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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아서. 님의 서재입니다.

불멸의 여신과 별을 쫓는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니알아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4
최근연재일 :
2021.06.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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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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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사문유관 5 - 늘어선 세계

DUMMY

3.

언샤는 밤 하늘의 별을 세며, 별하늘에 동물 자리를 그리며 그저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기를, 자신의 인내심보다 먼저 저들의 것이 다해, 저들이 섣불리 행동하게 되기를 기다렸다.


언샤는 침낭 속에 대략 두 시진(4시간) 동안이나 계속 누워있었고, 여신은 온몸에 털이 묻은 채로 배 위에 누워 아주 세상 둘도 없이 편하게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리고 언샤는 여신이 자신의 배 위에 눕기 전부터, 해가 진 그 순간부터 주변을 계속 주시하며 숲속을 배회하고 있는 수많은 존재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달과 별 이외에는 어떠한 광원도 존재하지 않는 드넓은 공터의 주변은 아주 칠흑같이 어두웠으나, 그 성질이 야행성 동물에 가까운 아슬란족이며 또한 화신이기에 더욱 뛰어난 신체능력을 갖게 된 언샤는 그 청금과 같은 푸른 눈으로 어둠 속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시각뿐만이 아닌 후각으로도, 그들 몸에서 풍기는 아주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찌를듯하게 전해지고 있었기에 향기로운 여신의 머리칼이 그 냄새를 중화시켜주지 아니했다면 진작에 코를 뽑아버리고 싶은 지경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언샤는 그저 인내했다.


인내야말로 인간이 가진 미덕 중 저들을 뛰어넘는 몇 안 되는 능력이었으며, 또한 평생을 그저 인내해온 언샤에게 있어 몇 시진 정도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도 했기에.


어둠 속에서, 짙은 어둠이 깔린 송림 속에서 어둠보다 짙은 수많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의 형태는 아주 기괴했다.


두발도 아니고 네발도 아닌 기괴한 짐승이 서있는 듯한 모습. 그 머리에는 두 눈, 세 눈, 네 눈, 수십 개에 가까운 눈까지.


어떠한 자연의 법칙도 통하지 않는 숫자의 눈이 평범한 생물 같지 않은 기괴한 방향으로 박혀 사팔뜨기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온갖 방향을 전부 바라보며 그 눈동자를 부라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비현실적인 외모임에도 짙은 어둠 속에 어둑서니 서있는 그것들은 단순한 환영이나 이매망량이 아닌 엄연한 현실의 존재들이었다.


귀신이 아닌, 요괴가 아닌, 허깨비가 아닌, 엄연히 육체와 뼈를 갖고 살아있는 하나의 생물이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짐승과도 달랐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괴력난신이란 단어, 기괴함 그 자체를 형상화 한듯한 존재였다.


나찰.


아니, 겨우 그 한 단어로 가리키기에는 부족하다.


나찰, 도깨비, 이수약우, 용생구자, 락샤사, 야차, 우귀, 규키, 우시오니, 누에, 마라, 가루라,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마후라가, 야가, 키메라, 키마이라, 포보르, 포모르, 이스시, 베헤모스, 베헤못, 레비아탄, 리바이어선, 게니우스, 아포피스, 아펩, 구울, 진, 지니, 이블리스.


대륙 전체에서, 인간이 사는 모든 문화권이라면 그 모든 신화에 이름을 바꾸며 등장하는 존재.


혹은 인간이 그를 두려워하여 자신의 신화 속의 괴물의 정체가 바로 저것들이라며 그대로 이름을 차용해 붙였을 뿐인 존재.


그 누구도, 심지어 이 세상을 창조한 여신조차도 감히 저것들이 확실히 무엇이라 단정짓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존재.


이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이 세상 누구조차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인간이 그 불확실하며 그 무엇도 알 수 없으며 전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공포 그 자체가 형태를 이룬듯한 존재에 그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걸로, 겨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로 끌어내릴 수가 있었던 존재.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이 극복할 수는 없을 존재.


