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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아서. 님의 서재입니다.

불멸의 여신과 별을 쫓는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니알아서.
작품등록일 :
2021.05.12 10:14
최근연재일 :
2021.06.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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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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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호질 16 - 거사

DUMMY

10.


소녀가 진짜 여신 루카로 인정 받게 된 후,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루카시를 넘어, 호랑이의 시간(虎詩)인 아슬란시(01:00-03:00)로 향하고 있었다.


호군방을 밝혀주던 촛불의 촛농은 마치 시간은 더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듯 타들어가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밤의 어둠은 아직 길게도 드리워져 있었다.


조금 지체되었을 뿐, 거사를 실행할만한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기에 초조해하지 말고, 마땅한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파르다 황녀는 여신의 권능으로 인한 변수를 생각하여 기존 계획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고.

호군방 탁자에 놓여있던 궁궐 지도를 꺼내들어 저녁에 언샤에게 간략히 설명했던 계획을 그 상세내역까지 정리해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망을 보는 두 사람을 제외한 14명의 살수들과 소위장군 마키까지 모두 호군방에 들어와있었기에.

별로 넓지도 않은 방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숨소리와 존재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우리들의 계획이자 목표는, 이 나라의 황제인 판테라다. 왜 우리가 그를 쳐야 하는지는 앞서 충분히 설명했으니, 그 동기부여에 대한 상세는 넘어가도록 하고. 아까 설명한 작전에 조금의 수정 사항이 있기에 이를 하달하도록 하지. 먼저 옆에 계신 이분을 소개하겠다. 이분은 사랑의 여신인 루카님이시다. 이 청초한 외모만 보더라도 이분이 여신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겠지. 고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언샤는 고작 그런 걸로 부하들이 납득하겠나 싶었지만.

그들 역시 호군방에서 여신과 황녀가 대화하는 걸 같이 듣기도 했고.


황녀에 대한 살수들의 충성과 지지는 절대적인 것이었기에 황녀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황녀가 하늘의 달을 가리켜 그것이 태양이라 말한다면.

그것은 그 순간부터 태양인 것이었다.


황녀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황제의 목을 치려 하지는 않을 테니.

적어도 이들 사이에서 황녀의 발언은 모두 불변의 진리로 통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여러분들, 고작 그걸로 납득하시는 건가요?"


"······."


언샤가 그렇게 물었으나 그곳에 선 15명 중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그들의 대장인 마키만이 언샤에게 불만이 많은 듯 재규어를 닮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먼저, 계획의 가장 큰 수정사항에 대해 하달할 테니, 모두 귀담아듣도록. 일단 황제와 직접 대치할 전투 인원을, 기존 언샤 한 명에서 수정 후 언샤와 루카 여신님까지, 총 두 사람으로 늘리도록 한다. 그러나 너희들의 임무는 변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황제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역할 그대로다."


"예! 공주 전하!"


15명의 살수들이 주먹과 손바닥을 공손히 모으고 일사불란히 대답하는 모습은 아주 인상 깊었다.


소란을 일으키면 안 됐기 때문에 그 목소리는 아주 낮고 나지막했으나, 그럼에도 아주 기백이 넘쳤다.


그들이 황태자에게도 그런 충성심과 정성의 일부라도 보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우리들의 목표 역시 그대로. 황제 폐하께서 숙면 중이신 침전이다. 우리는 침전을 불시 기습해, 어떤 소란도 일으키지 않은 채 그곳 주변의 호위들을 모두 제압하고, 황제의 침소로 들어가 주무시는 중인 황상을 우리가 손에 넣은 저 신조차도 죽인다고 전해지는 무구, 사멸신장을 사용해 제압한다. 당연히 이를 실행할 인원은 언샤 황태자와 루카 여신님 두 사람. 그대로 황제 폐하를 죽일 수 있다면 그걸로 좋고, 실패한다면 사멸신장의 능력과 여신의 권능을 사용해 계속해서 대치한다."


파르다는 그렇게 말한 후.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손에 쥐고 있던 접힌 철선으로 머리를 한 번 집고는,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다들 알고 있겠지만 화신의 능력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강력한 사멸신장의 능력이나 여신님의 조력이 있다고 해도 선제 기습이 아니라면 승리는 전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나의 살수들이여. 그대들은 황제 폐하가께서 깨어나는 불상사가 절대 생기지 않게 어떤 소음도 일으키지 않은 채 호위들을 제압하는 데에 주력하도록. 그 첫 단계에서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의 목숨은 없다."


"예! 공주 전하!"


"그럼, 지금부터 바로 작전을 개시한다! 망을 보는 나머지 2명의 살수에게도 작전의 변경 사항과 주의점에 대해 알리고, 바로 미리 계획한 위치로 이동해 작전을 실행하도록."


