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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아서. 님의 서재입니다.

불멸의 여신과 별을 쫓는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니알아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4
최근연재일 :
2021.06.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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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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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2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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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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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호질 8 - 박제가 되어버린 여신을 아시오?

DUMMY

"누나, 혹시 나 불렀어?"


"아니, 나는 그냥 이 적삼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적삼 안에 뭔가 있는 것 같더라."


파르다는 그렇게 대답하고, 낡고 더러워져 내구도가 형편 없어진 적삼이 부서지지 않게 조심히 살펴보다가 그 안에서 한 유리와 나무로 만든 액자를 찾아내었다.


액자의 틀인 나무는 귀한 소나무 재질이었고, 유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


누가 봐도 하층민이나 천민 등이 입었을 법한 그 피 묻은 적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고급품이라 할 수 있었다.


액자 안에는 영정(影幀), 즉 누군가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영정은 아주 훌륭한 화원의 실력으로 그려진 것이라.

그 솜씨는 왕의 초상화를 그릴 자격이 있는 가장 뛰어난 화원인 어진화사(御眞畵師)에도 밀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니, 잘 보니 그냥 어진화사가 그린 그림이 맞았다.


이 그림은 분명히 지금은 사직하고 출가해 승려가 된 전대 어진화사인 추사 선생이 그린 영정임이 틀림없었다.


황녀인 파르다는 그가 그린 그림을 아주 질릴 정도로 많이 봐왔기에.

아무리 영정 같은 정해진 형식으로 그림을 그리더라도 쉽게 감추지 못할 그의 붓놀림과 손버릇을 알아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알 실라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으로 그려진 초상화에는, 파르다 자신의 모습과 아주 닮은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전대 어진화사가 파르다도 모르는 사이에 황녀의 영정을 그렸나 하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림에 그려진 여인의 몸에 깃든 짐승의 정수는 흑표범의 것이 아닌 호랑이의 그것이었므로.

그 털색이 파르다 자신과 전혀 달랐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자 곧 그게 파르다 황녀 자신을 그린 영정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 액자에서 그 영정을 빼서 그림 뒷면을 보자, 뒷면에는 예상대로 추사 선생의 인장이 찍혀 있으며 호원(虎願)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호원? 호랑이가 기원한다고? 그게 대체 무슨 의미지?


"동생아, 잠깐 이것 좀 보렴. 이 영정에 그려진 사람······."


파르다는 자신의 바로 등 뒤에 서있을 동생을 불렀으나, 언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르다는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보았고, 자신의 동생이 아무것도 없는 전돌 벽에 귀를 대고 눈을 감고 기대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뭐 하는 거니? 거기 뭐라도 있어?"


"이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 아무래도 안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누나는 안 들려?"


파르다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동생과 똑같이 벽에 귀를 대었으나.

전돌 내부에서 들리는 텅 빈 진동 소리와 미세한 바람 소리 이외에 사람 목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단다?"


"아냐, 이제는 엄청나게 크게 들리잖아. 자기가 이 벽 너머에 갇혀있으니, 자신을 빨리 꺼내달라고 외치고 있어······."


"동생아.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니? 이런 곳에 사람을 가둬뒀다간 그 외침 소리가 들려서 발각되거나, 혹은 식사를 자주 줄 수 없게 되어 죄인이나 포로가 굶어죽거나. 그렇게 될 결말 밖에 안 보이는데 대체 누가 여기에 사람을 가두겠니? 궁궐 내엔 내사옥(內司獄)이라고 해서, 내시들이 궁내의 대죄인들을 직접 관리하는 감옥도 있긴 하지만 거긴 이 근처가 아니라 호압궁 남동쪽 끝 구석에 있단다?"


갑자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언샤에게 파르다는 매우 합리적인 설명을 붙여가며 이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으나.

황태자는 황녀의 말을 완전히 흘려들은 채 계속해서 벽 너머에서 들린다는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누나, 이 전돌 벽, 한 번 부숴봐도 될까?"


"아니, 큰 소리가 나면 안 되니까, 부수지는 말고 전돌을 한번 빼보자."


파르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갖고 있던 은장도와 철선의 날을 전돌 틈새에 끼워 그 사이의 황토 이음매를 부수고 하나하나씩, 무거운 전돌들을 벽에서 빼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황녀는 그렇게 열심히 전돌을 빼봐야 그 너머에는 기껏해야 안 다듬어진 흙벽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황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도 빗나갔다.