즉 그들 존재의 가장 대표적인 성질은, 불가사의(不可思議).


그들은 마치 신의 말씀처럼 오묘해, 인간의 마음 따위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알 실라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늘어선 세계'라는 뜻의 나찰(羅刹)이라 불렀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이 세상이었기에.

세상 어디에나 그들이 늘어서 있었기에.


인간은 이 세상을 결코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러므로 나찰이란 이름 자체가 저것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같은 인간종끼리도 서로 전혀 이해하지를 못하는데 감히 어떻게 저러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늘어선 세계라는 이름 그대로 그들은 마치 이 세계와 같이 그 공터의 모든 공간을 둘러싸며, 조용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포위망을 좁히며, 고작 둘밖에 없는 사냥감을 사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인내를 보이고 있었다.


밤의 도처에서 어둠에 녹아들어 습격해오는 그들의 존재는 여행자의 죽음 그 자체였다.


그리고, 드디어 저들의 인내심이 먼저 떨어졌다.


세상 그 어떤 짐승보다도 신중한 그들은 분명 언샤가 잠들 때를 노려 그 목을 물어뜯으려 했겠지만, 그런 그들 역시 결국엔 아무리 기다려도 언샤가 잠든 척만 할 뿐 절대 잠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달빛과 별빛 아래로 천천히 걸어서, 기어서 나오기 시작했다.


밝은 곳을 아주 싫어하는 그들의 특성상 그 정도로 밝은 곳으로 나온 것 그 자체가 그들이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분노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의 인내가 다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드디어 송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모습을 드러낸 그 존재들은 하나같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나찰의 외모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었다.


어떠한 나찰은 그 표면이 마치 짐승처럼 두터운 털로 덮여있기도 했으나.


어떠한 나찰은 마치 옻이나 송진 같은 천연수지를 겉에 바르고 그 색을 탈색한 듯이 아주 새하얗고 매끄러운 표면을 갖고 있기도 했으며.


어떠한 나찰은 다리가 두 개였으며.

어떠한 나찰은 다리가 네 개였고.

어떠한 나찰은 다리가 여섯 개, 여덟 개, 수십 개, 수백 개가 달려있기도 했다.


그 눈 또한 정해진 위치가 단 하나도 없어 평범하게 머리에 달려 있는 개체가 있는가 하면 몸통이나 발바닥에 달려있기도 했고, 온몸이 모두 눈동자로 뒤덮인 개체도 있었다.


머리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 달려있는 개체도 아주 흔했다.


덩치나 몸의 색깔도 제각각이었기에 아무리 한곳에 모여있어도 합이 잘 맞거나 오와 열이 정돈된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고, 울음소리가 똑같은 개체 같은 건 존재할 수 없었기에 어떤 개체는 울부짖었고 어떤 개체는 포효했으며 어떤 개체는 지저귀고 어떤 개체는 짖었으며 어떤 개체는 말했다.


그 생명력과 수명 역시 제멋대로인 건 마찬가지였다.


어떤 개체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정도로 수명이 짧았으나 어떤 개체는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듯 수천 년간이나 계속해서 목격담이 존재하는 개체도 있었으며.


어떤 개체는 팔다리가 잘려도 곧잘 새로운 팔다리가 솟아나는 반면 어떤 개체는 마치 팔 다리가 급소라도 되는 듯 고작 팔 다리를 잘린 정도로 즉사해버리기도 했다.


또한 초식을 하는 개체도 있고 육식을 하는 개체도 있었으며, 어떠한 것도 입에 대지 않음에도 굶어죽지 않기에 이슬을 먹는다고 비유되는 개체 또한 존재했다.


바위를 떨어뜨려 깔아뭉갰으나 수백 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는 개체도 있었다.


그들은 사막에도 살며, 숲에도 살며, 모래에도 살며, 밀림에도 살며, 진흙에도 살며, 늪에도 살며, 습지에도 살며, 바다에도 살며, 설산에도 살며, 강에는 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렇게 제각각임에도.