살수들은 주먹과 손바닥을 맞대고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호군방 밖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움직임에도 발소리 하나 나지 않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아슬란족답다고 할 수 있었다.





황제의 침전 주변에는.

파르다 황녀가 이미 궁궐 내 거의 모든 관리와 병사들을 제압했음에도 여전히 그 주변을 돌며 그곳을 호위하는 인원들이 가득했다.


혹여나 황제의 숙면을 방해할지도 몰랐기에 횃불 같은 건 그 누구도 피우지 않았고.

그들 대부분이 아슬란족이었기에 그 모두가 어두운 밤에 녹아들어 정해진 순찰로를 따라 발소리도 없이, 대화도 없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주변을 왕복하고 있었다.


어두운 밤 속에서 드러난 것이라곤 오로지 그들의 형형히 빛나는 두 눈동자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황제가 직접 뽑은 아슬란족에서도 가장 정예인 병사들.

내금위(內禁衛) 200명 중에서 그날 입직을 하게 된 금군(禁軍) 20인이었다.


그들은 사실상 황제의 친위대이며.

황제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이었으며.

동시에 그들 역시 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뭉쳐있기에 그들에게 있어 판테라 황제는 단순한 화신이 아닌 아슬란신 본인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들에게 황제는 곧 신앙이었다.


그렇기에 그들과는 어떤 대화도, 매수도, 위협도 성립하지 않는다.

궁궐 내부를 모두 제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파르다 황녀마저도 이들과 대치하는 것만큼은 마지막으로 미루고 또 미룰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황녀에게는 금위군 200명 모두를 이길 만한 정예 병력 같은 건 없었으나 그들 개개인에게는 전혀 밀리지 않을 17명의 살수가 있었다는 점이었으며.

또한 황제의 침전 주변에서 입직하는 내금위는 모두 비무장 상태라는 점이 황녀에게 아주 작은 기회를 주었다.


내금위 금군들이 모두 무장한 상태였다면.

아무리 살수들의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어떠한 소란도 없이 황제를 깨우지 않고 그들을 제압한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군들은 그들 육체의 뛰어난 무예와는 별개로, 갑옷도 입지 않았으며, 어떠한 날붙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화신이며 어떠한 독과 비수도 통하지 않을 판테라 황제에게, 호위가 필요하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금군들의 존재 가치는 오로지 하나.

누군가의 습격이나 궁궐 내에 불온한 움직임이 있을 경우 황제를 깨우는 것.


그렇기에 그들은 걸을 때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낼 뿐인 갑옷을 전혀 입지 않았으며.

적을 제압하는 무기를 드는 대신에 끝에 방울을 단 나무 지팡이를 든 채 근무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호랑이 목에 달린 방울이었다.


그들은 그저,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방울 소리일 뿐.

그들의 존재 가치는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방울을 흔들어 황제를 깨우는 것 단 하나뿐이었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실수로 그 방울에서 소리를 내어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아주 절제되고 또한 경직되어 있었으며.


거기에 그들의 황제에 대한 믿음은 아주 절대적이기에, 그들은 누군가가 감히 황제의 침전을 습격할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고 회로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 금군들은 그 개개인의 뛰어난 무예와는 별개로, 별로 쓸모가 없었다.


누군가가 침전의 지붕을 타고 몰래 그들의 머리 위와 뒤를 습격해 그 목에 칼날과 비수를 꽂을 때까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그렇게 17인의 살수들은 어떠한 거침도, 망설임도 없이, 금군 20명을 모두 죽이거나 제압하는 데에 성공했다.


침전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어느새 그 주변을 순찰하던 금군들이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게 되었음에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은 듯이 그저 고요했다.


호랑이 목에 달린 방울이 울리게 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17인의 살수들이 자신이 제압하거나 죽인 금군들을 끌고 오고, 그들의 숫자가 정확히 20인이 맞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언샤는 적잖이 놀랐지만.

파르다 황녀는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다음 작전을 지시했다.


"황태자 언샤, 다음 작전을 개시하겠다. 지금부터 혼자서 몽환포영을 들고 황제의 침소로 들어가, 황제를 제압해라. 방금 전에 여신님께 직접, 몽환포영의 사용법과 능력에 대해서 교육받았으니. 설마 그 잠깐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시동구를 잊었단 소리는 하지 않겠지?"


"걱정 마. 어떻게 쓰는 건지 확실히 외워뒀다고."


"그리고 루카 여신님, 여신님께선 만약 판테라 황제가 몽환포영에 당하기 전에 잠에서 깰 경우, 미리 계획했던 대로 언샤를 따라 들어가 제2 계획을 실행해 주십시오."


"잘 알았도다."


"그럼 바로 출발할게."


"잠깐, 언샤여. 거기 서보거라."