전돌 너머에는 아슬란족의 밤눈으로도 꿰뚫어보지 못할 정도로 깊고 깊은 어둠.

즉 빛이 전혀 새어들어오지 못하는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르다와 황녀는 전돌 틈새에서 최소 몇십 년은 전혀 사람이 출입하지 않은 듯 더러운 공기와 짙은 먼지가 빠져나오는 것에 놀라며.

전돌을 계속해서 빼내 두 사람이 출입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입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안으로 들어가보자."


두 남매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말하고는, 벽 너머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빛이 전혀 새어들어오지 않는 그 어둠에 익숙해지는 데는 좀 시간이 걸렸지만.

이내 두 사람은 눈은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져 그러한 곳마저도 곧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의 모든 것이 색채를 잃고 오로지 음영으로 밖에 구분되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그럼에도 곧 그곳에 있는 것이 하나의 승탑 임을 깨달았다.


"사람은 없는데······."


"저건 웬 승탑일까? 설마 옛 호압사에 있던 걸 부수지 않고 그대로 이 지하 공간에 옮겨둔 건가?"


두 사람은 피 묻은 적삼에 이어 또다시 정체 모를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이젠 놀랄 기운도 없어 그냥 짜증이 날 뿐이었다.


승탑은 요즘에 지어지는 것과 전혀 달라 수천 년 전 옛날의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전형적인 팔각 원당형 승탑이었으며.

그 기단에는 눈이 천개 달린 '호랑이'의 뒤틀린 모습이 장인의 솜씨로 아름답게 부조되어 있었고.

그 중심부인 몸돌에는 가부좌를 튼 주신 루카의 모습과 그 천 개의 손이 새겨져 있었다.


알기 쉬운 루카신 승탑이었다.


〃나는, 그 승탑 안에 봉안(奉安)되어 있다. 그 몸돌을 부수고, 나를 해방시키거라.〃


그리고 언샤는, 자신을 부르는 그 이상한 목소리가 명백한 방향성과 목적을 갖고 자신에게 지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누나, 아직도 안 들려? 아무래도 이 목소리, 저 승탑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동생아, 혹시 밖에서 뭐 독버섯이라도 잘못 먹었니? 지금 당장 거사를 그만두고 의관이라도 불러올까?"


"아니, 나는 완전 정상이야.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지하 한가운데에 있는 저 이상한 승탑이지."


언샤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돌이나 옥신이라 불리는 부위, 즉 승탑의 중심부이자 몸통부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어떤 망설임도 없이 주먹을 휘둘러, 그 몸돌을 부쉈다.


엄청난 먼지와 돌 파편이 허공에 흩날렸다.

언샤와 파르다는 먼지 때문에 연신 기침을 내뱉으며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아, 아무리 화나도 그렇지 승탑 같은 성물을 부쉈다간 천벌받는단다?"


"아니, 그 목소리가 부수라고 시켰단 말이야."


"우리 동생이 이젠 환청을 들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게 되었다니, 언샤야. 미안하다. 대체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은 부담을 줬는지······."


파르다는 그렇게 계속 말하며 환청이 들린다는 헛소리를 하는 자신의 동생을 진정시켜보려 했으나.

이내 먼지가 잦아들고 부서진 승탑 안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 때문에 더는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본디 승탑이란 신에 관련된 유물이나, 승려의 사리 등을 보관하는 용도이다.


그렇기에 그 몸돌을 부수게 될 경우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염주나 불상이나 종교 서적이나 사리함 등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곳 승탑에 봉안되어 있던 건 완전히 그러한 범주를 초월한 물건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어두움 속에서.

그것은 홀로 붉은 광채를 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마치 상아를 깎아 만든 듯 정교하고 섬세한 무늬가 그 몸체 전체에 가득 새겨져있는 아름답고도 붉은 쇠사슬.


그것이 완전한 구의 형태를 이룬 채 승탑 몸돌 내부에 봉안되어 있었다.


쇠사슬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구형을 유지한 채로 허공에서 계속 쇠사슬끼리 서로 부딪히며 회전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쇠끼리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음에도 그 표면은 전혀 닳은 곳이 없이 매끈했고.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는 하나도 나지 않는 채 침묵 만을 지킨 채 끝없이 허공을 휘젓고 있을 뿐이었다.


쉽게 말해 쇠사슬이라고 하나.

그 재질이나 재련 방식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너무나 아름다워 그게 이 현세의 물건이 맞기나 한가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고 기묘하면서도 또한 성스러웠다.


