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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랑(雪狼) 님의 서재입니다.

진혼의 기사(Knight of requ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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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랑(雪狼)
작품등록일 :
2015.03.18 02:07
최근연재일 :
2015.04.15 11:30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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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36
추천수 :
429
글자수 :
156,533

작성
15.03.3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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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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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0쪽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4>

오늘도 화이팅!




DUMMY

지금 라트랑이 공작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최고사제의 임종 시 그 후계자 문제를 두고 벌어질 분쟁에서 매파 인사인 자신의 차기 최고사제자리에 오르기 위해 공작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것.

물론 교단 내에서 비주류로 밀려나버린 매파가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최고사제자리는 당연히 매파가 차지해야 하며, 이는 현재 체제의 전복을 노리는 공작의 앞날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었다.

일단 최고사제가 되면 <13인회>에 속하는 요직인 대신전의 대사교 두 명을 선임할 수 있다. 현재의 트리스티 최고사제는 비둘기파와 매파의 균형을 안배하여 자신을 감찰 대사교 에드몽에 비해서는 한직이라고 할 수 있는 교리(敎理) 대사교로 임명해주었지만, 그는 자신이 최고사제의 자리에 오르면 전혀 그런 배려를 할 생각이 없었다.

“ 비둘기파는 누구를 밀고 있던가요?”

공작이 묻는다. 라트랑 대사교의 눈빛이 흔들렸다.

“ 크레우시아 대주교(大主敎)인 롤랑입니다.”

“ 롤랑?”

롤랑의 이름을 들은 공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 그는 비둘기파에서도 가장 매파에 대해 강경한 인물이죠. 그가 최고사제가 된다면, 저희나 공작께도 별로 이롭지는 않을 겁니다.”

“ 이를 말이겠소.”

크레우시아는 제국 동안(東岸)에 위치한 항구도시로서 크레온에 이어 제국 내 제 2의 도시이다.

브라티아 왕국에서 샤이나의 역할이 그렇듯, 크레우시아는 북쪽 대양 너머의 구대륙과의 교역항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상업의 중심지이자 비 봉건(封建)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곳이었다.

문물교역을 통해 다양한 사상이 유입되는 관문인 만큼 아스티아 대륙의 패권국인 아스티아 제국과의 직항로가 뚫린 샤이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한 인구와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비둘기파 세력의 거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 현시점에서 최고사제가 사망하면 남은 12명의 위원 중에서 비둘기파는 7명. 저희 매파는 5명이 됩니다. 이리되면 롤랑의 최고사제 계승은 기정사실이 아닙니까?”

“ 듣기 좋은 말은 아니로군요.”

“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을 따름입니다.”

그리 대답하면서도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치밀한 계산이 이뤄지고 있었다.

서로를 도움으로서 취할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 대사교께서는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두셨는지요?”

능구렁이 같은 노 공작은 먼저 라트랑의 의견을 물었다.

사실 그에게 반드시 라트랑이 최고사제가 되고 아니 되고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다만 매파가 최고사제직을 틀어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한 점에서는 라트랑도 마찬가지였지만, 당장에 절박한 것은 라트랑이었다.

“ 당장은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답답해서 공작을 찾은 것이 아닙니까?”

사실 두 사람은 여러 날 전부터 회합(會合)을 가져오고 있던 차였다. 한쪽은 권력에서 밀려난 재기를 노리는 반(反) 황제파 봉건귀족들의 우두머리. 그리고 한쪽은 주류에서 밀려난 매파의 야심가. 조합만으로도 쿵짝이 잘 맞을 것 같은 사이가 아닌가?

“ 아마도 최고사제는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황태자의 원정이 성공리에 끝난다면, 종군사제를 도맡은 비둘기파의 위상은 더욱 커지겠지요.”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샤르트르의 압점(壓點)을 자극하며, 라트랑이 말했다. 그의 말에 공작의 눈가는 음흉한 미소를 발산했다.

“ 그렇다면?”