나찰들에게는 몇가지 부정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모두 다름에도 단 하나의 종족인 나찰이다.

그렇기에 두 나찰 사이에선 나찰이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난 나찰은 모두 하나같이 인간을 아주 싫어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보면 죽인다.


그리고 인간이 죽었다면 그 시신은 그냥 내버려 둔다.

시체가 썩어들어가게 내버려 둘뿐 더는 훼손하는 일이 거의 없다.


또한 아주 심하게 굶주려 이성을 잃어버릴 지경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인간을 잡아먹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아주 강력한 일부 개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홀로 움직이지 않으며, 항상 무리를 지어서 행동한다.


그러나 한 무리의 크기가 수백을 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리고 그들은 밝은 곳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나, 그렇다고 평범한 짐승들처럼 불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고작 불꽃이 그들의 강인한 육체를 상처 입힐 수 없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교묘하고 교활하다.


나찰은 짐승 같으나 짐승과는 전혀 다르다.


이족보행하기에 머리가 하늘 높이 떠있어 평범한 짐승들에겐 아주 거대한 괴물처럼 보이는 동물인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무기를 알아보며 수의 유불리를 알아보는 지능을 갖고 있다.


인간과 그 갑옷을 구분하여 갑옷의 틈새를 노리는 지성까지 갖고 있다.


가짜 발자국으로 나찰사냥꾼을 속인 뒤 그 배후를 습격한 사례 같은 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언샤는 지난 3년간 나찰사냥꾼인 자신의 할아버지에게서 교육받은 이런 수많은 정보를 머릿속에서 끝없이 되뇌면서, 그들과 맞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새 언샤의 몸에서 빠진 털 뭉치로 뒤덮여버린 여신은 아주 곤히 잠들었는지 딱딱한 바닥에 다시 내려놔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언샤는 저고리 앞섬을 고름을 엮어 다시 묶고는, 천막 위에다 걸어둔 두루마기(直領袍)를 걸쳐 입고 조금씩 공터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나찰들 앞에 섰다.


그들의 숫자는 그야말로 백에 가까웠다.


이렇게 많은 나찰들이 한 번에 몰려다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잘 생각해 보니 그런 광경을 직접 본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과연 그런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도 했다.


언샤는 그 외형이 완벽히 뒤죽박죽이라 너무나도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백의 나찰이 질서 있게 원형을 그리며 천천히 자신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는 그 모습에 아주 할 말을 잃었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지만, 나찰이란 존재는 고작 두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백 마리가 덤벼들 정도로 자비란 없는 존재들인 것인가.


"이건 뭐 강강수월래 하는 것도 아니고······."


언샤는 나찰이란 존재들이 마치 진형을 펼치는 군사들처럼 완벽한 원형을 그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광경을 보고는, 참으로 '늘어선 세계'라는 뜻인 나찰이란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혹여나 저들은 단순히 인간을 죽이는 게 목적인 게 아니라, 인간에게 최대한의 공포를 준 뒤에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진짜 저 괴물들의 목적이라면 죽인 시체를 먹지 않고 잘 보이는 길에다 썩도록 방치해두는 그 악질적인 습성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많이 화가 났다.


이들에게 인간의 생명이란 고작 유희거리에 불과한 것인가?


언샤는 그들이 생각보다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 천막 옆에 걸어둔 활을 집어 들고 띠돈을 사용해 동개(화살집)를 몸에 걸쳐맸다.


화신이 무기를 사용하는 건 언뜻 이해가 안 되는 일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강철보다 단단한 손톱을 가진 언샤라도 대폭태쇄를 사용할 수 없을 땐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단이 전무했기 때문에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활을 준비해둔 건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그렇게 언샤가 나찰들 앞에 꺼낸 건 그 궁간의 길이가 4m를 넘는 초대형 예궁(禮弓)으로, 크기와 굵기가 일반적인 합성 각궁과 비교도 안되게 거대했으며 그 활시위를 당기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근력이 필요하기에 본래 여러 황실 예식 등에서 의식용으로만 사용되는 활이었다.