언샤가 누이의 계획대로 혼자서 침소에 돌입하려는 그 순간, 여신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 작전이 실패하면. 언샤 그대를 다시는 보게 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 혹시 그렇게 되기 전에 그대를 만나면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해두도록 하마. 지난 수백 년간, 이 호압궁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 중 여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인간은 오직 언샤 그대 한 명뿐이었다. 그 의미를 알게 된다면, 승리의 여신인 바로 이 루카가, 그대에게 미소 짓게 될지어니. 반드시 성공해 황제를 제압하고, 이 여신에게 승리를 바치거라."


여신의 말은 명백한 격려였기에.

그 마음 씀씀이만큼은 아주 고마운 것이었지만 이는 언샤 입장에서는 아주 조금 아니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이기도 했다.


"뭐? 네 미소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애초에 우리 두 사람은 네가 없었어도 원래 이렇게 할 예정이었는데, 네가 자꾸 그런 소릴 하니까 마치 우리가 여신의 명령을 받아서 거사를 치르는 것 같잖아."


"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로구나."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 말 붙이지 말고, 그냥 조용히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나 좀 해주십쇼, 우리 여신님."


"아니다, 언샤여. 네 말이 맞다. 나의 분노는 합당한 것이나, 그대들의 분노 역시 합당한 것. 그러므로 내 부탁이 너희들의 각오와 결의를 훼손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여신은 어떤 명분도 없이 사람을 부릴 정도로 파렴치한 존재가 아니니, 나의 명에 응하여 그 하늘을 분노케한 판테라라는 자를 죽이는 이는 주신 루카의 이름을 걸고, 어떤 소원이든 단 하나 들어주도록 하겠노라."


그러나 여신의 대답은, 언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냥 불만을 말한 것뿐인데 대체 왜 보상이나 소원 얘기 같은 걸 하는 걸까?


이 여신은 아마도 어떻게든 자신의 자식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어서 안달 난 팔불출 부모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대체 왜 그렇게 해석되는 거야? 난 뭐 콩고물 하나라도 더 얻어먹자고 그런 소리 한 게 아니거든? 그냥 알아서 어련히 잘 할 거니까 제발 좀 조용히 해달라는 의미일 뿐이라구요. 애초에 힘 대부분을 잃어서 남은 권능이 총 1000개 중에 2개밖에 없다며, 그걸로 대체 어떻게 소원을 이뤄준다는······."


"좀 닥쳐라, 우리 바보 동생아."


언샤는 이 소녀가 여신이란 건 더 의심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럼에도 그 성향이나 태도는 자신과 별로 잘 맞지 않았기에 목숨 걸고 죽으러 가기 전에 한 번쯤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누이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도 그럴게, 어차피 이 자칭 여신이라는 꼬맹이가 저런 명령을 안 해도, 우린 어차피 반정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려는 계획이었잖아. 이 모든 게 세상의 미래를 걱정해, 큰 뜻을 품고 목숨을 걸고 실행하는 대업이었다고. 근데 쟤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저런 소릴 하니 마치 우리가 소원에 눈이 멀어서 황위를 노리는 패륜아 같아져 버렸단 말야."


"제발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렴, 어차피 반드시 해야만 할 대업이었는데, 천군만마와도 같은 여신께서 강림하셔서 우리의 거사를 도와주시는데다가, 거기에 그걸 이루면 덤으로 여신께서 소원까지 들어준다는데, 이걸 천운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라 부르겠니?"


"그 소원이란 것도 저게 진짜 여신이어야 의미가 있는 거지 그냥 사이비 무당이면 대체 어쩌려고······."


"제발, 좀, 닥쳐라, 바보 동생아. 저분은 진짜 여신이니까! 방금 전 그 엄청난 능력을 보고도 왜 그걸 눈치 못 채는데?"


"아니, 나는 감정을 조종한다는 그 능력이 대체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만약 첫 계획이 실패해서 황제가 깨어나면, 여신님께서 도와주실 거니 안심하라고? 대체 어떻게? 그 잘난 초능력으로 황제를 슬프게 만들어서 자신의 죄를 모두 이실직고하게 만들기라도 하려고? 아니면 아까처럼 불쾌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 싸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기라도 하려고? 그야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고작 그 정도 얕은 수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황제는 만만한 상대가 아냐."


"하아, 됐고. 네 그 바보 같은 머리로 축복의 진가를 알아봤자 역효과만 날 것 같으니. 그냥 네 역할에나 충실하렴. 그 권능을 어떻게 쓰면 될지는 이미 정해 놓은지 오래니까."


언샤는 누이가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자신과 살수들을 내버려 두고 며칠 전 만난 여신과 두 사람만이 아는 계획을 세웠다는 점이 여전히 못마땅했으나.