“ 원정군이 승승장구를 하고 있다지만, 브라이티스를 공략하면서, 대패를 하고 황태자가 브라티아 전선에서 죽기라도 하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요는 비둘기파에 책임을 전가시킬 수 있다는 뜻이지요.”

“ 비둘기파의 교단내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어, 그들이 최고사제자리를 매파로 넘길 수도 있다. 이 말입니까?"

“ 막판 대역전의 기회의 여지가 생길지도.”

솔깃한 라트랑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공작이 예상했던 바였다. 숫자에서 밀려 이대로 가다가는 주류자리를 차지할 오랜만에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으려면, 그 이상의 방법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다.

비둘기파들도 사제(司祭)들이니 만큼, 민심의 이목들을 따질 수밖에 없으므로, 원정의 실패의 책임을 어떻게든 그들에게 넘겨버리면, 타협을 통해 최고사제자리를 양보 받을 수도 있었다.

일단 최고사제자리가 매파로 넘어오면, 라트랑이 차지하고 있는 대사교직의 후임으로 같은 매파의 사제를 임명할 수 있고, 감찰 대사교인 에드몽을 교체할 권한이 생긴다.

<13인 위원회>에서의 세력비도 7대 6으로 균형을, 아니 최고사제직을 차지한 매파가 한발 우위에 설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점차 그 균형추를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이게 할 수도 있었다.

“ 하지만 황태자인 레이니스 대공 전하께서는 승승장구중이십니다. 브라티아의 최정예인 근위기사단과 성전기사단을 헤이스 회전에서 격파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브라티아의 왕성 브라이티스가 코앞인데, 처참한 패전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우리가 떠든다고 대세는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공작은 짐짓 걱정스러워하는 말투로 공손하게 말했다. 그러자 대사교는 안절부절 하며 애원하듯이 부탁한다.

“ 어찌 안 되겠습니까?”

“ 글쎄요. 제가 듣기로는 대공전하는 전장에 제일선에 서서 검을 휘두르는 분이 아니라하니, 전사(戰死)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군요. 허허.”

“ 전사가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굳이 전사만이 여신의 곁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닙니다.”

대사교의 입에서 ‘다른 방법’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자, 공작은 기다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노회(老獪)할 때로 노회한 그는 절대로 반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 다른 방법이라니요? 설마 대공 전하를 암살하자 이 말씀이십니까? 당신의 말은 불경죄입니다. 만약 밖으로 새어나가면 대사교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 우리끼리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만일이라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라트랑 대사교 또한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최고사제자리를 노리는 제국의 세이이라 교단의 매파를 이끄는 인물답게, 엄청난 정보력과 추진력을 지니고 있는 사내였다. 하지만 너무도 권력을 탐한 나머지 사제가 지녀서는 안 될, 음흉한 성격도 서슴없이 내 비칠 줄 아는 인물이기도 했다.

“ 저는 공작각하께서. 아니 조카 분이신 샤이드 후작이 저지른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순간 공작의 눈빛이 미동했다.

만만치 않은 사람인 것은 알았지만, 실로 라트랑은 그의 생각보다 간계에 뛰어났다.

라트랑의 말은 샤이드가 시도한 레이니스 암살 미수를 뜻한 것이다. 그는 공작과 샤이드가 레이니스 암살을 지시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속인(俗人)들보다 더욱 추악한 권력투쟁을 위해 악랄한 수법도 서슴없이 이용하는 사제들의 정보력에 샤르트르는 혀를 내두르며, 경솔한 샤이드를 속으로 원망했다. 상대가 정보력을 가진 이상은 그에 합당한 교섭 카드를 선보여야 할 차례였다.

“ 흠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파를 거치며, 노련할 대로 노련해진 공작의 논법이었다.

슬며시 말을 돌린 후에,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 이미 황태자 파울루스의 지지를 버릴 때, 협상을 맡은 마리노스에게도 써먹은 적이 있는 그의 특기였다.