그 완벽함은 마치 천상의 주물로 그러한 사슬을 주조해 이 땅에 그 아름다움을 널리 퍼뜨리고자 하사한 듯했다.


"이게 바로 그 사멸신장이란 건가 본데?"


"······동생아. 미쳤다는 소리 해서 미안하구나. 이게 바로 그 사멸신장이 맞을 거란다. 고이의 부하가 한 말에 따르면, 사멸신장이란 건 단순히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구 들을 모두 묶어서 칭하는 것일 뿐이고, 이 무구의 정확한 이름은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고 했었지."


"몽환포영이라."


"그래. 하지만 이름 같은 게 뭐가 중요하겠니, 이 빛깔, 이 자태를 보렴. 이거라면 분명 화신인 황상에게도 밀리지 않을 성물임이 틀림없어 보이는구나."


"확실히 그렇네."


언샤는 그렇게 말하며, 사멸신장 몽환포영에 손을 뻗어 그것을 왼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러자 그 붉은 쇠사슬은 어둠 속에서 더 큰 붉은빛을 발하더니.

마치 그 스스로가 의지를 가진 듯 원형의 구체에서 마치 뱀과 같은 긴 쇠사슬의 형태로 점차 풀려나와 언샤의 몸을 나선형으로 둘러싸기 시작했다.


곧 언샤의 주변에는 그 길고 긴 쇠사슬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허공을 붉게 휘젓게 되었다.


언샤가 몸을 조금 움직이자, 쇠사슬 역시 이에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샤가 오른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앞으로 내밀자.

쇠사슬은 다시 한곳으로 모여 끝없이 회전하는 작은 구 형태가 되어 언샤의 손 위에서 떠다니게 되었다.


"그 쇠사슬은 마치 자신을 쓸 주인을 알아보는 것 같구나."


"응, 그렇긴 한데······."


그 순간 언샤는 자신이 분명 몽환포영을 왼손 위에서 오른손 위로 옮겨 놓았으며.

애초에 몽환포영은 공중에 떠있기에 무게가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는 점을 눈치채고는 자신의 왼손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위화감에 대해서 알아챘다.


방금 전에는 몽환포영의 사슬이 현란하게 펼쳐지는 것에 눈이 팔려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몽환포영의 사슬이 구형에서 실처럼 풀려나는 순간 그 안에 있던 무언가가 그의 왼손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언샤는 자신의 왼손에서 느껴지는 그 묘하게 묵직한 무게와 기묘한 감촉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왼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것은, 인간의 머리였다.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 어둠 속에서도 완벽하게 그 색채를 알아볼 수 있는 기묘한 존재감.

그 먼지 속에 있었음에도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윤기 넘치는 은발.

원숭이 귀와 닮았으며 머리 위가 아닌 옆에 달려 있는 게 특징인 루카족 특유의 귀.

그리고 백옥 같은 살갗. 마치 그림에 새긴 듯 잘 빠진 목덜미.


눈을 감고 있는 그 표정은 마치 잠든 듯 아주 온화했다.


그 머리는 마치 봉인이라도 되어있었던 듯.

사찰 밑 지하의 숨겨진 방, 그리고 그곳 승탑 안의 몽환포영 사슬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인간의 머리.

효수되어 잘린 머리였다.


잘린 목과 척추뼈의 절단면이 자신의 손바닥에 닿아있었고.

손바닥의 육구 위로 그 미묘한 감촉을 아주 잘 느낄 수 있었기에.

언샤는 그게 인형의 머리 같은 게 아닌,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진짜 사람의 머리라는 걸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언샤는 그 순간 이곳에 쌓인 먼지와 공기로 추측하건데 이곳은 최소 십여 년 단위로 사람이 오가지 않았을 정도로 오랫동안 방치된 공간인데.

이 머리는 대체 어떻게 지난 십여 년간 전혀 썩거나 부패되거나 말라비틀어지지 않을 수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언샤는 자신의 손 위에 얹어진 그 머리에서 명백히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며.

목에 닿은 절단면에 존재하는 혈관이 심장도 없이 스스로 맥동하고 있음을 알아채고야 말았다.


"뭐니 그건? 루카족 여자의 머리잖아? 그런 게 대체 왜 몽환포영 안에 들어 있었던 거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누나, 근데. 이 잘린 머리.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은데······."


그리고 그다음 순간.

그 잘린 머리의 눈꺼풀이 잠시 일그러지고, 눈꺼풀 밑의 동공이 잠시 요동치더니 마치 잠에서 깨기라도 하는 듯이 두 눈을 떴다.