예궁은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겉에 검은 옻칠이 되어있어 어두운 밤에도 달빛을 받아 검게 빛났으며, 어떠한 장식도 없이 매끈한 외형이었지만 단순히 그 크기만으로 범상치 않은 활임을 느끼게 만드는 일품이었다.


화신이며 그 키가 3m를 넘는 언샤에게 있어서는 이 정도는 되어야 진짜 활이라고 부를만했다.


언샤는 반달처럼 팽팽하게 펴져있던 그 활의 시위에 그 무게가 60냥, 즉 2kg을 넘는 말도 안 되는 무게의 철화살을 걸었다.


이러한 철화살은 총 12개가 있었으며, 모두 몽환포영의 부서진 잔해를 녹인 미지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알 실라에서 만들 수 있는 어떠한 무구보다도 튼튼했다.


황실의 도자장이들은 본래 몽환포영의 잔해로 검을 만들려 했으나, 너무나 단단한 그 금속을 용광로를 써서 어떻게든 녹일 수는 있었음에도. 날을 세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굳이 화살로 만든 건 어차피 검이나 창으로 못쓴다면 몽둥이로 휘두르는 것보단 차라리 화살이라도 만드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을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 12개의 육중한 철화살, 육십량전(六十兩箭)과 그것을 쏘기 위한 초대형 예궁이었다.


그렇게 무거운 화살을 쓰는 건 화신의 지나치게 강한 힘이 활에 가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필수적이었으며, 평범한 인간은 이런 화살이 걸린 거대한 활을 당기거나 쏠 생각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기에 사실상 활이라기보단 그냥 노포(弩砲)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어쨌든, 냉병기란 그걸 다룰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그 무게 자체가 곧 파괴력이었으니. 화신이 다루는 무기가 규격 외 수준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옷을 입고 예궁을 꺼내드는 것으로 언샤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더는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야 이 나찰 놈들아!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겁쟁이처럼 간만 볼 거냐! 귀찮으니 전부 다 한 번에 덤벼라!"


언샤는 그렇게 외치며, 크게 도약해 허공에서부터 활을 쏘았다.


인간을 초월한 근력으로 시위가 당겨지며 경쾌한 현울림 소리와 함께 발사된 화살은 소리보다도 빠르게 날아가 공기를 찢는 폭발음을 내며 선두에 선 나찰의 머리를 그대로 부숴버렸다.


마치 화살이 아니라 대포탄에 맞은 듯한 광경이었다.


언샤는 한 번의 도약에 세 번의 화살을 속사하는 신묘한 묘기를 펼치며 나찰 하나의 머리가 날아가자마자 분노해 돌진하기 시작한 다른 나찰들을 향해 나머지 열하나의 화살을 모두 쏘았다.


그 모든 화살이 모두 정확히 나찰의 머리를 파괴했다.


쏜 화살이 백발백중인 것 자체는 알 실라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었으나.


언샤가 말안장 위도 아닌 지지대도 없는 허공에서 활을 쏘는 인간을 초월한 묘기를 펼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팔힘만으로도 그만한 크기의 활을 당길만한 완력을 갖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집중력으로 모든 걸 꿰뚫어볼 수 있는 화신이기에 가능한 기행이었다.


언샤는 12개의 화살이 모두 발사되고 나자, 활을 어깨에 맨 채로 크게 도약해 수많은 나찰들이 원형을 그리고 있는 진형을 향해 돌진했다.


그대로 중력에 몸을 맡겨 가속도를 붙여 내려친 일격에 팔족보행 나찰 하나의 머리가 그대로 뭉개지며 바닥에 꽂혔다.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고, 머리가 터져나가며 뇌수와 두개골 파편이 날리고 그 충격으로 눈알이 뽑혀 나와 튀어 올랐다.


"오늘이 너희 모두의 제삿날이고! 여기가 너희들 무덤이 될 테니, 볕이 잘 드는 묫자리 봐두는 걸 잊지 말고!"