“ 이미 저는 이번 원정군에 포함된 종군사제 한명을 포섭해 놓았습니다. 물론 비둘기파로 분류된 사제지만, 실은 매파라고 할 수 있죠.”

“ 그런 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다른 이도 아니고, 포섭한 자가 사제라는 소리에 대사교가 놀란 듯 되물었다. 상대가 미끼를 물었다고 여겨진 공작이 말을 느릿하게 이었다.

“ 이도저도 아니기는 하지만 아주 야심이 많은 자입니다. 그가 브라이티스를 공략할 때를 맞춰 대공에게 손을 쓰게 될 것입니다. 물론 칼이 아닌 다른 모종의 방법을 사용해서 증거를 남기지 않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원정군은 자멸하겠죠.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

“ 그....... 그렇습니까? 역시 공작각하의 헤아림은 놀랍습니다.”

라트랑은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가 놀란 이유는 물론 치밀한 계획에 감탄해서이기도 했지만, 실은 공작이 사제들에게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비둘기파를 가장한 매파 성향을 가진 사제가 있다는 소리는, 매파의 우두머리인 그에게도 금시초문(今時初聞)이었다.

라트랑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이 일은 분명 자신에게 득(得)보다는 독(毒)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자신이 최고사제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였으므로,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이롭다고 그는 생각했다.

“ 공작각하만 믿어도 되겠습니까?”

떨리는 눈으로 대사교는 노 공작을 주시했다.

언제나 협상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끌어가는 것이 특기인 이 칠순의 노 공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대신, 제가 부탁한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로서도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무언가 밀약이 되어 있는 듯, 두 사람은 각자의 눈빛을 교환했다.

그렇게 그날 밤의 회합은 끝이 났다. 이 두 사람의 계획이 성공할지는 더 두고봐야할 것이었다.

그날도 달은 밝고 휘황찬란(輝煌燦爛) 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비라도 한번 시원하게 내려주었으면 좋겠지만, 아직 크레온의 우기(雨期)까지는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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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p 1-5. 브라티이스 공략전. <1> +1 15.04.03 503 5 14쪽
27 토막설정집4- 마법. 15.04.03 456 4 13쪽
26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8> 15.04.02 468 7 16쪽
25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7> 15.04.01 550 9 7쪽
24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6> 15.04.01 482 6 9쪽
23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5> 15.03.31 584 7 13쪽
»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4> 15.03.30 484 5 10쪽
21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3> 15.03.30 572 6 10쪽
20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2> 15.03.29 663 11 9쪽
19 Ep 1-4. 붕괴를 향한 랩소디. <1> 15.03.29 635 5 10쪽
18 토막설정집3- 군사. 15.03.28 638 6 9쪽
17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5> +1 15.03.27 494 8 12쪽
16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4> 15.03.27 505 9 12쪽
15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3> 15.03.26 646 4 11쪽
14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2> +1 15.03.25 741 13 11쪽
13 Ep 1-3. 헤이스 회전(會戰) <1> +1 15.03.24 828 10 11쪽
12 토막설정집2- 경제와 사회. 15.03.24 741 10 8쪽
11 Ep 1-2. 베레스 공방전. <4> 15.03.23 805 14 10쪽
10 Ep 1-2. 베레스 공방전. <3> 15.03.23 658 8 8쪽
9 Ep 1-2. 베레스 공방전. <2> 15.03.21 899 10 9쪽
8 Ep 1-2. 베레스 공방전. <1> 15.03.20 891 14 11쪽
7 토막 설정집 - 역사편. 15.03.20 1,193 16 17쪽
6 Ep 1-1. 폭풍전야(暴風前夜) <5> 15.03.19 1,239 23 10쪽
5 Ep 1-1. 폭풍전야(暴風前夜) <4> 15.03.19 1,366 30 9쪽
4 Ep 1-1. 폭풍전야(暴風前夜) <3> 15.03.18 1,518 30 10쪽
3 Ep 1-1. 폭풍전야(暴風前夜) <2> +2 15.03.18 1,795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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