그런 불평불만을 이 이상 내세워봤자 서로 감정 상하는 것 이외엔 바뀔 게 없었기에 그러한 본심을 숨기고 그저 자신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 그래. 그냥 그 권능을 쓸 일이 없도록, 기도나 해줘."


언샤는 그렇게 말하며.

침전의 입구를 따라 아주 조용히, 어떤 발소리도 내지 않은 채, 천천히 황제의 침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손에는 여전히 붉은 자수정처럼 빛나는 쇠사슬, 몽환포영이 구형을 그리며 엄청난 속도로 끝도 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그것의 원리나 재질 같은 건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것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완벽히 다룰 수 있는지.

리고 신을 죽일 수 있다는 과장스런 전설이 붙어있는 이 무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언샤 한 명뿐이라는 사실은 지난 경험과 여신의 설명 덕에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했다.


상대는 신이 아닌 화신이라고 하나.

그럼에도 그는 인간을 죽이는 데에 어떤 망설임도 없이 잔혹하며 또한 언샤의 실력으론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인간을 초월한 무력을 가진 존재였다.


스스로의 뒤틀린 이상을 세상에 내보이는 데에 어떠한 주저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정신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언샤에게 끝없는 공포만을 주며, 그에게는 죽음 그 자체인 존재.


아무리 지금은 잠들어 있다고는 하나, 그에게 도전하러 가는 것은 그 자체가 죽음의 공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언샤가 자신의 누이와 여신에게 끝도 없는 불평불만을 내뱉은 것도.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수단, 단순한 허장성세,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본심을 숨기기 위한 철저한 가면에 불과했으니.


아무리 지난 며칠 간.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며 그가 더는 물러날 수 없다고, 도망칠 수 없다고 결심을 했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사람의 본성을 바꾸며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것은 한낱 인간이 그리 쉽게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 와서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고, 도망칠 생각만큼은 전혀 없었으나.


언샤는 겁쟁이인 자기 자신을 직면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 침소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겁쟁이였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세상이 두려웠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해내야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자.

용기의 화신의 목을 칠 수 있는 건.

세상에서 제일 가는 겁쟁이 이외엔 그 누구도 없어야만 했기에.


그것만이 이 세상 인간에 귀천이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기에.


용기의 화신이 행한 수많은 행위가, 천자의 뒤틀린 이상이.

신에게 용인 받은 것이 아니며,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며.

단순한 학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야만 했기에.


그는 마치 사형대로 걸어가는 죄수와도 같은 심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뻗어, 침소 앞에 섰다.


침소의 문에 손을 대는 건, 스스로의 목에 밧줄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침소의 손잡이를 잡고 어떤 소리도 나지 않게 조용히 그 문을 여는 건, 자신의 목을 단두대 위에 올려놓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형이 집행되어 자신의 목이 부러지고 조각나서.

머리밖에 남지 않았던 저 여신처럼 되어버리는 체험을 하고 있단 착각을 들게 만들 정도였다.


여신은 그렇게 머리만 남아도 살겠지만, 자신은 꼼짝없이 시체가 되어버리겠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긴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떨지 않도록 마음을 가다듬으며..

터져나갈 것 같은 자신의 심장 소리, 역동하는 혈맥의 소리가 부디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리지 않기만을 바라며.


언샤는 아주 조용히,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침소 안으로 들어갔다.


온돌이 잘 달궈져 있는 황제의 침소는 바닥부터 공기까지 그 모두가 후덥지근했다.


그리고 그 더위를 뚫고 황제의 침상에 도착해, 이불을 들쳐 그 얼굴을 확인하고, 몽환포영을 사용하면······.



없다. 아무것도 없었다. 침상 이불 밑엔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이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소설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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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사문유관 1 - 사람 사는 세상 +2 21.05.24 43 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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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호질 22 - 비취와 청금 21.05.22 32 1 12쪽
21 호질 21 - 가장 아름다운 꽃은 21.05.22 32 1 11쪽
20 호질 20 - 호랑이가 꾸짖었다 (2) 21.05.21 36 2 16쪽
19 호질 19 - 호원(2) 21.05.21 31 1 31쪽
18 호질 18 - 호원(1) 21.05.20 31 1 29쪽
17 호질 17 - 기호지세 21.05.19 39 1 31쪽
» 호질 16 - 거사 21.05.19 39 1 19쪽
15 호질 15 - 집 나간 탕아 21.05.18 45 1 38쪽
14 호질 14 - 하나밖에 없는 목숨 21.05.18 42 2 15쪽
13 호질 13 - 용의 꼬리 21.05.17 47 3 23쪽
12 호질 12 - 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21.05.17 39 2 29쪽
11 호질 11 - 사사로운 인간사 21.05.16 47 2 17쪽
10 호질 10 - 나찰사냥꾼 21.05.16 48 3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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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질 3 - 호랑이가 꾸짖었다(1) +4 21.05.12 154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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