 즉각 싸움을 멈추고 논의에 들어갔다.

오랜 토의 끝에 각 교단은 숙의를 마치고 <5월의 성명서>라고 후세에 일컬어지는 일단의 중대한 결정사항은 발표했다. 곧 브라티아 신성동맹의 해체 및 분할에 관한 성명서이다. 여기서 그 전문(全文)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브라티아 신성동맹은 향후 5년 후인. 아스티아력 922년 정식으로 그 역할과 권한을 반납하고 전격 해체한다.

2. 브라티아 개척지는 폰타우강을 중심으로 양분된다. 폰타우강 서쪽의 브라이티스를 포함한 지역은 신생될 브라티아에 포함되며, 브라이트 교단이 관리한다. 또한 동쪽 지역은 세이이라 교단이 지명하는 정부에 이양된다.

3. 웨이크 교단은 북부산맥 근방의 영유권을 인정받으며, 아르스 지방의 선주민들과 협의 하에 신생 국가를 선포한다.

4. 향후 5년간의 기간은 신생 정부의 탄생을 준비하는 유예기간이며, 이 기간 동안 각 교단은 전면적인 상호 적대행위를 금지한다.

5. 브레이아- 3주신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학자나 마법사들의 신으로서 지혜의 여신이다.-교를 믿는 마법사들은 각 국가 중 한 곳을 지정해 거주할 수 있으며, 새로운 신생국가의 수도와 도시에 길드를 창설할 권한을 얻는다.

6.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는 자신이 원하는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다. 단 개척민 출신인 사람은 신생국가 건국 후. 5년의 유예기간을 얻는다.

7. 이후 샤이나를 통해 입국하는 이주민은 자신의 종교와 신념에 따라 자신의 거주지를 선택할 권리를 얻는다. 단 이 역시 10년의 유예기간 후 이 조항은 자동 폐기된다.

8. 이 성명서는 각 교단의 최고 사제의 합의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원탁회의에서 비준되어 발표되는 당일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결론적으로 각 교단은 개척민들과 일반인들의 의견은 한마디도 수렴하지 못한 체, 백여 년에 걸친 개척의 성과를 서로 나누어 갈라서기로 결정한 것이다.

중도적인 웨이크 교단은 드워프들과의 연합을 택했고, 중부 평원 지역은 폰타우 강을 중심으로 브라이트 교단과 세이이라 교단이 양분하기로 결정했다.

향후 진행된 새로운 정부를 꾸미는 것에서 양 교단은 각자 교단이 지닌 스타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는데, 신성국가의 형태로 신전이 일정 지분을 가지고, 선출된 세습군주를 세우기로 한 브라이트 교단과는 달리. 힘의 논리를 인지하고, 상명하복의 스타일을 가진 세이이라 교단은 개척 사업에서 대대로 영향력을 발휘한 옛 아스티아의 국가였던 크라이스 왕국의 계승자인 알렉산데르 라 크라이스 공을 황제로 옹립하고, 크레온을 수도로 한 크라이스 제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농노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민의 국가 브라티아와 농노와 신분제를 인정하는 전제-신성복합제국인 크라이스로 백여 년간 선대 개척민들이 피와 땀으로 조금씩 넓혀 온 희망과 눈물의 산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신성동맹의 해체 될 때 까지. 동맹의 인구는 급격히 늘어 대략 3백만이 약간 넘었는데, 종교와 선택으로 각기 갈라진 인구의 숫자는 브라티아의 160만, 크라이스에 120만이었고, 아르스로 간 인간의 숫자는 30여만이라고 전한다.

하지만 폰타우강 서쪽의 브라이티스가 포함된 지역은 이미 개척화가 끝난 상황이었고, 크라이스측에 포함된 지역은 미개척지가 대부분이었지만 대신 그 면적이 브라티아보다 두 배 가량 넓었다. 이후 크라이스 제국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통해 개척사업을 완수하고, 1300년 현재는 그 국력과 인구가 브라티아를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글은 판타지지만. 실제 역사에서 차용한 부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 이 명칭이나 단어. 어디서 들은것 같은데...’라고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냥 가져다가 각색해서 넣어뒀구나..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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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p 1-5. 브라티이스 공략전. <1> +1 15.04.03 502 5 14쪽
27 토막설정집4- 마법. 15.04.03 45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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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7> 15.04.01 549 9 7쪽
24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6> 15.04.01 481 6 9쪽
23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5> 15.03.31 584 7 13쪽
22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4> 15.03.30 482 5 10쪽
21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3> 15.03.30 571 6 10쪽
20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2> 15.03.29 662 11 9쪽
19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1> 15.03.29 634 5 10쪽
18 토막설정집3- 군사. 15.03.28 638 6 9쪽
17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5> +1 15.03.27 493 8 12쪽
16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4> 15.03.27 504 9 12쪽
15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3> 15.03.26 646 4 11쪽
14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2> +1 15.03.25 741 13 11쪽
13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1> +1 15.03.24 827 10 11쪽
12 토막설정집2- 경제와 사회. 15.03.24 740 10 8쪽
11 Ep 1-2. 베레스 공방전. <4> 15.03.23 805 14 10쪽
10 Ep 1-2. 베레스 공방전. <3> 15.03.23 657 8 8쪽
9 Ep 1-2. 베레스 공방전. <2> 15.03.21 898 10 9쪽
8 Ep 1-2. 베레스 공방전. <1> 15.03.20 891 14 11쪽
» 토막 설정집 - 역사편. 15.03.20 1,193 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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