언샤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톱을 뽑아들어 자신에게 덤벼 오기 시작한 다른 나찰의 팔이라고도 다리라고도 촉수라고도 부르기 미묘한 기관을 쳐냈다.


그 말단부는 손톱에 바로 잘려나가 피를 흩뿌리며 떨어져 나갔으나, 나찰은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 부분을 바로 재생해내어 공격했다.


마치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공격은 매우 변칙적이었으나 언샤는 이 모두를 전부 피하고 손톱으로 자른 후 나찰에게 돌진해 그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언샤는 자신의 등 뒤에서 덮쳐오기 시작한 머리 둘에 키는 작은 나찰을 발판으로 사용해 날아올라 마치 무당처럼 작두를 타듯이 공중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도약하여 자신에게 덤벼오는 다른 거대한 나찰들을 모두 손톱으로 베어냈다.


급소를 베이지 않은 나찰들은 금방 재생하여 다시 덤벼들었고 언샤는 그때마다 나찰의 머리를 밟고 하늘로 도약하여 마치 곡예사가 불붙은 고리를 향해 돌진하는 사자의 공격을 피하듯이 모든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언샤는 스스로도 비겁하며 용기의 화신 답지 못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럼에도 객기를 부리다가 나찰들에게 허무하게 죽어줄 생각도 없었기에 수많은 적을 능히 상대할 수 있는 자신의 강점과 이점을 아주 잘 살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언샤는 먼저 자신에게 겁먹어 더는 다가오지 않게 된 나찰들 사이로 끼어들어, 그들 사이에 흩어져있던 화살들을 하나씩 회수하며 도약하고, 또 도약했다.


그렇게 수많은 나찰들을 모두 발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찰들을 마치 돌담을 건너듯이 아주 가볍게 밟고 넘어 다니다가, 그를 공격하려고 시도하는 개체들부터 가장 먼저 그 머리를 뭉갰다.


머리가 둘이나 셋 달린 개체는 그 두개골에 양 손톱을 꽂아 뇌수를 휘저었다.


믿을 수 없는 기이한 생명력 덕에 죽은 상태로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언샤의 목숨을 노리는 나찰들은 최대한 거리를 두어 스스로 죽을 때까지 방치했다.


"옛날 옛적부터 너희들 나찰을 죽여서 먹고사는 게 우리 집안 가업이었거든! 약육강식이라 하니, 불만 있으면 너희들도 나를 죽이고 그 간을 씹어먹어봐라!"


도약과 도약을 반복하며 그들의 등과 머리에 발톱 자국을 남겨 확실하게 계속해서 상처를 만들고, 화살 하나에 손이 닿게 될 때마다 허공에서 예궁을 쏘아 감히 천자가 선 하늘로 덤벼오는 개체부터 확실하게 심장이나 머리를 파괴했다.


머리나 심장이 부서졌음에도 죽지 않은 개체는 그 사지가 뜯어질 때까지 그 팔 혹은 다리를 붙잡고 회전시키며 둔기처럼 활용해 다른 나찰들을 휩쓸게 만들었다.


심장과 머리가 모두 파괴되고 팔다리가 뜯겨나갔음에도 여전히 숨이 붙어 끈질기게도 바닥을 기면서 달라붙는 개체는 직접 들어서 회전시켜 마치 원심력을 실은 원반처럼 송림 안으로 내던져버렸다.


목을 베고, 머리를 뭉개고, 심장을 부수고, 활과 화살로 꿰뚫고 관통하며, 그 몸을 걷어차고, 목을 물어뜯고, 머리를 밟아 부수고, 심장을 찌르고, 그 몸의 뼈를 뽑아낸다.


"죽어라 나찰들아! 그리고 다음 생엔 꼭 모든 생물 중 가장 고통스런 삶을 산다는 끔찍한 생물, 인간으로 태어나서 평생 후회하며 살기를 빌어주마!"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끝도 없이 반복하는 것은 너무나도 지치고 고된 일이었다.