이십 대 초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미처 성인이 되지 못한 듯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그럼에도 아주 기품이 넘치는 외모였다.


제비꽃을 닮은 연한 자색 눈동자로 흐트러짐 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그 모습은.

그 정체가 잘린 머리가 아니었다면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으로 넘쳐흘렀다.


"언샤여, 아주 잘했도다. 그대가 드디어 나를 깨웠구나."


그리고, 그 잘린 머리는.

눈을 뜬 것도 모자라,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건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언샤를 계속해서 부르던 그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번엔, 그 목소리는 언샤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 순수한 육성으로 울려 퍼졌다.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듯 부드럽고 고운 여인의 목소리.


그러나, 목소리가 듣기 좋다는 그 사실과는 별개로 잘린 머리가 살아있는 채 말을 한다는 건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그대를 계속 부르기 시작한 지 어언 십 년이 흘렀구나. 내가 그 쇠사슬에 갇힌 후 흐른 시간에 비하면 참으로 짧은 시간이나,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않는 그대를 부르기만 하는 건 참으로 길고 긴 기다림이었노라. 그러나 다행히도 내 목소리는 그대에게 아주 잘 전해지고 있었던 것 같구나."


언샤가 자신의 손바닥을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해도, 그곳 아래에 그 머리의 몸통이 달려있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거기 있는 건 머리가 끝이었다. 그 목덜미까지가 끝이었다.

그 아래가 없었다.


거기에 있는 건 사람의 머리 하나뿐이었고.

그 머리는 머리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을 깜빡이며 숨을 쉬며 또한 말하고 있었다.


"음, 이렇게 머리밖에 없으니 기껏 쇠사슬에서 풀려났는데도 옴짝달싹할 수가 없군. 언샤여, 잠시 나를 떨어뜨리지 말고 잘 잡고 있어보겠느냐?"


"······."


언샤는 그 기기묘묘한 광경에 넋을 놓고 공포에 질린 채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머리가 시키는 대로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손발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식은땀이 흐르고, 뒷목이 당겨 지금 당장이라도 까무러쳐 졸도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건 그야말로 우주적인 원초적 공포였다.


"지금부터 육체를 다시 만들 것이니, 아주 잠시만 기다리거라."


"······."


그 머리는 머리만 남아 살아 있는 채로 도저히 이해 가지 않는 소리를 할 뿐이었다.

육체를 다시 만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아주 잠시 후, 그 머리의 잘린 목덜미로부터.

척추, 뼈, 핏줄, 신경, 내장, 살, 근육, 가죽, 살갗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것이 아주 순식간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먼저 뼈가 생겨나고, 그 위를 핏줄과 신경이 덮고, 그리고 나선 맥동치는 내장들이 생겨나고는, 그 위를 살과 근육이 뒤덮었다.


그러고 나서는 가죽과 살갗이 근육을 덮었고, 곧 온몸이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로 덮였다.

그리고 그 피부에는 루카족답게도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아주 짧은 솜털만이 자라났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식으로 이해를 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이건 꿈이 분명했다. 꿈이 아니고서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법칙, 생물의 법칙 자체를 완벽하게 무시하며 허공에서부터 생겨난 육체는 그리 크지 않은 어린아이의 몸 정도 크기에 불과했고.

그렇기에 자신의 팔 위에는, 고작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은발의 소녀가 앉아 있게 되었다.


이십 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던 얼굴 역시, 그 몸에 맞게 아주 어려져 있었다.


그 소녀는 언샤의 왼손과 팔뚝 위에 아주 편히 앉은 채.

방금 허공에서 만들어진 손발가락을 마치 잘 움직이나 시험이라도 하듯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하! 참으로 오랜 세월 만에 움직여보는 이 느낌은 정말이지 새롭구나. 아주 새로 태어난 기분이로다. 언샤여, 그 빌어먹을 쇠사슬 안에서 이 나를 꺼내줘서 정말 고맙구나."


그리고 은발의 루카족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감사 인사 같은 걸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애초에, 대체 어떻게 언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잘린 머리가 대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

절단면에서 피가 나지 않는 이유는? 머리만 남고도 살아있던 이유는?

그 머리만 남은 상태에서 작은 몸을 다시 만들어낸 방법은?

그보다 왜 갑자기 어려진 것일까?


더는 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언샤는 그만, 정신을 잃고야 말았다.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이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소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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