아무리 그 외형이 끔찍하고 뒤틀린 것이긴 하나 그럼에도 나찰은 세상에 사는 여러 짐승들의 모습을 아주 조금씩 닮은 존재였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여러 생물의 몸을 찰흙처럼 반죽하고 조합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이어붙이고 굳혀놓은 것 같이 생겼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로 붙여놓았을 때는 세상에 둘도 없이 끔찍한 생물이지만, 그 머리나 몸통, 팔, 다리 일부분만을 잘라놓으면 다른 생물과 크게 구분이 가지도 않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끝도 없는 나찰 해체 및 학살 작업을 벌이고 있던 언샤는 자신이 마치 짐승이나 인간을 끝도 없이 죽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착각이 들었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고 그들을 죽이는 그 순간순간마다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서지며 내장이 흩날리는 그 끔찍한 광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그들을 학살해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그때는 아주 분노하여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맨정신인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마치 자신이 정말 사람을 죽이기라도 한듯한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느꼈다.


자신이 처음으로 손톱으로 심장을 꿰뚫어 죽인 생물인, 자신의 아버지의 심장을 부술 때의 그 감각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만들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학살해 육편과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린 수많은 병사들을 떠올리게 했다.


"너희 같은 괴물의 피가 세상 모든 아름다운 짐승들과 같은 붉은색이라니, 참으로 역겹기 짝이 없구나!"


언샤는 그렇기에 태연함을 연기했다.


미친 척, 용기 있는 척, 어떠한 공포도 모르는 듯이, 자신이 전설 속 '호랑이'처럼 무쌍의 존재라도 된 듯이 아주 강한 척 굴었다.


그렇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구토감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끔찍하고 사악하나 엄연히 하나의 생물인 나찰들을 백이나 넘게 죽여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 현실을 이겨내려면 세상에 둘도 없이 강력한 천자를 연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는 모든 존재 중 가장 강한 그 자를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젠장, 모든 인간의 적이자 원수인 나찰을 죽이는 것인데도 이런 심정이라니, 도대체 같은 인간을 그렇게나 많이 태연히 학살할 수 있었던 아버지는 정녕 같은 인간이 맞긴 했던 것인가?


그리고 언샤는, 자신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그 절대적인 힘, 대폭태쇄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었다.


모든 걸 뒤틀고 분쇄하며 찢고 흡수하며 태우는 그 강렬한 투기.


그것을 쓴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나찰을 쓸어버리는 것쯤 아주 손쉬운 일일 텐데.


언샤가 그런 잡생각에 정신이 팔려 몸을 움직이는 것을 둔하게 할 때마다, 나찰들은 그 틈을 전혀 놓치지 않고 언샤의 몸을 계속해서 공격했다.


어깻죽지가 이빨에 먹혀서 뜯겨나가고, 등에 칼날같이 변형된 나찰의 손이 꽂히고, 허벅지에 긴 채찍처럼 늘어진 나찰의 발이 꽂혔다.


온몸에는 이미 찰과상과 자상과 열상이 가득했다.


다행인 점은, 언샤가 꼴에 화신이라는 사실이었다.


나찰처럼 잘린 수족을 바로 재생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은 없었으나.


어떤 깊은 상처도 치명상이 되지 못하고 바로 출혈이 멈췄으며, 외견은 금방 수복되지 않아도 그 근섬유와 힘줄은 바로 재생되었기에.


아무리 큰 상처를 입어도 그가 정신을 집중하여 빠르게 움직이려 하는 한 그 몸은 전혀 둔해지지 않고 그의 뇌의 명령을 잘 들으며 움직였다.


그렇게 언샤는 한참을 싸웠다.


어느샌가 잠에서 깨어 그 광경을 불안하며 염려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여신에게 부탁하여 자신에게 축복을 내려달라고, 화신의 모든 권능을 끌어낼 용기를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난 3년, 언샤는 아슬란신의 권능을 최대한 끌어내보려고 온갖 시도를 했었지만 큰 성과는 이루지 못했다.


용기가 없는 겁쟁이가 용기의 화신이 된 부작용인 것인지 언샤는 화신의 기본적인 능력인 인간을 초월한 신체능력이나 상처 회복, 독 면역 등의 기본적인 혜택은 모두 멀쩡하게 누릴 수 있었으나.


용기의 화신의 직접적인 권능인 대폭태쇄와 신체능력의 추가적인 강화 등은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다행히 3년간의 수련을 거친 결과 여신의 축복을 받은 상태에서는 아슬란의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권능인 대폭태쇄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것 역시 아버지의 것에 비하면 한참 미치지 못하는 미약한 것이었다.


사실 그렇게 약화된 화력으로도 이곳의 나찰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문제는 정신과 육체를 아드레날린의 작용으로 강제적으로 고양시키는 축복의 특성상 사용하고 나면 한참 동안이나 온몸의 모든 근육과 내장들이 망가져 꼼짝도 못 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나찰들의 땅에서 여신의 축복과 대폭태쇄를 함부로 꺼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권능을 써서 이들을 모두 쓸어버린다면 그것으로 좋겠지만.


그럼 그다음은?


이 주변에 대체 얼마나 많은 나찰이 살고 있을지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언샤가 꼼짝도 못 하는 상태가 되면 저 여신은 대체 누가 지키나?

자신은 어떻게 몸을 지키는가?


그러한 이유로 언샤는 대폭태쇄를 사용해 한 번에 모든 걸 쓸어버리고 싶다는 그 강렬한 유혹을 최대한 억누르고, 화신의 기본적인 신체능력만을 사용해 나찰들에게 승리해야만 했다.


그리고, 언샤는 다른 건 몰라도 참는 것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렇게 언샤는 나찰을, 끔찍한 괴물이긴 하나 그럼에도 생물인 것을 죽여야만 하는 반감을 최대한 억누르며 마치 기계처럼 자신의 사고를 단순화하고, 일부러 강해 보이는 말을 내뱉는 걸로 자신의 정신을 최대한 고양시키고, 자신이 저지르는 반복적인 살육의 감각을 최대한 그 즉시 머리에서 지우며 잊으려 애썼다.


어쨌든, 살아야만 했다.

살아남아야만 미래도 있는 것이고. 미래가 있어야 꿈도 이룰 수 있는 것이고. 꿈을 이뤄야 태평성대를 이룩해 수많은 백성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언샤는 절대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선 안됐다.


언샤는 3년 전 여신을 만난 그날부터 하늘의 인정을 받은 진정한 천자가 되었으며, 수많은 백성의 안민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 존재가 되었으니.


그렇게, 언샤는 기계적인 반복을 통해 백의 나찰을 모두 죽였다.


그들 모두에게 인간의 무서움을, 화신의 저력을, 천자의 위용을 보여주게 되었다.


언샤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온몸이 붉게 물들어 끝도 없이 피비린내를 풍기게 된 자신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자신은 절대 그 패호황과 같지 않다고, 자신이 죽인 건 단순한 괴물에 불과하며.


저 괴물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을 고작 재미를 위해 죽여왔을 뿐인 존재라며, 자신이 행한 이 모든 행동은 정당한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되뇌며 무너져가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자신은 태어나 가장 먼저 빼앗은 생명이 자신의 아버지의 것인 천인공노할 패륜아 아닌가.


지금 와서 살육의 업이 고작 백쯤 더 얹어진다고 해서 그 죄의 무게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괜찮다, 아직은 괜찮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당장에라도 기절하고 싶은 썩은 정신의 동아줄을 최대한 붙잡으며.

겨우 버티고 섰다.


온몸에 뒤집어쓰게 된 살육의 증거물인 썩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 미칠 것만 같았으나.


그럼에도 괜찮았다.

아직은 괜찮았다.


그리고, 그 직후 선채로 반쯤 기절하다시피 한 언샤의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이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소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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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여신과 별을 쫓는 사냥꾼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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